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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중의 사진, 그리고 거짓말] 모나리자 배경에 뭐가 있는지 아시나요? 

 

주기중 아주특별한사진교실 대표
대기원근법 적용한 자연 풍경과 연초점 기법의 인물 자연스럽게 연결

▎[사진1] 모나리자, 레오나르도 다빈치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자리자’[사진1]는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초상화입니다. 원본이 걸려있는 프랑스 루브르박물관에 가면 사람들이 모나리자 앞에 가장 많이 몰립니다. 얼마나 복잡한지 앞사람 뒷꼭지만 보고 온다는 농담을 합니다. 모나리자는 교과서는 물론, 미술이론서나 교양서적에 어김없이 등장합니다. 자주 접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누구나 모나리자의 얼굴을 선명하게 기억합니다.

그런데 모나리자 인물 배경에 뭐가 있느냐고 물으면 대부분 대답을 못합니다. “뭐가 있지?” 하며 기억을 떠올려보지만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는 사람들이 어떤 대상을 보는 방식과 관계가 있습니다. 일상에서 뭔가를 ‘본다’는 것은 물리적인 정밀조사가 아닙니다. 선택적으로 봅니다. 필요한 것만 본다는 뜻입니다. 눈길을 끌고 관심이 있는 형상에 집중하고 나머지는 배경이 됩니다. 그리고 배경에는 별 관심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예술작품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나리자라고 하면 떠오르는 말이 여인의 ‘신비로운 미소’입니다. ‘신비롭다’는 말에 갇혀 인물에만 집중하게 됩니다.

배경에는 큰 관심 기울이지 않게 마련


▎[사진2] 팔당호의 아침, 2014
사진을 찍을 때도 비슷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좋은 장면을 보면 피사체에 몰입해서 셔터를 누릅니다. 정말 좋은 사진을 찍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막상 사진을 펼쳐보면 의도와는 달리 피사체 주변과 배경에 어지러운 것이 덕지덕지 달라붙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눈으로 보는 것은 3차원의 입체입니다. 어떤 대상을 볼 때 배경은 멀리 떨어져 있거나 좌우로 흩어져 있어 관심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사진은 2차원의 평면입니다. 미쳐 보지 못했던 배경이 평면적으로 압축돼 나타납니다. 배경이 사진의 ‘훼방꾼’이 됩니다. 때로는 그 훼방꾼이 우연히 나타나 사진을 매력적으로 만들기도 하지만 실패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모나리자의 배경을 기억하지 못하는 다른 이유는 인물을 부각시키기 위한 배경 처리와 관련이 있습니다. 모나리자의 배경에는 자연 풍경이 있습니다. 길이 보이고 산도 있습니다. 그런데 인물을 오려내고 배경만 보면 마치 동양의 산수화 같습니다. 산이 멀어질수록 작아지고, 흐려지면서 푸른 빛을 띱니다. 배경을 흑백으로 바꾸면 안개 속에 아스라히 펼쳐지는 수묵산수화 분위기가 납니다. 다빈치는 인물을 부각시키기 위해 자신이 창안한 대기원근법을 사용했습니다. 다빈치는 이렇게 말합니다. “색채가 흐려지거나 상실되는 것은 그것을 바라보는 거리에 비례한다. 그러나 이는 동일한 고도에서 색채를 보는 경우에 한한다. 고도가 다를 경우 이러한 규칙은 적용되지 않는데, 이는 공기의 밀도가 다르면 공기가 색채를 흡수하는 정도도 다르기 때문이다.”

자연 풍경을 보면 멀어질수록 색채가 흐려지고 푸른빛을 띱니다. 명암 대비도 약해집니다. 대기 속에 있는 물방울·먼지 등 미세입자가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이를 회화이론에서 대기원근법이라고 합니다. 또 다빈치는 모나리자 인물의 윤곽을 흐리게 처리했습니다. 사진으로 치면 ‘연초점 기법’입니다. 흐려진 인물의 윤곽과 배경으로 나오는 대기원근법 풍경이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절묘한 배경처리가 인물을 부각시키고, 역설적으로 배경을 사라지게 했습니다. 우리의 기억 속에는 인물만 남게 됐습니다.

투시원근법이 입체감에 관여한다면 대기원근법은 깊이감과 관련 있습니다. 둘 다 과학적인 원리를 반영한 것이지만 대기원근법이 반영된 작품은 좀 더 정서적이고, 심리적이며 감성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냅니다. 원근법은 15세기 르네상스 시대의 산물입니다. 그러나 동양에서는 이미 오래 전에 원근법의 개념이 있었습니다. 중국 남북조시대 화가 종병(宗炳, 375~443)은 그의 저서 [화산수서(畵山水敍)]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무릇 곤륜산은 크고 눈동자는 작기 때문에 눈을 가까이 들이대면 그 모습을 볼 수 없고, 몇 리를 멀리하면 한 치의 눈동자로도 이를 다 두를 수 있으니, 조금씩 멀어질수록 그 보는 것이 더욱 작아진다. 지금 비단을 펼치고 멀리 비추니 곤륜산의 모습을 사방 한 치 안에 다 두를 수 있어 세 치의 세로 획은 천 길의 높이에 해당하고 가로로 쓴 몇 척의 먹은 백 리의 아득함을 이룬다.”

투시원근법은 입체감, 대기원근법은 깊이감에 관여

앞 부분이 투시원근법의 개념이라면 ‘가로로 쓴 몇 척의 먹은 백리의 아득함을 이룬다’는 표현은 대기원근법의 문학적 표현입니다. 수묵산수화에서는 주로 먹번짐을 이용해 대기원근법을 구현했습니다. 흐리거나 비오는 날, 안개가 낀 날이면 대기원근법 효과가 커집니다. 산수화가나 풍경사진가들이 안개와 운해를 좋아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사진2]는 안개 낀 팔당호 새벽 풍경입니다. 산이 멀어질수록 작아지고 흐려져 사라집니다. 필터를 이용해 명암 대비를 강하게 하고 먹번짐 효과를 냈습니다. 아득한 깊이감이 느껴집니다. 사진이 추상적인 산수화를 닮았습니다. 수묵산수화가 얼마나 사실적인가를 역설적으로 보여줍니다. 이른 봄, 안개가 잦은 계절입니다. 사진으로 산수화 한 폭 그려보는 것은 어떨까요. “멀리 있는 산은 돌이 없고, 은은하기가 미인의 눈썹 같다. 멀리 있는 물은 물결이 없고 높기가 구름과 같다(왕유 [산수론]).”

※ 필자는 중앙일보 사진부장을 역임했다. 현재 아주특별한사진교실의 대표다.

1428호 (2018.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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