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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건축 규제 강화의 풍선효과 어디로] 리모델링·재개발로 투자수요 옮겨가 

 

김성희 기자 kim.sunghee@joongang.co.kr
한남·은평·노량진 등 재개발 지역 가격 오름세 … 지역별 양극화 더욱 심해질 듯

▎재개발 단지에 대한 매수 문의가 늘고있다. 사진은 서울 강북 지역의 대표적 재개발 구역인 용산구 한남동 일대.
서울 용산구 동부이촌동에 자리한 한가람(2036가구)·강촌(1001가구)·이촌코오롱(834가구)·한강대우(834가구)·이촌우성(243가구) 아파트 총 4948가구가 통합 리모델링 사업을 추진한다. 이들 단지는 최근 리모델링 추진 준비위원회를 결성하고 임시위원장을 선출했다. 앞으로 조합 설립에 필요한 주민동의를 거쳐 통합 리모델링을 추진할 계획이다. 정부가 노후 아파트에 대한 안전진단 기준을 강화키로 하면서 이처럼 재건축 대신 리모델링을 선택하는 아파트가 늘고 있다.

리모델링은 아파트를 완전히 새로 짓는 재건축과 달리 건물 뼈대는 유지하되, 내부를 완전히 허물고 수리하는 방식으로 진행한다. 최대 3층까지 층수를 높일 수 있다. 사업 절차도 ‘조합설립→안전진단→건축심의→행위허가→이주·착공→입주’ 등으로 상대적으로 간소하다. 재건축에 적용되는 조합원 지위 양도 제한이나 초과이익환수제·분양가상한제 등 규제에서 자유로운 것도 장점이다. 준공한 지 15년만 지나면 리모델링을 할 수 있다.

수도권 39개 단지 리모델링 절차 밟아


주민 반응은 긍정적이다. 리모델링으로 새 집이 되고 편의시설 등이 보강되면 집값이 오를 수 있어서다. 실제로 서울 방배동 래미안에버뉴(옛 삼호), 도곡동 쌍용예가클래식(옛동신) 등 과거 리모델링 사례를 보면 준공 후 시세가 최소 20~30% 뛰었다.

기대감을 반영하듯 일대 아파트값 시세는 오름세다. 서울 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한가람아파트 전용면적 59㎡는 올 초 9억1000만원(20층)에 거래됐지만 1월 6일(21층)에는 9억9000만원으로 뛰었다. 한강대우아파트 전용 84㎡(13층)는 올 1월 8일 12억원에 팔렸다. 지난해 9월 같은 평형 20층 매물이 10억원에 거래됐다. 동부이촌동 공인중개사 대표는 “한강대우아파트 84㎡형은 현재 14억원대로 올랐다”며 “매물이 많지 않아서 나오면 금세 거래가 된다”고 말했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현재 서울 등 수도권에서 리모델링 절차를 밟고 있는 단지는 총 39곳이다. 리모델링을 추진하는 곳은 대부분 재건축 연한 30년을 임박한 1990년 이후 지어진 단지다. 강남권에서 리모델링 추진 단지가 꽤 많다.

대표적인 아파트가 강남구 대치2단지아파트다. 지난해 말 서울시 도시건축공동위원회에서 지구계획안이 통과됐고, 올 상반기 중 서울시 건축심의를 받을 계획이다. 서초구 잠원동 잠원훼미리아파트도 리모델링에 속도를 내기 위해 최근 조합 설립을 추진 중이다. 이 단지는 수직증축 리모델링으로 최고 20층 3개 동 331가구로 탈바꿈할 계획이다. 송파구 성지아파트도 리모델링 시공사로 포스코건설을 선정했다.

앞으로 재건축 연한 30년 안팎의 아파트 중심으로 재건축 대신 리모델링으로 방향을 틀 것으로 보인다. 국토부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서울에서 재건축 연한을 채운 단지 가운데 안전진단을 받지 못한 단지는 10만3822가구다. 양천구가 2만4358가구로 가장 많았다. 다음으로 노원구(8761가구)·강동구(8458가구)·송파구(8263가구) 순으로 많았다. 양지영 R&C연구소 소장은 “재건축을 기대했던 주민들은 재건축을 못할 거면 리모델링이라도 하자고 선회하려는 움직임이 늘고 있다”며 “30년 가까이 된 1기 신도시 분당신도시와 서울 양천구, 노원구에서 리모델링 추진 단지가 더 늘어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여기에 리모델링은 문재인 정부의 도시 재생 뉴딜 정책에도 부합하는 정비 수단인 만큼 정부가 지원책을 내놓을 가능성도 있다는 기대감도 있다.

투자자들의 재개발 지역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재개발 지역은 재건축과 달리 안전진단을 거치지 않아 사업 속도가 빠르고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도 없다.

사업 추진이 속도를 내기 시작한 노량진·청량리를 비롯해 신흥 부촌으로 주목받는 한남뉴타운 등의 매매가격은 최근 호가가 수천만원 올랐다. 한남뉴타운 구역 내 연립주택 반지하(대지면적 28.62㎥)가 2월에 8억원에 거래됐다. 매매 가격이 3.3㎡당 9224만원인 셈이다. 사업 속도가 가장 빠른 한남3구역에서는 대지면적 20㎡ 이하 소형 매물의 경우 3.3㎡당 1억~1억2000만원을 호가하기도 한다. 한남동 A공인 중개사 실장은 “한남동은 3.3㎡(1평)당 가격이 억대에 달하고 대출 한도까지 줄어서 여윳돈이 있는 자산가들이 투자한다”며 “한남3구역은 최근에는 시세보다 더 높게 거래된다”고 말했다.

