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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에서 즐기는 바로크시대 풍광] 파격과 과장, 비정형의 진수를 만나다 

 

김세원 카톨릭대 교수
유럽에서도 예술성과 역사적 가치 뛰어나...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기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크로메리츠 플라워 가든.
금방이라도 지붕을 뚫고 하늘로 날아오를 것 같은 천사와 성인이 가득한 천장화 아래 크리스털 샹들리에가 찰랑거리고 공작새 꼬리처럼 활짝 펼쳐진 새틴드레스, 구불거리는 은빛 가발을 쓴 귀족이 대리석 홀을 누비며 우아한 자태로 춤을 춘다. 우리가 생각하는 바로크시대의 풍경이다.

바로크의 사전적 정의는 17~18세기에 이탈리아와 프랑스에서 유행한 복잡 화려한 예술 양식이다. 포르투갈어로 ‘일그러진 진주’라는 어원처럼 바로크는 파격과 과장, 비정형과 불규칙, 변화를 추구한다. 그런 점에서 규칙적이고 정형적인 형식을 대표하는 르네상스와 대비된다. 르네상스를 기점으로 시작된 유럽의 근세는 17세기 바로크시대에 전성기를 맞이한다.

지난 9월 하순 바로크 페스티벌이 열리고 있는 보헤미아의 대표적 관광지 체스키 크룸로프와 우리에게는 다소 낯선 모라비아의 바로크식 고성과 정원, 건축물을 둘러보았다. 체코 곳곳에 남아있는 바로크 건축과 예술의 흔적은 1620년 보헤미아의 개신교도들이 백산전투에서 가톨릭 동맹군에게 패배한 이후 체코를 점령한 합스부르크 제국이 추진한 재 가톨릭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바로크 예술은 17세기 가톨릭교회가 예수회를 중심으로 종교개혁에 대항해 추진한 반종교개혁의 표현 수단이었다. 도시마다 주요 바로크식 건축물 주변에 예수회가 운영하는 신학교나 성당이 들어선 건 우연이 아니었다. 가톨릭교회는 교회의 영광과 권위를 드높이기 위해 건축과 미술 등 시각 예술의 힘을 빌렸다. 화려하면서도 과장된 바로크 예술은 웅장함과 비현실적·우주적 역동성으로 종교적 열광과 황홀경을 체험하게 해서 개신교로 개종한 사람들이 다시 교회에 돌아오도록 만드는 거대한 무대장치였다. 건축에서는 과장성과 장식성, 규모의 웅장함, 비상하는 역동성, 불규칙한 곡선 등을, 회화에서는 대각선 구도, 원근법, 명암의 대비, 천장화의 눈속임 효과 등을 활용해 시각효과를 극대화했다. 합스부르크제국의 대귀족과 영주, 가톨릭 교회의 주교 등은 이탈리아와 프랑스, 오스트리아에서 건축가와 예술가를 초청했다. 이들은 현지 조력자들과 협력해 체코의 문화적 전통 및 자연환경과 조화를 이루는 걸작을 탄생시켰다.

초기 바로크 양식의 발렌슈타인 궁전과 정원: 프라하에 최초로 세워진 초기 바로크 양식의 대형 건축물이다. 황실군대 사령관이었던 알브레히트 폰 발렌슈타인(1583~1634)이 황제에 대한 반감으로 프라하성의 권위를 실추시키기 위해 말라 스트라나 북쪽에 지었다. 1624~1630년 사이에 23채의 가옥과 2개의 벽돌공장을 사들여 1624년 공사를 시작, 7년 만에 완공했다. 부유한 아내의 죽음으로 막대한 재산을 물려받은 발렌슈타인은 보헤미아인들이 합스부르크 왕가의 지배에 대항해 반란을 일으키자 용병과 기병대를 모집해 황제 페르디난트 1세를 지원했다. 백산전투에서 승리한 후 엄청난 부와 권력을 거머쥔 발렌슈타인은 왕위까지 넘보다 1634년 왕의 용병에 의해 살해됐다. 2층 높이 본관 홀 천장에는 자신을 군신 마르스에 비유해 그린 프레스코화가 남아있다. 인공 종유석으로 꾸민 동굴, 정원과 인공호수, 거대한 새방사장, 로마의 신들을 묘사한 거대한 회랑벽을 보면 당시 그가 누렸던 막강한 지위를 짐작할 수 있다. 현재는 체코 공화국 상원건물로 사용하고 있으며 수시로 결혼식과 콘서트가 열린다.

이탈리안 스타일 브르트보프 정원: 1720년 유럽 전역에서 바로크 양식의 정원 조성 붐이 일었던 시기에 건축가 프란티쉑 막스밀리안 칸카가 프라하 성 니콜라스 성당 근처 페트르진 언덕에 조성한 이탈리안 스타일 바로크 정원이다. 정원의 면적은 작지만 언덕의 불규칙한 공간에 3단 설계라는 독창적인 방법으로 조성해 장식의 예술성과 역사적 가치가 유럽에서 정평이 나있다. 1990년부터 1998년까지 전면 보수해 98년 6월부터 일반에 개방했다. 신혼여행객에게 인기 있는 아리아호텔과 연결돼 있어 호텔 투숙객에게는 무료지만 일반인에게는 입장료를 받는다. 칸카의 아틀리에, 정원사의 집, 자를 대고 자른 듯한 나무벽의 출입문과 계단을 따라 세워진 조각상 등 눈을 돌리는 곳마다 팀버튼 감독, 조니뎁 주연 영화 [가위손]의 장면들처럼 비현실적일 정도로 아름답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됐으며 결혼식과 웨딩화보 촬영지로 유명하다.


