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절대권력의 부패 

 

김해동 비브라운코리아 사장

절대권력이 부패한다는 진리가 이번만큼은 깨질 줄 알았다. 국정능력에 대한 의구심에도 청렴성에 대한 믿음 때문에 현 대통령을 지지한 국민들이다. 꼿꼿한 선비문화를 자랑하는 대한민국에서 나라와 국민을 위한 일념으로 대통령이 된 지도자들이 왜 하나같이 비리에 빠질까.

역대 대통령, 고위 관료 아니 모든 한국인이 원래부터 ‘비리 DNA’를 갖고 태어난 것 같지는 않다.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들고 구속된 어느 검사장의 젊은 시절 판결문에는 정의감이 넘쳤다. 도대체 어떻게 우리 몸과 정신이 비리 바이러스에 감염되었을까? 가장 의심을 많이 받는다는 영업하는 사람 입장에서 접근해 보자.

고 맥락사회(High Context) 국가 중에서도 가장 감정적 국민성을 자랑하는 한국인은 제품의 질보다 고객관계, 거래배경에 더 신경을 쓴다. 그러니 질을 높이기 위한 투자보다 접대에 돈을 쉽게 쓴다. 조직에서도 임무를 잘 수행하는 것보다 상사가 어떻게 편을 가르느냐에 더 신경 쓴다. 상사의 가치에 동의하지 않으면 반대할 수 있다. 아니 반대해야 한다. 우린 그것을 배신이라 하지 않고, 용기라 칭한다. 대통령이 배신 운운하는 것을 보면 이 나라가 얼마나 고 맥락사회인지 새삼 실감한다.

초 경쟁사회인 한국에서는 ‘을’도 집요하다. 영업사원 교육 프로그램마다 성공 사례가 발표되는데 제품·서비스에 대한 정면승부는 뒷전이다. ‘고객이 장모 상을 당했는데 만사 제쳐놓고 장례식장에 머물며 굳은 일을 도맡았더니 3일째 되던 날 의형제 삼겠다고 하더라’ ‘새벽마다 고집불통 고객의 차를 세차했더니 두 달 만에 오더를 주더라’ 같은 이야기는 이제 고전에 속한다. 요즘은 고객 가족의 외식 때마다 식사비를 내주고, 시간에 맞춰 자녀 학원 통학 시켜주는 핵가족 맞춤 서비스가 유행이라고 한다.

머리에 뿔이 난 사람만 악덕 갑이 되는 것이 아니다. 아이들 사교육 문제로 애 엄마가 회사를 포기해야 할 입장인데, 평소 가까운 영업사원이 어떻게 가정 고민까지 알고 도와줘서 몇 번 거절했으나 고집을 피우며 계속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신문에서 을에게 자녀 학원 통학까지 강요하는 갑질 고발 기사를 보게 되고, 자신이 악덕 갑이 된 것을 알게 된다.

일반인은 상식 선에서 깨끗하면 충분하지만, 조직의 장이나 갑이 되면 주변에서 가만 두지 않는다. 사람들이 태도를 바꾸고, 갑에게 적극 동조한다. 썰렁한 이야기에도 감동하는 것이 을의 생존전략이다. 처음엔 어색해 중심을 잡고 사양하지만 상대의 호의를 계속 거절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다. 마지못해 한두 번 양보하다 보면 어느새 한쪽 발이 빠진다. 아니 빠진 것도 인지하지 못하고 다른 발마저 빠뜨린다. 도덕성이 강한 일반인이 버틸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다고 갑질이 합리화 되거나, 동정받을 리 없다. 현재 비리나 갑질에 연루되지 않았다고 깨끗한 갑이라 안도하기 이르다. 아직 본격적 호의를 받지 않은 잠재적 갑질 후보일 뿐으로 긴장을 놓는 순간 바로 악덕 갑이 된다.

인텔의 설립자인 엔드류 그로브는 편집광만이 살아남는다고 했다. 병적일 만큼 집요해야 성공한다는 교훈이다. 원칙에 병적 결벽증 수준으로 자신에게 혹독해야 겨우 비리나 갑질 유혹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1358호 (2016.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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