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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널 벗어나는 미술품 경매시장, 성장 돌파구는] 최고가 경신 동력 삼아 해외로 눈돌린다 

 

허정연 기자 jypower@joongang.co.kr
서울옥션, 홍콩 진출로 중화권 공략 나서… 케이옥션은 고악기 경매 진출 이어 코스닥 상장 준비

▎사진:케이옥션 제공
3월 21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 케이옥션에서 열린 경매가 낙찰률 80%, 낙찰총액 109억6230만원을 기록하며 막을 내렸다. 이날 최고가를 기록한 작품은 야요이 쿠사마의 ‘Infinity Nets(Opreta)’로 10억원에 낙찰됐다. 이어 김환기의 ‘남동풍 24-Ⅷ-65’이 9억4000만원, 박서보의 ‘묘법 No.23-77’이 9억원에 낙찰되며 최고가 작품 명단에 올랐다. 특히 김환기의 작품은 지난 2013년 5억5000만원에 낙찰된 후 재출품된 작품으로, 5년 만에 무려 4억원가량 올랐다. 당초 추정가가 20억원에 다다를 것이라는 예상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가격이 큰 폭으로 뛰었다. 이번에 나온 김환기의 작품 8점 중 7점이 낙찰에 성공해 총 18억3800만원어치를 팔아치우며 ‘대장주’의 자존심을 지켰다.

앞서 3월 7일 서울 종로구 평창동에서 열린 서울옥션 경매에서는 이중섭 작가의 ‘소’가 작가 최고가인 47억원에 낙찰돼 경매시장에 봄바람을 불어넣었다. 최종 낙찰가 47억원은 8년 전 35억6000만원에 낙찰된 이중섭의 ‘황소’보다 12억원 가량 높은 금액이다. 이로써 이중섭은 김환기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두번째로 몸값이 높은 작가에 이름을 올렸다. 이옥경 서울옥션 대표는 “이중섭 작품의 최고가 경신으로 한국 근대미술의 저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며 “유명 작가들이 가격 상승을 이끌며 미술시장에 활력을 더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미술 업계는 힘든 시기를 보냈다. 근현대미술의 거장으로 불리는 천경자와 이우환의 작품이 위작 의혹을 받으며 한국 미술 작품에 대한 신뢰가 흔들렸다. 설상가상 유명인의 대작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어두운 업계 분위기와 달리 미술품 경매의 최고가 기록 경쟁은 계속됐다. 그중 김환기의 ‘고요’가 사상 최고가인 65억5000만원에 낙찰되며 화제를 모았다. 업계 한 관계자는 “김환기 작품을 비롯해 최근 계속 인기를 끄는 단색화 가격이 지난해 크게 올라 올해는 그 상승폭이 크지 않을 것으로 본다”며 “최악의 침체기는 지났지만 완전히 회복하기까지는 시간이 더 걸릴 것”이라고 평가했다.

천경자·이우환 위작 논란으로 신뢰 흔들려


▎3월 7일 서울 평창동 서울옥션에서 열린 경매를 통해 작가 최고가인 47억원에 낙찰된 이중섭의 ‘소’. / 사진:서울옥션 제공
국내 미술품 경매시장 규모는 지난해 1900억원대에 이르렀다. 세계 경매시장 규모가 연 25조원대에 달하는 점을 감안하면 미미한 수준이지만 전년 대비 10%가량 성장했다. 전체 시장의 90%를 서울옥션(953억원)과 케이옥션(739억원)이 양분하고 있다. 지난해 최고가 기록 경쟁에 열을 올린 두 회사는 성장 돌파구를 찾기 위해 연초부터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서울옥션은 창립 20주년을 맞아 2월 홍콩 중심가에 330㎡(약 100평 규모)의 전시장 겸 경매장인 SA+를 개관했다. 2008년 아시아 미술 업계에서는 최초로 홍콩시장에 진출한 서울옥션이 10년 만에 홍콩 현지에 경매장을 열고 본격적인 마케팅에 나선 것이다. 홍콩 미술경매 시장 규모는 약 2조원으로 추정된다. 서울옥션은 지난해 홍콩에서 열린 세 차례 경매에서 총 424억원어치의 미술품을 판매했다. 서울옥션 측은 “해외 컬렉터와 투자자를 중심으로 김환기·이우환·정상화·박서보 등 국내 단색화 작가 작품에 대한 관심이 커져 구매 열기가 뜨거웠다”고 평가했다.

