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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하는 소셜 벤처] 돈 몰리고 사업영역 넓어진다 

저성장·고령화로 갈등 빈발 … 사회적 가치 추구하는 스타트업·투자자 늘어 

조용탁 기자 ytcho@joongang.co.kr
국내에서도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스타트업 격인 ‘소셜 벤처’ 생태계가 형성되고 있다. 열정 넘치는 창업가, 경험을 쌓은 투자가, 사회적 가치를 중시하는 고객군이 어우러지고 있어서다. 이들은 정부가 미처 눈을 돌리지 못하는 사회 문제를 신선한 아이디어와 기술로 해결한다. 그러면서 이윤도 창출한다. 소셜 벤처에 투자하는 임팩트 투자가와 대기업도 늘고 있다. 여기에 정보통신기술(ICT) 발전과 스마트폰 보급 덕에 창업 문턱이 낮아지면서 소셜 벤처의 사업영역도 넓어지고 있다. 사회적 가치와 개별 이익을 동시에 챙기는 모습을 두고 ‘미래 비즈니스의 선행지표’라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1. 정지연씨는 지난 1월 임팩트 투자 및 컨설팅 기관인 MYSC에 입사했다. 이전엔 대기업에서 8년 간 일했다. 대기업에서 소셜 벤처로 옮긴 이유에 대해 그는 “기업이 사업을 하면서 사회 문제를 함께 해결하면 더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며 “회사의 방향성을 넘어서 개인이 관심있는 문제를 고민하며 솔루션을 만들고 싶어 이직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2. “투자할 만한 소셜 벤처를 소개해주세요.” 지난 연말부터 한상엽 소풍 대표를 찾는 벤처캐피털(VC) 투자자의 전화가 늘었다. 소풍은 소셜 벤처 투자 겸 인큐베이팅 기관이다. 소풍은 카셰어링 업체 쏘카의 초기 투자 기업이다. 성공 사례가 나오자 소풍에 투자할 기업을 문의하는 VC가 늘었다.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스타트업 격인 ‘소셜 벤처’가 진화 중이다. 명문대·대기업·외국계기업 출신 인재가 몰리고 있다. 저성장·저금리 시대에 마땅한 투자처를 못 찾는 VC와 금융권의 직접 투자도 이어지고 있다. 대기업과의 협업도 늘고 있다. 정교한 사업모델을 만들어 함께 사회적 가치를 찾는 형식이다. 사회 소외계층을 고용하기 위해 정부 보조금을 받아 기업을 유지하던 모습에서 한걸음 진화했다.

소셜 벤처는 사회적 기업의 한 종류다. 혁신적 아이디어나 비즈니스모델 혁신을 통해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기업이다. 2000년대 초반 미국 실리콘밸리와 뉴욕의 스타트업 가운데 사회적 가치를 중시하는 창업가들이 등장했다. 창의적인 아이디어에 정보통신기술(ICT)을 더해 사회 문제 해결에 나섰다. 개발도상국에 물과 전기를 공급하고, 저소득층 자녀들의 학업을 돕고, 진로를 상담해준다. 이들은 장애우의 원활한 사회 활동도 지원하며 세상의 주목을 받았다.

혁신적 아이디어나 기술로 사회 문제 해결


한국 소셜 벤처의 시작은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0년대 중반 한국에서 소셜 벤처의 필요성을 말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2007년 정부가 사회적기업 육성법을 제정했고, 사회적기업진흥원을 설립해 본격적인 지원을 시작했다. 사회적기업 인증을 받은 기업을 중심으로 지원했다. 진흥원에서 그동안 사회적기업 인증을 받은 기업은 1674개에 달한다. 이 중 1500곳이 아직도 사업을 벌이고 있다.

