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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감한 중고차 수출 무엇이 문제인가] ‘CAR(Competition·Auction·Relation)’ 없인 중고차 수출 어려워 

 

김유경 기자 neo3@joongang.co.kr
오른쪽 운전석에도 일본 중고차 인기 … 대기업 참여, 경매장 활성화, 판로 개척 필요

▎10일 인천 송도를 방문한 요르단 바이어와 중고차 수출 업체 관계자가 가격 조건을 두고 협상을 벌이고 있다.
지난해 한국의 중고차 등록대수는 370만 대. 이 중 약 23만 대를 해외에 판매한 것으로 추산된다. 2015년과 비교하면 소폭 늘었지만, 37만대를 판 2012년과 비교하면 초라한 실적이다. 중고차는 한국의 주요 수출 품목으로 자리를 잡았지만 몇 년 전부터 글로벌 무대에서 맥을 못 추고 있다.

이에 비해 지난해 약 675만 대의 중고차가 매물로 나온 일본은 이 중 118만 대를 수출했다. 중고차 수는 한국의 2배에 못 미치지만 수출은 5배 수준이었다. 세계에서 일본처럼 오른쪽 운전석을 채택한 나라는 영국과 호주·인도·인도네시아 등 44개국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세계 중고차 수출 시장을 휩쓸고 있는 것은 일본이다. 한국과 같은 왼쪽 운전석을 쓰는 러시아·몽고 시장도 일본 중고차가 장악하고 있다. 왜일까.

한국 중고차 수출 일본의 5분의 1


▎10일 인천 송도의 한 중고차 '마당 장터'. 이들 차량은 대부분 중동·동남아시아로 수출된다.
한국 중고차 수출 부진의 가장 큰 원인은 우선 경쟁의 부재에서 찾을 수 있다. 국내 중고차 시장은 사업자 간에 짬짜미(담합) 영업과 그로 인한 서비스 품질 저하, 가격 상승이 고질적인 문제로 제기돼왔다. 서비스 품질을 개선하려면 대기업 등 경쟁자가 뛰어들어 메기 역할을 해줘야 하지만,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되는 바람에 참여가 불가능하다. 한 중고차 업체 대표는 “대기업이 뛰어들면 영세업자들의 타격이 불가피하겠지만 중고차 시세가 투명해지고 허위 매물이 줄어들 것”이라며 “차량 관리나 품질 보증제도가 확산하면 업계 전반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경우 도요타가 만든 지역별 총판이 있어 도요타 중고차를 자유롭게 사고 팔 수 있다. 도요타가 직접 중고차의 품질을 관리하고 보증하면 고객의 신뢰도 높아지게 마련이다. 중고차에 대한 신뢰가 높아져 시장 전체의 성장을 촉진한다. 일본의 대형 중고차 거래 전문업체 유젝도 도요타가 지분을 100% 보유했다. 한국에서도 현대자동차·이마트·하나투어 등이 직접 중고차 시장에 뛰어들려고 했지만 업계의 반발에 막혀 잇따라 좌절됐다.

대기업도 중고차 수출에는 참여할 수 있다. 하지만 수출용 차량을 매입하고, 재고를 정리하려면 국내 시장을 열어줘야 한다는 것이 대기업들의 입장이다. 재고 부담과 해외 판로 개척의 리스크까지 떠안으면서 중고차 수출에 참여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이에 AJ·롯데 등 주기적인 차량 교체 수요가 있는 렌터카 업체는 에이전시에 수출 대행을 맡기고 있다.

세금 문제 역시 중고차 수출을 꼬이게 한다. 수출상에게 중고차를 넘기는 도매상들은 절세 목적으로 실제 거래가보다 적은 금액의 세금계산서를 수출상에게 끊어주는 경우가 적지 않다. 도매상이 차를 팔아 번 ‘매출’이 개인고객에게 차량을 구입할 때 들어간 ‘비용’보다 적으면 부가가치세를 환급받을 수 있는 점을 노린 것이다. 수출업자들로서는 도매상으로부터 사들인 차 값이 세무상으로는 낮게 책정되는 바람에 영업 마진이 더 많이 발생한 것처럼 나온다. 수출상이 1000만원에 차를 매입해 1500만원에 팔았다면 이익은 500만원이지만, 도매상에 세금계산서를 500만원으로 끊어줬다면 회계상 이익은 1000만 원으로 불어난다. 이 때문에 수출상은 실제보다 더 많은 세금을 부담해야 할 수도 있다. 국회 조세소위 관계자는 “개인이 도매업자에게 중고차를 판 소득은 과세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도매상이 실제 얼마에 차를 매입했는지 정확히 알 길이 없다”고 설명했다.


