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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경제 전망 | 세계경제 5대 관전 포인트 - 브렉시트 파장] 지긋지긋한 저성장 … EU(유럽연합)가 흔들리는 이유 

 

채인택 중앙일보 논설위원 ciimccp@joongang.co.kr
유럽연합 탈퇴 여론 급속히 확산 … 주요국 극우정당 집권 가능성 커

▎EU의 창립 회원국인 이탈리아에선 2016년 12월 4일 상원 개혁을 골자로 하는 개헌 국민투표를 벌인 중도우파 마테오 렌치 총리가 선거 패배로 자리에서 물러났다. / 사진:중앙포토
2016년 6월 23일 영국 국민은 유럽연합(EU)에 잔류할 것이냐, 탈퇴할 것이냐를 묻는 국민투표에서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의 손을 들어줬다. EU 가입으로 시티(런던의 금융가)가 규모 면에서 월가(뉴욕의 금융가)를 넘어설 정도로 혜택을 봤던 영국은 이렇게 EU와 이혼하기로 결정했다. 브렉시트는 세계화와 EU 가입으로 인한 혜택을 가장 많이 봤다는 영국을 순식간에 반세계화의 기수로 만들었다. EU는 전쟁 방지라는 정치적인 목적과 공동번영이라는 경제적 이유가 결합해 이뤄진 조직이다. 하지만 국경 개방과 이민 등의 문제로 각국이 서로 마찰을 빚는 것은 물론 국가 내에서도 EU 가입과 세계화에 대한 의지와 시각이 다른 계층 간의 갈등이 심화하면서 유럽 사회 전체의 문제가 됐다.

영국이 순식간에 반세계화의 기수로


▎네덜란드 우익정당인 자유당의 헤이르트 빌더르스 대표는 “2017년 3월 총선에서 승리하면 영국처럼 EU 탈퇴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를 하겠다”고 공언했다. / 사진:뉴시스
2017년 유럽의 최대 현안은 브렉시트가 EU 내 다른 나라로 확산하느냐다. 가뜩이나 2016년 11월 7일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아웃사이더인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하면서 브렉시트가 유럽 각국으로 확산하느냐가 초미의 관심사가 됐다. 브렉시트와 트럼프 당선은 세계화로 인한 피로감, 대중과 엘리트층, 기층 서민과 기득권층 간의 시각 차이와 갈등이라는 동일한 원인에서 비롯된 것으로 분석된다. 이상론 때문이건 경제적인 이익 때문이건 지식인층, 엘리트층 주류 정치인, 기업인 등은 EU 잔류를 희망한다. 미국에선 이런 분위기가 기성 정치인에 대한 거부 반응으로 나타났다. 이런 현상은 유럽의 다른 나라에서도 정도의 차이는 존재한다. 이 때문에 EU 연쇄 탈퇴를 우려할 수밖에 없다.

가장 우려가 되는 나라가 이탈리아다. EU의 창립 회원국인 이탈리아에선 2016년 12월 4일 상원 개혁을 골자로 하는 개헌 국민투표를 벌인 중도우파 마테오 렌치 총리가 선거 패배로 자리에서 물러났다. 이를 틈타 2017년에는 극우 포퓰리즘의 지역정당을 바탕으로 EU 탈퇴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를 하자는 움직임이 활발해질 전망이다. 부유한 이탈리아 북부 지역을 이탈리아에서 독립시키자고 주장하는 반이민주의 극우정당 ‘북부동맹’의 마테오 살비니 대표가 EU 탈퇴 국민투표에 앞장설 대표적인 정치인이다. 실제로 살비니 대표는 지난 총선에서 EU 탈퇴 국민투표안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물론 득표율이 신통치 않았지만 살비니는 브렉시트와 트럼프의 당선, 그리고 렌치의 퇴장을 이용해 다시 한 번 EU 탈퇴 국민투표를 외치고 있다. ‘오성운동’이라는 우익연합은 EU 탈퇴 대신 유로화를 사용하는 유로존 이탈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 실시를 공약으로 내걸고 있다.

네덜란드는 브렉시트 이후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우익정당인 자유당의 헤이르트 빌더르스 대표가 “2017년 3월 총선에서 승리하면 영국처럼 EU 탈퇴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를 하겠다”고 공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EU에 반대하는 유럽회의주의와 반세계화, 반이슬람을 앞세우는 우익 포퓰리즘 정당인 자유당은 지지율 1위를 기록하는 등 세력을 확대하고 있다. 이에 따라 2017년 총선 승리가 불가능하지만은 않다.

