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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중의 사진, 그리고 거짓말] 꽃보다 빛과 색부터 살펴라 

 

주기중 아주특별한사진교실 대표
세세한 형상보다 정서적 느낌 담아야…시적 감성을 창의적 사진문법으로

▎목련, 2018
봄입니다. 빛 좋은 날이 이어집니다. 눈이 부십니다. 따뜻한 봄볕을 쐬며 몽롱한 현기증을 즐기기도 합니다. 봄꽃이 바통터치를 하듯 차례로 피면서 무채색의 세상에 온기를 불어 넣습니다. 꽃이 피고, 지는 풍경은 늘 새롭게 다가옵니다. 자연의 섭리에 감탄하게 됩니다. 빨간 동백이 ‘툭툭’ 떨어질 때쯤이면 매화가 하얗게 산과 들을 뒤덮습니다. 산수유가 산골 마을을 노랗게 물들이고, 볕 잘 드는 곳에 있는 개나리가 기지개를 켭니다. 산에서는 진달래가 수줍은 듯 꽃잎을 엽니다. 하얀 목련도 팝콘 터지듯 꽃을 피웁니다. 이어서 전국 곳곳에서 벚꽃 축제가 열리며 봄은 절정을 맞습니다. 올해는 예년과 달리 봄꽃이 경쟁하듯 한꺼번에 피었습니다.

겨우내 움츠리고 있던 사진 동호인의 마음이 바빠집니다. 인생사가 그렇듯이 절정의 순간은 짧습니다. 꽃이 피는가 싶더니 어느새 져 버립니다. 바쁘게 살다 보면 꽃 사진을 찍는 타이밍을 놓치기 쉽습니다. 어렵게 시간을 내 사진을 찍으며 봄맞이를 합니다.

꽃 사진은 그렇고 그런 사진 되기 십상

봄 꽃은 눈으로 보면 화려하고, 아름답기 그지 없습니다. 그러나 막상 사진을 찍어보면 만만치가 않습니다. 차별화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열심히 찍었지만 결과를 보면 남과 비슷한, 그렇고 그런 사진이 되기 십상입니다.

초보 사진가는 대개 접사렌즈를 이용해 꽃을 찍습니다. 접사렌즈는 특성상 배경이 흐릿해지는 특징이 있습니다. 이른바 ‘아웃 포커싱(배경을 흐리게 하는 기법)’ 효과가 뛰어납니다. 클로즈업을 해서 찍으면 꽃이 선명하고, 예쁘게 나옵니다. 당연합니다. 꽃이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아름다운 꽃을 아름답게 찍는 것은 약간의 훈련을 받으면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꽃 사진을 찍는 것은 물리적인 복사나 생물도감을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예술을 위한 사진이라면 꽃에 대한 자신의 독창적인 느낌과 감성을 표현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필자는 꽃 사진을 찍을 때 “인상파 화가가 되라”고 충고합니다. 인상주의의 탄생은 사진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이전까지 그림은 사진의 기능을 수행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데 현실을 똑같이 복사해내는 기계가 나왔으니 대상을 실제와 똑같이 그리려는 화가의 노력이 부질없이 됐습니다. 카메라는 초상화로 생활을 하던 3류 화가들에게 ‘악마의 도구’였습니다.

인상파는 이런 시대적 배경에서 등장했습니다. 모네를 비롯한 인상파 화가들은 실제와 똑같이 그리려는 전통적인 재현의 전략을 수정했습니다. 카메라가 묘사하기 어려운 인간의 감성에 무게중심을 뒀습니다. 시시각각 변하는 빛과 색을 관찰하며 사실성보다 느낌에 무게중심을 두고 사진을 극복해 나갔습니다. 기계적인 사진으로 표현하기 힘든 정서적인 ‘느낌’을 구현한 것입니다.

