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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현철의 이슈의 이면 (2) | 도이체방크·웰스파고 사태로 본 은행의 미래] 삼각파도에 휩쓸려 난파선 신세 되나 

 

나현철 중앙일보 논설위원(tigerace@joongang.co.kr).
금융위기 후 각종 규제·소송으로 만신창이... 초저금리, IT 발달, 국가 개입에 앞날 불투명

▎존 크라이언 도이체방크 CEO가 9월 30일(현지시간) 직원들에게 편지를 보내 “지난 20년 간 오늘날만큼 도이체방크가 안전한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요즘 세계 금융시장의 애물단지는 도이체방크다. 9월 미국 법무부가 글로벌 금융위기 전 주택저당증권(MBS) 부실 판매에 대한 벌금으로 이 은행에 140억 달러(약 15조원)를 부과했다는 뉴스가 전해졌다. 이후 이 회사 주가는 물론 세계 증시가 출렁거렸다. 이대로 확정된다면 도이체방크는 생존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벌금 규모가 너무 커 은행 건전성을 무너뜨릴 정도이기 때문이다. 이후 벌금액을 54억 달러(약 6조원)로 줄이는 협상이 진행되고 있다는 설, 독일 정부가 구제금융을 투입할 것이라는 설 등이 나왔지만 확정된 건 없다. 세계 증시와 채권시장의 노심초사는 당분간 계속될 것 같다.

도이체방크는 눈물 겨운 자구노력을 하고 있다. 3만5000명을 감원하기로 하고 세계 각국의 영업망을 줄이고 있다. 벌금을 줄이는 조건으로 미국 시장에서 일부 사업을 철수하는 방안까지 거론된다. 산하 보험사 한 곳을 이미 팔았고, 독일우체국은행도 매각하기로 했다. 부실덩어리인 MBS 부문을 떼내는 것도 검토 중이다. 146년 역사를 자랑해온 은행의 굴욕이다. 도이체방크는 독일 최대이자 세계 최대 투자은행(IB) 중 하나다. 올해 세계 6위로 밀려났지만, 2년 전까지만 해도 세계 3대 은행의 자리를 굳건히 지켰다. 10년 전엔 자산 기준 세계 최대 은행 자리를 넘봤다. 지금도 세계 70개국에서 10만 명을 고용하고 있는 ‘금융공룡’이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의 타격이 너무 컸다.

도이체방크 사태에 금융시장 휘청


금융위기로 고삐 풀린 금융자유화가 세계 경제 전체를 위기에 빠뜨렸다는 반성이 일었다.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각국 정부는 IB들의 지난 행태에 현미경을 들이댔다. 그 결과 런던은행간금리(리보·LIBOR)·환율을 비롯한 주요 시장에서 주요 은행들이 담합해온 사실이 드러났다. 막대한 벌금이 IB들에 부과됐다. MBS 부실 판매 책임을 인정하고 미국 정부에 낸 벌금만 JP모건 130억 달러, 씨티그룹 70억 달러, 골드먼삭스 51억 달러에 달한다. 금융규제정보업체 코얼리틱스에 따르면 골드먼삭스를 비롯한 미국 5대 은행과 도이체방크, 스위스 크레디트스위스와 UBS, 영국의 HSBC와 바클레이스 등 세계 10대 투자은행은 올 들어 8월까지 벌금과 소송 합의금으로 97억9000만 달러(약 10조8670억원)를 냈다. 이런 추세는 최근 몇 년 간 이어지고 있다. 2013년 298억 달러, 2014년 582억4000만 달러, 지난해 103억6000만 달러가 벌금으로 납부됐다.

이와 달리 수익성은 크게 악화했다. 각종 규제로 IB들의 손발이 꽁꽁 묶였기 때문이다. 미국을 필두로 자기자본 거래와 위험성이 큰 파생상품 거래가 줄줄이 제한됐다. 이른바 ‘대박’을 안겨주던 이런 사업이 사라지며 연말 보너스도 함께 자취를 감췄다. 리먼브러더스를 비롯한 많은 IB들이 사라지거나 상업은행(CB) 계열사가 돼 간신히 연명하고 있다. IB로 독자생존하고 있는 곳은 골드먼삭스와 모건스탠리 정도다. IB의 영역은 이제 상장(IPO) 주선이나 채권 발행, 외환 거래와 같은 전통적 업무로 좁혀졌다. 한 유럽계 은행 한국지사 임원은 “금융 위기 이후 돈을 버는 매니저나 세일즈 인력이 절반으로 줄었는데 준법감시 인력은 여섯 배로 늘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월스트리트저널과 매킨지의 조사에 따르면 10대 IB들의 자기자본이익률(ROE)은 금융위기 전 14%에서 현재 7%로 반 토막이 났다. 영업망 축소도 도이체방크만의 일이 아니다. 올 들어 영국 바클레이즈는 아프리카 사업 중 상당수를 매각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HSBC홀딩스는 남미의 최대 경제 대국인 브라질에서 철수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전 세계의 모든 고객에게 모든 상품을 팔겠다는 것은 이제 성공할 수 없는 전략’이라고 평했다.

