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 Life

[서영수의 ‘돈이 되는 茶 이야기’] 저우언라이의 힐링푸드 ‘루안과펜’ 

사선을 넘은 전우가 준 마음의 선물... 위안스카이의 차로도 소문 나며 몸값 치솟아 

서영수

▎루안과펜의 생산지인 안후이성의 다원.
루안과펜(六安瓜片)을 한 모금 마신 저우언라이(周恩來)는 보좌관에게 미소로 고마움을 전하고 잠시 후 숨을 거뒀다. 임종을 앞둔 78세의 중국 개국 총리 저우언라이가 병상에서 간절히 찾은 것은 사람이 아닌 차 한 잔이었다. 이름도 생소한 차를 황급히 수소문해 구해온 젊은 보좌관은 도저히 헤아릴 수 없는 길고 끈끈한 인연이 저우언라이와 루안과펜 사이에 있었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았다.

루안과펜을 저우언라이에게 처음 소개한 사람은 예팅(葉挺) 장군이다. 1927년 8월 1일 난창(南昌) 봉기를 주도한 저우언라이와 사선을 함께 넘은 혁명동지 예팅은 무장 세력의 총지휘관이었다. 1939년 봄 국민혁명군 육군 신편 제4군 지휘관으로 예팅이 부임하며 저우언라이에게 준 마음의 선물이 루안과펜이었다. 1946년 4월 8일 비행기 사고로 사망한 예팅의 죽음을 비통하게 여긴 저우언라이는 추모사를 직접 썼다. 저우언라이에게 루안과펜은 단순한 차가 아닌 먼저 간 전우와 이어주는 훈훈한 가교였다. 냉전시대를 화해의 시대로 바꾼 ‘핑퐁외교’의 한 축인 저우언라이가 사망한 1976년 1월 8일 UN은 파격적으로 조기를 내걸었다.

저우언라이와 키신저의 극비 외교 때 공식 선물


▎젓가락에 익숙하지 않은 키신저의 식사를 도와주는 저우언라이(왼쪽).
루안과펜과 예팅에 대한 저우언라이의 추억 덕분에 루안과펜은 건국 직후부터 중국 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에 특별히 공급됐다. 중국의 전통 차와 차 문화가 봉건유산계급의 산물로 치부돼 한동안 박해를 받았지만 루안과 은 예외였다. 1971년 7월 9일 세계의 이목을 따돌리고 헨리 키신저 백악관 안보담당보좌관이 베이징에 도착했다. 비밀작전명 ‘폴로’로 알려진 키신저와 저우언라이의 극비 외교는 7월 11일까지 진행됐다. 22년 간 단절된 양국 관계를 복원하기 위한 힘겨운 물밑 협상을 마무리한 저우언라이가 키신저에게 증정한 중국 정부 공식 선물은 저우언라이의 힐링푸드 루안과펜이었다.

루안과펜의 생산지인 안후이성 루안 사람들은 나중에 이 사실을 알고 시골마을의 차가 중국과 미국의 관계 개선에 한몫했다고 기뻐했다. 그 당시 미국과 중국에게 소련은 공동의 적이었다. 중국 수뇌부는 미국을 두고 ‘적의 적은 친구’라고 생각했다. 저우언라이는 루안과펜을 키신저에게 선물하며 옛 혁명동지 예팅을 떠올렸다. 닉슨 미국 대통령의 중국 방문 일정을 중국과 미국이 동시에 발표하기로 저우언라이와 전격 합의한 키신저는 ‘유레카’라는 한마디로 ‘폴로’ 작전의 성공을 닉슨에게 보고했다. 훗날 닉슨은 “마오쩌둥이 혁명의 불씨를 살려냈지만 저우언라이가 없었다면 그 불길은 중국 대륙을 모두 태워버려 중국은 재만 남았을 것”이라고 저우언라이의 정치력을 높이 평가했다.

