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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현의 바둑경영] 불리한 상전벽해에 대비하라 

 

정수현 명지대 바둑학과 교수
경쟁자 동향, 고객 요구 파악...‘실패하더라도 쓰러지지 않을’ 전략 구사

상전벽해(桑田碧海)라는 말이 있다. 뽕나무밭이 푸른 바다로 변한다는 뜻이다. 변화막측한 요즘 세상에서는 여러 분야에서 상전벽해가 일어나는 일이 드물지 않다. 예전에 즐겨 찾던 레스토랑을 1년 만에 찾았더니 전혀 다른 곳으로 변해버려 아쉬움을 느낀 경험이 있을 것이다. 기업을 하는 입장에서는 상전벽해가 반가운 일이 아니다. 물론 성장해 더 큰 곳으로 이전해 간다면 축하할 일이다. 하지만 그냥 푸른 바다로 변해버렸다면 그것은 바로 도산을 의미한다. 이러한 상전벽해를 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반상의 상전벽해: 바둑에서도 상전벽해라는 말을 종종 쓴다. 자신의 집이었던 곳이 갑자기 쑥대밭이 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경우 바둑 관전 기자들은 상전벽해란 말로 표현한다. 어떤 때는 내 집이 상대방의 집으로 변해버리기도 한다. 심지어는 자신의 집이었던 곳이 적에게 점령당해 생명까지 위협받기도 한다. 이럴 때 뽕나무밭이 검푸른 바다로 변했다는 말이 실감난다. 그런 장면을 하나 보자. [1도]는 예전에 공식 타이틀전에서 두 프로기사가 둔 바둑이다. 창업을 하듯 흑과 백이 포석을 하여 서로의 영역을 건설하고 있다. 이 중에서 우상귀 방면의 흑1에서 17까지 형성된 흑진을 보자. 이 부분은 몇 수 두지 않았지만 흑의 영토로 간주해도 무리가 없다. 왜냐하면 현찰과 같은 귀의 실리를 확보하는 데 가장 확실한 흑1의 3-3을 두었고, 흑 9와 17로 지켰기 때문이다.

[2도]에서 예상대로 이 부분은 큼직한 흑의 영토로 굳어졌다. 우상귀 쪽의 흑의 영토가 무려 40집에 달한다. 굉장히 큰 집이다. 비즈니스로 치면 탄탄한 중견기업을 만든 셈이라고 할까. 이 상태에서 흑집은 파괴될 가능성이 없다. 이런 영토를 ‘확정지’ 또는 ‘확정가’라고 한다. 그런데 실전에서 이 흑집은 엄청난 변화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된다.

[3도]에서 우상귀를 보면 눈이 휘둥그레질 것이다. 확정된 것으로 믿어졌던 철옹성 같은 흑집이 크게 파괴됐다. 더구나 귀의 주인이 백으로 바뀌어버렸다. 40집의 거대한 집이 거의 제로가 된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아무리 변화무쌍한 바둑이라고 해도 이런 정도의 상전벽해는 예상하기가 쉽지 않다.

외부 환경의 영향: 탄탄한 중견기업이 쑥대밭이 된 듯한 이 바둑에서 상전벽해를 초래한 원인을 생각해 보자. 그것은 바깥쪽 상황의 영향 때문이다. 중앙 부근과 아래쪽 부근에서 벌어진 외부의 상황이 우상귀 흑집에 악영향을 끼쳐 큰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즉 바깥쪽에서 벌인 싸움이 우상귀와 연관되면서 흑집을 파괴시키게 된 결과다. 물론 이런 변화가 외부 환경 때문만은 아니다. 흑의 대응 전략에도 원인이 있다. 흑이 어떻게든 우상귀 집을 지키면서 살림을 꾸려나가는 식으로 대응했다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수 있다. 보통 프로기사들은 지어놓는 자기 집이 부서지는 것을 크게 경계한다. 애써 일궈놓은 집이 무너지면 그동안 투자해 놓은 것이 허사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능하면 집을 유지하면서 싸우는 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그런데 이 바둑에서는 외부의 전란에 휩쓸리다가 자기 집 관리를 소홀히 한 것이다. 기업을 운영하면서도 이런 상황에 직면할 때가 있다. 외부 환경의 영향으로 기업이 흔들릴 수 있다. 중국에 진출했던 이마트는 적자를 견디지 못하고 철수를 결정했다. 짭짤한 수익을 올리던 레스토랑이 주변에 경쟁 업체가 들어서면서 매출이 줄어 간판을 내리기도 한다. 개인도 어렵게 들어간 회사에서 구조조정의 바람이 불어 그만두어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상전벽해 대응 전략: 잘 나가던 개인이나 기업이 갑자기 거센 파도를 만나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일 것이다. 승승장구하던 회사도 언젠가는 풍랑을 만나 상전벽해가 되는 것이 정석이다. 그렇다면 상전벽해 현상에 대응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허리케인 같은 외풍이나 지진 같은 천재지변처럼 피할 수 없는 것일까. 하지만 대처 방법에 따라 무너지는 정도는 차이가 있을 것이다. 잘 대처하면 무너지지 않고 유지하는 방법도 가능할 것이다. 그 방법으로는 크게 두 가지를 생각할 수 있다.