자본건전성 규제도 IB의 입지를 좁혔다. 금융위기 이후 은행들의 위험자산을 규제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자기자본 규정이 강화되면서 유럽 은행들은 속속 손쉽게 자본확충이 가능한 조건부 전환사채(코코본드) 발행에 나섰다. 코코본드는 은행의 자기자본 비율이 일정 수준 이하로 떨어지면 주식으로 전환되거나 상각 처리되기 때문에 자기자본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도이체방크를 비롯한 유럽 은행들이 코코본드를 많이 발행했다. 하지만 도이체방크가 금융위기 이후 처음으로 지난해 68억 유로에 달하는 순손실을 내자 코코본드가 역풍이 돼 돌아왔다. ‘도이체방크가 이자도 못 낼 지경이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며 주가가 폭락했다.

그렇다고 전통적 예금·대출업무에 집중하는 상업은행의 전망이 밝은 것도 아니다. 웰스파고 사태가 이를 보여준다. 웰스파고는 금융위기 후 모범적인 은행의 상징으로 꼽혀왔다. 서부 이민자들에게 소액을 빌려주며 차근차근 성장해왔기 때문이다. 가문의 내력과 성품을 보고 대출해준다고 할 정도로 담보보다 무형의 신용을 잘 판단하기로 유명했다. 우리 식으로 표현하면 ‘숟가락이 몇 개인지도 다 안다’고 할 정도였다. 이 때문에 김승유 전 하나금융 회장을 비롯한 국내 은행가들이 ‘닮고 싶은 은행’으로 가장 많이 거론했다. 이런 내공을 바탕으로 웰스파고는 금융위기의 파고를 피하고, 오히려 미국 1위 은행으로 올라서는 기회로 삼았다.

수익성 압박에 직원에 불이익 준 웰스파고


그런데 지난 9월 황당한 뉴스가 전해졌다. 미 연방 소비자금융 보호국(CFPB)이 고객 동의 없이 예금 및 카드 계좌 200여만 개를 개설한 혐의로 웰스파고에 1억8500만 달러(약 2087억 원)의 벌금을 부과한 것이다. CFPB는 웰스파고가 직원들에게 계좌 개설 할당량을 부과하면서 이를 달성하지 못하면 해고 등 불이익을 주는 행위가 관행적으로 이뤄져왔다고 밝혔다. 은행 상품뿐만 아니라 증권·보험 상품을 팔면서 얻는 수수료 수입을 욕심낸 탓이었다. 이 여파로 10년째 최고경영자(CEO)를 맡아온 존 스텀프 회장은 의회 청문회에서 망신을 당하고 끝내 사임했다. 미국 굴지 은행에서조차 이런 일이 벌어진 건 IB 뿐 아니라 은행업 전반의 수익성 압박이 그만큼 심하다는 방증이다.

왜 이럴까. 크게 세 가지 원인을 생각해볼 수 있다. 우선 초저금리로 은행산업의 존립 기반이 사라지고 있다. 은행은 돈이 남는 사람과 돈이 필요한 사람을 연결시키며 돈을 버는 사업이다. 그런데 수익은 대체로 금리가 높을수록 많아진다. 연 5%로 자금을 조달해 10% 금리로 빌려주면 5%포인트 수익이 난다. 하지만 조달금리가 1%이고 대출금리가 2~3%라면 잘해야 1~2%포인트가 은행 몫이다. 더구나 ‘저금리인데 폭리를 취한다’는 비판을 듣기 십상이다. 요즘 들어 ‘고금리 시대에 책정된 수수료율이 너무 높다’ ‘은행이 과도하게 예대마진을 챙긴다’는 지적이 자주 나오는 건 우연이 아니다. 아예 유럽과 일본처럼 마이너스 금리가 되면 은행은 더 답답해진다. 돈을 맡기는 사람에게 보관료를 내라는 은행은 은행이 아니라 물품보관소일 뿐이다. 자본주의에선 돈도 엄연한 상품이다. 금리는 그 가격이다. 금리가 마이너스라는 건 은행이 취급하는 돈이라는 상품의 가치가 그만큼 떨어졌다는 얘기다. 가치가 떨어진 상품을 파는 장사의 미래가 밝을 리 없다.