도매상이 중고차 세금계산서를 가능한 낮게 매기려는 것과는 달리 수출업자들은 높을수록 유리하다. ‘중고차 의제매입세액공제’ 때문이다. 의제매입세액공제란 정부가 중고차 등 재활용품 사용을 촉진하기 위해 부가가치세를 환급해주는 제도다. 수출업체로서는 자동차 매입 가격을 가능한 높게 매겨야 환급액도 늘어난다. 이런 세제의 불일치는 중고차 도매상과 수출업체 간 거래에 걸림돌이 된다.

중고차 가격이 불투명하다 보니 중고차 수출의 핵심인 경매장도 살아나지 않는다. 세계적으로 경매장은 중고차 수출의 핵심으로 통한다. 수출물량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한편, 올바른 시장 가격 형성과 공정 유통을 지원하기 때문이다. 일본은 전국적으로 130여 개의 중고차 경매장이 운영되고 있으며, TV는 물론 위성 중계로도 경매 현황을 실시간으로 소개해준다. 한국에도 현대글로비스 등 6개의 경매장이 운영 중이지만, 세금계산서 문제로 중고차 업체들의 출품이 미온적이다. 주로 개인들이 자기 차를 내놓는 판매 채널 정도에 그치고 있다. 경매에 등록된 차종이 다양하지 못하고 수량 또한 적다. 해외 바이어가 원하는 자동차를 구하지 못할 수 있으며, 수출업자는 고객 입맛에 맞는 상품을 찾기 위해 전국 중고차 매장을 돌아다녀야 한다는 뜻이다. 영세 사업자가 하기엔 인력과 비용 부담이 크다.

이와 달리 일본의 ‘비포워드’의 경우 경매장을 통해 다양한 차종을 확보해 바이어의 선택의 폭을 넓혀줬다. 온라인을 통해 차량 상태 정보와 가격, 실시간 재고 정보를 제공한다. 설립한 지 10년 밖에 되지 않은 비포워드는 현재 지난해 124개국을 상대로 약 14만 대의 중고차를 수출하고 있다. 일본의 대형 중고차 업체 ‘에스베티’ 역시 여러 대의 차량의 견적을 한번에 비교할 수 있는 ‘일괄사정(一括査定)’이란 거래중개시스템을 개발해 바이어들의 신뢰를 얻고 있다. 중고차 업체인 유카의 신현도 대표는 “중고차는 같은 차종이라도 차량의 상태와 연식·주행거리·옵션 등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라며 “경매장이 활성화돼 데이터가 쌓이면 중고차의 가격을 객관적으로 산정할 수 있는 데이터베이스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자동차 대국인 미국의 ‘만하임’도 미국에서 쌓은 기초 데이터를 토대로 2006년 중국에 진출하는 등 시장을 넓히고 있다.

안정적으로 수출 물량을 확보하기 어려운 수출업자들은 주변에서 살 수 있는 차를 사들인 후 ‘마당 영업’을 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공항·항만이 가까운 인천 송도 일대의 공터에 판매할 차량을 백화점식으로 깔아놓으면 해외 구매자들이 차를 고른다. 한 중고차 수출업체 관계자는 “정기적으로 차량을 사들일 큰 바이어가 한국을 찾아와도 팔 물건이 없거나 공급량이 부족해 포기한 사례도 있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현재 해외에 직접 사무실을 내고 영업을 하는 수출업체는 10여 개에 불과하다.

日 중고차 수출 성장 비결은 ‘경매장·물류’

이에 비해 일본의 경우 아프리카·러시아의 내륙에도 차량을 운반할 수 있도록 물류서비스를 갖추고 구매자를 찾아가고 있다. 대형 상사들이 닦아놓은 물류 루트를 이용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물량이 많고 운송까지 안정적이어서 오른쪽 핸들을 왼쪽 핸들로 개조해 사용할 정도로 일본 중고차의 인기가 높다. 특히 1년에 2000만 대 이상의 차량이 판매되는 중국이 본격적으로 중고차 판매에 나서기 시작하면 한국의 중고차 수출은 아예 판로가 막힐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신 대표는 “직접 선박을 끌고 오는 적극적인 바이어도 있지만, 정작 한국에는 큰 계약을 할 플레이어가 없다”며 “중고차 유통을 개선하고 수출을 지원하는 한편 중고차 업계도 수출 활성화와 자성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1369호 (2017.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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