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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중의 사진, 그리고 거짓말] 발견의 미학, 깨달음의 미학 

 

주기중 아주특별한사진교실 대표
사진은 보는 것이 반…나머지 절반은 마음으로 깨닫는 것

▎[사진1] wave project #01, 2016
사진은 ‘보는 것이 반’이라고 합니다. 전통적인 사진의 가치인 ‘발견의 미학’을 이야기하는 말입니다. 무심코 지나치기 쉬운 평범한 대상, 미미한 존재라도 자세히, 오래 보면 새로운 것이 보입니다. ‘번쩍’ 하는 깨우침이 있습니다. 보는 것이 반이라면, 나머지 절반은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깨닫는 것입니다. 훌륭한 사진가는 그 깨달음을 이미지로 형상화합니다. 존재론적인 성찰에서 오는 재인식의 즐거움입니다. 이는 사진을 더욱 매력적으로 만드는 요소입니다. 그래서 사진을 가장 철학적인 매체라고 합니다.

동양의 산수화 이론에도 비슷한 개념이 있습니다. ‘창신(暢神)’입니다. 직역하면 ‘정신을 펼친다’는 뜻입니다. 어려운 한자말입니다. 중국 남북시대의 화가 종병(宗柄, 375~443)은 그의 저서 [화산수서(畵山水序)]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조용히 거처하면서 기를 다듬고, 술잔을 부딪치며 거문고를 울리고, 그림을 펼쳐 그윽하게 대면하면서, 앉아서 세상의 끝을 궁구한다. 많은 자연적인 위험에 저항하지 않고, 홀로 사람이 없는 들에 반응한다. 산봉우리와 산 동굴의 기괴함과 구름 낀 숲이 아득하니, 성인과 현인이 먼 세대에서 비추어지고, 온갖 격치가 그 신비로운 사고와 융합한다. 나는 다시 무엇을 하겠는가? 정신을 펼칠 뿐이다. 정신을 펼치는 것보다 무엇이 앞서겠는가.”

한자 ‘화창할 창(暢)’은 순조롭다, 통하다, 막힘이 없다는 뜻으로 사용됩니다. 결국 정신을 떨친다는 것은 자연의 이치에 대한 깨달음에서 오는 카타르시스입니다. 종병은 또 “몸은 돌아다니고 눈은 자세히 살펴보았는데, 단순히 실컷 놀고 실컷 보는 것만이 아니라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깨닫는 것을 법으로 삼았다”며 자신의 회화철학을 이야기합니다.

깨달음을 이미지로 형상화


▎[사진2] wave project #02, 2017
산수화의 철학을 좋아하는 필자는 자연 풍경사진을 즐겨 찍습니다. 전통 산수화의 정신을 사진적으로 구현하는 작업을 합니다. 특히 자연의 패턴에 주목합니다. 패턴은 ‘일정한 형태나 양식 또는 유형’을 뜻하는 말입니다. 자연계의 패턴은 일정한 형태를 지닌 것도 있지만 소리나 기의 흐름처럼 보이지 않는 것도 있습니다. 이를 세심하게 관찰하면 우주적인 질서, 천지만물의 조화, 자연의 신비와 섭리, 삶에 대한 통찰 같은 큰 깨달음을 얻을 때가 많습니다.

[사진1]은 운해가 드리운 산의 모습입니다. 운해(雲海)는 ‘구름바다’라는 뜻입니다. 계곡에 널찍하게 드리운 구름의 모양이 바다를 닮아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구름은 기체이고 물은 액체입니다. 기체와 액체는 변형이 쉽고, 흐르는 성질을 갖고 있으며 일정한 형태가 없습니다. 점성과 압축성만 다를 뿐 성격이 비슷합니다. 그래서 물리학에서는 이를 한데 묶어 유체(流體)라고 합니다.

바람이 불면 파도가 치듯이 구름도 움직입니다. 운해의 움직임을 느린 셔터를 이용해서 표현했습니다. 약 5분 동안 찍은 다음 흑백으로 바꿨습니다. 산이 섬이 되고, 구름이 파도처럼 일렁거립니다. 기체인 구름이 액체인 물처럼 나타납니다. 카메라의 회화적 표현력이 놀랍습니다.

[사진2]는 바다 위로 솟아 나온 바위를 찍은 것입니다. 산은 뾰족하지만 바다는 평평합니다. 그러나 바다 밑은 지표면과 비슷한 패턴을 갖고 있습니다. 산도 있고, 산맥도 있습니다. 동굴도 있고, 바위도 있고, 식물도 있습니다. 태초에 땅이 뒤틀리고, 화산이 폭발하면서 높은 곳은 산이 됐고, 낮은 곳은 바다가 됐습니다. 이육사의 시 ‘광야’는 광야의 형성과정을 태초부터 순차적으로 묘사합니다. ‘까마득한 날에/하늘이 처음 열리고/어데 닭우는 소리 들렸으랴/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해 휘달릴 때도/차마 이곳을 범하던 못하였으리라’. 이육사의 시처럼 결국 산과 바다는 같은 몸입니다. 산이든 바다이든 지표면은 비슷한 패턴을 갖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파도의 움직임을 느린 셔터로 찍었습니다. 조리개를 오랫동안 열어 두면 움직이는 것은 연기처럼 사라집니다. 액체가 기체처럼 표현됩니다. 거센 파도가 뭉개져 마치 운해같이 보입니다. 바다 위로 솟아오른 바위는 산이 됐습니다. 액체가 기체가 됐습니다.

자연계에는 서로 비슷한 패턴이 많습니다. 예를 들면 나무의 모양은 큰 강과 지류, 갯벌의 수로, 동물의 혈관과 신경계는 크기만 다를 뿐 전체적인 모양은 비슷하게 생겼습니다. 분배와 순환을 통해 생명을 이어가는 매우 효율적인 구조입니다. 우리가 길을 닦고, 수도관을 깔고, 조직을 구성하는 일도 나무형 패턴을 응용한 것입니다. 나선형으로 자라는 조개, 별을 소용돌이 모양으로 흩뿌리는 성운, 덩굴손, 달팽이, 태아, 사람의 귀 등도 모양이 비슷합니다. 이 패턴은 확장하고 팽창하는 강한 생명력을 느끼게 해줍니다. 또 거미줄과 같이 방사형으로 펼쳐지는 패턴은 학연이나 인맥, 네트워크와 비유되기도 합니다.

패턴을 공유하는 대상은 연상작용 일으켜

자연계에서 패턴을 서로 공유하는 대상은 연상작용을 불러일으킵니다. 연상작용은 시적 비유의 원천입니다. 이는 사진을 찍는 과정과 비슷합니다. 과학자는 자연의 패턴을 수식화·계량화해서 새로운 진리를 발견합니다. 반면에 예술가들은 직관적이고 감각적인 방법으로 패턴을 이용한 이미지를 만듭니다. 비슷한 패턴이 주는 연상작용은 사진적 표현력의 원천이 됩니다. 사진1, 2에서 보듯이 오랫동안 자연을 관찰하고, 패턴을 분석한 다음 카메라 테크닉을 이용해 원하는 이미지를 얻을 때 사진가는 카타르시스를 느낍니다. 사진을 찍는 순간, 순간은 깨달음의 순간입니다.

※ 필자는 중앙일보 사진부장을 역임했다. 현재 아주특별한사진교실의 대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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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9호 (2018.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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