첫째, 상전벽해는 외부 환경의 영향 때문인 경우가 많으므로 환경의 동향을 주의깊게 모니터할 필요가 있다. 세상이 어떻게 변해가고 있고 자신의 분야에는 어떤 힘을 발휘할 것인가를 면밀히 살펴봐야 한다. 이런 외부의 동향을 파악하고 있다면 좀 더 효과적인 대응 전략을 펼 수 있을 것이다. 우물 안 개구리처럼 바깥 세상의 흐름을 모르고 있는 것과 분명 차이가 있을 것이다. 이런 트렌드 파악에서 고객의 취향과 경쟁자의 동향은 필수다. 고객이 불만이나 싫증을 느끼고 있는데 공급자만 모르고 있다면 상전벽해는 예정된 수순이다.

또한 경쟁자가 많아지고 있는데 기존의 방식만 고수하고 있다면 밀려드는 파도를 막아내기가 힘들 것이다. 둘째, 외부 환경의 풍파에도 견딜 수 있는 시스템과 전략을 갖추는 것이다. 바둑고수들은 대부분 변화관리를 한다. 바둑판에서 어떤 사태가 일어날까를 예측하기는 상당히 어렵다. 그래서 기사들은 그런 변화가 왔을 때 기본적으로 망하지 않을 전략을 택한다. 쉽게 얘기하면 ‘실패하더라도 쓰러지지 않을’ 전략을 찾는다. 외풍에 쓰러질 듯한 상황에서도 견뎌내며 조직을 유지할 수 있게 하는 전략이다.

이런 전략의 명수는 린하이펑(林海峰) 9단이다. 린 9단은 대만 출신으로 일본에 건너가 바둑계의 정상에 올랐던 고수다. 그는 상대방의 처절한 도전에 무너질 듯하다가도 꾹 참고 다시 일어서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래서 별명이 ‘오뚝이’였다. ‘이중허리’라고도 불리었다. 린하이펑은 당시 최고봉이었던 면도날 사카다 9단의 아성을 무너뜨리고 정상을 정복했는데, 그 비결은 아무리 강한 펀치를 맞아도 쓰러지지 않는 전략이었다.

사카다 9단의 면도날 같은 예리한 수법을 모두 받아내며 결국에는 승리를 거두곤 했다. 린하이펑의 전법에서 특별한 점은 상대방의 강공이나 교묘한 수법에 당하더라도 끊임없이 수익을 올려가며 견뎌낸다는 점이다. 약간 손해를 입어도 다시 일어서 복구할 수 있는 방식으로 살림을 꾸려가는 것이다. 그러니 린하이펑은 한 방에 나가 떨어지는 일이 없다. 넘어질 듯 휘청했다가도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나 조직을 이끌어간다. 기업의 운영이나 개인생활에서도 외부 환경의 변화에 상전벽해가 되지 않도록 환경의 동향을 주시하고 외풍에 쓰러지지 않도록 대응하면 좋을 것 같다.

정수현 - 1973년 프로기사에 입단한 후 1997년 프로 9단에 올랐다. 제 1기 프로신왕전에서 우승했다. 한국프로기사회장, KBS 일요바둑·바둑왕전의 해설자를 역임했다. 명지대 바둑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바둑 읽는 CEO』, 『반상의 파노라마』, 『인생과 바둑』 등 30여 권의 저서가 있다.

1403호 (2017.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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