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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박사의 힐링상담 자수성가한 사장의 가정 갈등 극복] 과거를 돌아보고 맥락을 살펴라 

 

후박사 이후경 정신과의사, 경영학박사, LPJ마음건강 대표
상대의 사정·상황 이해해야 … 허심탄회하게 대화하는 노력도 필수

▎사진:© gettyimagesbank
“가정이 화평해야 사업도 힘을 받잖아요? 애들은 괜찮은데 아내가 문제에요. 작년 말부터 별거 아닌 것에 화를 내며 집을 자꾸 나가요. 친구 집에 2~3일 갔다 오거나, 찜질방, 차 안에서 자기도 하고. 한 달에 한번 꼴로 그러는데, 물어보면 이것저것 자잘한 불만이 있지만 분명한 이유는 없어요.”

“최근엔 처가댁 제사 문제로 좀 다퉜어요. 장인·장모가 모두 일찍 돌아가셔서 주로 아내만 참석했었는데, 갑자기 그동안 처가에 신경을 안 썼다며 무지 화를 내는 겁니다. 크게 잘못한 것 없이 미안하다고 하기도 그렇고, 저도 너무 화가 나서 마음대로 하라고 했더니 또 나가버리네요. 그럴 때마다 정말 기운이 쭉쭉 빠지고 일할 의욕이 없어져요.”

그는 30대 초 지방에서 직원 2명으로 창업했다. “할 수 있다”는 신념으로 25년을 밤낮없이 뛰었다. 10년 전 서울로 사업을 확장하면서, 크게 성장해 업계 2위까지 올랐다. 그간 아내의 내조가 컸다. 사업을 하다 보면 어려운 일도 참 많다. 그래도 아내는 한마디 불평 없이 남편을 잘 받들어왔다. 모든 집안 대소사를 챙기고, 아이들도 잘 키웠다. 미국서 공부 중인 아들, 대학을 졸업하고 아버지 회사에서 일을 돕고 있는 두 딸 모두 자기 몫을 잘 해내고 있다. “그 어려운 일도 다 참아낸 아내가 갑자기 저렇게 돌변하니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어쩌면 좋을까요?”

현모양처의 까닭 모를 돌변

남편은 자수성가했다. 자수성가한 사람은 남다르다. 그는 평생 한 가지에 집중했다. 오로지 성공과 출세를 위해 뛰었다. 주위는 전혀 돌아보지 않았다. 그의 덕목은 인내다. 모든 것을 참아내고, 어떤 것도 견디고, 무엇이든 포기하지 않는다. 아내는 현모양처였다. 현모양처는 남다르다. 그녀도 평생 하나에 집중했다. 오로지 가사와 육아에 몰두했다. 주위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녀의 덕목은 헌신이다. 모든 것을 바치고, 어떤 것도 이겨내고, 무엇이든 따르고 순종한다.

남편은 사회적으로 잘 나간다. 멋진 명함을 돌리고, 여러 모임에 참석한다. 직원들 앞에서 훈시도 하고, 사람들 앞에서 건배사도 한다. 임의로 사람도 해고하고, 수고했다고 돈도 집어 준다. 어딜 가나 ‘내 자리’가 있고, 자신감이 넘친다. 그는 가정에서는 그렇지 못하다. 명함은 쓸모가 없고, 가족들 얼굴 보기가 힘들다. 아내 앞에서 말발이 안 서고, 애들 앞에서 훈시가 안 먹힌다. 아내를 해고할 수는 없고, 자식을 매수할 수는 없다. ‘내 자리’는 없고, 존재감을 잃는다.

아내는 사회적으로 힘들다. 근사한 명함도 없고, 모임마다 어색하다. 사람들 만나 할 말이 없고, 스치는 말에도 신경이 곤두선다. 사람들 앞에 서기가 두렵고, 애들에게조차 말발이 안 선다. 어딜 가나 ‘내 자리’가 없고, 자신감이 안 생긴다. 그녀는 가정에서도 힘들다. 남편 뒷바라지 하느라, 친구 하나 못 만났다. 애들 보살피느라, 취미 하나 못 가졌다. 남편에게 매달리는 게 싫고, 애들에게 요구하기도 내키지 않는다. ‘빈자리’만 보이고, 존재감이 없다.

빈 둥지 증후군이란 게 있다. 모두 떠나고 빈 둥지에 혼자 남겨질 때 경험하는 현상이다. 핵가족 사회에서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중년의 위기다. 슬픔, 외로움, 상실감, 정체성 혼란을 보인다. 여성은 자녀가 독립해 집을 떠나는 시기에 잘 나타난다. 남성은 사회생활의 정점을 찍고 은퇴를 받아들이는 시기에 잘 나타난다. 전생(全生)을 희생과 헌신으로 살아온 부모, 결혼 생활이 만족스럽지 못하고 불안정한 부부, 자녀가 성인으로서 책임을 다할 준비가 안 된 가정인 경우 심하게 나타난다.

