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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산업굴기’ 바라만 볼 텐가 

 

양재찬 한국외대 겸임교수(경제저널리즘 박사)
자존심 강하기로 유명한 프랑스 유력 일간지 르몽드가 지난 10월 15일 1면에 한자 제목을 달고 기사를 게재했다. ‘中国强国崛起(중국강국굴기)’라는 기다란 세로 제목 아래 정치·경제·외교 무대에서 중국의 본격적인 부상을 전했다. 올 초 시진핑 국가주석의 미국 방문 때 트럼프 대통령 손녀가 한시(漢詩)를 암송해 보인 사례를 들며 “마침내 중국의 세기가 도래했다”고 적었다.

중국의 산업굴기는 이미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야심 찬 반도체 굴기부터 전기전자, 디스플레이, 게임, 전기차, 항공기, 고속철도, 우주 등 거의 모든 산업 분야를 망라한다. ‘중국’ 하면 한국에선 여전히 ‘짝퉁’을 떠올리지만, 중국 기업은 이미 기술력과 브랜드, 마케팅 측면에서 글로벌 최강 내지 다크호스로 떠올랐다. 시진핑 집권 이래 정보통신기술(ICT) 등 신산업 분야에서 기업들이 승승장구하며 중국의 산업 전반에 변화의 바람을 불어넣고 있다.

한때 ‘세계의 공장’으로 불렸던 중국은 이제 ‘혁신의 중심지’로 부상했다. 혁신적인 새로운 사업 모델을 전개할 최적지로 꼽힌다. 세계 최대 인구로 시장이 넓은 데다 정부의 까다로운 사전 규제가 없어서다. 중국의 인터넷 사용자는 7억3100만 명, 휴대전화 이용자는 6억9500만 명으로 각각 미국·유럽연합(EU)을 합친 것보다 많다. 중국은 정부가 신사업에 규제를 가하지 않다가 시장이 커진 후 필요한 부분에 대해서만 컨트롤하는 사후 규제 방식을 택하고 있다.

드넓은 시장과 저강도 규제는 혁신창업의 토양이 되고 있다. 핑안보험이 인공지능(AI)을 활용해 2015년부터 개시한 원격의료 서비스는 고객이 1억5000만 명에 이른다. 알리바바와 텐센트 등 중국의 대표적 정보기술(IT) 기업들도 이 시장에 뛰어들었다. DJI 등 중국 기업들이 세계 상업용 드론시장을 석권했고, 공유차량 업체 디디는 지난해 우버 중국을 합병한 데 이어 일본 진출을 꾀하고 있다.

한국은 어떤가. 높은 인터넷 보급률과 휴대전화 이용률을 자랑하지만, 사용 인구로 보면 중국과 비교가 안 된다. 더구나 인터넷 속도와 높은 광대역 보급률 등 인프라만 앞서 있을 뿐, 그 좋다는 인프라에 기반한 콘텐트와 플랫폼은 빈약하다. 보안체계도 허술하고 액티브X 등 표준화되지 않은 기술로 사용자 환경이 불편하다. 규제 또한 고강도 사전 규제로 신사업에 뛰어들기 어렵거나 뻗어나가기 어려운 구조다. 정부가 경쟁국보다 늦게 인터넷전문은행 설립을 허가하면서도 4%로 제한된 정보통신기술(ICT) 기업의 의결권 지분 한도는 그대로 두고 있다. 지분 규제를 완화하면 대기업의 사금고가 될까 그런다지만, 우리가 낡은 규제에 매달려 있는 사이 알리바바와 텐센트 등 중국 핀테크 선두기업은 모바일 결제만으로 비자 및 마스터카드를 넘어섰다.

중국은 이미 ‘디지털 강국’이다. 세계적 컨설팅회사 맥킨지 보고서를 보면 중국의 벤처캐피털 투자 규모는 2011~13년 120억 달러에서 2014~16년 770억 달러로 급증했다. 투자는 핀테크·가상현실(VR)·웨어러블·빅데이터·인공지능(AI) 등 첨단 디지털 기술에 집중됐다. 그 결과 미래를 선도할 인터넷기업인 ‘유니콘(기업가치 10억 달러 이상 스타트업)’ 수는 중국이 89곳으로 전 세계의 3분의 1을 차지한다.

