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cus

[함승민 기자의 ‘위헌(違憲)한 경제’(4) 배임죄] 헌재의 합헌 결정에도 ‘이현령비현령’ 비판 

 

함승민 기자 sham@joongang.co.kr
적용 조건 모호한 경우 많아 … 재계 “경영판단 원칙 명문화” 요구

‘경제정의’가 화두로 떠올랐다. 우리 사회에서 정의의 원초적 기준은 법이다. 그렇다면 우리 경제는 법을 얼마나 지키고 있을까. 아니, 단순히 합법적인 경제는 정의로운 경제일까. 또는 법에 어긋난 경제활동은 모두 불공정한 행위일까. 이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모든 법률의 근간이자 잣대가 되는 헌법으로 경제를 짚어봤다. 실제 헌법소원 판례를 통해 개인과 국가가 경제와 법을 의심하고 행동하며 바꾸어 나가는 과정을 추적했다. ‘위헌(違憲)’한 한국 경제의 모습을 살펴본다.


기계설비 회사에서 일하던 A씨. 그는 2008년 퇴직 후 회사를 차려 전 회사에서 갖고 나온 설비 도면으로 유사한 제품을 생산한 혐의로 기소됐다. 검찰이 적용한 것은 ‘업무상 배임죄’. 이 설비 도면이 영업비밀에는 해당하지 않아 부정경쟁 방지법 위반에는 적용되지 않지만, 대신 대법원 판례상 ‘영업상 주요 자산’에 해당하기 때문에 배임 행위에 해당한다는 이유였다. A씨는 지난해 1심에서 혐의가 인정돼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았다. 그러나 항소심에서 기류가 바뀌었다. 항소심을 맡은 인천지법 재판부는 지난 5월 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했다. 위헌법률심판이란 재판 중인 소송 사건에서 법원이 그 사건에 적용할 법률에 문제가 있는 것 같으니, 위헌인지 아닌지를 심판해달라고 헌재에 요구하는 것이다. 이 경우 대상이 된 법률은 물론 A씨의 혐의 사안인 ‘업무상 배임죄’다.

재판부가 밝힌 위험법률심판 청구 취지를 요약하면 이렇다. “사법부는 국회가 제정한 법률을 해석·적용하는 기관이다. 법률에 없는 용어를 새로 만들 권한은 없다. 그런데 대법원 판례에 나오고 검찰이 기소에 인용한 ‘영업상 주요 자산’이란 건 법률에 없는 용어다. 사법부가 권한을 넘은 법 해석으로 질서를 깨뜨리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는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행위다.” 또 이런 설명을 덧붙였다. “회사가 다른 곳으로 이직한 근로자들에 대해 사실상 보복을 하기 위해 영업비밀 침해나 배임죄로 고소하는 일이 빈번하다. 법원이 이런 현상을 방조하고 있어 헌법에서 정한 직업선택의 자유와 영업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다. 업무상 배임죄의 적용 범위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이 사건은 헌재의 결정을 기다리는 중이다.

50억원 이상 배임죄면 살인죄 수준 처벌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사람이 그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로써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거나, 제3자로 하여금 이를 취득하게 하여 본인에게 손해를 가하는 죄(형법 355조 2항)’. 배임죄의 형법상 정의다. 사실 이보다는 사전적 정의로 보는 게 이해가 조금은 더 쉽다. ‘주로 공무원 또는 회사원이 자기의 이익을 위하여 국가나 회사에 재산상의 손해를 주는 경우’를 일컫는다. 형법은 이런 행위에 대해 10년 이하의 징역, 3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하도록 규정한다. 형법뿐 아니라 특별법에도 배임죄 조항이 있다.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은 배임행위의 피해액이 5억~50억이면 3년 이상 징역, 50억원 이상이면 무기징역이나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살인죄(사형·무기 또는 5년 이상 징역)와 비슷한 수준의 처벌이다.