모네의 작품 ‘인상: 해돋이’나 ‘수련’ 연작은 고전주의 화가의 입장에서 보면 미완성 작품으로 보입니다. 형태를 나타내는 선과 면이 분명치 않습니다. 그러나 이른 아침 막 잠에서 깨어나 해돋이를 보는 약간은 어수선하고 정리가 안 된 듯한 느낌만큼은 매우 사실적입니다. 수련이 있는 연못의 고요하고 아스라한 풍경은 빛과 바람, 공기까지 감지될 정도로 와 닿습니다. 형태를 포기한 대신 감성의 리얼리티를 추구했습니다.

그렇다면 현실을 기계적으로 복사하는 카메라가 그림처럼 정서적인 느낌까지 구현할 수 있을까요. 사진은 같은 대상을 찍더라도 다른 사람과 차별화할 수 있는 다양한 장치가 있습니다. 톤, 밝기, 콘트라스트, 피사계 심도, 셔터타임, 렌즈 등 기계적인 장치부터 앵글,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빛, 프레이밍 등 사진가가 선택할 수 있는 기술까지 무수한 조합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꽃을 보고 느끼는 감성입니다. 꽃에 대한 마음의 이미지, 즉 심상을 정리한 다음 이에 맞는 카메라 테크닉을 이용해야 합니다.

일찍 피는 봄꽃은 대개 잎보다 꽃이 먼저 나옵니다. 매화·진달래·산수유·개나리·목련·벚꽃이 다 그렇습니다. 꽃나무 주변에는 아직 겨울의 흔적이 있습니다. 아직 앙상한 나뭇가지와 마른 풀, 낙엽이 어지러이 흩어져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잎도 없는 마른 나뭇가지에서 느닷없이 꽃이 핍니다. 그래서 ‘터진다’는 시적인 표현을 합니다.

심상 정리한 후 카메라 테크닉 이용해야

목련을 예로 들어볼까요. 시인 용혜원은 목련을 ‘봄 햇살에 간지럼 타/웃음보가 터진 듯/피어나는 목련꽃’이라고 비유법을 썼습니다. 어두운 곳에 있는 목련은 허공에 둥둥 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줍니다. 시인 조정인은 이를 “하늘을 두드린다”고 말합니다. ‘마른 가지 어디에 물새알 같은/꽃봉오리를 품었었나/톡/톡/톡/껍질을 깨고/꽃봉오리들이/흰 부리를 내놓는다/톡톡/하늘을 두드린다/가지마다/포동 포동/꽃들이 하얗게 날아 오른다’.

목련이 피는 모습을 ‘터진다’와 ‘하늘을 두드린다’로 묘사하는 시인의 표현이 와 닿습니다. 시인들은 어떤 대상을 자세히, 오래 관찰하고 이를 독창적인 시어로 표현하는 데 능합니다. 사진가도 시적인 감성을 창의적인 사진문법으로 표현하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필자는 목련을 찍을 때 이른 아침이나 늦은 오후 비스듬히 내려오는 역광 빛을 자주 이용합니다. 꽃이 흰색이기 때문에 역광을 받으면 반짝거리며 아주 밝게 보입니다. 이때 꽃잎을 기준으로 노출을 맞추고 사진을 찍습니다. 이렇게 하면 꽃과 배경의 밝기 차이가 커집니다. 배경이 어둡기 때문에 꽃이 도드라져 보이고, 나뭇가지와 마른 풀 등 어지러운 것이 가려지게 됩니다. 시인의 표현처럼 ‘웃음보가 터지듯’ 핀 목련 꽃이 하얗게 날아 오르는 것 같습니다. 꽃 사진은 빛의 방향과 배경에 따라 색도 분위기도 확연히 달라집니다. 꽃을 찍을 때는 꽃보다 빛과 색을 먼저 봐야 합니다. 세세한 형상보다는 느낌을 담는 것이 좋습니다.

※ 필자는 중앙일보 사진부장을 역임했다. 현재 아주특별한사진교실의 대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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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0호 (2018.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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