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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로 진보하는 민주주의] IT 기반으로 투표방식 바꾼 혁신 

 

임문영 인터넷 저널리스트
어디서나 편리하고 간편한 사전투표…2017년 대통령선거 사전투표율 26%대 진기록

▎서울시선거관리위원회가 6·13 지방선거 후보자 등 선거 정보를 쉽게 알 수 있도록 서울역 대합실에 ‘6·13 아름다운 선거 정보관’을 설치해 5월 31일 개관했다. 이날 오전 선거 정보관을 찾은 시민들이 사전투표 체험을 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정치가 정보기술(IT)을 발전시키지는 못해도 IT는 정치를 발전시킬 수 있을지 모른다. 모바일 혁명과 함께 등장한 소셜미디어는 아랍의 민주주의를 일깨웠고, 독재자들을 내쫓았다. 13억이 넘은 인구, 광활한 국토를 가진 인도는 종이투표를 한다면 결과를 집계하는 데만 수개월이 걸릴 것이다. 그래서 인도에서는 전자투표시스템이 민주주의를 지키는 현실적인 대안일 것이다. 원양어선을 타고 나간 선원들의 투표권은 위성인터넷을 이용한 투표기술로 지켜줄 수 있다. IT는 민주주의와 국민의 권리를 지키는 데 더 많은 일을 해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그런 사례로 ‘사전투표’를 생각해볼 수 있다.

뒤늦은 사퇴, 무효표의 양산

2014년 7·30 재보궐선거 때의 일이다. 동작구을 지역구에서 당시 새누리당 나경원 후보가 929표차로 2위인 정의당 노회찬 후보를 제치고 당선됐다. 이때 무효표는 1403표. 무효표가 1위와 2위의 표차보다 많았다. 무효표 때문에 당락이 바뀐 것은 아닐까하는 이야기가 많았다. 왜 이렇게 무효표가 많았을까? 민주당 기동민 후보가 노회찬 후보와 단일화를 하고 사퇴한 것은 7월 24일. 선거일 6일 전이었다. 이때는 이미 투표용지를 다시 인쇄할 수 없었던 상황. 투표용지에는 기동민 후보가 그대로 있었고, 기동민 후보에게 투표한 표는 모두 무효처리됐다.

투표용지가 인쇄된 후에 후보가 사퇴하면 사퇴를 표기할 수가 없다. 그런데 기동민 후보의 이름에 ‘사퇴’라고 표시된 투표용지가 있었다. 바로 사전투표에서 쓰는 사전투표용지였다. 사전투표용지는 미리 인쇄해두는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 바로 출력해서 쓴다. 그래서 선거 직전 사퇴한 후보가 반영돼 ‘사퇴’라는 글자가 표시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 투표용지를 받아든 사람은 많지 않았다. 당시 사전투표율이 7.98%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정리해 보자. 투표에는 두 가지가 있다. 우리가 아는 본투표는 선거일날 자기 거주지의 정해진 투표소에서 한다. 이와 달리 사전투표는 선거일전 5일부터 이틀 동안 미리 한다. 이번 6·13 지방선거에서도 6월 8~9일 이틀 간 사전투표가 이뤄졌다. 거주지에 상관없이 사전투표소가 설치된 곳이라면 어디에서나 가능하다. 이때 사전투표는 현장에서 투표용지를 출력해 쓰고, 본투표는 미리 인쇄소에서 찍어 둔 투표용지를 쓴다.

2014년 당시 재보궐선거에서 만일 사전투표율이 높았다면, ‘사퇴’라는 글자가 쓰인 후보에게 투표한 무효표는 많이 줄었을 것이고 당선결과는 달라졌을 수도 있다. 물론 무효표가 모두 기동민 후보를 찍은 것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가정일 뿐이다. 다만, 여기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사전투표는 민의를 좀 더 정확하게 반영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는 것이다.

사전투표 용지는 왜 현장에서 출력할까?

그렇다면 사전투표용지는 왜 현장에서 바로 출력할까? 사전투표는 주소지에서만 하는 투표가 아니라 사전투표소가 설치된 곳이라면 어느 곳에서나 투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관악구 주민이 속초로 여행을 가서 거기에서 지방선거 사전투표를 한다고 해보자. 그러면 속초에는 관악구청장 후보와 구의원 후보가 나와 있는 투표용지가 있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속초에는 당연히 그런 투표용지가 있을 리가 없다. 그러면 속초에서 신분증을 제시하고 관악구 주민이라는 것을 확인한 후 관악구 주민에게 맞는 투표용지를 출력해서 거기에서 투표를 할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서울역 앞에서 노원구 주민이 오면 노원구 투표용지를 출력해주고, 부산시 주민이 오면 부산시 투표용지를 출력해줘야 한다. 어느 지역에서 오는 누구인지 모르기 때문에 투표용지를 미리 인쇄해둘 수가 없는 것이다.

