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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성장하는 시니어 비즈니스] 내년 시장 규모 84조원으로 커질 듯 

 

황정일 기자 obidius@joongang.co.kr
한국은 8월 말 기준 고령사회에 진입 … 구매력 갖춘 베이비부머 대상 마케팅 활발

우리나라가 공식적으로 ‘고령사회’에 진입했다. 2000년 고령화사회로 진입한 지 17년 만이다. 최근 행정안전부가 발표한 8월 말 주민등록 인구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 인구는 725만7288명으로, 전체 인구(5175만3820명)의 14.02%다. 유엔이 정의하는 고령사회에 들어선 것이다. 유엔은 만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전체 인구의 7%를 넘으면 고령화사회, 14%를 넘으면 고령사회로 정의한다. 20% 이상이면 초고령사회로 분류한다.

행안부에 따르면 국내 노인 인구는 2008년 506만9273명으로 전체 인구의 10.2% 정도였으나, 2014년 652만607명(12.7%), 2016년 699만5652명(13.5%)으로 꾸준히 늘고 있다. 특히 농어촌과 공업·도시 지역의 차이가 확연히 벌어지고 있다. 17개 광역자치단체 중 가장 고령화가 진행된 곳은 65세 이상 비율이 21.4%에 이르는 전남이다. 전남은 이미 2014년 8월 초고령사회 기준인 20%를 넘어섰다. 경북·전북(18.8%), 경남(14.7%), 제주(14.1%)가 고령 지자체로 뒤를 잇고 있다. 그나마 ‘젊은’ 광역자치단체로는 세종(9.7%)과 울산(9.8%) 두 곳뿐이다. 문제는 고령화 속도에 있다. 세계적으로 유례없이 빠르다. ‘고령화사회’에서 ‘고령사회’에 도달하는 데 걸린 시간은 프랑스 115년, 미국 73년, 독일 40년이었다. 빠른 속도로 늙어간 ‘노인 대국’으로 불리는 일본도 24년 걸렸다. 그런데 우리는 고령화사회에 진입한 지 17년 만에 고령사회가 됐다. 인구학자들은 “노인 비율 증가에 따른 대비나 사회 체질을 바꿀 준비 기간이 그만큼 더 짧다는 뜻”이라고 말한다. 통계청은 초고령사회가 9년 후인 2026년에 올 것으로 전망했지만 더 빨라질 것이란 예상도 나온다.

고령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면서 산업계에선 ‘시니어 비즈니스(고령친화산업)’가 급부상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전체 인구의 14%가 넘는 800만 베이비부머(1955~1963년생)가 대거 고령 인구에 편입되기 시작해 시니어 비즈니스에 대한 기업의 관심도 꾸준히 커지고 있다. 고령층이 기업에게는 새로운 거대한 시장의 주요 소비층이 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베이비부머는 수적으로도 많을 뿐 아니라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과거의 고령자 계층과는 달라 산업계의 관심이 크다. 이들은 국내 토지의 42%, 건물의 58%, 주식의 20%를 보유하고 있다. 구매 잠재력이 풍부한 셈이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거치면서 과거의 국민소득, 대학진학률, 거주형태 등 라이프스타일도 과거 세대와는 다른 성향을 보이고 있다. 대부분의 재산을 자녀에게 물려준 후 자녀가 주는 용돈에 의지하며 살아왔던 예전의 고령층과는 구분된다.

빠른 속도로 늙어가는 대한민국

베이비부머 세대가 대거 은퇴하면서 시니어 시장도 상당히 큰 규모로 형성될 것으로 보인다. 달리 말하면 ‘고령층=거대한 소비집단’의 공식이 성립된다는 얘기다. 실제로 시니어 비즈니스 시장은 급격한 성장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됐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시니어 비즈니스의 규모는 2002년 6조3820억원에서 2010년 22조1906억원으로. 2018년에는 83조7646억원으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됐다. 삼정KPMG도 8월 12일 발간한 ‘고령사회 진입과 시니어 비즈니스의 기회’ 보고서에서 “기업들의 선제적인 대응이 필요하다”며 “자산과 소득을 갖춘 시니어의 증가로 인해 외식, 여가, 문화활동에 대한 지출이 높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삼정KPMG 경제연구원 김광석 수석연구원은 “본격적인 고령 사회가 도래함에 따라 앞으로 시니어 시장의 규모가 더욱 커질 것”이라며 “시니어 비즈니스는 더 이상 특수한 사업영역이 아닌 미래 성장을 주도할 핵심 사업”이라고 강조했다.

