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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교육시장의 이유 있는 질주] 업무·퇴사·인생까지 학원에서 배운다 

 

한정연 기자 han.jeongyeon@joongang.co.kr
강좌·학원 늘며 시장 규모 2조원 넘어 … 불안한 ‘사교육 세대’의 과도한 투자라는 우려도

▎서울 서초동 패스트캠퍼스 강의실에서 디지털 마케팅을 가르치는 강사가 밤 늦은 시간에도 강의에 열중하고 있다. / 사진:김현동 기자
“부산에서 스피치 강사의 퍼스널 브랜딩과 마케팅을 돕고 있습니다. 네이버 블로그가 강의 홍보에 적합하다고 판단해서 운영을 시작한 지 20일째네요. 하루 50~100명 정도 방문하는데 아직 멀었죠.” 백수창(32, 프리랜서 마케터)씨는 7월 7일 오후 8시 홍익대 근처 스터디카페에서 진행된 ‘퇴사학교’의 지식창업론 워크숍에서 자신을 이렇게 소개했다. 이날 워크숍은 지식창업론 수업을 들었던 수강생 대상의 무료 행사. 백수창씨를 포함해 창업하려는 수강생 5명과 퇴사학교 직원 4명이 백씨와 마케팅 아이디어를 교환했다. 퇴사학교 창업자인 장수한 교장(언더독스 스쿨 대표)은 마케팅 타깃을 설정해야 한다고 조언하며 “퇴사학교의 마케팅 페르소나는 대기업에 종사하는 32세 여성”이라고 설명했다. 마케팅에서 페르소나는 고객의 성별·나이·직업이나 취향 등을 정성적이고 가시적으로 정의해 타깃 고객을 정할 때 쓰는 용어다.

실무 중심으로 최신 사례 많이 다뤄

백수창씨는 2013년 한국해양대학교 유럽학과를 졸업하자마자 독일에서 취업에 성공했다. 프랑크푸르트에서 기차로 30분 거리인 다름슈타트에 있는 구매 대행업체 ‘티마한’이 그의 첫 직장이다. 백씨는 2014년 여름 베트남 호치민에 있는 한국 기업 동진섬유로 이직해 2016년 11월 한국에 오기 전까지 일했다. 신발 원단을 취급하는 영업부서 매니저였다. 그는 대학 졸업 후 줄곧 해외에서 영업·마케팅 업무를 하고 있었지만 자신이 이 일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고 했다. 마침 귀국할 예정이던 백씨는 해외 영업·마케팅 관련 직무 기술을 가르치는 한국의 교육 업체를 물색했다. 오프라인 직무 교육 업체 패스트캠퍼스는 페이스북 광고를 보고 접했다. 그는 수강료 360만원을 내고 디지털마케팅 스쿨 3개월 과정을 올 4월까지 수강했다. 수업은 주중 5일 간 오전 9시~오후 5시까지 빡빡하게 진행됐다. 그는 “회사생활을 하면서 대학에서 배운 것과 실무가 많이 달라 답답했다”며 “내가 들은 강의는 강사가 실무진이다 보니 최근의 실제 사례를 많이 다뤘다”고 만족했다. 백수창씨는 올 4월 방송 프로그램을 보고 알게 된 퇴사 학교에서 ‘지식창업론’을 수강했다. “디지털 마케팅은 굉장히 빨리 변하는 분야라서 6개월에 한 번쯤은 단기 강좌라도 들을 예정입니다.”

