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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폭 넓히는 소셜 벤처] 자투리 원단으로 ‘폐기물 0’ 패션 론칭 

단순 제조에서 패션·헬스케어로 영역 확대 … 취약계층 고용에 수익 창출도 

최은경 기자 chin1chuk@joongang.co.kr

▎서울 창신동의 문화예술 공간 ‘000간’, 가수 로이킴의 팬클럽이 트리플래닛에 의뢰해 조성한 서울 개포동 ‘로이킴숲’, 마리몬드가 위안부 할머니들의 작품을 응용해 만든 휴대전화 케이스, 도심에서 양봉사업을 하는 어반비즈서울의 박진 대표, 소셜 액티비티 플랫폼 프렌트립 회원들의 실내 암벽등반 활동(왼쪽부터).
#1. 1분 41초.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 텀블벅에서는 이 짧은 시간에 한 번씩 후원이 이뤄진다. 영화학도였던 염재승 대표가 2011년에 설립한 이 회사는 주로 문화·예술 분야의 창작자를 후원한다. 이 사이트에서 현재까지 20여만 명이 3067개 프로젝트를 위해 90억원을 모금했다. 주한 일본 대사관 앞에 설치된 ‘평화의 소녀상’을 소장 가능한 크기로 만들어 보급하겠다는 ‘작은 소녀상’ 프로젝트는 지난 2월 모금을 시작한 지 46시간 만에 목표금액 1억원을 모았다.

#2. 서울 개포동의 ‘신화숲’, 서울 여의도의 ‘소녀시대숲’, 전남 진도군의 ‘세월호 기억의 숲’은 모두 트리플래닛의 손을 거쳐 만들어졌다. 이 회사는 개인이나 단체의 돈을 받아 숲을 조성해준다. 모금한 돈의 대부분은 나무를 심는 데 쓰고 일부를 회사가 갖는다. 2010년 나무 키우기 게임 애플리케이션(앱)으로 출발한 트리플래닛은 이제까지 12개국에 116개의 숲을 조성해 55만 여 그루의 나무를 심었다.

단순 제조업을 넘어 크라우드 펀딩부터 교육·여행·식품·환경·에너지·헬스케어·콘텐트·공유경제·제조·패션까지. 다양한 분야의 소셜 벤처가 세상을 매력적으로 바꾸고 있다. ‘농사펀드’ 역시 최근 크라우드 펀딩에서 눈에 띄는 성과를 보이는 기업이다. 제초제를 사용하지 않는 등 친환경 조건을 만족하는 농부가 농사펀드 홈페이지에 농산물을 올리면 전국의 소비자가 이들에게 1만~30만원을 투자한다. 농부는 이 자금으로 농사를 짓고 투자자는 친환경 농산물을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다. 지금까지 이런 방식으로 180여 개 농가에 영농자금을 후원했다. 레스토랑과 ‘농부 팀’을 연결해주는 기업 간 거래도 시작했다.

‘000간(공공공간)’은 디자인·패션 분야에서 눈에 띄는 소셜 벤처다. 회사명에 있는 ‘000’은 공감·공유·공생을 뜻하는 것으로 봉제 공장이 모여 있는 서울 창신동에서 여러 문화예술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미대 출신의 홍성재 000간 대표는 이곳 아이들을 위한 문화공간을 만들고 창신동에서 버려진 자투리 원단을 모아 ‘제로 웨이스트(zero waste)’라는 패션 브랜드를 선보였다. 의류 폐기물을 최대한 ‘0’으로 만들겠다는 취지다. 지역 소공인들에게 제작을 맡겨 일자리를 제공한다. 이 브랜드는 지난 5월에 열린 성수동 서울숲 플리마켓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다.

공유 경제 분야에서 활동 두드러져

소셜 벤처들의 활동은 특히 환경, 공유 경제 분야에서 두드러진다. 어반비즈서울의 박진 대표는 도심 속 양봉이라는 놀라운 사업 아이템을 실행에 옮겼다. 공기업에 다니던 박 대표는 주말농장을 가꾸다 도시의 꿀벌이 농작물 재배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알고 도심 양봉 사업을 시작했다. 현재 서울 명동 유네스코 회관 옥상정원을 비롯한 수도권 25곳에서 양봉을 하고 있다. 생소한 모습이지만 박진 대표는 “유럽이나 일본에서는 도심 양봉이 관광모델로도 유명하다”고 말했다. 연간 1~1.5t씩 수확하는 꿀은 보건환경연구원과 한국양봉협회의 검사를 거쳐 판매한다. 도심 양봉가 양성 프로그램도 진행해 이제까지 600명을 교육했다. 경남 진해에서 오는 초등학생, 외국인 등 회원들 면면이 다양하다. 6월 초 일반인이 투자를 하면 꿀을 보내주는 ‘허니뱅크’ 서비스도 시작했다.