2000년대 후반 들어 새로운 시도가 나타났다. 사회적 가치를 제공하면서 수익도 꾸준히 창출할 수 있는 지속가능한 사업모델을 모색하는 것이다. 특히 일반 기업이나 벤처가 접근하기 어려운 사업 분야를 개척하며 진화 중이다. 정부 보조금에만 의존하지 않고 지속가능한 사업 모델을 개척한다. 일부에선 벤처와 소셜 벤처 사이의 경계가 모호해졌다고 말한다. 사회 문제 해결 분야 자체가 하나의 새로운 사업 영역이 되고 있다. 시장 관점으로 보면 일반 기업의 사업 영역은 B2B, B2C 시장이다. 소셜 벤처는 하나의 시장을 더 확보 할 수 있다. B2G 즉 정부 대상 사업이다. 예컨대 소풍이 투자한 소셜 벤처 동구밭이 있다. 이들은 성인 발달 장애인 교육 기관이다. 정부엔 성인 발달 장애인 교육 프로그램이 없다. 민간에서 효과적인 프로그램을 만들어 제공하는 정부 조달 시장에 가깝다. 용산의 한 컴퓨터 제조 업체는 지적 장애인을 우선 고용한다. 집중력이 높아 이들이 조립한 컴퓨터는 성능이 우수하다. 이곳에서 조립한 컴퓨터를 정부에 납품한다. 고용노동부에서 받은 지적 장애인들 고용 지원금에 판매 수익을 더해 흑자를 낸다. 한상엽 소풍 대표는 “정부가 해결 못하는 일이 늘어나고 더 많은 분야가 민간으로 이양될 것”이라며 “비영리는 사회 기관, 영리 부분은 소셜 벤처가 담당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소셜 벤처와 대기업의 독특한 관계도 주목할 포인트다. 한국 대기업들은 다양한 사회공헌활동(CSR)을 진행 중이다. 특히 기업 문화에 맞는 효율적인 CSR을 위해 소셜 벤처에 눈을 돌린 기업이 많다. 대기업이 접근하기 어려운 소외계층에 좀 더 효율적인 지원이 가능해서다. 지난 1년 사 이 삼 성·현대·SK·LG·롯데 등 주요 대기업은 소셜 벤처와 협업 사업을 늘렸다. 이 과정에서 독특한 상생관계도 만들어지고 있다. 일반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협업을 하면 갑·을 관계가 생긴다. 중소기업이 대기업 눈치를 본다. 벤처기업도 걱정이다. 대기업에 기술이나 아이디어를 빼앗길 수 있어서다. 소셜 벤처는 다르다. 대기업이 오히려 보호해주며 함께 가려 한다. 키워서 성공하면 아예 조인트 벤처를 만들어 주위에 이를 홍보한다. 김정태 MYSC 대표는 “사업에 성공해도 대기업이 치고 들어오는 일이 거의 없다”며 “상생하며 동반성장 할 수 있는 분야이기에 소셜 벤처의 생존률이 일반 벤처보다 높은 것 같다”고 설명했다.

정부에 모든 것 맡기기엔 역부족


정부도 한층 세련된 지원 정책을 펼치는 중이다. 젊은 창업자의 눈높이에 맞는 소셜 벤처 아이디어 대회를 열고, 성장 가능성이 큰 소셜 벤처를 투자자들에게 홍보하고 있다. 사회적기업진흥원 관계자는 “기업들의 사회공헌 방식이 바뀌면서 가치있는 벤처, 스타트업을 선별해 투자금을 지원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며 “정부도 이에 맞춰 다양한 제도를 선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당분간 소셜 벤처는 계속 성장할 전망이다. 여전히 사회가 불안하다. 성장이 멈추고 정체에 빠졌다. 복지 사각지대를 정부가 돌아볼 여력이 부족하다. 소셜 벤처가 하나의 대안으로 자리 잡아갈 전망이다. 카이스트 청년창업투자지주를 운영 중인 이병태 카이스트 경영학 교수는 “소셜 벤처는 높은 현장 이해도를 바탕으로 사회 문제의 핵심을 파악해 규칙에 얽매이지 않고 효율적인 대안을 내놓는다”고 설명했다.

