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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석의 ‘의예동률(醫藝同律)’] 열대야에 더욱 괴로운 불면증 

고종도 말년에 불면증에 시달려... 체질과 잠의 형태 등에 따라 다양한 처방 

윤영석 한의학 박사. 경희대 한의과대학 외래교수

▎고종황제가 혜민원 관리에게 벼슬과 계급을 내린 일종의 발령장인 칙명.
'칙명 혜민원 참서관인 박정식을 승정3품 통정대부로 임명한다. 1902년 5월 7일’. 사진의 문서는 고종황제가 혜민원 관리에게 벼슬과 계급을 내린 일종의 발령장입니다. 국왕이 신하에게 내리는 관직이나 계급, 자격 등을 문서화해서 내려주는 것을 교지(敎旨)라고 하는데 요즘으로 치면 임명장이나 발령장, 자격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조선 초기에는 왕지(王旨)라고 했다가 세종대왕 때 교지라고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그러다 이게 대한제국 때 칙명으로 바꿔 부르게 된 것입니다. 결국 왕이 내린 임명장은 교지이고, 황제가 내린 임명장은 칙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지나 칙명은 국왕의 신하에 대한 권위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관인이 찍힌 이런 문서는 가문의 자랑이자 영예이기 때문에 자손들이 대대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타고난 건강 체질이었던 고종도…

사진의 칙령에 나오는 혜민원(惠民院)은 고종황제의 명령으로 1901년에 설치된 의료 및 구휼기관입니다. 흉년이 든 해에는 굶고 아픈 사람을, 평상시에는 고아나 가족이 없는 무의탁자를 돕고 치료해줍니다. 내부대신 등 3명의 총재를 두고 그 아래에 정책을 결정하는 5명의 의정관을 두었습니다. 그 아래에 한 명의 총무를 두었는데, 이를 보좌하는 직종이 위의 칙명에 나오는 참서관이었던 겁니다. 그러다가 3년 후에는 다른 기관으로 흡수·통합 됩니다. 구조조정이 된 것이지요.

혜민원은 백성들의 건강을 돌보기 위해 만들었지만 내의원·태의원은 왕의 건강을 돌보기 위해 만든 기관입니다. 그러나 조선시대 임금들은 병도 많았고 단명했습니다. 평균 수명이 47세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이는 과다한 영양, 적은 운동량, 스트레스와 과색(過色) 등이 원인이 된 것 같습니다. 27명의 조선 임금 중에서 그나마 환갑을 넘긴 사람은 태조·정종·광해군·성종·영조·고종 등입니다. 가장 장수한 임금은 83세에 돌아가신 영조이고, 최단명한 임금은 17세에 세상을 떠난 단종입니다.

기록에 보면 이 칙명을 수여한 고종황제는 타고난 건강 체질이었던 듯합니다. 그러나 왕이 된 이후 민씨 일족에게 시달리고 주변 열강인 청나라·일본·러시아 사이에서 외교적 줄타기를 하면서부터 건강이 나빠지기 시작합니다. 말년에 이르러 명성황후의 시해를 겪고 본인도 암살 위험에 노출되면서 불면과 소화불량으로 많이 고생한 듯싶습니다. 고종은 39세 때부터 불면과 소화기 장애로 고생하기 시작한 것이 태의원(太醫院)의 기록에 나타납니다. 여기에는 전의(典醫)들이 고종을 진단한 결과와 처방이 나오는데, 불면증의 원인을 소화기관의 이상반응으로 잡고 약을 쓴 것으로 추정됩니다.

인생의 3분의 1은 잠자는 데 쓰입니다. 잠을 못 자는 증세도 여러 가지입니다. 처음부터 잠이 들기 어려운 난면(難眠), 얕게 자는 천면(淺眠), 자주 깨는 빈각(頻覺) 그리고 수면시간이 짧은 단면(短眠)으로 나눕니다. 한의학에서는 위와 같은 분류와 함께 이를 각각 여섯 가지 원인으로 나누어 치료합니다. 그러므로 같은 불면증 치료에 있어서도 서양의학에서는 누구에게나 같은 수면제를 써서 강제로 잠을 재우는 반면, 한의학에서는 사람의 체질과 잠의 형태, 그리고 원인에 따라 한약 처방을 각기 달리 합니다.

불면증의 첫째 원인은 사결불수(思結不睡)라고 하는데, 이는 고민과 생각이 너무 많아서 생깁니다. 내성적인 사람이 많으며 팔다리에 기운이 없고 권태감이 심하며 숨쉬기가 편하지 않습니다. 한약 처방으로 심장과 비장(脾臟)을 치료해주면 낫게 됩니다. 당장 한약을 쓰기가 어려운 경우에는 산대추씨앗인 산조인(酸棗仁)이란 약재를 살짝 검은 빛이 돌도록 볶아서 끓여 마시면 좋습니다.