아웃도어 활동과 공유경제를 접목한 프렌트립은 야외활동을 원하는 사람과 전문가를 연결해준다. 같은 야외활동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끼리 모임을 주선하기도 한다. 주로 등산·패러글라이딩·윈드서핑 같은 활동적인 스포츠를 원하는 이용자들이 많다. 한라산 산악 스키 투어, 보라카이 스쿠버 다이빙 같은 활동이 대표적이다. 최근에는 우쿨렐레 배우기, 꽃꽂이, 주말농장 같은 취미활동으로 범위를 넓혀 종합 소셜 액티비티 플랫폼으로 성장했다. 3년 동안의 프렌트립 이용자 수는 10만 명이 넘는다.

소셜 벤처끼리 협업도 활발하다. 소셜 벤처 골목으로 유명한 서울 성수동 1가에 있는 마리몬드는 위안부 할머니들이 그린 그림을 응용한 디자인 제품을 생산한다. 옷·가방·팔찌 같은 패션 아이템부터 앨범, 다이어리, 앞치마, 테이블 매트까지 종류가 다양하다. 특히 휴대전화 케이스는 아이돌 가수이자 배우인 수지가 사용하는 것이 알려지면서 ‘수지 폰케이스’로 큰 인기를 끌었다. 이 회사의 연 매출은 16억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동네에 있는 두손컴퍼니는 원래 노숙인을 고용해 친환경 옷걸이를 만들어 파는 회사였다. 이웃사촌인 마리몬드의 주문량이 늘면서 이 회사의 물류를 담당하게 됐다. 작은 사무실에서 시작해 현재는 661㎡(200평) 규모의 창고에 물류센터를 열 만큼 성장했다.

이들은 고용에도 기여한다. 네이버 창업 멤버로 잘 알려진 김정호 대표가 설립한 베어베터는 장애인을 고용해 명함 인쇄, 제과·제빵, 꽃 배달 사업 등을 한다. 소비자들의 동정심에 호소하지 않고 품질 향상에 신경 쓴 결과 설립 2년 만인 2014년 손익 분기점을 넘어 흑자를 기록했다. 고용도 더 늘었다. 올해 초 기준 140여 명이 일하고 있다. 직원의 80%가 장애인이다. 이진희 공동 대표는 한 인터뷰에서 “직원들이 정년 퇴직할 수 있는 조직을 만드는 게 목표”라고 밝혔다.

장애인 직원의 정년퇴직 꿈꾸는 회사

오요리아시아의 이지혜 대표는 서울 북촌에서 스페인 레스토랑 ‘떼레노’를 운영하며 취약 계층의 취업을 돕는다. 지난 몇 년 동안은 아시아 이주 여성들에게 요리를 가르치는 사업에 주력했다. 최근에는 소외된 청년 계층을 인턴으로 채용해 외식업을 전수하고 있다. 이들에게 ‘열정 페이’는 없다. 법정 최저임금에 주휴수당을 더한 월급과 정규직 전환 기회를 준다.

교육 분야 소셜 벤처인 동구밭은 발달장애인에게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이 회사는 고용률보다 근속연수에 집중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어울릴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이유다. 프로그램에 참가하는 장애인은 연간 230여 명. 비장애인과 일대일 짝꿍이 돼 텃밭에서 여러 활동을 벌이는 동구밭 지기 프로그램에 참여한 장애인의 친구 수가 1.4명에서 3.9명으로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이 프로그램에서 수확한 작물로 천연 비누를 만들어 판매하기도 한다.

이용자의 선의만 바라는 것이 아니라 기업으로서 획기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제시하는 이들에게 투자자들도 긍정적 눈길을 보내고 있다. 프렌트립은 지난해 하나금융투자 등으로부터 19억원을 투자 받았다. 트리플래닛은 지난해 라임투자자문으로부터 8억원 투자 유치에 성공했다.

- 최은경 기자 chin1chuk@joongang.co.kr

1339호 (2016.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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