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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핑 혁명’ 나선 한·미·일 유통업계] 줄 설 필요 없고 간편한 무인점포 시대 개막 

 

허정연 기자 jypower@joongang.co.kr
세븐일레븐, 세계 최초로 편의점에 무인 정맥 인증시스템... 아마존 고 앱에선 가상 카트에 물건 담아 결제까지

▎세븐일레븐 시그니처점을 방문한 고객이 핸드페이로 결제 후 계산대를 통과하고 있다. / 사진제공·코리아세븐
무인 편의점 ‘세븐일레븐 시그니처’가 5월 16일 서울 신천동 롯데월드타워 31층에 문을 열었다. 82㎡(약 24.8평) 규모의 세븐일레븐 시그니처점은 겉보기에는 평범한 매장이지만 계산대 직원이 따로 없다. 계산은 손바닥 정맥을 정보화한 핸드페이(Hand Pay) 시스템으로 대신한다. 현금이나 카드·스마트폰 없이 손바닥을 갖다 대는 것만으로 결제를 할 수 있다.

이용 방법은 간단하다. 편의점 출입구(바이오 게이트)에 있는 인식기에 손바닥을 대면 문이 열린다. 음료 냉장고 역시 전자동 방식이다. 50cm 거리에 서면 자동으로 문이 열리고, 음료를 꺼낸 후 돌아서면 저절로 닫힌다. 사려는 물건을 무인 계산대에 설치된 컨베이어 벨트에 올리면 모니터에 가격이 표시된다. 인공지능(AI) 기술이 적용된 무인 계산대는 상품 바코드와 상관없이 해당 상품을 자동 스캔해서 인식한다. 예컨대 바코드가 붙어 있지 않은 사과 같은 과일을 무게와 모양만으로 인지한다. 제품별 가격엔 근거리무선통신(NFC)과 QR코드(동영상 등의 정보를 담을 수 있는 2차원의 격자무늬 코드)가 삽입돼 스마트폰으로 해당 제품의 할인 쿠폰이나 상세 상품 정보를 볼 수 있다. 담배는 스마트 안심 담배 자판기를 통해 판매한다. 정맥 인증을 하면 성인 인증과 결제가 동시에 이뤄져 청소년의 담배 구매가 자동 차단된다. CCTV도 보안 기능뿐 아니라 소비자의 쇼핑 패턴을 분석하는 기능을 갖췄다. 예컨대 고객이 어떤 경로로 이동하는지, 어떤 상품 앞에 얼마나 머물렀는지를 파악한다.

결제 시에는 모니터 옆 핸드페이에 손바닥을 대면 된다. 핸드페이는 롯데카드가 개발한 정맥 인증 결제서비스다. 무인 편의점에 출입하려면 우선 정맥 인증 등록을 해야 한다. 현재는 롯데카드 소지자만 이용할 수 있지만 오는 8월까지 타사 카드로 확대 적용할 계획이다. 정승인 코리아세븐 대표는 “무인 편의점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유통업계가 미래를 위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했다는데 의의가 있다”며 “핸드페이는 세븐일레븐을 중심으로 롯데그룹 유통사 전체로 확대 적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세븐일레븐은 무인 시스템 도입으로 단순 반복 업무에서 근무 환경을 개선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김영혁 세븐일레븐 기획부문장은 “편의점 근무 직원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업무시간 중 65.7%가 포스 업무(단순 계산)인 것으로 나타났다”며 “스마트 점포가 대중화되면 근로자의 단순 노동 업무 부담이 크게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김 부문장은 “전자동 냉장 설비로 고객 방문이 뜸한 야간에 전력을 아낄 수 있어 30% 정도 에너지 절감 효과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일본 5대 편의점 2025년까지 전 점포 무인 계산대 도입


▎지난 4월 미국 시애틀 ‘아마존 고’ 매장에서 손님들이 물건을 고르고 있다. / AP=연합뉴스
유통업계의 무인 점포 운영 시도는 이전에도 있었지만 편의점 업계에서는 세븐일레븐이 세계 최초다. 세븐일레븐 관계자는 “국내 편의점 시장이 급격히 성장하고 있고, 편의점이 차세대 유통산업을 이끌어 갈 것이라는 판단 아래 스마트형 매장을 우선적으로 선보이게 됐다”고 설명했다.

