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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중의 사진, 그리고 거짓말] 실상과 허상 넘나드는 거울효과 

 

주기중 아주특별한사진교실 대표
회화의 데칼코마니 기법과 닮아...독창성 갖춰야 효과 배가

▎[사진1] 수선화, 2016
데칼코마니라는 회화 기법이 있습니다. 종이에 물감을 바르고 이를 상하, 좌우로 겹쳐 대칭적인 무늬를 만들거나 다른 종이에 압착하는 방식으로 그림을 만드는 기법입니다. 이렇게 하면 미처 예상하지 못한 환상적인 이미지가 만들어집니다. 회화에 놀이와 우연성의 요소를 도입한 것입니다. 20세기 중엽 막스 에른스트(Max Ernst, 1891~1976)를 비롯한 초현실주의 화가들이 즐겨 사용했습니다.

사진은 실제 현실에 존재하는 대상을 소재로 합니다. 그림과 같은 데칼코마니 작품을 만들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물 그림자를 이용하면 데칼코마니와 비슷한 효과를 낼 수 있습니다. 잔잔한 호수나 연못은 거울 효과를 만들어 냅니다. 땅 위나 물 밖에 나와 있는 실상이 물 표면에 투영돼 상하대칭의 데칼코마니가 됩니다. 이른바 ‘반영사진’으로 사진가들이 즐겨 찍는 소재입니다. 수선화의 어원이 된 양치기 소년 나르시스 이야기도 물 그림자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봄날 천리포 수목원에서 물에 비친 수선화를 봤습니다. 잔물결에 일렁거리는 수선화의 모습이 나르시스의 신화를 생각나게 합니다[사진1].

빛이 강하고, 물결이 잔잔할수록 거울효과가 커집니다. 사진을 거꾸로 뒤집어도 실상과 허상이 구분이 잘 안될 정도로 완벽한 거울효과를 냅니다. 또 카메라 앵글을 물 표면에 가깝게 할수록 상하대칭 효과도 커집니다. [사진2]는 저수지에 있는 물버들나무입니다. 바람이 멎고, 물이 고요해졌습니다. 일렁거리던 나뭇가지가 사진처럼 투영됩니다. 사진의 평면성도 데칼코마니 효과를 배가 시킵니다. 이쯤 되면 실상과 허상의 구분이 모호해집니다.

허상이 품고 있는 메타포


▎[사진2] 데칼코마니, 2017
거울효과는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습니다. 비온 후 거리에 고인 물, 풀잎에 맺힌 물방울, 쇼윈도, 유리나 아크릴 액자, 매끄러운 금속 등 빛을 반사하는 물질에도 같은 현상이 나타납니다. 모두가 아주 좋은 사진 소재입니다.

반영은 역사적으로 사진뿐만 아니라 시·소설·회화·사진 등 예술에서 즐겨 다루는 소재입니다. 동화 백설공주의 ‘거울’에서 보듯이 숱한 이야기 거리를 만들어 냅니다. 시각 예술에서도 아주 매력적인 소재입니다. 허상이 품고 있는 상징적인 메타포가 사진에 윤기를 불어 넣습니다. 시각적으로 실상과 허상의 면 분할을 통해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할 수도 있습니다. 빛의 굴절이나 난반사로 왜곡된 이미지도 레토릭을 풍부하게 해줍니다. 깨진 유리거울, 일그러진 금속 표면, 쇼윈도의 이중창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를 잘 활용하면 사진에 시적 레토릭을 담을 수 있습니다. 실상과 대비되는 허상에 메시지를 담고, 이야기를 녹여냅니다.

때를 기다려 결정적 순간 포착해야


▎[사진3] 비행, 2017
반영이 좋은 사진 소재가 되지만 너무 흔하다는 것은 단점이 되기도 합니다. 자주 보기 때문에 평범하게 찍으면 진부해집니다. 스트레이트 사진의 어려움이 여기 있습니다. 특히 사진 포인트로 널리 알려진 곳은 더더욱 그렇습니다. 목(?)이 좋은 곳은 거의 매일 수십 명의 사진동호인들이 몰려듭니다. 남과 차별화되는 사진을 찍으려면 더 자세히, 오래 보고, 상상력을 발휘해야 합니다.

때를 기다릴 줄도 알아야 합니다. 느린 호흡으로 상황을 통제하는 전략이 필요합니다. 바람의 세기, 구름의 흐름, 빛의 방향을 면밀하게 살피고 결정적인 순간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이미지 홍수 시대입니다. 좋은 사진은 시각의 내성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야 합니다. 현대예술의 가치는 좋고, 나쁨이 아니라 독창성에 있습니다. 사진도 예외가 아닙니다. 기술적으로 잘 찍고, 못 찍고의 문제보다는 남과 어떻게 차별화하느냐가 중요합니다. 눈길을 잡아 끄는 ‘다름’이 있어야 사진의 가치가 높아집니다. 아이들과 같은 상상력을 발휘해야 합니다. 실상과 허상의 조합으로 사진 놀이를 해보는 것도 좋습니다. 놀이는 창의력의 원천이기 때문입니다.

[사진3]은 저수지 표면 위에 있는 나뭇가지입니다. 물결이 잔잔해지자 물 그림자가 데칼코마니를 이룹니다. 그 모양이 어린아이가 크레용으로 그린 비행기를 닮았습니다. 하늘에 구름이 이리 저리 떠다닙니다. 바람에 실려오는 구름의 방향을 살피고, 자리를 잡습니다. 그리고 비행체 모양의 꼬리에 구름이 오기를 기다렸습니다. UFO가 지구별로 날아온 것일까요. 꼬리에 걸쳐진 구름이 비행운을 닮았습니다.

※ 필자는 중앙일보 사진부장을 역임했다. 현재 아주특별한사진교실의 대표다.

1410호 (2017.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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