배임죄 목적은 분명하다. 개인의 것이 아닌 국가나 회사를 이용해 부당한 이득을 얻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배임죄는 오랜 시간 논란이 돼 왔다. 적용 단계에서의 모호함이 문제가 됐다. 조항에서 말하는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대법원은 이를 ‘하거나 하지 않아야 할 것으로 기대되는 행위’로 해석하고 있다. 그러나 기대되는 행위는 대상과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가령 금융회사 직원이 업무상 판단 하에 투자를 결정했는데, 이로 인해 손해가 발생했다면 이는 배임죄가 될까. 재벌 총수가 그룹 전체의 이미지와 실적을 개선하기 위해 B 계열사에게 도산 직전의 C 계열사를 지원하도록 했다면, B 기업 입장에서는 배임이 되는 것일까.

모호성은 재벌의 스캔들과 엮이면서 경영상 판단이나 결단에 따른 손실을 범죄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한 논란으로 이어졌다. 재계에서는 이로 인해 기업활동이 위축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악의 없이 신중하게 결정을 내렸더라도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는 이유로 처벌받는다면 어떤 기업인이 과감한 투자를 할 수 있겠느냐”는 게 재계 단체의 주장이다. 또 배임죄가 검찰의 기업인 압박 수단으로 악용된다는 지적도 있다. 정·관계 로비나 비자금 같은 큰 의혹은 명쾌히 밝혀내지 못하더라도 배임죄는 쉽게 적용해 기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로 검찰의 기소는 많은 반면 법원의 무죄율은 높고, 경제 인사 특별사면 중 가장 많은 죄목이 배임죄라는 점을 들기도 한다. 이런 주장대로라면 배임죄는 헌법상 개인의 재산권 행사와 영업의 자유를 침해한 것이 된다. 그렇다면 배임죄는 위헌인 것일까.

2014년 헌재, 배임죄 합헌 결정

재계를 중심으로 배임죄에 대한 비판 여론이 커진 2014년, 결국 배임죄는 헌법재판의 대상이 됐다. 당시 배임죄로 징역과 벌금을 선고 받은 신현규 전 토마토저축은행 회장과 채규철 전 도민저축은행 회장이 헌법소원을 냈다. 이들은 배임죄의 모호성과 과도한 처벌 규정을 집중적으로 지적했다. 민사적 문제인 배임에 형사상 책임을 묻는 것이 과잉금지원칙을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또 ‘손해’나 ‘이득액’에 따라 배임죄를 적용하게 되는데 무엇을 ‘손해’나 ‘이득액’이라고 볼지 의미가 모호하고, 아울러 범인의 성행, 전과 유무, 범행의 동기, 범행 후의 정황 같은 다른 구성요소 없이 금액의 크기에 따라 양형을 달리하고 있는 것 자체도 책임과 형벌 사이의 비례를 요구하는 책임주의원칙에 위배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헌재는 이들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형법과 특정경제범죄특별법의 배임죄는 합헌이라고 결정했다. 결정문에서 헌재는 “배임죄 조항이 ‘손해’와 ‘이득액’의 개념에 대해 별도로 규정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 의미와 내용은 법관이 충분히 합리적으로 파악할 수 있으므로 명확성원칙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처벌이 과도하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문제가 없다고 봤다. 헌재는 “오늘날 경제 규모의 확대로 업무상 배임죄가 발생하는 경우 그 피해 규모는 날로 커지고 있고, 이에 따라 국민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며 “특별법 배임조항이 배임행위로 취득한 이득액에 따라 업무상 배임죄를 단계적으로 가중처벌하는 것은 그 입법목적의 정당성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이어 “법원이 이미 ‘경영상의 판단’에 관한 법리를 수용하여 기업 경영인의 업무상 배임의 고의 판단을 할 때 엄격한 해석기준을 적용하고 있다”며 “국가형벌권 행사에 관한 입법 재량의 범위를 벗어난 과잉입법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헌재의 합헌 결정은 법적으로는 배임죄 논쟁에 종지부를 찍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논란의 불씨는 꺼지지 않았다. 헌재가 밝힌 합헌 이유에 대한 비판이 제기됐다. 헌재의 설명을 요약하면 ‘법원이 꼼꼼하게 해석하고 있고, 적절한 수준의 형벌을 적용하고 있으니 문제될 게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법률이 잘못된 것 아니냐는 질문에 해석만 잘하면 된다고 답한 동문서답이라는 지적이다. 과잉금지원칙에 대한 다른 생각도 있었다. 합헌 결정문에서 당시 이정미 재판관은 가중처벌 규정에 대해 “법 위반 행위에 대한 판단은 다양한 요소로 이뤄진다”면서 “배임 규모만을 기준으로 차등 처벌하는 것은 형벌 체계상 불균형을 초래한다”는 반대 의견을 냈다. 이 재판관은 또 “그 법정형이 형법상 사람의 생명이나 신체를 침해하는 범죄의 법정형과 비슷해 책임과 형벌 사이 비례원칙에 위배된다”고 덧붙였다.

