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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위치정보 규제 완화 논란] 규제 푼다더니 보안까지 무장해제? 

 

허정연 기자 jypower@joongang.co.kr
‘사전동의’에서 ‘사전고지’로 방향 전환...구글 사태처럼 ICT 산업의 ‘빅브라더’ 변질 우려도

T맵·카카오택시(카카오T) 등을 이용할 때 사용자의 위치 정보가 사전동의 없이 업체에 노출될 전망이다. 그동안 모바일 내비게이션 등 위치정보 제공이 필수적인 서비스 제공 사업자는 사용자에게 위치정보 제공에 대한 사전동의를 받아야 했다. 앞으로는 다르다. 사전고지만으로 개인 위치정보를 활용할 수 있게 된다.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이하 4차위)는 지난해 12월 21일부터 22일까지 1박 2일 간 민간과 정부 이해당사자가 참여한 ‘규제·제도 혁신 해커톤’을 개최한 결과 이 같은 합의안을 도출했다고 밝혔다. 정부는 이를 위한 ‘위치정보의 보호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 (이하 위치정보보호법)’ 개정을 추진한다. 4차위는 또 비식별 위치정보와 사물 위치정보 등을 위치정보보호법률상 ‘위치정보’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이를 통해 택배배송 위치를 알려주거나 특정 지역의 은행·점포·교통수단 위치 등을 보여주는 서비스가 더욱 활성화될 전망이다. 위치정보 수집 목적이 아닌 다른 기기와의 서비스 과정에서 부수적으로 파악되는 위치 관련 정보는 위치정보에서 아예 제외된다. CCTV나 카드 사용기록 등이 대표적이다. 위치정보사업자의 허가·신고 등 진입 규제 항목도 대폭 완화된다. 대신 개인 위치정보의 유출과 오·남용시 사후 책임을 강화하는 내용이 법 개정에 포함된다. 해커톤 위치정보보호 분야 토론회 좌장을 맡은 문용식 전 나우콤 대표는 “위치정보 수집 시 이용자들의 사전동의를 받는 게 원칙이지만 위치정보 수집이 필수적인 서비스에 한해 규제를 완화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OECD 국가 중 개인정보 관련 규제 강한 편


우리나라의 위치정보 등 개인정보 관련 규제 강도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서도 높은 편에 속한다. 국내 기업이 자유롭게 빅데이터를 수집하지 못하는 것도 정보보호 규제 때문이다. 위치정보보호법은 지난 2005년 위치정보의 오·남용으로부터 사생활을 보호하고 안전한 환경을 조성해 국민 생활 향상과 공공복리 증진에 이바지하기 위해 제정됐다. 이 법에 따라 위치정보 사업을 하고자 하는 자는 방송통신위원회에 허가를 받아야 하고, 위치기반서비스사업을 하고자 하는 자는 방송통신위원회에 신고해야 한다. 위치정보가 사생활과 맞닿아 있는 만큼 개인의 신상 정보가 노출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사용자 동의가 없는 위치정보 수집은 범죄에 해당한다.

