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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 덴마크의 혁신] 정부·국민의 끊임없는 노력으로 이룬 ‘휘게(덴마크식 생활방식, Hygge)’ 

 

채인택 논설위원 ciimccp@joongang.co.kr
고소득 국가임에도 소박하고 여유로운 삶 추구... 신재생에너지 등으로 친환경 국가 이미지 굳혀

▎덴마크 코펜하겐 항구 앞 바위 위에 세워진 인어 공주상. / 사진:중앙포토
덴마크의 라르스 뢰케 라스무센 총리가 이른바 ‘노르딕 복지국가’ 모델에 대해 사실상의 ‘십자군 전쟁’을 선포했다. 스칸디나비아의 전통적인 복지국가 덴마크의 복지 모델 개혁에 시동을 건 것이다. 외신들은 최근 라르스 뢰케 라스무센 총리가 소득세를 내리고 은퇴 연령을 늘리는 등 기존 복지 모델을 확 바꾸는 개혁에 나섰다고 전했다.

라스무센 총리는 3월 초 발표한 ‘매니페스토(공약집)’에서 기존의 복지국가에서 탈피해 국민이 스스로 자신의 가정을 돌보기 쉽도록 사회를 전환시키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이를 위해 이미 퇴직 연령을 2025년까지 기존 65세에서 67세로 늦추고 연금 수급 연령을 67.5세로 미루는 방안을 추진해왔다. 세금을 줄여 일자리를 찾는 것이 복지 혜택을 받는 것보다 유리하게 만들겠다는 뜻도 꾸준히 밝혀왔다. 2025년쯤까지 연간 100만 크로네(약 1억6169만원) 이하 소득자에 대한 소득세를 현재의 15%에서 10%로 낮추는 방안도 추진해왔다. 이 방안은 최근 야당의 저항으로 의회를 통과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정부와 집권 자유당은 올 여름에 새로운 세금인하 방안을 내놓을 예정이다. 경제 성장과 일자리 창출을 위해 이런 조치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게다가 학생들의 학비 대출 비용도 높여 청년들이 대학에서 오랫동안 머물기보다 적극적으로 일자리를 찾도록 유도할 빙침이다. 사실 덴마크의 실업률은 지난해 12월 기준으로 3.4%로 완전고용 수준이다. 하지만 라스무센 정부는 청년과 노년 층이 더 많이 일하도록 유도해 복지 모델 유지 비용을 줄이려고 시도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라스무센의 개혁이 복지냐 성장이냐 차원이 아니라는 점이다. 복지를 줄이자는 것도 아니다. 복지를 계속 유지하려면 제도를 끊임없이 닦고 조이고 기름칠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도대체 덴마크는 어떤 사회이기에 이런 논란이 정치의 화두가 되는 것일까. 덴마크는 세계 최고 수준의 ‘삶의 질’을 자랑한다. 경제적인 면에서는 국제통화기금(IMF)이 전망한 2017년 명목금액 기준 국가별 1인당 국내총생산(GDP) 순위에서 덴마크는 5만5150달러로 세계 9위에 올랐다. 룩셈부르크(10만 9370달러), 스위스(8만1310달러), 노르웨이(7만3590달러), 아일랜드(6만9120달러), 카타르(6만3390달러), 아이슬란드(6만3030달러), 미국(5만9410달러), 싱가포르(5만5250달러) 다음이다. 인구 575만 명의 작은 나라가 세계 최고 수준의 고소득국가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덴마크는 부의 축적이 삶의 질 향상으로 이어진 대표적인 국가다. 게다가 높아진 삶의 질이 국민의 높은 삶의 만족도로 이어진 사회이기도 하다. 국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조사해 발표하는 ‘더 나은 삶의 질 지수’에서 덴마크는 38개국 가운데 3위에 올랐다. 더욱 극적인 것은 제프리 삭스 미국 콜롬비아대 교수 등이 발간한 ‘세계 행복 보고서 2016’에서 이 나라는 157개국 가운데 1위였다. 덴마크는 전문가들이 인정하는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이다. 참고로 한국은 1인당 GDP가 세계 29위인데 행복지수는 58위에 불과하다.