시장에선 이미 ‘시니어시프트’ 현상이 본격화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시니어시프트는 비즈니스의 주요 타깃이 중·장년 층에서 고령세대로 옮겨가는 현상을 일컫는 신조어로, 고령화로 각종 제품과 서비스가 자연스럽게 시니어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는 것이다. 카이스트 이의훈 교수는 “알게 모르게 시장 자체가 실버화돼가고 있다”라면서 “시니어 비즈니스 자체가 ‘노인과 시니어를 위한 마켓’이라고 대놓고 광고하지 않기 때문에 시니어시장이 아직 형성되지 않았다고 착각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경제력을 가진 이들이 노년층이 돼가기 때문에 지금의 기업 마케팅 현장을 가봐도 주 타깃이 노년층이 차지할 정도로 시장이 자연스럽게 재편돼 가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초창기 시니어마케팅은 주로 수동적이고 병약한 고령자를 대상으로 한 수발이나 요양·의료 서비스 등의 주를 이뤘다. 그러나 지난 2008년 장기요양보험이 도입되고 2~3년 뒤 베이비부머 세대의 은퇴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금융권을 중심으로 시니어 비즈니스가 시작되고 있다.

금융권 중심으로 시니어 모시기 경쟁 치열

금융권에서는 이미 시니어 고객 모시기 바람이 거세다. 시니어를 대상으로 한 상품과 플랫폼 강화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우리은행의 ‘웰리치100 연금통장’이나 IBK기업은행의 ‘IBK연금플러스통장’, 신한은행의 ‘신한 미래설계 적금’과 ‘미래설계 장기플랜 연금예금’ 등이 시니어를 위한 대표적 금융상품이다. KB국민은행도 지난 2월 시니어를 위한 ‘KB골든라이프 고객 자문단’ 발대식을 하고 시니어 특화 상품·서비스 개발에 본격 나섰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연금상품은 해당 계좌로 장기간에 걸쳐 연금액이 들어오는 만큼 은행들이 관심을 두고 있다”며 “시니어들은 주로 연금을 통해 생활하는 만큼 연금계좌를 그들의 주거래통장으로도 만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식품 업계도 분주하다. KGC인삼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50대 고객의 매출은 전년 대비 16.7% 이상, 60대 이상 고객의 매출은 11% 오르며 큰 폭의 성장세를 보였다. 이에 따라 50~60대를 대상으로 한 제품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마트는 지난 2월 노년층에게 필요한 단백질·칼슘를 강화한 파우더·젤리·죽 등 3가지 형태의 시니어 영양식을 선보이기도 했다. 또 매장 내 시니어존을 52개점에서 모든 매장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농식품부는 시니어 관련 시장 규모를 더 키우기 위해 연내 고령 친화식품에 대한 한국산업표준(KS)을 마련키로 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KS를 통해 업계에 가이드라인으로 제시할 예정”이라며 “이를 통해 일본·홍콩 등 고령화가 진행 중인 국가로의 수출도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시니어 비즈니스가 우리 경제에서 상당히 중요한 시장으로 자리매김 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대비해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과 투자를 통해 국제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배재대 강호정 경영학과 교수는 “10년 전 만들어진 고령친화산업 진흥법의 개선이나 고령친화 산업 클러스터를 구축·확대, 지자체의 조례 제정을 유도해 시니어 비즈니스 산업 육성을 위한 행·재정 지원에 대한 구체적인 근거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1401호 (2017.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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