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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발상 투자 나서라] 남과 다르게 가니 길이 보이더라 

불황에 공격 경영으로 지배력 강화... 신시장 창출, 비용 우위 전략도 

조득진 기자 chodj21@joongang.co.kr

▎정영훈 K2 대표는 신발 위주였던 K2를 의류 중심으로 전환해 불모지나 다름없던 아웃도어 시장을 개척했다.
‘이번엔 삼성의 오판이다’. 1997년 삼성전자가 국내 최초로 양문형 냉장고를 내놓자 당시 시장은 이같이 반응했다. 외환위기의 전조가 짙게 드리워진 상황에서 내놓은 다소 생뚱맞은 하이엔드 제품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지펠’이라는 독립 브랜드를 적용해 프리미엄 이미지를 차곡차곡 쌓아갔다. 가격 또한 비슷한 사양의 수입 제품보다 고가 전략을 폈고, 광고 마케팅도 공격적으로 진행했다. 그 결과 냉장고 분야 시장점유율을 1998년 56%에서 2003년 62%로 끌어올렸다.


해외 시장에서도 선전했다. 1990년대 후반 유럽의 가전시장에선 소형 가전이 인기여서 미국의 소형 가전 전문기업 월풀이 독점하다시피 했다. 삼성전자가 양문형 냉장고를 선보이자 판세가 달라졌다. 크기에 거부감을 가졌던 유럽 소비자들이 냉장고의 다양한 수납 기능에 빠르게 반응한 것이다. 삼성전자의 성공으로 유럽에도 양문형 냉장고 시장이 안착했다. 이 같은 역발상 전략은 미국에서 ‘은 나노’ 기능의 드럼세탁기를 선보이며 시장점유율 1위라는 또 다른 성과를 냈다.

외환위기 때 내놓은 고가 양문형 냉장고


▎삼성의 양문형 냉장고 2016년형 지펠 출시의 전략은 ‘역발상 투자’의 모델로 꼽힌다.
제일기획은 외환위기(1997년)와 카드대란(2002년) 당시 국내 기업들의 마케팅 성공 사례를 분석해 내놓은 보고서에서 ‘불황기에는 일반적으로 기업들이 위험기피식 의사결정을 하게 되고, 방어적인 마케팅 전략을 택하게 되지만 경기 불황 시기에 극적인 매출 증대로 시장의 판도를 바꾼 사례들의 공통점은 역발상 마케팅이었다’고 주장했다. 성공 사례로는 정수기는 상품이 아니라 서비스라는 발상의 전환을 통해 새로운 시장을 창출한 웅진코웨이, 20대 젊은층으로 과감히 마케팅 타깃을 전환한 동아제약 박카스 등을 꼽았다.

정영훈 K2 대표는 아웃도어 업계에서 ‘역발상 경영’의 모델로 꼽힌다. 2002년 정동남 K2코리아 창업자가 불의의 사고를 당하면서 34살의 나이에 갑작스레 회사 경영을 맡은 그는 특유의 신속한 의사결정과 강력한 추진력으로 400억원에 불과했던 회사 매출을 현재 1조원 대로 끌어올렸다. K2코리아에 따르면 K2·아이더·와이드앵글·살레와·K2세이프티의 전체 매출은 2013년 1조원을 돌파한 이후 2014년 1조2500억원, 2015년 1조1190억원을 기록했다.

아웃도어 업계의 전반적인 매출 하락세 속에서도 선방할 수 있었던 것은 정 대표의 다각화 실험에서 기인한다. 정 대표는 신발 위주였던 K2를 의류 중심으로 전환해 불모지나 다름없던 아웃도어 시장을 개척했다. 또 2006년엔 업계 최초로 세컨드 브랜드 ‘아이더’를 들여왔다. 20~30대를 겨냥한 아이더는 젊고 세련된 이미지로 폭발적 인기를 끌며 론칭 10여년 만에 매출 4500억원이 넘는 대형 브랜드로 자리했다. 아웃도어 시장이 최고점에 오른 2014년엔 중저가의 골프웨어 ‘와이드앵글’을 내놔 화제가 됐다. 와이드앵글은 지난해 65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최근엔 독일의 고기능성 아웃도어 ‘살레와’를 국내에 선보이며 업계를 또 한 번 놀라게 했다. 폭탄세일이 다반사인 업계에서 고가의 아웃도어 브랜드로 승부를 걸었기 때문이다.