행복한 덴마크를 상징하는 단어가 ‘휘게(Hygge)’다. 원래 ‘안락하고 아늑한 상태’를 의미하는 이 낱말은 물질 중심주의 에서 벗어나 소박하게 살면서 가족·이웃과 여유로운 삶을 즐기며 행복을 추구하는 덴마크식 생활 양식을 가리키는 상징이 됐다. 휘게에 대한 관심은 세계적이다. 일과 목표, 성취욕에 치여 사는 수많은 글로벌 시민들의 눈길을 끄는 단어로 떠오르고 있다. 2016년 영국 사전출판사 콜린스는 올해의 단어로 ‘브렉시트(Brexit·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와 함께 ‘휘게’를 선정했다. 옥스퍼드 사전이 뽑은 ‘올해의 단어’ 후보에도 올랐다. 세계 금융위기 이후 미국에선 ‘킨포크 라이프’, 동일본 대지진 이후 일본에선 ‘단샤리(斷捨離)’라는 이름의 미니멀 라이프 스타일이 유행했는데 휘게의 다른 형태로 볼 수 있다. 물질보다 사람을, 화려함보다 검박함을, 소비보다 자급을 강조하게 된 것이다. 덴마크는 물질적으로 풍요롭지만 단순하고 소박한 삶을 즐겨왔다. 물질적 풍요로 정신적 빈곤을 채워온 서구 국가들은 이제 성장이 멈추고 환경이 오염되는 상황에서 새롭게 휘게에 눈길을 돌리고 있다. 대량소비 중심의 기존 자본주의를 대처하는 수정판으로도 볼 수 있다.

돈보다 인간을 강조하는 덴마크의 단면을 보여주는 뉴스가 3월 초 지구촌을 달궜다. 영국의 미식잡지 ‘레스토랑’이 선정하는 ‘세계 최고의 레스토랑’에 네 차례나 뽑힌 덴마크의 ‘노마(NOMA)’가 14년간 접시닦이로 일해 온 64세의 아프리카 감비아 이민자 출신의 직원을 레스토랑 공동 소유 파트너로 선택했다는 소식이다. 이 식당은 2010·2011·2012·2014년 ‘세계 최고의 레스토랑’에 선정된 것은 물론 미슐랭 가이드 별도 2개 받았다. 외신들은 이런 세계적인 고급 식당의 오너 셰프인 르네 레드제피가 지난달 28일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을 통해 접시닦이 알리 송코를 새로운 파트너로 선임했다고 전했다. 노마는 송코 외에 서비스 관리자 로리 히터와 2009년부터 레스토랑 매니저를 맡아 온 제임스 스트레드버리도 노마의 공동 소유 파트너로 추가했다. 레스토랑에 기여한 종업원에게 경영권을 분배해준 셈이다. 파트너는 공동 소유자로 운영 수익을 나눠가지게 된다.

노르딕 복지 모델 개혁 나선 정부

레드제피는 직원들에게 새로운 파트너를 발표하면서 “송코는 노마의 심장이고 영혼”이라며 “송코는 12명의 자녀를 부양하면서도 늘 웃으면서 일했다”고 말했다. 어떤 특별한 경영 관리능력이나 요리 분야 재주가 있어서 공동 경영자가 선택한 것이 아니고 그의 인간성을 바탕으로 선택했다는 이야기다. 레드제피는 “사람들은 송코 같은 사람에게 고마움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는 말로 식당 운영에선 경영이나 요리 능력만큼 인간적인 매력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노마는 2003년 코펜하겐의 바닷가에 개업했으며 지역에서 바로 얻은 제철 재료를 가장 자연과 어울리게 내놓는 ‘뉴 노르딕 퀴진’을 새롭게 개척한 선구자로 꼽힌다. 덴마크를 미식의 강국으로 만든 것은 물론 세계적인 관광 국가로 만드는 데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고 있다. 지난 5년 새 노마 덕분에 코펜하겐 관광객 수가 12%나 늘었다는 통계도 있다. 올해 62세인 송코는 34년 전 감비아에서 덴마크로 이주했으며 2003년 노마가 개업할 때 합류한 뒤 14년 동안 줄곧 접시 닦는 업무만 맡아왔다. 송코는 이미 세계적으로 유명한 인물이다. 2010년 노마가 처음 ‘세계 최고의 레스토랑’에 선정됐을 때 비자 문제 때문에 영국 런던에서 열리는 시상식에 참석하지 못한 것이 계기였다. 당시 레스토랑 동료들이 송코의 얼굴을 새긴 티셔츠를 맞춰 입고 시상식에 나타나 이를 항의했기 때문이다. 동료들은 접시를 닦는 일도 식당의 필수적인 업무이며 때문에 송코도 ‘세계 최고의 레스토랑’을 만드는 공로자라고 인정했다. 그 덕분에 송코는 2년 뒤 이 식당이 또다시 ‘세계 최고의 레스토랑’에 선정됐을 때 당당하게 런던으로 날아가 시상식장에 설 수 있었으며, 레스토랑 측은 그에게 수상 소감 발표를 맡겼다.