루안과펜은 안후이성 루안 일대에서 생산되는 녹차로서 중국 10대 명차다. 루안차라는 이름으로 당나라 때 알려진 루안과펜은 명나라가 들어서며 지금의 이름을 갖게 됐다. 과펜이라 불린 이유는 완성된 찻잎이 수박과 해바라기 씨앗을 닮았기 때문이다. 청나라 황실 공차로 인정받은 루안과펜이 더욱 인기를 누린 배경에는 중국 역사상 최초로 투표를 통해 총통으로 당선된 위안스카이가 있었다. 청나라 최고 권력자 서태후는 위안스카이에게 국가 핵심 요직을 두루 겸하게 했다. 잠시지만 황제의 자리까지 오른 위안스카이에게 환심을 사기위해 전국에서 보내온 수많은 선물 중에는 다양한 중국 명차도 있었다. 집안에 넘쳐나는 차를 번갈아 계속 마시다보니 위안스카이는 차를 마시는 기대와 감흥을 잃게 됐다. 중국인에게 차맛이 없어졌다는 것은 우리가 밥맛이 없어졌다는 것 이상으로 심각한 현상이다. 차 마시는 즐거움이 무미건조해지며 생활리듬이 깨져버린 위안스카이에게 나타난 것이 루안과펜이었다. 어린잎으로 만든 차에서는 절대로 나올 수없는 농후하고 육감적인 루안과펜을 마시고 입맛을 되찾은 위안스카이는 루안과펜의 팬이 됐다. 위안스카이의 차로 소문이 나며 루안과펜의 몸값이 치솟은 것은 당연했다.

녹차로 중국 10대 명차 반열에 올라


▎루안과펜과 찻물.
루안과펜은 어린 새싹을 최상의 원료로 사용하는 다른 차와 달리 완전한 형태를 갖춘 찻잎을 사용한다. 세계 모든 녹차가 인정하고 선호하는 어리고 여린 잎을 배제하고도 루안과펜이 명품 녹차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던 비결은 독특한 제조 과정에 있다. 차농들이 1차 가공한 찻잎을 모아오면 숯불을 제대로 다룰 줄 아는 제다전문가들이 2인 1조가 되어 약한 숯불로 찻잎의 수분을 조금씩 감소시키는 마오훠(毛火) 공정을 하면서 이물질과 기준 미달인 찻잎을 골라낸다. 루안과펜의 품질을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공정은 라오훠(老火)라는 마지막 건조작업이다. 3초 미만의 짧은 시간 동안 찻잎을 강한 숯불 위에 올렸다가 내려놓는 작업을 4~5시간 동안 반복하며 루안과펜의 형태와 맛을 완성시킨다. 어린잎이 갖지 않은 성분을 맛으로 표출하기위한 전통적인 라오훠 기술 대신 기계식 열풍 처리를 하는 방법도 있지만 맛의 차이는 천양지차다. 잘 만들어진 루안과펜은 청록색으로 빛나며 물과 만나면 청아한 향기와 신선하고 순수한 첫사랑의 감흥을 돌려준다.

루안과펜은 초창기 공산혁명의 전초기지였던 안후이성 루안시 진짜이현에서 생산되는 내산차와 위안구와 따붸산 북쪽에서 만드는 외산차로 구분한다. 내산차 중에서도 지토산 과펜을 최고로 친다. 곡우 전에 채취해서 만든 티펜이 1등급이다. 과 이 가장 대중적인 2등급이고, 장마가 오기 직전에 만든 3등급차를 메이펜이라 한다. 1982년부터 중국 명차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루안과펜은 2001년 안후이성 우후에서 열린 중국차박람회에서 ‘차왕’으로 등극한다. 2007년 12월 28일 지리표지보호생산품으로 인정받아 다른 지역에서 만든 차는 ‘루안과펜’ 이라는 명칭을 사용할 수 없게 됐다. 2008년부터 국가비물질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제조공법 유출을 법으로 통제하고 있다. 2010년 상하이 엑스포에서 10대 명차로 다시 선정되며 명차로 각인됐다.

루안과펜은 2007년 3월 러시아를 방문한 후진타오가 푸틴에게 공식 국가 예물로 증정하며 저우언라이 시절처럼 국가대표 차의 영광을 다시 누린다. 차의 세계에서 누구나 선호하는 어린 새싹을 거부하고 하급 원료로 치부되던 다 자란 잎에 주목해 이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찻잎 모양과 맛으로 명차 반열에 오른 루안과펜은 산골마을 사람들의 역발상이 만들어낸 신선한 꼴찌의 반란이다.

서영수 - 1956년생으로 1984년에 데뷔한 대한민국 최연소 감독 출신. 미국 시나리오 작가조합 정회원. 1980년 무렵 보이차에 입문해 중국 윈난성 보이차 산지를 탐방하는 등 차 문화에 조예가 깊다. 중국 CCTV의 특집 다큐멘터리 [하늘이 내린 선물 보이차]에 출연했다.

1352호 (2016.09.26)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