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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중의 사진, 그리고 거짓말] 다르게 보기 … 발견의 미학 

 

주기중 아주특별한사진교실의 대표
사진에서도 ‘선택적 주의’ 강하게 작동...좋음보다 다름이 중요

▎사진1. nautilus, 1927 에드워드 웨스턴 / 사진 : 위키피디아
우리 속담에는 비유적인 표현이 많습니다. ‘개 눈에는 똥만 보인다’는 말이 있습니다. 국어사전에는 ‘평소에 자신이 좋아하거나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만이 눈에 띈다는 것을 놀림조로 이르는 말’이라고 돼 있습니다. 우리 말의 ‘개’나 ‘똥’은 저급하거나 열등한 것을 지적할 때 부정적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선택적 주의(selective attention)’로 풀어냅니다. 사람들이 정보를 받아들일 때 자신이 좋아하거나 관심이 있는 것에 주의를 기울이고 나머지는 무시한다는 것입니다. ‘칵테일 파티 효과’도 같은 개념입니다.

딱딱한 학문 용어지만 생활 속에서 흔히 경험하는 일입니다. 시끌벅적한 술집이나 연회장 같은 곳에서도 자신이 흥미를 갖고 있는 소리는 잘 들립니다. 예를 들어 자신의 이름이나 평소 관심있는 이야기가 들리면 귀를 쫑긋 세우고 집중하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커피숍 같은 곳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며 출입구 쪽을 바라보면 유독 닮은 사람이 많아 보입니다.

좋은 형상의 법칙


▎사진2. pepper30, 1930 에드워드 웨스턴 / 사진 : 위키피디아
사진에서도 ‘선택적 주의’는 매우 강하게 작동합니다. 카메라를 들고 뭔가를 찍으려고 나서면 세상이 달리 보입니다. 문득문득 눈길을 당기는 피사체가 있습니다. 평소에는 관심 없이 지나치던 대상이 뭔가에 홀린 듯 특별한 의미로 다가옵니다. 사진을 찍고 나서 생각해보면 평소 자신이 좋아하거나 흥미를 갖고 있는 것이 많습니다. 또 기억의 끈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피사체와 겹쳐지는 이미지가 있습니다. 특히 패턴이 비슷한 것이 그렇습니다. 서로 닮은 것이 연상작용을 일으키며 오버랩됩니다. 나무가 여인의 누드처럼 보인다거나 바위에서 동물의 형상을 닮았다거나 하는 것입니다. 시각심리학에서는 이를 ‘좋은 형상(Good Gestalt)의 법칙’이라고 말합니다. 이런 현상은 사진이나 시에서 레토릭의 원천이 됩니다.

에드워드 웨스턴(1886~1958)이라는 미국의 사진가가 있습니다. ‘사진계의 피카소’로 불릴 만큼 현대사진에 큰 영향을 미친 인물입니다. 1937년 사진가로는 처음으로 구겐하임상을 받았습니다. 자연풍경·누드·정물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천재적인 사진 감성을 보였습니다.

그는 여성 편력으로도 유명합니다. 1909년 챈들러가의 플로라와 결혼해 4명의 아들을 두었지만 티나 모도티 등의 여류 사진가와 동거하기도 했습니다. 또 자신의 누드모델인 소냐 노스코비아크, 체리스 윌슨 등과도 염문을 뿌렸습니다.

‘바람둥이’의 눈에는 세상이 다 여자로 보이는 걸까요. 그의 사진은 여성성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 대부분입니다. 사막의 모래 언덕을 여성의 누드처럼 표현하는가 하면 물소의 두개골에서조차 여자의 성기를 봅니다. 일상에서 흔히 보는 조개(사진1), 피망(사진2), 나무에서도 성적인 코드를 읽습니다.

사진을 인화하는 방식도 특별했습니다. 그는 ‘렌즈는 사람의 눈보다 더 많은 것을 본다’는 사진관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현상·인화 과정에서 일체의 인위적인 손질을 하지 않았습니다. 정물사진을 찍을 때도 인공 조명을 쓰지 않고 자연광을 이용해 촬영했습니다. 섬세한 디테일을 살리기 위해 큰 필름을 사용해서 밀착인화를 했습니다.

평범한 것을 특별하게


▎사진3. 비너스의 추상 2016, 주기중
웨스턴은 1934년 앤셀 애덤즈, 이모젠 커닝햄 등과 함께 F64클럽을 결성합니다. ‘F64’는 사진의 밝기를 조절하는 조리개 수치를 뜻합니다. 조리개 구멍이 작으면 작을수록 촬영시간 더 길어지지만 초점이 아주 선명한 사진을 얻을 수 있습니다. 스트레이트 사진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이름입니다. 스승인 스티글리츠의 전통을 이어받아 미국 사진의 전성기를 열어가게 됩니다.

웨스턴은 자연을 관조하는 포토아이가 매우 뛰어난 인물입니다. 은유적인 수사법으로 사진의 전통적인 가치인 ‘발견의 미학’을 확립한 사진가입니다. 특별한 것을 찾아 나서지 않고, 평범한 것을 특별하게 만드는 천재성을 가졌습니다.

‘같은 곳을 보지만 다른 것을 생각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선택적 주의’는 사람마다 다릅니다. 살면서 겪은 경험과 자라온 환경의 영향이 크기 때문입니다. ‘좋음’보다는 ‘다름’이 가치를 만들어내는 시대입니다. 사진도 마찬가지입니다. 달리 보고, 달리 생각해야 합니다. 비유가 신선해지고 독창적인 사진이 나옵니다.

지난 겨울 눈 내린 강원도 화천에서 아름다운 선을 만났습니다. 빛이 만든 선과 면이 작품을 빚었습니다. ‘웨스턴 따라하기’ 를 해봤습니다. 순백의 피부와 부드러운 곡선, 여인의 누드를 보는 듯합니다. [사진3]에 ‘비너스의 추상’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 필자는 중앙일보 사진부장을 역임했다. 현재 아주특별한사진교실의 대표다.

1406호 (2017.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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