“주주·이사의 책임 분명하지 않아 법원 재량에 맡겨야”

‘경영판단의 원칙’을 적용하는 문제를 두고도 논쟁은 이어지고 있다. 헌재는 합헌 근거로 경영판단 원칙을 실제 판결에서 적용하고 있다는 점을 들었다. 법원이 기업경영상 판단을 감안해 배임죄 조항을 엄격히 적용하는 ‘경영판단의 원칙’에 관한 법리를 수용하고 있어 배임조항 자체가 위헌은 아니라는 뜻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법원 판결에서 경영판단 원칙이 항상 똑같이 적용되기는 어렵다. 같은 사안을 두고도 경영판단의 원칙 적용 여부에 따라 고등법원과 대법원의 유·무죄 판단이 엇갈린 판례도 많다. 재계에서 보완 방안으로 “경영판단의 원칙을 명문화 해달라”고 요구하는 이유다.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무조건 경영판단이었다고 우기는 것이 배임죄의 면죄부가 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배임죄 개정 반대론 측에서는 “한국은 선진국과 달리 주주나 이사의 책임과 의무가 명확하게 규정돼 있지 않아 법원의 판단 재량에 맡길 수밖에 없는 부분이 많은 것”이라며 “한국에서 배임죄를 완화하면 재벌 총수의 전횡이나 방만경영이 늘어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배임죄 논쟁의 당사자가 재벌 총수만 있는 것은 아니다. 다시 처음의 A씨 사건과 인천지법의 위헌법률심판으로 돌아가보자. 첫 부분을 다시 읽어보면 이 사건의 위헌법률심판 제청 취지는 배임죄의 주요 논쟁인 ‘경영적 판단’과는 방향이 다소 다르다. 하지만 그 원인은 비슷하다. 적용을 하기 위한 조건이 모호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조문의 모호성을 판단하는 것도 모호하다. 이에 대한 고민은 헌재의 합헌 결정문에서도 드러난다. “헌법은 법률이 처벌하고자 하는 행위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규정할 것을 요구한다. 법규의 내용이 애매모호하거나 추상적이면 국민들이 법을 지키기 어려워서다. 그러나 내용이 다소 광범위해 법관의 보충적인 해석을 필요로 한다고 해서 무조건 위헌이라고 볼 수는 없다. 법규가 지나치게 구체적이고 정형적이면 빠르게 변하는 사회를 제대로 반영할 수 없다”.

결국 배임죄는 우리에게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약효는 있는데, 독소가 있다. 약효를 위해 독소를 참아야 할까. 독소를 없애기 위해 약효도 줄여야 할까. 바꿔야 한다면 어떤 식으로 바꿀 수 있을까. 또 법 조문의 모호함은 어떻게 판단할 수 있을까. 법은 얼마나 포괄적이고, 얼마나 구체적이어야 하는 것일까. 망이 성글어 치어는 빠져 나갈 수 있게 할 것인가, 촘촘히 짜 최대한 많은 물고기를 잡아야 옳은 것일까, 아니면 낚시꾼의 판단에 맡겨야 하는 것일까.

1395호 (2017.08.0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