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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 시장을 다시 보라] 남보다 한 발 앞서 차세대 전략기지로 

효성, 베트남 법인 덕에 사상 최대 실적... LS전선도 베트남 생산 늘려 매출 급증 

호찌민= 문희철 기자 reporter@joongang.co.kr

▎한진중공업이 필리핀에서 가동 중인 수빅조선소.
제조업 구조조정이 한창인 와중에도 전 사업부문 영업이익 늘어나 특정 사업부문 의존도가 감소한 기업이 있다. ㈜효성은 지난해 매출 12조4585억원, 영업이익 9502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대비 매출은 2.3%, 영업이익은 58.3% 늘어난 수치다. 경제가 불확실하고 구조조정이 한창인 와중에 기록한 사상 최대 실적이다. 다른 제조기업은 돈을 빌리느라 은행을 쫓아다니며 자구안을 제출하고 있지만, 효성은 정반대다. 차입금 감소와 더불어 이익이 증가하면서 ㈜효성의 부채비율(개별 기준)은 2013년 203.4%에서 2015년 159.0%로 44.4%포인트 감소했다. 이는 지난 2009년(128.1%) 이후 6년 만에 최저치다. 연결 기준으로도 2013년 402.4%에서 2015년 303.6%로 2년 만에 100%포인트 가까이 감소했다.

필리핀에서 상선 만드는 한진중공업 “불황 몰라요”


효성이 나홀로 호실적을 기록한 건 10여년 전부터 동남아시아 시장으로 눈을 돌렸기 때문이다. 효성은 2000년대 중반 중국에 스판덱스·타이어코드 등 핵심 제품 생산법인이 있는 상황에서, 중국 내 인건비와 토지세 등이 상승하자 차세대 전략 기지를 찾았다. 이 과정에서 눈에 들어온 국가가 베트남이다. 불모지에 가까웠던 베트남 연짝 지역을 돌아보며, 1968년 당시 효성의 모태 공장인 울산공장을 완공했던 기억을 되살렸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효성 베트남법인은 지난 2007년 설립 이후 약 9억9000달러를 투자해 연매출 10억 달러 이상을 기록했다. 효성 전체 매출의 10% 이상을 베트남법인이 담당할 정도다.

호찌민에서 한 시간 걸리는 년짝공단의 효성 타이어코드 공장. 부이 만 도안 사원이 높이 70m에 달하는 거대한 고상중합 탑을 바쁘게 오르내린다. 고상중합탑은 원료물질인 폴리에스터의 물성을 바꿔주는 탑처럼 생긴 거대한 장비다. 폴리에스터(Polyester)로 만든 일종의 실을 꼬는 방사기도 1만rpm(분당 회전수)으로 힘차게 돌아간다. 흰 옷을 입은 근로자들은 활기차게 기계를 다룬다. 인근 효성 스틸코드 공장 역시 근로자 열기로 후끈거렸다. 스틸코드는 타이어 내부에 들어가는 강철 화학섬유. 효성은 여기서만 세계 스틸코드의 약 10%를 생산한다. 쯔엉 당콰 사원이 품질 검사를 하고 빨간 버튼을 누르자 60가닥의 철근이 굉음을 내며 일렬로 이동했다. LS전선아시아 호찌민 공장(LSCV)도 분위기는 비슷했다. 공장 공터엔 중남미 통신장비사 ‘파이코’로 갈 광케이블이 감긴 대형 나무 드럼이 무더기로 쌓여 있었다. 송우성 LS케이블베트남 법인장은 “아메리카·유럽에서 주문이 밀려 잠시도 멈출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LS전선아시아(베트남 공장 2곳)는 10년 간 매출이 7배나 늘면서 연평균 24% 성장했다.

이들은 글로벌 생산기지 재편을 미리 간파하고 다른 기업이 가기 전인 2006년~2009년 선제적으로 베트남에 진출한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KOTRA가 5월 26일 발표한 ‘6개국·31개 생산기지 이전 사례 분석’에 따르면, 2014년부터 생산기지를 이전했거나 2년 내 이전을 밝힌 글로벌 기업 중 절대 다수(51.9%)가 베트남을 택했다.

