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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화해모드의 경제적 영향은] 남북 경제협력 사업에도 봄바람 부나 

 

황정일 기자 obidius@joongang.co.kr
재계, 사업 준비 모드 속 신중론도 … 22배 차이 국민소득 격차 줄여나가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4월 27일 오전 9시 40분께 판문점 남측 지역의 평화의집에서 만났다. 김 위원장은 판문점 군사분계선(MDL) 위에서 문 대통령을 만나기 위해 남쪽으로 내려왔다. 남북 정상회담은 이번이 세 번째지만, 북한 최고지도자가 남한 땅을 밟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문 대통령은 이곳에서 기다리다 김 위원장과 힘차게 악수했다. 5월에는 북한과 미국의 정상회담이 예정돼 있다. 남북 관계가 획기적인 변화를 맞으면서 비핵화는 물론 남북의 경제협력에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당장 개성공단 재가동과 금강산 관광 재개 논의가 이어질 전망이다. 더 나아가 수십조원대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는 북한 사회 기반시설 건설 시장이 열릴 것으로 기대된다. 우리 경제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4월 27일 오전 판문점 평화의집에서 북한산 그림을 감상하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 사진:김상선 기자
3198만원 대 146만원. 남한과 북한의 1인당 국민총소득이다. 약 22배 차이가 난다. 통일부에 따르면 남북의 국내총생산은 40배 이상 차이가 난다. 발전설비용량은 13.8배 차이다. 이동전화 가입자 수도 남한은 6130만 명인데 반해 북한은 361만 명에 불과하다. 우리가 흔하게 여기는 전기와 통신조차 북한에는 귀한 자산인 셈이다. 과거 독일 통일 당시 동독의 국민소득은 서독의 3분의 1 수준이었다. 현재 남북한에 비해 격차가 훨씬 적었지만 그래도 동독은 국민소득 차이 탓에 통일이 어려울 것으로 보고 서독과의 경제 교류를 통해 경제적 실익을 추구했다. 경제 수준 차이가 큰 상황에서 통일이 되면 혼란이 뒤따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남북한도 마찬가지다. 예컨대 남북이 독일 통일 방식대로 화폐를 통합, 즉 북한이 화폐를 ‘원’으로 바꾸면 화폐가치가 절상돼 생산력이 감소하고 무역상품의 경쟁력이 급락할 수 있다. 이를 우려해 화폐 가치에 차이를 두면 북한 인구가 남한으로 급속히 유입돼 사회 문제가 될 수 있다. 어떤 방식이든 양측 경제 수준이 큰 차이를 보이면 통일은 그 자체로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남북한 정상이 만날 때마다 남북의 경제협력(이하 경협)을 중요한 의제로 다뤘다. 다만 북한은 통일보다는 자금 조달 목적 즉, 체제 안정을 위해 경협이 필요한 측면도 있었다.

남북 모두에게 경협은 필요


어쨌든 남북은 2000년 1차 정상회담 때 ‘남과 북은 경제협력을 통해 민족경제를 균형적으로 발전시키기로 한다(6·15 선언 4항)’고 선언했다. 이를 위해 양측은 경제협력추진위원회를 정례적으로 열기로 했고, 이후 논의를 통해 단순 교역 수준을 넘어 실질적인 경협 사업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경의선 연결 등 이른바 남북 경협의 3대 사업이 대표적이다. 2007년 2차 정상회담에서는 ‘경제협력사업을 적극 활성화하자’(10·4 선언 5항)며 보다 구체적인 남북경협 방안을 도출했다. 이때는 건설사가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이 많았다.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설치, 개성공단 2단계 개발, 문산~봉동간 철도 화물 수송 시작, 민간 선박의 해주 직항로 통과 등이 선언문에 포함됐다. 개성~평양 간 고속도로 공동 이용과 남포 조선협력단지 건설 사업도 같이하기로 합의했다.