강호찬 넥센타이어 대표도 역발상으로 시장점유율을 높였다. 넥센타이어는 국내 타이어 업체들이 우르르 해외 공장 건설에 나설 때 2009년 경남 창녕에 공장을 신축했다. 사내에선 비싼 땅값과 인건비를 들며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그러나 강 대표는 “돈이 더 들더라도 품질 좋은 ‘메이드 인 코리아(made in korea)’로 승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결과 2012년 완공한 창녕공장은 세계 최고의 자동화 생산라인으로 자리 잡았다. 최신식 시설은 넥센타이어의 ‘쇼룸’ 역할을 하며 바이어에게 큰 신뢰를 줬다. 창녕공장 가동 후 폴크스바겐과 크라이슬러, 피아트, 미쓰비시 등이 넥센타이어의 고객이 됐다. 강 대표는 해외 사업도 남들과 다르게 진행했다. 업계가 앞다퉈 중국에 대규모 공장을 세웠지만 넥센타이어는 중국 생산 라인을 최소화했다. 유럽 생산기지도 시기상조라고 판단해 미루었고, 대신 미국 시장에 집중했다. 유로화 약세, 미국의 중국 시장 반덤핑 관세, 미국 시장 회복 등에 힘입은 넥센타이어의 역발상 경영은 실적으로 나타났다. 2009년 9662억원이었던 매출은 2015년 1조8375억 원으로 곱절로 늘었다. 1000억 원도 안 되던 영업이익은 지난해 2249억원을 넘었다. 12.2%의 영업 이익률은 국내 타이어 업체 중 최고 수준이다.

국내 제조업 불황의 그늘이 짙어지자 ‘역발상 경영’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각 연구소에서도 역발상 경영의 성과에 대한 흥미로운 분석자료를 내놓고 있다. LG경제연구원은 지난 4월 ‘사업방식 차별화로 시장 흔드는 신흥 제조기업들’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샤오미·화웨이·테슬라 등 최근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기업들의 성공 요인을 분석했다. 이들 기업들은 마케팅이나 연구개발(R&D), 구매 및 제조 등에서 기존 기업들과 다른 방식을 통해 고객의 숨은 니즈를 파악하거나 비용 우위를 차지해 새롭게 시장을 창출하면서 산업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다고 설명했다. 샤오미와 화웨이의 저원가·저비용 사업체계, 테슬라의 고성능 전기차 전략, DJI의 드론 대중화 변환 전략 등을 예로 들었다.

국내 이동통신사는 엉뚱한 것에서 미래를 찾는 작업이 한창이다. ‘엉뚱한 생각(역발상)’을 통해 미래의 먹을거리를 찾고 있는 것이다. KT는 IT와 생활 아이템을 융합한 아이템을 기획한 폰시리즈를 2014년 출시 이후 현재 3탄까지 선보였다. SK텔레콤은 스마트폰과 연동되는 휴대용 체지방 측정기 UO헬스핏, 반려동물 전용 웨어러블 기기 T펫 등의 서비스를 내놓았다.

옛 발상에서 벗어나야 역발상 가능


▎강호찬 넥센타이어 대표는 경쟁사들이 해외에 공장을 지을 때 비용이 더 들어도 국내에 공장을 지어 고품질의 ‘메인드 인 코리아’로 승부했다.
패션·뷰티 업계에서도 역발상 경영이 한창이다. 스포츠 업계는 여성을, 화장품 업계는 남성을 주요 타깃으로 삼고 공략에 나섰다. 스포츠 브랜드 아디다스는 올해를 글로벌 차원에서 ‘여성의 해’로 정했다. 최근 운동하는 여성이 늘고 비용을 아끼지 않는 추세가 나타나면서 아예 메인 캠페인 주인공을 여성으로 내세운 것이다. 여성이 남성보다 ‘적극적 소비층’이라는 것도 주목하는 부분이다. 이와 달리 주요 소비층이 여성인 화장품 업계는 남성 공략에 적극적이다. 자신을 가꾸고 꾸미는 데 많은 돈을 투자하는 남성을 뜻하는 ‘그루밍족’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아모레퍼시픽은 2011년 이후 뚜렷한 신제품이 없었던 남성 전용 화장품 브랜드 ‘오딧세이’ 부활에 시동을 걸었다. LG생활건강 역시 자사 브랜드 더페이스샵에서 출시한 ‘더 젠틀 포맨’을 강화하겠다는 계획이다. [역발상의 법칙] 저자인 로버트 서튼은 역발상과 대비되는 개념으로 ‘옛 발상’을 지적했다. 그는 “옛 발상은 역발상과 반대로 다양성을 몰아내고 과거의 것을 답습하면서 반복적인 사업을 펼친다”며 “새로운 성공을 원한다면 ‘옛 발상’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 조득진 기자 chodj21@joongang.co.kr

1337호 (2016.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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