발 빠르게 동남아시아로 눈을 돌려 성공한 사례는 또 있다. 재무구조 개선 성공 사례로 평가받는 한진중공업이다. 한진중공업은 일찌감치 규모가 적은 부산 영도조선소는 군함 등 특수선 중심으로, 필리핀 수빅조선소는 대형 컨테이너선 등 상선 중심으로 투 트랙 전략을 구사했다. 수빅 조선소는 필리핀 정부의 전폭적 지지에다 저렴한 인건비 등에 힘입어 승승장구했다. 채권단이 한진중공업에 후한 점수를 준 것도 탄탄한 구조의 수빅조선소의 영향이 컸다.

세계 경기가 불황이라고 하지만 아시아는 다소 다르다. 여전히 세계 경제 성장의 3분의 2 가량을 담당하며 제 몫을 하고 있다. 아시아 국가는 상대적으로 재정수지 흑자와 풍부한 외환 보유액을 바탕으로 외부 충격에도 다소 잘 버티는 편이다. 아시아 국가 중에서도 특히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이 우리나라 제조 기업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아세안 경제공동체는 GDP 규모로 세계 7위, 인구로는 6억 명의 거대 경제권이다. 아세안 기업은 중국이 주춤하고 세계 경기 침체된 와중에도 연 4~5% 성장하며 ‘세계 경제의 성장엔진’으로 부상하고 있다. 아세안 기업에 대한 외국인직접투자(FDI) 규모는 2013년 650억 달러(약 74조5420억원)에서 2014년 800억 달러(약 91조7440억원)로 23% 증가했다.

이들 국가의 각종 지표는 우리나라 제조 기업이 탐낼 만하다. 지난 3월 동남아시아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를 살펴보면 대만은 3월 51.1로 2월(49.4)보다 높게 나타났다. 인도(52.4)·베트남(50.7)·인도네시아(50.6)가 뒤를 이었다. PMI가 50 이상이면 기업이 경기 확장을 예상한다는 뜻이고, 50 미만이면 경기가 위축될 것으로 본다는 의미다. 각 지역 기업이 보는 경기 전망이 양호한 국가들이 동남아에 많다는 뜻이다. 특히 베트남과 인도네시아의 신규 주문 건수가 늘었다. 지난 4월 베트남의 신규 주문은 지난해 7월 이래 가장 큰 폭으로 증가했고, 신규 수출 주문과 재고 수준도 지난 3월에 이어 호조세다. 고용은 작년 5월 이후 가장 큰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기술력, 현지 생산 역량 갖춰야

선진 시장과 달리 아시아 시장은 아직 발전 가능성과 기회가 남아 있다는 점에서 우리나라 기업들이 주목할 만하다. 내수 시장을 어느 정도 확보한데다, 중국 시장이 살아날 경우 추가 수혜를 받을 가능성도 남아있기 때문이다. 강재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중국에 철강·목재 등 건설자재를 수출하던 동남아시아 국가는 일시적으로 충격을 받고 있지만 중국 경기가 살아날 경우 다시 수혜를 입을 가능성도 있다”며 “신흥국 제조업 경기가 지역별로 차별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지만 경기 하강 우려는 줄어들고 있다”고 분석했다.

다만, 친구 따라 강남 가듯 준비 없이 방향을 틀어선 곤란하다. 베트남 진출 기업들은 “인건비 절감만 믿고 신시장을 고르면 안 된다”고 입을 모은다. 생산 비용보다 중요한 건 세계 최고 제품을 현지에서 제조할 수 있는 기술력이다. 인건비 경쟁으론 결국 중국을 넘어서기 어려운 탓이다. 효성의 베트남 성공 뒤엔 효성기술원이 개발한 원천기술력이 자리한다. 국내서 개발한 세계 1위 제품(스판덱스·타이어코드)을 베트남에서 만든다. 현지 생산 역량이 부족하면 기술력도 무용지물이다. LS전선아시아는 베트남에 ERP(전사적 자원관리)시스템을 2008년 도입했다. 효성도 베트남 타이어코드 공장을 설계할 때부터 울산공장과 완벽히 동일한 시스템을 구축했다. 권기수 효성 베트남법인장은 “울산공장 근로자가 갑자기 베트남에 와도 한치의 오차 없이 같은 일을 할 수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 호찌민= 문희철 기자 reporter@joongang.co.kr

1337호 (2016.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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