업무·퇴사·창업에 인생까지 학원에서 배우려는 성인이 늘고 있다. 마케팅 업무를 맡고 있는 직장인이 외부 교육 업체에서 ‘디지털 마케팅’ 수업을 듣거나, 이직이나 창업 등의 이유로 회사를 그만두는 방법을 ‘퇴사학개론’에서 배운다. ‘대화를 잘 하는 법’ ‘좋은 친구가 되는 법’ 등 일상에서 필요한 요소를 배우기도 한다. 성인 대상의 교육시장 규모는 약 2조원대(IBK투자증권 ‘교육산업’ 보고서, 2013)로 추정된다. 직무 관련이나 인문학 교육시장 규모는 아직 수백 억원대에 불과하지만 가파르게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0년 이후 지난해까지 성인을 대상으로 직업기술 강의를 하는 학원은 3192개에서 4244개로 33% 늘어났다. 같은 기간 인문학 학원도 543곳에서 606곳으로 12% 늘어났다.

성인들이 이와 같은 교육에 참여하는 비율도 크게 높아졌다. 한국교육개발원에 따르면 성인의 직무 관련 평생학습 참여율은 2012년 15.4%에서 3년 만인 2015년 27.7%로 크게 늘어났다. 전체 ‘비형식 교육(비학위 과정)’이 같은 기간 7%포인트 늘어났다. 이 중 직무 관련 교육은 무려 12.3%포인트로 전체 평균보다 배 가까이로 늘어났다.

패스트캠퍼스·퇴사학교·인생학교 서울 등 인기


기자가 직접 청강해본 교육 업체 3곳의 누적 수강생 수만 봐도 이 시장이 얼마나 빠르게 늘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 2013년 시작한 패스트캠퍼스(대표 이강민)는 3년 6개월 만에 누적 수강생 2만 명을 넘겼다. 퇴사학교(교장 장수한) 수강생은 1년 만에 5000명을 넘겼다. 인생학교 서울(대표 손미나)에선 1년 6개월 동안 6500명(올 3월 기준)이 수업을 들었다. 직무 교육 과정은 모비인사이드·DS스쿨 등 페이스북에서 적극적으로 홍보하는 후발주자가 많다. 인문학 수업을 비정기적으로 하는 곳도 적지 않다.

7월 4일 저녁 7시 서울 잠원동의 한 6층 건물에서는 백수창 씨가 들었던 패스트캠퍼스의 디지털 마케팅 수업이 한창이었다. 백씨는 전일제 강의인 ‘스쿨’에서 수강했지만, 이 강의는 직장인 대상으로 이뤄지는 저녁 수업이다. 강사는 현직 대기업 디지털 마케팅 부서장이 맡는다. 수강생 대부분이 수업 시작 30분 전 도착해 강의실은 이미 꽉 차 있었다. 수강생들도 대부분 현재 마케팅 업무를 하는 이들이다. 강사가 수업 중간 교재로 쓰는 자사 전략 프레젠테이션 파일을 가리키며 “파일로 보내줄 순 없지만 꼭 필요한 부분은 촬영해도 좋다”고 하자 수강생들이 일제히 스마트폰을 들어 사진을 찍었다.

이처럼 인기 있는 과목은 수강료도 만만치 않다. 패스트캠퍼스에서 가장 비싼 수업은 3개월 동안 하루 종일 진행되는 각종 ‘캠프’들로 3개월에 400만~500만원 대다. 퇴사학교에선 지식 창업 워크숍 등 49만원짜리(2개월) 수업도 여럿이다. 인생학교 서울의 단과 수업은 10만원 미만이지만 올 1월 시작한 연간 패밀리 멤버십은 59만원이다. 임언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선임연구위원은 “직장인들이 고가의 직무 관련 수업을 자비로 듣는 것은 투자”라고 설명했다. 젊은 직장인들이 이런 수업을 이수한 것이 노동시장에서 통용되는 가치가 높다고 생각하면, 교육에 우선적으로 투자하려는 경우가 많다는 얘기다. 임 위원은 “노동시장·산업구조·기술의 변화 속도가 굉장히 빨라지므로 이를 따라가려면 지속적인 학습이 필요하다”며 “직장인들은 이런 수업을 통해 학습 시간을 벌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500만원대 수강료에도 재수강률 20%


