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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지는 반려동물 의료비 부담] 수의사는 못 믿겠고 보험은 있으나 마나 

 

함승민 기자 sham@joongang.co.kr
반려인 울리는 ‘깜깜이 진료비’...정부 ‘가격 공시제’ 등 대안 검토

▎서울시내의 한 동물병원. 본 기사 내용과는 관련 없음.
“수의사가 ‘귓구멍 검사 한 번 해드릴까요?’ 하길래 뭣 모르고 ‘네’ 했다가 10만원 털렸다” “주인의 행색을 보고 강아지 진료비를 책정한다는 X소리도 들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이 남긴 글이다. 반려동물 시장이 커지면서 이에 따른 각종 비용 부담도 커지고 있다. 특히 반려동물의 의료비 부담이 크다. 동물병원마다 진료비가 천차만별로 책정되면서 소비자들의 불신도 커졌다. 보험 업계에서 ‘펫보험(반려동물 보험)’을 출시했지만 미흡한 보장성으로 가입률이 미미하다. 정치권과 정부가 제도 정비에 나섰지만, 풀어야 할 숙제가 많다.

반려동물을 기르는 데 가장 부담이 되는 항목은 의료비다. 반려동물이 다치거나 아파서 받는 진료뿐 아니라 검진·예방접종·중성화 등에 들어가는 비용도 만만치 않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가 지난해 발표한 ‘2017 반려동물 양육 실태조사’에서 반려동물 관련 지출 중 비용이 많이 드는 항목을 조사한 결과 10명중 6명이 질병·부상의 치료비(64%)라고 답했다(복수응답). 사료·간식비(85.8%)에 이어 가장 높은 수치다. 각종 백신주사와 심장사상충 약 등 예방비(58.9%)에도 많은 비용을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펫보험 가입률 0.1% 미만


최근 연구에 따르면 단순히 의료비용만을 따졌을 때 국내 반려동물 진료비는 비싼 편이 아니다. 농림축산식품부가 발주한 ‘반려동물 산업 활성화를 위한 소비자 진료비 부담 완화 방안 연구 보고서’는 소득수준을 고려해도 미국·독일의 진료비에 비해 한국의 동물병원 비용이 높다고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다만 ‘동물병원 서비스의 질이 지불하는 비용만큼의 수준에 미치지 못해 고가라고 인식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또 건강보험을 통해 본인부담금이 적게 드는 사람에 비해 동물은 의료비용 전부를 내야 하기 때문에 체감되는 부담이 더 크다는 지적도 있다.

문제를 더 키우는 건 ‘깜깜이’ 진료비다. 전문적인 동물의료에 대한 정보를 일반 소비자가 알기가 어렵고, 적정 기준이 없어 과잉 진료로 인한 부담이 커진다는 지적이다. 사람과 달리 진료비에 대한 기준이 마련되지 않아 병원마다 격차도 크다. 사단법인 소비자교육중앙회가 지난해 서울 및 6개 광역시에서 동물병원 25곳의 진료비 및 예방접종비 등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병원비는 최대 6배, 예방접종비는 최대 8배까지 차이가 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려인들이 ‘호갱님’으로 전락하기 쉬운 구조다.

부담을 줄일 수 있는 반려동물 전용보험, 일명 ‘펫보험’도 국내에서는 활성화하지 못했다. 보험 업계 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펫보험 가입률은 0.1% 미만으로 추정된다. 영국(약 20%)·독일(15%)·미국(10%)·일본(2~3%)에 비해 낮다. 소비자들이 가입이 까다롭고 보장항목은 제한적인 펫보험을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시중에는 삼성화재의 파밀리아리스 애견의료보험2와 현대해상화재보험의 하이펫 애견보험, 롯데손해보험의 롯데 마이펫보험 등 3종의 펫보험이 나와 있다. 모두 노령 반려동물은 가입이 되지 않고, 이마저도 순수보장형으로 1년마다 갱신해야 한다. 예방접종·중성화·귓병 등 반려동물에게 자주 발생하는 질병은 보장항목에서 빠져 있는 경우가 많다. ‘펫보험을 드느니 적금을 든다’는 조소가 나오는 이유다.

보험사 입장에서는 펫보험의 높은 손해율이 걸림돌이다. 보험사들은 반려동물 병원비가 표준화 돼있지 않아 보험가입자의 중복청구나 동물병원의 과잉·허위 진료 여부 등 자신들이 부담할 진료비를 추정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토로한다. 펫보험은 과거 2008년 동물보호법 개정안 시행을 계기로 확대됐지만, 이후 손해율 악화로 대부분 판매를 중단한 바 있다. 보험 업계 관계자는 “진료를 받은 동물이 보험 대상인지도 확인할 수 없고, 진료비를 가늠할 만한 통계나 기준이 없으니 손해율도 책정하기 어렵다”며 “지금 상황에서 보장항목을 늘리기엔 리스크가 너무 크다”고 말했다.

‘동물의료수가제 부활’ 주장도


이에 따라 제도적으로 진료비 기준을 마련하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소비자의 부담이 큰 이유도, 펫보험이 활성화하지 못하는 이유도 진료비 기준의 부재인 만큼 대안을 만들자는 취지다. 앞의 ‘2017 반려동물 양육 실태조사’에서도 반려동물 관련 제도에 대한 인식을 묻는 질문에 응답자들 중 80.6%(복수응답)가 ‘반려동물 병원비를 정책적으로 통일해야 한다’고 답했다. 일각에서는 아예 ‘동물의료수가제’를 부활시켜 표준가격을 정하자고 주장한다.

반려동물 진료비 부담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자 정부와 정치권도 나서기 시작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후보시절 “반려동물 보호자 부담 완화를 위해 진료체계를 개선하겠다”고 밝히며 ‘자율적 표준진료제 도입’과 ‘동물의료협동조합 등 반려동물 주치의 사업 활성화 지원’이라는 2개의 관련 공약을 발표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최근 완료된 연구용역 보고서를 기반으로 올해 안에 제도를 손 본다는 방침이다. 보고서는 진료코드 구축, 반려동물 등록제, 진료비 사전고지제, 병원별 진료비 공시제, 평균 진료비 공시제, 적정가격 공시제, 수가제 등의 제도를 제안하고 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어떤 제도가 도입될지는 미지수다. ‘자율적 표준진료제’는 구체적 제도라기보다는 선언적 구호에 가깝다. 주무부처인 농림부 구제역방역과의 정흥일 주무관은 “소비자의 선택권을 넓히고 알권리를 보장한다는 방향성을 나타낸 것”이라며 “구체적인 제도는 용역 보고서에서 제시한 대안과 관련 기관 협의를 통해 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다만 전문가들은 정부가 적정가격을 강제하는 것에 대해 신중한 입장을 나타냈다. 이혜원 건국대 3R동물복지센터 부소장은 “천차만별인 동물병원 운영비에 대한 조사와, 이후 적정가격 범위를 산출하는 작업이 필요하다”며 “단기간에 이뤄질 수 없는 데다 모두가 만족할 만한 수가가 나오기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심준원 한국반려동물보험연구소장은 “병원마다 다른 진료비의 진폭을 줄이는 게 급선무”라며 “병원별 가격 공시제 등 정보 비대칭성을 해소하는 선행 정책으로도 충분한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강조했다.

1422호 (2018.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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