중국은 더 이상 ‘기술 수입국’이 아니다. ‘기술 추격국’ 단계를 거쳐 ‘기술 선도국’으로 급성장하고 있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이 측정한 과학경쟁력 순위에서 중국은 이미 2016년 한국을 추월했다. 올해 과학경쟁력 순위는 중국이 3위, 한국은 8위다. 기술경쟁력도 중국이 4위, 한국이 17위로 중국이 앞선 상태다. 이를 입증하듯 지난 10월 아랍에미리트에서 열린 44회 국제기능올림픽에서 중국이 메달을 휩쓸었다. 거의 전 직종(51개 중 47개)에 출전해 금메달 15개로 한국(8개)을 더블 스코어로 누르고 첫 우승을 차지했다. 최고 기술력을 지닌 선수에게 주어지는 알버트비달 상도 중국 선수가 차지했다. 한국은 1977년 첫 우승 이후 21번의 대회에서 두 번을 빼고 19번 우승한 강팀이다. 그러나 올해 대회에선 전통적으로 강했던 자동차와 기계, 전자 분야에서 중국에 밀렸다. 디지털 등 하이테크 산업에서 이미 한국을 앞지르기 시작한 중국이 전자·기계 등 풀뿌리 전통 기술마저 압도한 것이다.

중국의 기능올림픽 우승에는 국가 차원의 집중 지원이 한몫했다. 시진핑 주석이 2021년 상하이 기능올림픽 유치를 계기로 “2억 명의 청소년이 기능 활동을 사랑하고 투신하도록 하겠다”고 선언했다. 중국은 자동차 정비와 CNC선반 두 개 직종에만 시설장비 투자로 13억원을 지원한 것으로 전해진다. 한국팀의 직종당 연간 훈련비는 시설 및 재료비 포함 5000만원 수준이다. 이런 중국이 2015년 산업 고도화 전략 ‘중국제조 2015’를 발표했고, 착실히 실행 중이다. 항공우주·신소재·반도체·디스플레이·인공지능 등 첨단산업이 망라됐다. 산업별로 보조금과 국산화 목표를 구체적으로 적시했다. 기술 격차가 진입 장벽인 반도체산업의 특성상 한국 기업의 기술 우위는 당분간 이어지겠지만, 반도체 굴기를 선언한 중국이 급추격하는 상황에서 장담할 수 없다.

빅데이터가 관심사로 떠오른 2015년 5월 알리바바 창업주 마윈이 국내 심포지엄에 초청받아 특강했다. 지난 20년 간 지속돼온 IT 시대가 저물고 DT(데이터 기술) 시대가 도래했다고 설파했다. DT란 축적된 데이터를 분석해 가치를 창출하고 미래를 예측하는 것을 일컫는다. 대기업보다 조직이 작고 판단이 빠른 벤처나 중소기업에 적합한 콘셉트다. 디지털에 둔감한 기성세대보다 모바일과 인터넷에 익숙한 청년세대가 주도할 분야다. 당시 박근혜 정부가 내세웠던 창조경제가 바로 이 분야였다. 하지만 권역별로 창조경제센터를 설치한 후 대기업 그늘 아래 몇몇 중소 벤처기업을 들어 앉히는 데 그쳤고, 그나마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파묻혔다. 정부기관이 보유한 빅데이터 등 공공정보를 적극 개방·공유하겠다며 ‘정부 3.0’을 선포했지만, 메르스 발병 정보를 쉬쉬해 불안과 공포심을 키운 끝에 내수를 급랭시켜 경제성장률을 끌어내렸다.

문재인 정부 들어 혁신성장을 외치지만 실체가 모호하긴 마찬가지다. 정부도, 정치권도 4차 산업혁명을 외치면서도 정작 미래 먹거리 신산업 육성 비전을 담은 산업정책은 여태 나오지 않았다. 신산업 진출을 가로막는 규제혁파가 시급한데도 문재인 브랜드 규제 완화 정책도 보이지 않는다. 이 와중에 탈원전 정책을 성급하게 밀어붙이다 신고리 5·6호기 건설 문제에 대한 공론화위원회 조사 등 적지 않은 비용만 지불했다. 벤처 창업과 중소기업 육성 정책을 이끌어야 할 새 정부의 트레이드마크인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정부 출범 6개월이 지나도록 비어 있다. 중국 청년들은 벤처 창업에 열심인 반면 한국 청년들은 공무원이나 대기업 입사를 고대한다. 중국의 산업굴기, 바라만 보고 있다간 ‘경제의 병자호란’에 직면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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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9호 (2017.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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