네덜란드는 EU 탈퇴를 묻는 국민투표를 해야 하는지를 묻는 최근 여론조사에서 50대 47로 실시하자는 의견이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EU 탈퇴를 원하는지를 묻는 질문에는 46대 43으로 탈퇴 여론이 약간 우세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저학력자층에서는 69%가 국민투표 실시를 지지했고 64%가 EU 탈퇴를 원했다. 브렉시트를 결정한 영국이나 트럼프를 당선시킨 미국과 비슷한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는 셈이다.

EU 창설을 주도하고 지금도 독일과 더불어 최대 주주 격인 프랑스도 예외가 아니다. 반이민, 반EU, 반세계화의 기치를 내걸고 있는 극우정당인 국민전선의 마린 르펜 대표가 이를 주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르펜은 “2017년 4월의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되면 취임 6개월 안에 EU 탈퇴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를 하겠다”고 밝혔다. 물론 르펜이 대통령이 되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설령 EU 잔류냐 탈퇴냐를 묻는 국민투표를 해도 통과될지 불투명하다. 프랑스 주류 정치인들은 ‘프렉시트(프랑스의 EU 탈퇴)’에 반대 입장이다. 하지만 영국이나 미국에서 보듯 기층 민중의 세계화에 대한 피로감과 기득권층에 대한 반감이 어떻게 작용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예측 불가의 상황이 될 수 있다.

EU를 주도하고 있는 독일에서도 이런 주장이 상당한 호응을 얻고 있다. 2016년 6월 퓨리서치센터가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EU에 대해 ‘비호의적’이라는 응답과 ‘호의적’이라는 응답의 비율이 48대 50으로 나타났다. 국민투표에서 EU와의 결별을 결정한 영국과 동일한 비율이다. 독일에선 극우 포퓰리즘 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AfD)’에 대한 지지율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이 정당은 역시 EU 탈퇴를 묻는 국민투표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유럽 통합으로 가장 많은 혜택을 본 국가로 평가받는 독일에서 이런 기류가 흐르는 것 자체가 EU를 흔드는 일이다. 2016년 12월 4일의 대통령 선거 재선거에서 알렉산더 판데어벨렌 후보가 당선된 오스트리아는 한숨을 돌린 상태다. 녹색당의 지지를 받은 무소속 후보인 판데어벨렌은 이민에 반대하는 극우정당인 자유당 소속의 노르베르트 호퍼를 눌렀다. 호퍼는 자신이 집권하게 되면 EU 탈퇴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를 공약했다. 호퍼의 대선 패배로 EU 탈퇴 투표는 피했지만 2017년에도 오스트리아에선 이를 둘러싼 논란은 그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EU 가입이 이익인가” 질문에 10명 중 3~4명만 긍정

서유럽이 이런 분위기를 보이자 EU에 최근 가입했거나 가입을 희망하고 있는 동유럽 국가들 사이에서도 회의론이 확산하고 있다. 이들 중에는 EU 가입을 국가적 목표로 삼았던 나라가 적지 않았다. EU 가입은 꿈과 희망의 동의어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런 분위기가 최근 들어 변하고 있다. 경제 성장이 멈추다시피 한 상태에서 소득 불평등과 실업이 갈수록 심화하면서 사회적 불만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나라가 헝가리다. 헝가리에선 EU에 회의적인 정당이 집권하고 있다. 옛 동유럽 국가 중 체코와 더불어 시장경제 도입으로 가장 큰 경제적 성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받는 헝가리에서 이런 분위기가 어디까지 확산할 것이냐는 2017년의 주목거리다.

EU의 여론조사기관인 유로바로메터가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자국의 EU 가입이 이익을 가져오고 있다고 느끼느냐’는 질문에 스웨덴에서는 10명 중 3명 미만이, 영국에서는 10명 중 4명 정도가 긍정적인 답변을 했다. EU에 대한 지지가 높은 나라들에서도 어떠한 형태로든 EU에 회의적인 정치인이 활동하고 있고, 일부는 탈퇴 국민투표를 외치고 있다. 더욱 문제는 포퓰리즘이 판치면서 이런 국민투표 요구가 갈수록 많은 사람의 호응을 얻고 있다는 사실이다. 2017년 유럽은 EU 탈퇴나 권한 축소를 외치는 목소리가 더욱 높아질 전망이다. EU의 운명이 걸린 사안이다.

1366호 (2017.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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