▎프라하의 대표적 바로크 정원인 브르트보프 정원.
고성 호텔 샤토 헤랄레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을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 비소치나지방에 있는 고성 호텔 샤토 헤랄레츠는 14세기의 성채를 현대식 호텔로 개조해 6년 전문을 열었다. 깊은 숲 한가운데 자리 잡은 고성 호텔에서의 하룻밤은 긴장과 설렘 속에 꿈결 같이 지나갔다. 채소밭과 장작더미를 지나고 아치형 다리를 건너 탁트인 초원과 18세기 조성된 영국식 정원을 산책하며 맞는 아침의 상쾌함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다. 방마다 다른 컨셉트의 벽화로 장식된 19개의 객실, 록시땅에서 운영하는 미용실과 마사지실, 실내풀장, 자쿠지 같은 웰니스센터가 있다.


▎비소치나지방의 고성호텔 샤토 헤랄레츠.
모라비아 와인의 중심지 미쿨로프: 체코 시인 얀 스카첼이 일찍이 ‘신이 준 모라비아의 이탈리아’라고 예찬했듯 미쿨로프는 모라비아 와인의 중심지다. 로마제국의 영토가 이곳까지 확장됐던 시절 황제가 가져다 심은 포도가지로부터 와인 생산이 시작됐으며 로마 병사들은 월급과 함께 하루 3리터 정도의 와인을 급여로 지급받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보랏빛 물결처럼 넘실거리는 팔라바 언덕의 포도밭은 낮게 깔린 붉은 지붕의 집과 어울려 멋진 풍경을 만들어낸다. 1575년부터 2차 세계대전까지 이 지방을 통치했던 디트리히슈타인 가문이 언덕에 하얀색 경당 형태로 조성한 ‘십자가의 길’도 색채의 배합에 한몫한다. 디트리히슈타인 대저택 지하에는 동유럽에서 가장 큰 와인셀러가 있다. 1643년부터 사용한 거대한 와인 배럴은 높이 6.2m, 직경 5.2m로 10만1400리터의 와인을 담을 수 있다고 한다.


▎모라비아 와인의 중심지 미쿨로프성 지하의 와인저장 배럴.
리히텐슈타인가문 중심 영지 발티체: 수도 프라하에서 남동쪽, 차로 두 시간 거리에 있는 발티체는 오스트리아 국경과 가깝다. 발티체는 레드니체와 함께 신성로마제국에 속해 있던 리히텐슈타인가문의 중심 영지로 1996년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17세기 초 리히텐슈타인가문의 공작 카를 1세는 오스트리아의 건축가를 초청해 로마네스크·네오고딕·르네상스 양식이 혼재된 건물을 바로크스타일로 개축해 발티체의 성을 주거, 레드니체의 궁전을 여름 궁전으로 정했다. 발티체성에는 체코 국립와인센터가 있어 매년 체코에서 생산된 최고 와인 100개를 선정해 지하의 와인살롱에서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이 1시간30분 동안 무제한으로 시음할 수 있도록 해준다. 체코는 프랑스·이탈리아 등 남유럽에 비해 상대적으로 여름이 짧고 기온이 낮아 화이트 와인을 주로 생산한다. 대부분이 알코올 도수가 낮으면서 단맛이 거의 없는 드라이 라이트 와인이다. 발티체성에는 1767년 오스트리아 황제의 방문을 환영하기 위해 4개월 만에 완공했다는 바로크오페라극장의 당시 설계도를 찾아낸 덕분에 옛 모습 그대로 2015년 복원했다. 이 극장은 1790년 ‘프로메테우스’를 주제로 한 오페라를 초연했고 1876년에는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의 프란츠 요제프 황제가 방문하기도 했다.