서북권 단독주택 매매가격 상승세


▎재건축보다 건축 규제가 덜 까다로운 리모델링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사진은 리모델링 기대감이 커진 분당신도시.
최근 사업 추진에 탄력을 받기 시작한 서울 동작구 노량진뉴타운도 상황은 비슷하다. 최근 노량진뉴타운 8개 구역 중 3개 구역에서 사업시행인가 신청을 위한 주민 동의가 이뤄지고 있다.

개발 호재로 낡은 단독주택과 다세대주택 가격도 오르고 있다. 지난해 말 이 구역 단독주택 대지지분 시세는 3.3㎡당 2200만~2500원대였다. 최근에는 2700만원대로 뛰었다는 게 부동산 중개업소 관계자의 얘기다. 대방동 한 공인중개사는 “다세대주택은 2억원 정도만 있으면 갭투자(전세 끼고 구입)가 가능하기 때문에 매매거래가 활발하다”고 말했다.

이처럼 재건축·뉴타운 등 개발 사업지의 주택과 새 아파트 등으로 매수가 늘면서 매매가격 상승폭이 커졌다. 뉴타운·재개발 등 개발 호재가 있는 용산구와 마포구 등은 매수가 늘면서 아파트 매매가격이 여전히 오름세다. 용산구의 2월 매매가격은 전월보다 1.80% 올랐다. 마포구와 성동구는 각각 1.58%, 1.52% 상승했다.

강북 단독·연립주택 몸값도 마찬가지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2월 은평·서대문·마포구가 포함된 서울 서북권 단독주택 매매가격이 전월 대비 0.84% 뛰었다. 이는 2011년 12월 이후 가장 큰 폭의 상승세다. 용산·종로·중구에 있는 단독주택 가격도 지난 1월에 비해 0.62% 올랐다. 이 역시 사상 최대 상승률이다.

재개발 사업을 통해 아파트 분양, 입주가 이어지는 일대는 적게는 수천만원, 많게는 분양권 수준으로 웃돈이 붙고 있다. 지난 2011년 재개발 조합 인가를 받은 후 지난해 3월 이주를 시작한 의정부 중앙2구역은 재개발이 끝나면 2473가구 규모 ‘센트럴자이’로 탈바꿈한다. 5678가구의 대단지가 들어설 인천 부평구 ‘십정2구역’은 매물에 붙은 웃돈이 권리가액과 비슷하다. 이 구역 조합원 입주권(전용 84㎡) 매물은 3월 초 1억3000만원에 거래됐다. 권리가액은 6300만원이지만 웃돈이 6000만원 붙었다.

서울 수색·증산뉴타운 일대에서는 올해 분양을 앞둔 역세권 입지의 매물에 웃돈이 2억원 이상을 넘어서는 것으로 전해진다. “주변에서 높은 청약경쟁률을 기록하고 입주 후에는 시세가 급등했기 때문에 투자자들은 시세차익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는 추세”라는게 인근 공인중개사 관계자의 말이다. 올해 6월 전매제한이 풀리는 마포구 신촌그랑자이(대흥2지구 재개발) 분양권 가격도 얼마에 형성될지 관심이 크다.

안전진단 못받은 단지 하락세로 돌아설 수도


이처럼 이미 안전진단을 통과한 재건축 단지와 규제가 상대적으로 약한 재개발지역, 신규 분양단지 등으로 수요가 쏠려 가격이 오르는 ‘풍선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재건축 사업 탄력의 걸림돌이 생긴 만큼 서울, 특히 강남의 수급불균형을 더 심화시켜서다. 장기적으로는 재건축 허가 지연에 따른 주택공급 부족으로 집값이 오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양지영 R&C 연구소장은 “안전진단을 통과한 재건축 단지의 희소성이 높아져 가격 상승을 초래하는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며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와 마찬가지로 단지별 양극화를 불러 올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일부에서는 집값 상승률이 마이너스로 돌아설 수 있다는 예측도 조심스럽게 나온다. 4월부터 양도세 강화와 금리 인상, 입주물량 증가 등으로 전세금 하락, 거래량 감소로 서울 집값이 떨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서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3월 5일 기준으로 서울 아파트값 상승률은 0.12%로 전주(0.21%)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서울 아파트값 상승 폭은 1월 둘째 주 0.39%를 기록한 후 7주 연속 줄어들고 있다. 이번 주 상승률은 올해 들어 가장 낮다. 지역별로는 강남·서초·송파·강동구 등 강남4구의 하락세가 두드러졌다. 0.48%였던 송파구 아파트값 상승률은 0.13%로 급락했다. 서초(0.15%→0.08%), 강남구(0.25%→0.18%) 역시 상승폭이 절반 가까이로 줄었다. 강동구도 0.35%에서 0.14%로 상승폭이 하락했다.

1425호 (2018.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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