둘째 음허내열(陰虛內熱)이 원인입니다. 음기가 부족해지면 열(熱)이 생기게 되고 진액이 부족해집니다. 그렇게 되면 가슴이 답답해지고 두근거리면서 잠이 잘 안 오게 됩니다. 주로 갱년기 때에 나타나는데, 과다한 카페인 섭취도 내열의 원인이 됩니다. 자다 깨서 소변을 보게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럴 때에는 연꽃씨앗인 연자육(蓮子肉)을 노릇노릇하게 볶은 후 달여 마시면 잠 자는 데 도움이 됩니다.

셋째로 영혈부족(營血不足)인 경우입니다. 정신적 과로와 육체적 피로가 겹쳐져서 생깁니다. 병후에 피가 부족해지면 심장을 보양하지 못하고 눈이 침침해지고 어지러우면서 잠을 못 자게 됩니다. 머리도 묵직하고 입도 마릅니다. 이럴 때에는 맥문동(麥門冬)이라는 약을 진하게 끓여 마십니다.

넷째로는 담연울결(痰涎鬱結)입니다. 음식을 잘 먹지도 못하고 배설도 잘 안되면 몸 안에 담(痰)이 생깁니다. 이는 체액의 대사가 안 되는 원인이 돼 불면증을 초래합니다. 두근거리고 메슥거리면서 항상 목에 무엇인가 걸린 것 같습니다. 대추를 달여 마시는 것이 좋습니다.

다섯째로는 심담허겁(心膽虛怯)입니다. 심장과 쓸개가 허해서 겁이 많고 잘 놀라면서 가슴이 두근거리며 불안해서 잠을 못 잡니다. 잠을 자다가 조금만 바스락거려도 깨게 됩니다. 열대과일의 일종인 용안육(龍眼肉)이라는 한약재를 끓여 마시면 좀 더 깊이 잘 수 있습니다.

여섯째가 위중불화(胃中不化)가 원인이 된 것입니다. 고민과 스트레스가 많아서 소화가 안 되고 잠을 못 이룹니다. 가슴이 먹먹하고 트림이 자꾸 나면서 음식이 내려가지 않습니다. 대변도 통하지 않고 입맛이 없으며 토하기를 잘 합니다. 위에서 말한 고종황제 불면증의 원인일 것으로 생각됩니다. 후박(厚朴)나무 껍질을 달여 마시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백회혈·태양혈·전중혈 누르고 두드리면 효과

잠들기가 어렵다 해서 TV를 오래 보거나 책을 보는 것은 썩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술을 마시는 게 잠을 빨리 들게 하는 방법일 수 있으나 숙면이 안 되고 깨어나서도 몸과 정신이 맑지 않으므로 그리 추천할 건 아닙니다. 침대에 누워서 마음을 비우고 생각 없이 가만히 누워서 가수면(假睡眠) 상태를 취하는 것이 잠을 못 자서 안절부절 하는 것보다 낫습니다. 잠이 깊게 들지 않더라도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두면 일정 부분 수면효과가 있습니다.

불면증을 제대로 치료하려면 위의 원인에 따라 한약으로 근본치료를 하는 것이 좋지만 여의치 않을 때에는 집에서도 간단하게 할 수 있는 한방 보조 요법이 있습니다. 불면증에 효과가 있는 경혈을 지압해 주거나 손가락으로 가볍게 두드려 주면 됩니다. 가장 대표적인 경혈은 백회혈(머리 두정부 정중앙), 태양혈(관자놀이), 전중혈(양 가슴 사이 중간)인데 수시로 누르고 두드려주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남에게 가장 큰 고통을 주는 것은 잠을 안 재우는 것이라고 합니다. 나 스스로에게 가장 큰 고통이 되는 것도 잠이 안 오는 것입니다. 더위에 잠 못 이루는 밤, 한약재와 경혈 지압법을 이용한 요법으로 편안한 여름을 보내시기 바랍니다.

윤영석 - 경희대 한의과대학을 졸업했다. 한의학 박사. 경희대 한의과대학 외래교수로 후학을 양성하면서 7대째 가업을 계승해 춘원당한방병원을 운영하고 있다. 한의학 관련 유물 4500여점을 모아 춘원당한방박물관도 세웠다. 저서로는 [갑상선 질환, 이렇게 고친다] [축농증·비염이 골치라고요?] 등이 있다.

1345호 (2016.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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