동화 속 요정의 나라 같은 크로메리츠성과 정원: 1998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크로메리츠성(城)과 정원은 15세기 말부터 가톨릭 주교들의 관저로 사용됐다. 1497년 올로모우츠의 주교가 된 스타니슬라프 투르조가 후기 고딕양식인 기존의 성에 르네상스 양식을 가미해 과수원·텃밭·꽃밭으로 구성된 정원을 설계했다. 그러나 30년 전쟁 중 침공한 스웨덴군의 약탈과 역병의 창궐로 폐허가 됐다. 1644년 주교서품을 받은 카렐 리히텐슈타인 카스텔코른 백작은 시민들을 설득해 건물과 정원 복원에 나섰다. 그는 이탈리아 출신의 황실 건축가를 초청해 성을 재건하고 정원을 새로 조성하도록 했다. 1675년에야 완성된 성과 ‘기쁨의 정원’은 제노바와 토리노의 바로크 양식을 도입한 걸작이 됐다. 카렐 주교는 이곳에 미술관을 만들어 많은 미술작품을 비치했으나 1752년 화재로 성의 대부분이 소실됐다. 후임 레오폴트 에글리크 주교는 2명의 황실 소속 예술가를 초청해 성을 복원했다. 1777년 대주교구로 격상되면서 첫 번째로 부임한 콜로레도-발트제 대주교는 낭만주의 양식에 따라 성의 정원을 다시 만들었지만 바로크 양식의 기하학적 배치를 해치지는 않았다. 성의 1층에는 접견실, 집무실, 회의실과 2개의 식당이, 2층에는 손님방, 도서관, 주교의 홀과 예배당이 있다. 15~18세기 주교와 귀족, 황제의 초상화와 벽화, 천장화와 함께 상아로 섬세한 문양을 새겨 넣은 장식장과 책장, 도자기로 만들어진 굴뚝 등을 통해 당시 고위 성직자들의 삶을 엿볼 수 있다. 도서관에는 8만8000권에 이르는 책이 소장돼 있는데 금서를 모아놓은 비밀의 방, 모차르트와 베토벤의 육필 악보, 17세기 지구의와 천문도 등이 눈길을 끈다. 체코 출신 밀로스 포먼 감독의 영화 [아마데우스]의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두 개의 정원은 삼각형과 원추형 등 나무와 꽃밭을 기하학적으로 배치한 전형적 바로크 양식으로 동화 속 요정의 나라처럼 아름답다. 영화 [마리아 테레지아]와 [에카테리나 여제]를 최근 이곳에서 촬영했다. 지구의 자전을 입증하는 푸코의 추가 설치된 돔형 건물로 툰다와 88개의 기둥이 반원형으로 늘어선 230m 길이의 콜로나다, 과수원, 토끼굴, 인공 동굴 등이 눈길을 끈다. 콜로나다는 1846년에 폼페이에서 온 조각품을 보관하기 위해 지었다고 한다.


▎바로크시대 주교 근위병 복장을 한 크로메리츠성의 안내인.
200만 관광객 몰리는 체스키 크룸로프: 체코 남서쪽 보헤미아지방의 소도시로 블타바강이 S자 형으로 굽이쳐 흐른다고 해서 체코를 뜻하는 체스키에 휘어졌다는 의미의 크룸로프를 더해 지명이 만들어졌다. 19세기 이후 지어진 건물이 은행 밖에 없다고 할 정도로 중세와 근대의 건물이 잘 보존돼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인구는 1만400명에 불과한데 매년 200만 명의 관광객이 몰려오는 인기 관광지다. 언덕 위에 자리잡은 체스키 크룸로프 성은 체코에서 프라하성에 이어 두 번째로 큰 성이다. 13세기 고딕양식으로 처음 건축된 이후 시대별 유행에 따라 건축양식이 더해졌으나 전체적으로는 바로크 양식에 가깝다. 14세기 중반부터 300년 동안은 로젠베르크가문이 지그라피토(입체감을 내는 벽면채색기법)를 활용한 르네상스 양식으로 재건축했으며 17세기에 성의 주인이 된 에겐베르크 가문은 바로크양식을 추가했고, 18세기 슈바르첸베르크가문으로 성주가 바뀐 뒤에도 화려한 바로크양식을 유지했다. 성 뒤뜰에 있는 바로크오페라극장은 1680~1682년 에겐베르크가문의 요한 크리스티안 1세 왕자가 처음 건설했다. 1719년 슈바르첸베르크가문으로 성의 주인이 바뀐 뒤 1765~1766년 요제프 아담 대공이 개조했다. 7개의 기계식 무대 장치를 갖추었는데 건설 당시 극장의 조명은 촛불이어서 화재, 그을림 방지를 위해 연 3회만 이용했다고 한다. 건설 당시의 형태가 그대로 남아있는 세계 최고(最古)의 바로크 오페라극장이기도 하다. 극장은 방문한 날은 바로크페스티벌의 마지막 날로 카르타고의 디도여왕과 트로이의 아에네아스 왕자와의 비극적인 사랑을 그린 이탈리아 바로크 오페라 [라 디도네] 공연을 앞두고 있었다. 5시에 시작된 공연은 두 차례 휴식 시간을 포함해 무려 네 시간 동안 지속됐다. 등받이도 팔걸이도 없는 딱딱한 나무의자에 앉아 오늘날의 오페라에 비하면 무대배경과 음악, 배우들의 동작 모두가 단조로운 공연을 몇 시간을 꼼짝 않고 보기가 쉽지는 않았다. 하지만 쳄발로, 길이가 3m가 넘는 기타로네, 두 벌호른 같은 바로크시대 악기의 반주에 맞춰 은빛 가발에 풍성하고 화려한 의상을 걸친 가수들이 부르는 반복적인 멜로디에 점차 빠져들다 보니 250년 세월을 훌쩍 넘어 영화 [파리넬리]의 장면 속으로 들어가있는 듯했다.

1406호 (2017.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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