“나는 누구인가?” ‘개인적 나’와 ‘사회적 나’가 있다. ‘개인적 나’는 내가 보는 나다. 우리는 성찰을 통해 나를 발견한다. ‘사회적 나’는 남이 보는 나다. 우리는 관찰을 통해 나를 발견한다. 성찰과 관찰에는 갭이 존재한다. 성찰은 주관적이고, 관찰은 객관적이다. ‘개인적 나’와 ‘사회적 나’는 같지 않다. 둘 사이의 갭을 줄이는 데 관계라는 변수가 필요하다. 관계는 나를 정확하게 평가하는 척도다. 우리는 관계를 통해 이해의 영역을 넓힌다. 나를 이해하고, 남을 이해하고, 인간을 이해한다.

나이가 들면서, ‘개인적 나’는 ‘사회적 나’로 바뀐다. 가정·사회·국가에서의 역할을 나로 동일시하고, ‘사회적 나’를 진짜 나로 받아들인다. “나는 누구인가?”에 대해 안정된 자화상이 들어선다. ‘사회적 나’는 완성된 상태가 아니다. 중년을 지나면서 ‘사회적 나’는 ‘개인적 나’로 향한다. 정체성의 혼란이 온다. 관계에서 만들어진 나, 관계가 무너질 때 붕괴된다. 역할에서 길들여진 나, 역할이 사라질 때 붕괴된다. 자기실현의 욕구가 발현된다. ‘사회적 나’에서 ‘진정한 나’로 돌아가려는 욕구다. “진짜 나는 누구인가?”

자, 그에게 돌아가자. 그에게 탁월한 처방은 무엇인가? 첫 째, 사정(History)을 살피자. “모든 역사(History)는 현대사다.” 과거는 현재의 시각에서 해석되고, 바라보는 자의 마음 속에서 각색된다. 누구나 말 못할 사정이 있다. 필히, 아내의 입장에서 접근해야 한다. 필히, 과거의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 이렇게 자문(自問)하자. “무엇이 아내를 가출하게 했을까?” 반복되는 행동에는 까닭이 있다. 그녀는 뭔가를 말하고 싶어 한다. “무엇이 아내를 화나게 했을까?” 어설픈 폭발은 또 다른 문제를 일으킨다. 그녀는 스스로에게 화가 나 있다. “무엇이 아내를 섭섭하게 했을까?” 서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야 한다. 그녀는 변화를 두려워하고 있다.

둘째, 맥락(Context)을 살피자. “맥락 없는 사실은 진실이 아니다.” 옛날에 왕이 행차하고 있었다. 신하들의 실수로 거지가 길을 막았다. 왕이 가마에서 내려와 점잖게 물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거지가 올려다보며 말했다 “보면 몰라?” 이렇게 자문(自問)하자. “하필 왜 지금 가출한 것일까?” 사소하더라도, 최근 폭발하게 된 계기를 찾아보자. “하필 왜 지금 화를 낼까?” 과거에도 무심코 지나친, 비슷한 사건을 찾아보자. “하필 왜 지금 섭섭해 할까?” 영화를 보듯이, 사건을 중심으로 과거를 추적해보자.

“여보” “당신” 정겹게 불러보길

셋째, 대화하고 또 대화하자. 토요일 저녁, 따스한 추억이 있는 어느 곳도 아닌 그곳으로 가자. 아내와 함께 술 한 잔 마시면서 고민을 털어보자. 뭔가 뾰족한 수가 있을 것이다. 아내에게 ‘여보’라고 정답게 불러보자. 여보(如寶)란 보배와 같이 소중한 사람이란 뜻이다. 일요일 오후, 푸근한 기억이 있는 어디도 아닌 그곳으로 가자. 남편과 함께 차 한 잔 마시면서, 고민을 떨쳐보자. 뭔가 좋은 수가 있을 것이다. 남편에게 ‘당신’이라고 정겹게 불러보자. 당신(當身)이란 내 몸과 같이 귀중한 사람이란 뜻이다.

※ 후박사 이후경 - 정신과의사, 경영학박사, LPJ마음건강 대표. 연세대 의과대학과 동대학원을 거쳐 정신과 전문의를 취득하고, 연세대 경영대학원과 중앙대에서 경영학을 전공했다. [임상집단정신치료] [후박사의 마음건강 강연시리즈 1~5권] [후박사의 힐링시대 프로젝트] 등 10여권의 책을 저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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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2호 (2018.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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