그간 직장인들이 받는 직무 혹은 인문학 교육은 무료라는 인식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기업들은 자체적으로 직무교육이나 인문학 강의를 제공했고, 정부도 실직자들을 위해 고용보험의 직업능력개발기금으로 특정 교육과정을 지원했다. 하지만 기술 발전 속도가 빨라지면서 업무에 필요한 기술 트렌드도 빠르게 변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직장인 대상 교육도 특화되고 있는 것이다. 이강민 패스트캠퍼스 대표는 “필수 커리큘럼과 수강료에 제한이 있는 정부 지원금 과정은 만들 생각이 없다”며 “빅데이터, 데이터 사이언스 과정은 현업에서도 인력이 달리는데, 일반적인 강사료를 지급해서는 수준 높은 강사를 섭외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장수한 퇴사학교 대표는 “새로운 배움에 대한 수요가 분명 직장인 사이에서 점점 더 커지고 있다는 것을 느꼈고, 그것을 이제 각자가 가진 지식을 공유하는 모델로 풀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성인 교육시장의 이 같은 트렌드는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012년 24개국 16세 이상 65세 미만 성인 15만7000명을 대상으로 직무역량을 조사해 ‘국제성인 역량조사 보고서(PIAAC)’를 발표했다. 직장에서 업무를 수행할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언어능력, 수리력, 컴퓨터 기반 문제 해결 능력으로 나누어 평가한 사업이다. 한국에선 6667명이 조사에 참여했다. 계획부터 보고서 발표까지 4년이 걸렸다.

OECD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직장인과 예비 직장인들은 직장 내 직무역량이 OECD 평균에 비해 낮았다. 특히 한국 성인의 직무역량은 20대 초반에 정점을 나타내고, 나이가 많아질수록 급격하게 낮아졌다. 다른 나라에선 역량이 30~35세에 정점을 나타내고도 완만하게 낮아지는 것과는 확연히 다르다. 보고서는 한국 성인이 초기 교육을 통해서 얻은 직무역량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학습을 통해 이를 개발하지도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재미있는 사실은 한국 성인들의 평생학습 참여시간이 연 258.9시간으로 OECD 조사국 중 가장 길었다는 것. 대학원과 같은 학위 과정이 많았기 때문이다. 특히 고용주로부터 학습비용을 지원받는 비율이 40%에 그쳐 조사국가 중에서 가장 낮았다. 그러나 보고서는 오히려 학위와 상관 없는 ‘비형식 학습’이 직무역량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된다고 진단했다.

이 보고서가 발간된 2012년 한국의 평생학습 참여율이 15%대에서 5년 만에 27.7%로 가파르게 높아졌고, 최근 직무역량 그리고 문제개발 능력을 키워주는 강좌들이 늘어나는 데는 이처럼 ‘국제적으로 부족한 직무역량’을 키워보려는 직장인들의 불안한 심리가 알게 모르게 반영돼 있다. 앞서 소개한 백수창 씨는 해외 취업에 성공해 일을 하면서도 불안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이제 80세까지 일해야 하는 시대인데 언젠가 내가 독립해 내 일을 할 수 없을 것 같아 직무교육 학원을 알아본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6개월마다 이런 강의를 들을 것이라고 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교육제도 개혁하지 않으면…


▎장수한 퇴사학교 교장의 수업을 진지하게 듣고 있는 백수창씨 뒷모습. 백씨는 이날 수업을 위해 부산에서 올라왔다. / 사진:퇴사학교
최근 성인 대상 교육 업체들의 공통적인 몇 가지 특징도 이런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 첫째, 강사의 역량에 전적으로 의존하던 과거 직무·인문학 교육과는 달리 강의 커리큘럼을 교육 업체가 현업에 맞게 정하고 세부 내용까지 다듬고 나서야 이에 맞는 강사를 섭외한다. 패스트캠퍼스엔 ‘코스 매니저’, 퇴사학교에선 교장 등 내부 강사진, 인생학교 서울에선 런던 본사가 커리큘럼 개발을 전담한다.