덴마크의 이런 인간적인 면모는 이 나라 왕족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마그레테 2세 덴마크 여왕은 프랑스 남서부에 있는 카오르라는 시골 마을의 재래시장에서 장바구니를 들고 걸어가고 있는 사진으로 유명하다. 여왕은 매년 이 지역에서 휴가를 보내는데 빨간 반소매 셔츠에 옥색 긴 치마를 입고 검은 샌들을 신고 바구니를 들고 가는 모습이 지나던 사람에게 찍혀 인터넷을 통해 알려졌다. 영락없는 시골 할머니다. 휘게의 나라 덴마크를 상징하기에 충분한 사진이다.

덴마크는 휘게의 삶을 반영한 에코빌리지(생태마을)로도 유명하다. 코펜하겐 서쪽 도시 로스킬에 있는 몽쉐고 생태마을은 인구 5만의 조용한 도시로 새롭게 개발하던 주변 지역을 통합해 건설했다. 이곳 공동체는 각각 20채로 이뤄진 5개의 서로 다른 주거그룹으로 나뉜다. 각각의 주거그룹은 공동 취사, 집회, 파티 등 어울림 활동을 위한 공유 가옥을 소유한다. 당번을 정해 공동 운영하는 셈이다. 칸막이 같은 집에 혼자 틀어박혀 살지 말고 다양한 연령층이 하나의 주택 단지에 모여 준공동생활을 하자는 것이다. 휘게의 사회적 실천이다.

이웃과 어울려 사는 공동 생태마을


▎새로운 복지 모델을 선언한 덴마크의 라르스 뢰케 라스무센 총리. / 사진:중앙포토
이런 식으로 마을 주민들이 공동체 정신으로 서로 어울리며 살다 보니 공동의 환경 사업도 자연스럽게 나오게 됐다. 덴마크가 세계적인 환경산업 강국으로 떠오른 이유다. 눈여겨 볼 부분이 시민과 함께 만든 것으로 유명한 코펜하겐 미들그룬텐 풍력발전단지다. 2000년 완공된 미들그룬덴은 세계 최대의 해안 풍력발전 단지다.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하고 가장 사진이 멋진 풍력발전소로 자리 잡고 있다. 환경도시 코펜하겐을 상징하는 시설물이기도 하다. 코펜하겐 도심에서 3.5km 떨어진 외레순에 자리 잡고 있다. 코펜하겐 공항에 비행기가 착륙하는 동안 해상에서 풍력발전 터빈이 줄지어서 돌고 있는 장관을 볼 수 있다. 이 풍력발전소 단지는 친환경 에너지원으로서 풍력의 중요성을 잘 보여주는 상징이다.

1996년 건설 계획을 시작해 2000년 완공됐다. 20개의 터빈으로 40MW의 전력을 공급한다. 이곳에서 생산된 전기는 코펜하겐 전체 전력 수요의 4%를 충당한다. 이 지역에는 강풍은 아니지만 비교적 활기찬 바람이 줄기차게 분다. 게다가 주변에 산이나 인공 시설을 비롯한 장애물이 아무것도 없다. 그야말로 풍력 발전을 위한 천혜의 입지다. 이 때문에 가동률이 97%에 이른다.

이 풍력발전 단지는 그 자체로는 물론 조성 과정부터 지역 친환경발전사업의 모범으로 통한다. 덴마크는 1990년대 전기 공급을 위한 새로운 에너지원을 찾기 위한 ‘해안풍력발전소 액션 플랜’을 마련했다. 풍력발전을 친환경 미래에너지로 주목하고 열정적으로 설치를 주장하던 그룹이 이곳의 자연 조건을 눈여겨보다가 추천했다. 이에 따라 코펜하겐 환경 및 에너지 사무소(CEEO)라는 주민 단체가 인근의 미들그룬덴을 유력 후보지로 잡았다.