경협이 본격적으로 이뤄지면서 남북의 교역액은 점차 늘어갔다. 통일부에 따르면 경협 덕에 2002년에는 남북 교류 규모가 6억 달러를 돌파하면서 한국이 중국에 이어 북한 제2의 교역상대로 부상하기도 했다. 이후 개성공단이 문을 열면서 비약적인 증가세를 보인다. 개성공단이 입주한 2005년에는 남북 교역액이 처음으로 10억 달러를 넘어섰고, 2015년에는 사상 최대인 27억1400만 달러(약 2조9300억원)를 기록했다. 그러나 이후 북한의 핵실험 등으로 남북 관계가 급속히 냉각되면서 대부분의 경협 사업은 시작도 못했거나 중단됐다. 그나마 개성공단은 어렵게 가동을 이어갔지만 박근혜 정부는 2016년 2월 10일 군사작전을 하듯 개성공단을 폐쇄했다. 그 결과 남북 교역액은 2016년 3억3000만 달러로 확 쪼그라들었고, 지난해에는 100만 달러에 그쳤다. 100만 달러도 대부분 정부나 민간의 인도적 지원이었다. 사실상 남북 경협이 사라진 것이다. 통일부 관계자는 “개성공단을 폐쇄하지 않았다면 남북 교역액은 2015년 이후 매년 사상 최대치를 경신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4월 27일, 남북 정상이 세 번째로 만나 철도·도로 현대화 얘기를 나눈 것도 이 때문이다. 경협을 더는 미룰 수 없다는 양측의 의지가 담겨 있다. 북한은 유엔의 제재로 지난해 경제 성장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할 정도로 경제 상황이 좋지 않다. 경협을 통해 외자를 유치하지 않으면 체제 유지도 힘든 상황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한국은 꼭 통일이 아니더라도 경제 성장을 위해 경협이 꼭 필요하다. 경협을 통해 전쟁과 같은 지정학적 리스크가 완화되면 금융시장과 내수시장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전쟁 불안이 완화되면 외국인 관광객이 늘어나고 도소매나 음식, 숙박 등 관련 서비스업 경기 활성화에도 기여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북한에 가로막힌 섬나라 경제가 아닌 대륙경제로 도약할 수 있는 기회인 셈이다.

개성공단 재가동 기대감 커져


▎경기도 파주시에서 바라본 개성공단. 맑은 날에는 파주에서도 공단이 선명하게 보인다. / 사진:연합뉴스
가장 기대가 큰 경협 사업은 개성공단의 재가동이다. 개성공단 폐쇄 직전 남북 교역액이 2조9300억원에 달했던 만큼 개성공단이 재가동하면 당장 3조원대의 경제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정부는 예상한다. 개성공단은 2000년 8월 현대아산과 북한 간 합의서 채택 이후 논의를 본격화해 2003년 6월 착공했다. 2004년 12월 첫 제품을 출하했고, 2006년 북측 근로자 1만 명 돌파 후 2007년 누계 생산액 1억 달러를 넘겼다. 2016년 2월 10일 폐쇄 당시 기준으로 중소기업 125곳이 북측 근로자 5만4988명을 고용하고 있었다. 한국은행·한국산업단지공단이 2014년 개성공단이 우리 경제에 미친 영향을 계측한 자료에 따르면 개성공단의 부가가치 생산액은 2조 6000억~6조원 규모고, 생산유발액은 3조2000억~9조4000억에 이른다. 다만 개성공단은 4·27 정상회담 이후 남북 경협이 급물살을 타더라도 재가동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설비 점검, 바이어 확보 등 거쳐야 할 단계가 많기 때문이다.

또 다른 주요 경협 사업 중 하나인 금강산 관광에 대한 기대감도 크다. 금강산 관광이 중단되기 직전인 2007년 관광객 규모는 34만5006명으로 최대치를 기록했다. 금강산 관광이 재개되면 낙후한 강원도 북부지역의 경기 활성화에 기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금강산 관광 중단 이후 파탄 직전까지 몰렸던 고성군은 월평균 32억원씩 총 3000억원이 넘는 경제적 손실을 입었다. 금강산 관광과 관련된 173개 지역 업소와 납품 업체가 영업을 중단했고, 280여개의 음식·숙박업소가 폐업했다. 북한은 경제 성장 초석을 마련하기 위해 도로·철도·전력 등 사회 기반시설 조성 사업을 본격화할 수도 있다. 도로·철도나 상하수도·전력 등은 인간이 살아가는 데 필수적인 시설이기 때문이다. 삼성KPMG도 최근 발간한 북한 관련 도서에서 “(사회 기반시설은) 개발 초기에 최우선적으로 정비되고 건설된다”며 남북 경협이 본격화하면 건설 산업이 제일 먼저 성장할 것으로 예측했다.