일본 역시 무인 편의점 시대를 앞두고 있다. 일본 니혼게이자이 신문은 지난 4월 일본 대형 편의점 5개사(세븐일레븐·패밀리마트·미니스톱·로손·뉴데이즈)가 2025년까지 전 점포에 무인 계산대를 도입할 방침이라고 보도했다. 집적회로(IC) 태그가 붙은 물건이 담긴 바구니를 무인 계산대에 올려놓기만 하면 그 안에 든 모든 상품을 한번에 계산하는 방식이다. 편의점 5개사는 앞으로 편의점에서 취급하는 모든 상품에 IC 태그를 부착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일본 경제산업성은 편의점과 IT기업, 식품제조업체, 물류업자 등으로 구성된 협의회를 연내에 발족하고 무인 계산대를 2018년 이후 수도권과 도심 지역 점포부터 배치해나갈 계획이다. 태그를 읽어내는 무인 계산대는 1대당 100만~200만 엔(약 1040만~2080만원)으로 전국 편의점 약 5만 개에 도입하면 500억~1000억 엔(약 5210억~1조420억원)의 신규 투자가 발생하는 등 이점을 얻을 수 있다. 경제산업성은 편의점 기업의 계열사인 수퍼마켓이나 드럭스토어 등으로 IC태그 사용이 확산될 것이라고 기대한다. 다만 고가의 IC태그 생산 비용은 넘어야 할 산이다. 현재 IC태그는 1장당 10엔~20엔(약 100원~210원) 정도다. 경제산업성은 IC태그 기술 개발 기업에 보조금 등 정책으로 보급을 촉진할 방침이다.

무인 편의점을 여는 속도는 한국보다 앞서지만 도입 배경은 차이를 보인다. 세븐일레븐이 4차 산업혁명을 앞세워 스마트한 편의점 구축을 목표로 하는데 반해 일본은 심각한 인력난을 해결하기 위한 대응책에 가깝다. 패밀리마트의 경우 일손 부족으로 지난 3월부터 퇴직사원을 재고용하고 있으며 올해 가을부터는 주3일 휴무 대책을 시행할 계획이다. 편의점 수가 5만 개에 달하는 일본에서는 점원이 필요 없는 매장 확대가 절실한 상황이다.

앞서 세계 1위의 온라인 상거래 기업 아마존도 지난해 말 본사가 있는 미국 시애틀에 계산대 없는 식료품점 ‘아마존 고(Amazon Go)’를 열었다. 이 매장의 콘셉트는 말 그대로 ‘Just grab and go(그냥 집어가)’다. 이용자들은 스마트폰에 설치한 아마존 고 앱을 스캔한 후 입구를 통과한다. 마치 지하철 개찰구에서 교통카드를 찍듯 키오스크에 스마트폰을 대면 본인 인증이 된다. 이후 매장 내에서 물건을 집어들면 앱 속 가상의 카트 안에 물건이 채워진다. 장을 다 본 후에는 따로 계산할 필요 없이 매장을 나가면 된다. 결제 내역은 추후 e메일 청구서를 통해 받는다. 마트에서 줄을 서서 기다렸다가 계산대에서 결제하는 절차가 생략되는 것이다.

계산대 없는 식료품점 ‘아마존 고’

아마존은 공식 블로그를 통해 “컴퓨터 시각화, 인식 센서의 융합, 그리고 딥 러닝 기술이 가게와 선반에 장착돼 있다”며 “당신이 어떤 상품을 선택했다가 다시 가져다 놓을 경우에도 아마존 계정의 장바구니에서는 이를 정확히 인식해 가감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아마존은 아마존 고에 사용하는 기술 구현을 위해 4년여간의 연구개발 과정을 거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매장은 아마존 직원들을 대상으로 시범 운영되고 있으며 연내 대중에게 개방될 예정이다. 현지 언론 보도에 따르면 아마존은 아마존 고와 유사한 방식을 차용한 대형 식품매장과 드라이브스루 매장 역시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외 유통업계에서는 아마존 고를 ‘쇼핑혁명’의 신호탄으로 평가하고 있다. 세븐일레븐 역시 시그니처점 오픈을 앞두고 아마존 고를 벤치마킹했다고 밝혔다. 다만 이 같은 무인 매장이 대중화하기까지는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AI 기술력으로 보자면 세계적인 수준이지만 일본과 달리 일자리 부족 문제를 겪는 상황에서 무인 매장을 크게 확대하기는 어려운 분위기”라며 “아마존 무인 매장의 경쟁력이 맞춤형 주문과 재고관리, 배송까지 가능한 ‘일괄형 물류서비스’에서 나온 만큼 국내 유통업체도 관련 분야의 경쟁력을 더욱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1385호 (2017.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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