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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중의 사진, 그리고 거짓말] 확연히 다른 느낌 만드는 배경의 힘 

 

주기중 아주특별한사진교실 대표
형상에 대한 집중도 높이고, 주제 강조하며, 표현성 높이는 효과

▎[사진1] [나무] 연작, 이명호
“느거 아부지 뭐 하시노?” 영화 [친구]에 나오는 대사입니다. 선생님으로 나온 김광규가 장동건의 볼살을 꼬집고 흔들며 한 말입니다. 사람의 됨됨이보다는 배경을 먼저 따지는 우리 사회의 치부를 풍자하는 말입니다. 한 때 유행어가 되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배경을 중시하는 세태에 길들여졌습니다. 딸이 남자친구를 만나면 배경부터 따지고 묻습니다. 학교는 어디 나왔느냐, 직장은 어디 다니느냐, 연봉은 얼마냐, 어느 동네 사느냐, 자동차는 뭘 끌고 다니냐, 아버지는 뭐 하시냐…. 잘못된 것인 줄은 알지만 쉽게 바뀌지 않는 폐습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더 속물이 됩니다. 힘들게 살면서 ‘배경의 힘’ 이른바 ‘빽’의 필요성을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입니다. ‘기왕이면 다홍치마’라는 말로 변명을 하지만 이제는 청산해야 할 적폐입니다. 세상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배경의 힘이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분야가 있습니다. 사진을 비롯한 시각예술입니다. 배경은 주제를 강조하는 데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됩니다.

사진가 이명호는 2004년부터 ‘사진-행위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널리 알려진 [나무] 연작[사진1]의 경우 자연 상태에 있는 나무 뒤에 하얀색 캔버스를 세워 배경을 만들고 사진을 찍습니다. 이렇게 하면 같은 나무지만 훨씬 더 주목을 받게 됩니다.

'나무' 연작의 특별한 나무


▎[사진2] 애비, 2016, 주기중
사진의 평면성도 작용했습니다. 입체의 나무가 평면화되면서 마치 캔버스 위에 나무를 그린 것 같은 분위기를 연출합니다. 잘 그린 정물화를 보는 것 같습니다. 무심코 지나치던 나무가 전과는 확연히 다른 느낌으로 다가 옵니다. 평범한 나무가 아름다운 예술작품으로 다시 탄생합니다. 배경의 힘입니다. 흔히 보는 나무에 배경을 드리워 특별한 나무로 만들었습니다. 독창적인 방식으로 ‘다시 보기’ ‘낮설게 보기’ 효과를 노렸습니다. 형식이 내용을 창조한 것입니다. 이명호는 [나무] 작업으로 한국을 물론,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사진가가 됐습니다. 시각심리학자들은 사람이 뭔가를 볼 때 형상과 배경으로나 나눠서 본다고 합니다. 이 때 주목하는 대상은 형상이 되고 나머지는 배경이 됩니다. 똑같은 피사체라도 배경에 따라 사진의 분위기와 메시지가 달라집니다. 심리적으로 볼 때 에워싸인 표면은 형상, 에워싸고 있는 표면은 배경으로 인식합니다. 면적이 작은 것은 형상, 넓은 것은 배경이 됩니다. 또 볼록한 것은 형상, 오목한 것은 배경으로 인식하며, 재질감이 강한 것은 형상, 약한 것은 배경이 됩니다.

배경은 형상에 대한 집중도를 높이고, 주제를 강조하며, 표현성을 높이는 데 크게 관여합니다. 프레이밍을 할 때 먼저 배경을 어떻게 할 것인지 생각해야 합니다. 형상과 배경을 분리하고, 주목도를 높여야 사진의 메시지가 강조됩니다. 배경 처리의 방법을 다섯 가지로 정리했습니다.

첫째, 빛을 이용해 배경을 어둡게 처리하는 방법입니다. 피사체에 빛을 비추면 빛을 받지 않는 배경은 상대적으로 어둡게 나옵니다. 스튜디오나 공연 무대에서 조명을 할 때 주인공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는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반대로 배경이 더 밝은 역광상태에서는 피사체를 실루엣으로 처리해 눈에 띄게 만듭니다.

둘째, 단색으로 된 배경을 선택하는 방법입니다. 유채색보다는 무채색인 흰색·회색·검은색 배경이 낫습니다. 사진 스튜디오를 가보면 벽(배경)이 흰색 또는 검은색으로 돼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색이 필요할 때는 천이나 배경지를 사용합니다. 배경이 한 가지 색이면 피사체의 주목도가 훨씬 더 높아집니다.

셋째, 자연 상태에서는 복잡하지 않고, 넓고 단순한 형태와 색이 있는 배경을 택하는 것이 좋습니다. 하늘·강·바다·백사장·안개·운해·벽 등이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예를 들어 안개가 끼면 가까운 것은 잘 보이고, 먼 곳은 보이지 않습니다. 점점 더 흐려지며 자연스럽게 형상과 배경이 분리됩니다. 높은 산에 운해가 드리워지면 산봉우리는 보이지만 낮은 곳은 보이지 않습니다. 첩첩이 이어지는 능선이 강조되며 멀고 낮은 곳은 운해에 뒤덮여 뿌옇게 나옵니다. [사진2]는 늦은 오후 서해 바닷가에서 조개를 잡던 아버지가 어린 아들을 등에 업고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입니다. 아버지의 등이 따듯했나 봅니다. 아들은 잠이 들었습니다. 연민의 정이 느껴집니다. 슬프고, 아름다운 장면입니다. 강한 느낌을 주고 싶었습니다. 좀 더 단순한 배경이 필요했습니다. 높은 곳으로 올라가 백사장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습니다. 같은 눈높이로 찍으면 멀리 떠있는 어선과 해변가를 걷는 사람들이 겹쳐져 배경이 복잡해지기 때문입니다.

넷째, 아웃포커싱 기법을 이용해 배경을 흐릿하게 처리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같은 조건이라면 렌즈의 조리개를 열어 줄수록 배경이 흐릿해 집니다. 또 망원렌즈나 접사렌즈를 사용해도 비슷한 효과가 납니다.

사진 배경 처리의 5가지 방법

다섯째는 느린 셔터나 패닝 등 특수효과를 이용해 배경을 처리하는 방법입니다. 조리개를 오랜 시간 열어두면 움직이는 것은 허물거리며 사라지게 됩니다. 고정된 피사체만 선명하게 남습니다. 예를 들면 파도가 거세게 몰아치는 바다에서 등대를 30초 이상 찍으면 파도는 뭉개지고 등대만 부각됩니다. 패닝 역시 느린 셔터를 이용합니다. 빠르게 움직이는 물체를 따라가면서 찍는 방법입니다. 움직이는 물체는 고정된 상태로 남고 배경은 흐릿하게 뭉개져 형상과 배경이 분리됩니다. 자신이 타고 있는 자동차와 같은 속도로 달리는 옆 차선의 자동차를 보는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 필자는 중앙일보 사진부장을 역임했다. 현재 아주특별한사진교실의 대표다.

1426호 (2018.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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