둘째는 정보기술(IT)의 발달로 은행의 전통적 자산인 오프라인 네트워크의 존재 가치가 갈수록 퇴색하고 있다는 점이다. 금융의 온라인화, 모바일화는 세계적인 현상이다. 국내 은행만 해도 창구에서 직원 얼굴을 보고 거래하는 대면 거래 비중은 10%에 불과하다. 나머지 90%는 온라인이나 모바일뱅킹 거래다. 길거리 지점이 없는 인터넷 은행이 곧 출범한다. 기술의 위협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은행 서비스의 핵심은 안전한 거래와 방대한 네트워크를 통한 지급결제망이다. 그런데 국내에서 카카오톡 같은 사회관계망(SNS) 서비스를 통한 소액 송금이 이미 이뤄지고 있다. 그만큼 은행의 송금 수수료 수입이 줄어든다. 미국에선 실리콘밸리 주요 기업들이 모여 서버에 의존하지 않는 분산결제시스템인 ‘블록체인’을 만들어냈다. 휴대전화와 같은 모바일 기기의 편리성과 결합한데다 해킹과 같은 중앙집중형 시스템의 약점에서 자유롭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때문에 블록체인을 애써 무시하던 주요 은행들도 동맹에 참여하거나 독자적인 연합을 구성하기 시작했다. 실체가 만져지지 않는 ‘비트코인’은 마약사범들이 대금으로 주고받는 글로벌 화폐가 됐다. 이런 기술의 발달은 수요자와 공급자 간의 정보 격차를 줄이고 거래 비용을 감소시킨다. 은행에는 달갑지 않은 상황이다. 이러다간 은행 본점에 있는 서버마저 사라질지 모른다는 전망이 엄살로만 들리지 않게 됐다.

셋째는 국가 개입의 강화다. 예전엔 금리나 환율 같은 주요 거시 변수는 시장에 맡겨야 한다는 인식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다.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강조된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하지만 금융위기 후 사정이 180도 달라졌다. 미국은 사상 초유이자 최장의 제로금리 정책을 유지했다. 그래도 돈이 안 돌자 양적완화를 통해 직접 돈을 살포했다. 은행이 할 일을 국가가 대신한 것이다. 일본의 아베 정부는 한 술 더 떠서 엔화가치를 의도적으로 떨어뜨렸다. 그런데도 다른 나라들은 비난은커녕 ‘과감한 조치’라는 찬사를 보냈다. 이제 ‘최종 대부자’라는 보수적이고 소극적 태도를 보이는 중앙은행과 정부는 찾아보기 어렵다. 미국 정부는 금융위기로 파산 상태에 자동차 회사들에 구제금융을 제공하고 능력이 없는 주택담보대출자들의 빚을 직접 깎아줬다. 박근혜 정부는 한국은행을 압박해 구조조정펀드를 만들게 하고 국민행복기금을 통해 채무자들의 빚을 탕감했다. 이렇듯 국가가 더 넓고 깊게 금융에 개입할수록 은행의 역할은 쪼그라들 수밖에 없다.

기득권 지키기보다 변신하고 적응해야

이런 환경이 개선될 가능성도 적어도 당분간 기대하기 어려워 보인다. 금융위기의 그림자가 여전히 짙게 드리우고 있어서다. 미국만 해도 “금리를 올린다”는 말만 되풀이될 뿐 1년 가까이 실행하지 못하고 있다. ‘힐러리를 돕기 위해 그랬다’는 트럼프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겠지만 그렇다고 순수한 경제적 판단에 근거한 결정이라고 믿기도 힘들다. 경제정책이 불러올 사회적·정치적 파장을 고려해야 할 필요성은 예전보다 훨씬 강해졌다. 삼각파도에 휩싸인 은행의 처지는 앞으로 나아지기보다 더 나빠질 가능성이 크다. 하나하나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기 때문이다. 은행에겐 악재겠지만 경제 전체론 기회일 수 있다. 기울어가는 기득권을 지키기보다 변신하고 적응하는 은행의 노력이 필요한 이유다.

필자는 중앙일보 논설위원이다(tigerace@joongang.co.kr).

1358호 (2016.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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