둘째, 비싼 경우 500만원이 넘는 수강료를 자비로 부담하는데도 재수강자 비율이 낮지 않았다. 패스트캠퍼스는 최근 6개월 간 재수강률이 20%였다. 퇴사학교는 따로 집계를 하진 않지만 3~4개 과목을 한꺼번에 수강하는 경우가 상당하다고 밝혔다. 인생학교 서울은 모든 수업을 다 들을 수 있는 연간 패밀리 멤버십에 올 상반기에만 200여 명이 가입했다.

셋째, 수강생 간 혹은 강사와의 네트워킹이 활발하다. 업무용 메신저를 개발한 스타트업 잔디는 패스트캠퍼스 창업 캠프를 함께 들은 수강생들이 모여 만든 회사다. 머신러닝 스타트업 솔리드웨어, 회를 배달해주는 O2O(온·오프라인 연계) 기업 인어공주해적단 창업자들도 모두 패스트캠퍼스에서 만나 창업한 경우다. 퇴사학교는 수업을 들은 이들을 대상으로 종종 무료 네트워킹 및 워크숍 이벤트를 진행한다. 인생학교 서울도 강의실과 함께 있는 카페에서 다과를 함께 하며 교류하는 것으로 수업을 시작한다. 네트워킹 결과가 취업으로 연결되는 경우도 있다. 패스트캠퍼스의 모기업 패스트트랙아시아 박수연 매니저는 “지난해 1월 론칭한 전일제 과정 ‘스쿨’ 수강생들은 ‘하이어링 데이(취업 행사)’ 에서 약 20~30%가 취업에 성공하고, 채용 담당 매니저 추천으로 취업하는 경우도 30~40%에 달한다”고 말했다. 이강민 대표는 “교육 커리큘럼을 만들기 위해서 주기적으로 200여 곳의 회사를 돌면서 현업에서 쓰이는 기술을 조사한다”며 “사람을 뽑는 회사가 있으면 우리 수강생을 연결해준다”고 말했다.

사교육 세대가 어른이 돼 ‘직장인의 사교육’처럼 직무교육 시장이 커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한 대기업 인사담당 간부는 직무교육 무용론을 펼치며 “대기업 직원들은 사내·외 교육은 물론이고 업무를 통해서 상당한 실력을 갖추고 있다”며 “강사들과 그 수업을 듣는 대기업 직원들의 시간당 임금을 비교해 봐도 외부에서 자비로 직무교육을 받는 게 업무에 큰 도움이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임언위원도 “비싼 직무 교육 비용을 부담하는 사람에게만 교육이 제공된다면 장기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으므로 고용보험 기금에서 부담할 수 있도록 제도권 안으로 들여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이런 현상을 젊은 세대 직장인의 일에 대한 부담, 경쟁에서 밀려날 수 있다는 불안감의 결과로 설명했다. 곽 교수는 “30대 젊은 직장인들은 학원에 익숙한 세대다. 직장을 갔지만 학원 가서 뭔가를 배우지 않으면 불안한 것”이라고 진단했다. 곽 교수는 “우리나라 교육제도가 대학을 안 나오고도 직업을 선택할 수 있게 되는 정도로 개혁되지 않는 한 사설 직무교육 학교는 계속해서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인문학 강좌의 인기는 일정 부분 현대인들의 불안함과 초조함에서 나왔다. 인생학교 서울이 서있는 지점도 바로 여기다. 인생학교 서울을 운영하고 있는 손미나앤컴퍼니의 손미나 대표는 “우리는 직장·학교·집 어디에서든 수퍼우먼 수퍼 아빠가 안 되면 낙오자가 될 것 같은 시대에 살고 있다”며 “사막 같은 세상에서 사람들이 영혼을 식히고 삶의 의미를 생각해 볼 수 있는 곳이 인생학교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요즘 젊은 직장인 중에 툭 치면 눈물 안 흘릴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손 대표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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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6호 (2017.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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