중화권 시장의 성장세도 기대된다. 중국 정부는 2016년까지 미술품을 비롯한 사치품 구매를 강력하게 규제해왔다. 그러다 최근 들어 이를 완화하는 움직임을 보이며 세계 경매회사의 주목을 한몸에 받고 있다. 지난해 세 차례 홍콩 경매를 연 서울옥션은 올해는 5월과 11월 두 차례 경매 외에 서너 차례의 기획 경매를 통해 고가 출품작을 대거 늘린다는 전략이다. 또 서울옥션은 오는 10월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지하 5층, 지상 8층 규모의 신사옥을 건립할 계획이다. 기존 평창동 본사가 강남권 고객의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에 따른 조치다. 이옥경 대표는 “앞으로 강남 신사옥과 평창동 본사, 홍콩 SA+를 삼각축으로 삼아 한국 경매시장의 새 지평을 열겠다”고 밝혔다.

케이옥션은 기업공개(IPO) 준비에 속도를 내고 있다. 케이옥션은 지난 2015년 IMM인베스트먼트로부터 5년 안에 기업공개를 조건으로 300억원(주당 1만5000원)의 자금을 투자받았다. 온라인 경매 플랫폼 강화하고, 작품 보관을 위한 물류시설 확충하는 등 코스닥 상장을 위한 발판을 마련하고 있다. 내년 말까지 코스닥 상장을 마무리하기 위해 올해 낙찰 총액 1000억원을 기록한다는 목표다. 올해 열리는 메이저 경매와 기획 경매를 통해 매출과 영업이익 확대에 주력할 방침이다. 온라인 경매 수익률 안정화를 위해 최근 온라인 경매 수수료율을 기존 15%에서 18%로 상향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15년 넘게 케이옥션을 이끈 이상규 대표에 이어 최근 신미남 전 두산 퓨얼셀BU 사장을 신임 대표로 내정한 것도 새로운 시도로 평가된다. 케이옥션은 “신 신임 대표 내정자는 연료전지 산업을 성공적으로 일궈낸 주역으로, 기술과 예술을 접목해 미술 업계의 산업화와 혁신을 도모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국내외에서 김환기·이우환 등 ‘대장주’ 인기 여전


케이옥션이 3월 경매를 시작으로 고악기 경매시장에도 진출한 것도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기 위한 행보로 풀이된다. 세계 경매시장을 이끄는 크리스티와 소더비는 오래 전부터 고악기 경매를 정기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고악기의 경우 전 세계 10여개 남짓한 악기전문 경매회사를 통해 주로 소비된다. 대부분은 전문 딜러가 참여해 일반 소비자의 진입 장벽이 높았다. 케이옥션 측은 “경매시장의 성장과 외연을 넓히기 위해 수집 가치가 있는 다양한 아이템을 확대하려고 준비했다”며 “현대기술로도 명품 고악기의 소리를 따라가지 못할 뿐더러 희귀 명품 악기 수는 줄어든 반면 수준이 높아진 수요자가 오히려 늘어 고악기 시장의 미래가 밝을 것으로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3월 21일 경매를 통해 처음 출품된 고악기 ‘오노레데라지’는 2000만원에 경매를 시작해 서면과 현장의 경합 끝에 2600만원에 새 주인을 찾았다. 손이천 케이옥션 홍보실장은 “향후 케이옥션을 통해 거래되는 모든 고악기는 마이스터를 통해 검증을 거쳐 국내에서도 합리적인 가격에 믿고 구입할 수 있는 새로운 통로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1427호 (2018.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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