위치정보보호법에 대한 과도한 규제는 새로운 융·복합 서비스의 시장 진입과 신산업 성장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꼽혔다. 구글 앱스토어에 등록된 100만여개의 애플리케이션 가운데 25%가량이 위치정보를 활용한 앱이다. 특히 국내 위치정보사업자들은 까다로운 규제 탓에 기업 운영에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인터넷진흥원(KISA)이 지난해 발표한 국내 위치기반서비스(LBS·Location Based Service) 산업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조사 대상 기업 1102개 중 35.7%는 기업을 운영하는 데 가장 큰 어려움으로 법·제도적 규제를 꼽았다. 이들은 위치정보보호법과 관련한 위치기반서비스사업자 신고(42%), 개인 위치정보 수집시 동의 획득(41.5%), 위치정보보호조치 기준(36.2%) 부분에서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업계는 정부의 이번 결정에 대해 반기는 분위기다. 배달앱을 운영하는 한 벤처기업 관계자는 “그동안 허가·신고 등 각종 규제로 진입장벽이 높았다”며 “이번 규제 완화로 위치기반 서비스 사업자들의 경쟁력이 높아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부동산앱 업체 관계자 역시 “앱을 실행할 때마다 위치정보 서비스 제공에 대한 동의를 구해야 해 사용자 입장에서도 번거로움을 감수해야 했다”며 “최소한의 고지만으로 서비스를 운영할 수 있게 되면 사용자에게 좀 더 다양하고 질 높은 콘텐트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히려 이번 규제 완화 시기가 다소 늦은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들과 달리 이용자들의 시선은 여전히 불안하다. 자칫 개인정보 유출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구글 사태만 보더라도 위치정보 규제 완화가 정보통신기술(ICT)산업의 ‘빅브라더’로 변질될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다. 지난 11월 미국 온라인 매체 쿼츠는 구글이 지난해 초부터 안드로이드폰 사용자들이 위치 서비스를 사용하지 않고 있을 경우라도 해당 사용자 인근 기지국 정보를 수집하고 있었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지난해 초부터 구글은 안드로이드폰에서 위치 서비스를 사용 중지해도 인근 휴대폰 기지국의 주소를 수집, 해당 데이터를 구글에 보낸 것으로 파악됐다. 사용자가 스마트폰 설정 내 위치서비스 사용을 중지한 것은 본인의 위치를 수집하지 말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구글은 이 같은 사용자 설정을 무시하고 위치 정보를 수집했다. 국내에서도 같은 방식으로 구글 사용자의 80%의 위치정보가 무단 수집된 것으로 알려졌다. 기지국 정보는 사용자의 위치를 수백m 안으로 축소할 수 있다. 단순 기지국 정보만으로 국한될 경우 사용자 위치를 특정할 수 없지만 GPS 등의 정보와 융합될시 사용자의 위치를 명확하게 특정할 수 있어 파괴력은 막강하다. 구글코리아는 쿼츠의 보도와 관련 “지난해 1월부터 안드로이드 운영체제(OS)의 메시지 전달 속도와 성능을 개선하고자 셀 ID 코드를 전송한 건 맞다”며 “연말을 기점으로 이런 수집 행위는 완전히 중단됐다”고 밝혔다. 이어 “수집된 코드는 메시지 기능 개선에 활용됐고 해당 데이터는 전송될 때마다 폐기돼 저장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사용자 입장에서는 여전히 우려가 앞서는 상황이다. 직장인 박진호(36)씨는 “구글 팝업으로 집 근처 쇼핑몰이나 레스토랑 관련 정보가 뜰 때마다 깜짝 놀라곤 한다”며 “스마트폰을 이용할 때마다 나도 모르는 새 위치정보가 새어나간다고 생각하니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개인정보 유출 사고 끊이지 않고 있는데…

신용카드사와 통신사 등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여전히 끊이지 않는 상황에서 또 다른 규제를 푸는 것이 시기상조라는 입장도 있다. 구글의 경우만 보더라도 위치정보를 메시지 송수신 개선이 아닌 다른 용도로 활용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의견이다. IT업계 관계자는 “구글은 전체 매출 중 80%가량을 광고 매출로 올린다”며 “국내 기업은 수집할 수 없는 위치정보를 광고와 접목할 경우 타깃 마케팅이 가능해 광고 효과도 높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국내 기업이 구글과 같이 위치정보를 수집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해외에 본사를 둔 글로벌 기업인 탓에 국내 법망을 피하기 쉬운 점을 악용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개인정보와 관련 솜방망이 처벌 여부도 주목되는 부분 중 하나다. 이번 위치정보법 위반 사항은 5000만원 이하의 벌금, 5년 이하의 징역 처분이 가능한데 글로벌 대기업인 구글을 비춰보면 실효성이 미미하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관련 처벌 강화가 필수라는 지적이 이어진다.

문용식 전 대표는 “개인의 위치정보를 유출하거나 오·남용 등 위법행위를 하면 과징금 수위를 높이는 등의 방식으로 부작용을 최소화할 것”이라면서도 “불필요한 규제를 없애 향후 확대되는 시장을 위해 선제적으로 대응할 계획”이라는 입장을 명확히 했다. 그는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인 자율주행과 사물인터넷(IoT) 등은 모두 위치정보를 기반으로 한다”며 “규제 완화로 이 같은 미래 먹거리 산업이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1417호 (2018.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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