개발 방식은 독특했다. 지역 주민들이 미델그룬덴 풍력발전 협동조합을 구성해 지역 전력공사인 코펜하겐에너지와 서로 협력했다. 미들그룬덴은 협동조합 방식의 공동체 풍력 발전의 모범이다. 지역 주민 1만 명이 자신이 저축한 돈을 내놓아 조합을 구성했다. 지분의 50%는 협동조합에 투자한 1만 명의 투자자에게 있고 나머지는 지역 전력공사에 있다. 주민 참여형 지역 개발의 신화로 통한다. 여기서 생산된 전력을 팔아 이익을 내며 이를 전력공사와 조합원들이 나눈다. 덴마크 환경보호협회는 이 지역에 대규모 풍력발전소를 세우는 계획에 처음에는 반대했지만 장기적으로 친환경적이라는 판단에서 결정을 바꾸었다. 주민들 나서서 환경단체를 설득하기도 했다. 환경과 지역 발전의 윈-윈이다.

환경보호와 자전거, 휘게의 또 다른 이름


▎덴마크 코펜하겐 미델그룬덴 해안 인근에 설치된 풍력발전단지. / 사진:중앙포토
덴마크의 수도인 코펜하겐은 세계적인 친환경도시로 평가받는다. 코펜하겐은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과 더불어 전 세계에서 가장 자전거 친화적인 도시의 하나로 꼽힌다. 전체 인구 180만 명 가운데 매일 평균 110만 명이 자전거로 통학·통근한다. 자전거를 매일 이용하는 사람이 인구의 40%를 넘는다. 이를 위해 자전거 도로 시스템과 인프라의 구축에 특히 신경 쓰고 있다. 이 도시의 자전거 도로는 상당 부분 자동차 도로와 별도로 건설된다. 자동차 도로의 한구석에 자전거용으로 선만 그은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러니 신호체계도 자동차와 별개다. 일부 도로를 아예 자전거 전용으로 내줬다는 이야기다. 환경보호와 자전거는 휘게의 또 다른 이름이다.

덴마크는 코펜하겐과 다른 도시를 이어주는 ‘그린웨이’라는 이름의 자전거 장거리 도로를 100km가 넘는 것만 22개를 닦을 예정이다. ‘더욱 빠르고, 안전하며 즐거운 자전거 여행’이 모토다. 이런 노하우는 이미 세계 곳곳에 수출되고 있다. 국제사이클링연맹은 코펜하겐을 제1호 공식 바이크 시티로 인증했다.

프랑스 파리가 자랑하는 도심 자전거 대여시스템(벨리브)은 코펜하겐에선 그야말로 ‘새발의 피’에 지나지 않는다. 코펜하겐은 이제 이산화탄소와 각종 오염물질을 내뿜고 소음까지 내는 재래식 자동차를 아예 몰아낼 기세다. 이미 ‘시티 시르켈’이라고 불리는 7인승 초소형 전기버스가 도심을 조용히 돌고 있다. 배차 간격 7분, 도심을 한 시간에 한 바퀴 돈다. 도로가 좁고 골목이 많은 이 오래된 도시의 도로 사정에도 어울린다는 평이다.

시당국은 시내 전역에 전기자동차 배터리 충전망을 구축해 코펜하겐을 전기자동차 친화적인 첨단 교통도시로 만들 예정이다. 이를 위해 친환경 교통수단을 개발·보급하는 미국 벤처 업체 베터 플레이스와 충전망을 공동 개발·구축하기로 계약을 맺었다. 탄소배출 에너지원을 바탕으로 하던 기존의 교통수단에서 벗어나 재생 가능한 전기를 에너지원으로 하는 ‘오염물질 배출 제로의 지속 가능한 이동수단’이 달리는 미래형 환경도시를 선보이겠다는 것이다.

코펜하겐이 친환경 도시가 된 것은 국가와 도시의 오랜 노력 덕분이다. 덴마크는 이미 1971년 환경부를 만들었고 73년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환경법을 제정했다. 2006년 코펜하겐은 모범적인 환경정책으로 유럽환경관리대상을 받았다. 더욱 중요한 것은 환경문제를 사고하는 방식이다. 코펜하겐은 환경 관련 첨단기술을 개발하는 클린테크 클러스트를 구축해 300개가 넘는 기업과 46개의 연구기관을 유치했다. 이를 바탕으로 6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했다. 남들이 ‘환경은 비용’이라는 ‘빼기(-) 사고’를 할 때 코펜하겐은 환경은 새로운 시장이라는 ‘더하기(+) 사고’를 해온 것이다. 친환경도시 코펜하겐은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았다. 휘게의 나라 덴마크도 마찬가지다. 국민과 정부의 오랜 노력의 결과다.

1376호 (2017.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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