사회 기반시설 시장이 열린다면 우리 경제에 미치는 파급력 또한 클 전망이다. 2014년 금융위원회는 ‘한반도 통일과 금융의 역할 및 정책과제’에서 철도 773억 달러, 도로 374억 달러, 전력 104억 달러, 통신 96억 달러, 공항 30억 달러, 항만 15억 달러 등이 들 것으로 추정했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과 건설업계는 “향후 10년 간 북한 경제특구 개발 및 에너지·교통·주택 등 인프라 투자 규모가 270조원에 달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보고서는 신의주와 개성을 잇는 철도 공사 등 남북간 철도 연결 사업, 한국 동해안과 북한의 나진·선봉 경제무역지대·중국 동북3성·내몽골 등을 잇는 광역두만강 개발 사업이 현실화할 가능성이 크다고 예측했다. 유라시아 대륙으로 이어지는 동해선 남측 단절구간(강릉~제진 간 약 110km) 연결 사업이 현실화할 수도 있다. 남북은 2007년 4월 동해선 비무장지대(DMZ) 구간 내 선로 연결을 마치고 시범운행까지 했지만 지금 중단된 상태다. 관련 기관은 이미 구체적인 준비 작업에 들어간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3월 27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동해선 철도복원 토론회’에서 “대통령 직속 북방경제협력위원회와 함께 ‘시베리아 철도 이용 활성화 방안’이라는 집중연구용역 계약을 앞두고 있다”고 밝혔다. 코레일도 3월에 사장 직속 남북대륙사업처를 신설했고, 한국철도시설공단도 남북철도 연결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도로 등 인프라 투자 규모 270조원


우리 기업의 북한시장 진출과 같은 직접적인 영향 외에 그간 지정학적 리스크가 우리 경제를 짓눌렀던 부분이 큰 만큼 반등 여지도 크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한국 외국환평형기금채권(외평채) 5년물의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은 올 들어 40~50bp(1bp=0.01%포인트)대에서 등락 중이다. 지난해 고조된 지정학적 리스크의 영향으로 70bp대까지 올랐던 것과 비교하면 안정된 수준이다. CDS프리미엄은 국가부도위험을 알려주는 지표로 한 나라 정부가 외국에서 발행하는 외화표시채권에 대한 부도보험료를 말한다. 부도위험이 커지면 수치가 올라가고 그만큼 자금 조달비용은 늘어난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도 최근 “(남북 정상회담이) 국가 및 국내 기업의 신인도 향상을 통해 자본조달비용 경감, 금융 외환시장 안정 등의 효과가 기대된다”고 말했다.

당장 국가신용등급이 상향 조정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현재 한국은 무디스와 S&P에서 상위 3번째(무디스 Aa2, S&P AA), 피치에선 상위 4번째(AA-)의 국가신용등급을 각각 받고 있다. 외환위기 때인 1997년 12월 이들 기관 모두로부터 투기등급을 받았던 우리나라는 산업 구조조정, 노동시장 유연성 제고 등의 노력으로 2001년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을 졸업하고 시장 신뢰를 회복해왔지만, 2006년 북한 핵실험 개시 등으로 지정학적 리스크가 본격화되면서 신용등급 상승 속도는 더뎠다. 전문가들은 이번 남북 정상회담이 국가 신인도 향상의 악재를 떨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S&P·피치·무디스의 글로벌 책임자들은 3월 미국 워싱턴에서 김동연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과 만나 “남북관계 개선으로 한국의 지정학적 위험이 완화되고 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유엔의 대북제재 해제가 우선

하지만 개성공단 재가동이나 금강산 관광 재개 시나리오가 실현되려면 북한의 핵 폐기를 전제로 유엔의 대북제재 해제는 물론 우리 정부의 대규모 투자가 선행돼야 할 전망이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도 보고서에서 “북한과의 경제 협력 및 인프라 투자를 위해 현 남북협력기금을 대체하는 대규모 개발기금 조성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이 자금을 어떻게 마련하느냐가 향후 숙제로 남을 공산이 크다. 아직 여전한 유엔 안보리의 대북제재도 경협 재개의 걸림돌이다. 유엔은 지난해 8월 북한과의 합작사업 신설·확대를 금지하는 제재안을 결의했다. 또 그해 9월과 12월에는 대북 유류 수출을 제한하고, 북한 노동자의 비자 갱신도 금지했다. 전문가들은 “정치적 변동에 따른 불확실성이 존재한다면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 입장에서는 북한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가 어렵다”며 “궁극적으로 기업들이 안정적으로 남북 경협을 추진할 수 있는 환경 조성이 가장 필요하다”고 말했다.

1432호 (2018.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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