마침 불어온 벤처 창업 열풍도 소셜 벤처 활성화의 불씨가 됐다. 정부가 적극적인 창업지원 정책을 펴며 진입장벽이 낮아졌다. 스마트폰 보급 확산으로 사업 적용 범위도 넓어졌다. 저소득층도 스마트폰이 있다. 고객 접근 비용이 낮아진 덕에 더 적은 자금으로 창업할 수 있게 됐다. 사회 문제를 피부로 느끼고 있는 인재가 모여 대안을 만들기 시작했다. 성수동 소셜 벤처 타운에서 만난 이들은 기존 사회 구조가 한계에 도달했다며 새로운 대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입시지옥과 취업 관문을 지나면 명퇴가 기다린다. 그나마 명문대 출신의 걱정이다. 사회 소외층의 문제도 다양해지고 있다. 이덕준 D3쥬빌리 대표는 “이는 한국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라며 “이를 적극적으로 해결하지 않으면 나뿐 아니라 주변, 다음 세대가 같은 문제를 겪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젊은층의 사회 인식 변화도 꼽을 수 있다. 가격과 품질, 여기에 사회적 가치를 중시하는 소비 계층이 확산 중이다. 이덕준 대표는 “젊은 세대 사이에서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에 대한 고민이 늘고 있다”이라며 “사회를 바라보는 인식의 변화가 소셜 벤처가 자리잡는 데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설명했다.

업계에선 소셜 벤처를 ‘미래 비즈니스의 선행지표’라고 소개한다. 지금 확고한 비즈니스 모델은 아니다. 하지만 글로벌 기업은 지속가능 경영을 이야기하며 사회공헌을 말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사회적 나눔이 기업에 점점 중요한 요소로 자리잡고 있다. 김정태 대표는 “10년 후 시장에서는 사회적인 이해관계에 대한 고민이 없으면 살아남기 어려울 것”이라며 “대한민국에 민주주의라는 말을 사용할 필요가 없듯, 소셜 벤처가 아니라 모두 벤처기업이라고 부르는 시기가 올 것”이라고 기대했다.

- 조용탁 기자 ytcho@joongang.co.kr

[박스기사] 글로벌 소셜 벤처 시장은 - 빌 게이츠, 저커버그도 지원 늘려

‘혁신하거나 죽거나(Innovate or Die)’는 글로벌 발명품 대회 이름이다. 2008년 대회 우승은 자전거 정수기 ‘아쿠아덕트’ 팀이 차지했다. 아쿠아덕트는 자전거로 물을 실어 나르는 운송 수단이다. 여기에 자동차 패달을 밟을 때마다 작동하는 정수기를 달았다. 자전거에 물을 담아 집으로 달려오면 정수가 완료된다. 아프리카와 동남아에서 식수 부족으로 신음하는 11억 명에게 큰 도움을 준 제품이다. 전등 공급 사업을 벌이는 딜라이트도 소셜 벤처의 좋은 사례다. 스탠퍼드 대학 출신의 창업자들은 서아프리카 평화봉사단으로 있던 시절 친구 아들이 등유 랜턴에 화상을 입은 모습을 보고 아이디어를 냈다. 등유 랜턴 대신 ‘Forever-Bright’라는 태양광 전등을 개발했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제3세계 16억 명이 공급 대상이다.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기술을 사용해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소셜 벤처가 세계 곳곳에서 활동 중이다. 2000년 대 중반 등장해 지금은 세계 곳곳에서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빌 게이츠, 마크 저커버그 등 성공한 기업인도 소셜 벤처 지원을 늘리고 있다. 이들 기업에 투자하는 임팩트 투자 역시 매년 빠르게 늘어 글로벌 임팩트 투자 규모는 70조원에 달한다. JP모건은 2020년 임팩트 투자 규모가 400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1339호 (2016.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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