사전투표는 2013년 상반기 재보궐선거에서 처음 도입됐다. 당시 사전투표율은 4.78%(상반기), 5.45%(하반기)였다. 이듬해 2014년 지방선거 때는 11.49%, 하반기 재보궐선거는 7.98%였다. 2015년 재보궐선거는 6.74%(상반기), 3.58%(하반기)로 떨어졌다가 2016년 총선 때는 다시 12.19%로 올라섰다. 사전투표는 거주지와 상관없이 사전투표소가 설치된 곳이면 어디에서든 투표할 수 있고, 이틀이나 기간이 주어지는 데도 투표율이 이렇게 낮았던 것이다. 그런데 지난 2017년 19대 대통령선거에서 사전투표율은 무려 26.06%로 뛰어 올랐다. 유권자는 약 4200만 명. 이 가운데 77.25%, 즉 약 3200만 명이 투표를 했고, 다시 이 가운데 26.06%인 약 1100만 명이 사전투표를 했다. 4명 중 1명꼴로 사전투표를 한 것이다. 10%대였던 사전투표의 역사가 5년 만에 26%대로 증가한 놀라운 결과였다. 대통령 궐위선거라는 초유의 상황이어서였을까? 징검다리 연휴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사전투표가 본 투표보다 편리하다는 것을 이제서야 유권자들이 알게 되었기 때문일까? 분명한 것은 사전투표가 선거의 오랜 관습과 풍향을 바꾸고 있다는 것이다.

사전투표를 해본 사람은 참 편리하다는 것을 안다. 집 근처까지 가지 않아도 공항에서, 기차역에서 회사 근처 사전투표소에서 투표하면 된다. 기간도 이틀이나 된다. 선거일날 회사에 일하러 가야 하거나 출장가는 사람, 놀러가는 사람조차도 투표할 수가 있다. 재외국민이나 해외에 나간 사람들도 투표할 수 있다. 심지어 수 개월 전에 원양어선을 타고 바다에 나간 사람도 투표할 수가 있다. 어디서든 본인 신분증을 제시하고 투표용지를 출력받아 투표하면 되기 때문이다.

투표 자체는 간단해 보이지만 그 뒤에는 우리나라 최고의 IT인프라와 기술이 뒷받침되어 있다. 사전투표시스템이 가동되려면 크게 3가지가 가능해야 한다. 통합선거인명부, 전용통신망, 세련된 선거프로세스관리 능력이 그것이다. 첫째 4000만 명의 유권자가 담긴 통합선거인명부다. 선거 때마다 유권자데이터베이스를 만드는 것은 만만치 않은 일이다. 투표권을 새로 가진 사람, 제한된 사람 등 다양한 변동사항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주민등록번호 등 국가의 주민관리 체계가 다른 나라에 비해 긴밀하다. 그 때문에 논란도 있지만, 사전투표 관점만으로 보면 유권자 목록을 바로 뽑아낼 수 있는 좋은 조건을 갖고 있다.

둘째 사전투표소 어디에서나 이 통합선거인명부에 접속할 수 있는 안정된 유·무선 통신망이 있어야 한다. 전국 방방곡곡에서 참가한 수천만 명이 단 이틀 동안 투표를 한다. 이 과정에서 절대로 네트워크가 끊기거나 장애가 있어서는 안 된다. 속도와 보안도 지켜져야 한다. 그런 안정된 독립통신망을 갖출 수 있는 나라가 얼마나 있을까? 우리나라는 그것을 해내고 있다.

셋째 사전투표는 본인 확인부터, 지문인식, 신분증 정보처리, 통합선거인명부시스템 접속, 통계 데이터 처리, 투표용지 발급까지 늦어도 10초 안에 모든 절차가 이뤄져야 한다. 투표자가 몰려들어 대기줄이 늘어나거나 혼란이 발생하지 않게 최대한 신속하게 처리해야 한다. 지방선거 같은 경우 어떤 곳은 투표용지가 7장 이상 되는 경우도 있다. 법으로 규정된 읍 면동 및 군부대 등 밀집지역 전국 3500여개 장소를 실시간 연결하고 1만3000여대의 단말기가 동시에 접속해도 문제가 없도록 매끄러운 처리가 돼야 한다. 결코 쉽지 않은 프로세스다.

사전투표는 선거 역사상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통합단일명부시스템에 의한 사전투표는 세계에서도 유래를 찾기 힘들다. 선거시스템이 뒷받침됐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어디에서나 편리하게 투표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투표율도 점차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애초에 사전투표는 투표율을 높이기 위한 아이디어에서 연구됐다. 투표율을 높이는 방법은 투표 연령층을 확대하거나 투표를 의무가 아닌 권리로서 교육하는 일, 선거방법을 편하게 하는 것 등이 있을 것이다. 이 가운데 선거를 편하게 하는 퍼실리테이팅(facilitationg)의 하나로 사전투표가 고안된 것이다.

투표율 높이기 위한 방안으로 고안


▎지난해 5월 5일 오전 서울 용산구 서울역에서 시민들이 사전투표를 하고 있다.
사전투표가 그렇게 편리하고 좋은 것이라면 본투표도 그렇게 하면 되지 않을까? 그러나 본 투표소는 사전투표소보다 4배가량 더 많은 1만3900개다. 단말기 숫자도 늘려야 하고 전국의 동단위 투표소까지 수 십만 명이 선거관리에 나서야 하는 등 관리해야 할 영역이 엄청나게 많다. 절차적 효율성으로만 본다면 전자투표가 가장 이상적인 투표일 것이다. 하지만 전자투표는 선거부정 개입, 해킹에 대한 불안감이 여전히 강하다. 그래서 아직 선거 이해관계자들이 합의하지 않고 있다. 투표지 분류기는 선거결과를 빠르게 확인할 수 있고 개표종사자들이 밤샘하지 않아도 된다. 그래서 10년 넘게 사용중이고 대부분 국민들에게 정확성과 효율성을 인정받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일부 사람들은 의혹을 거두지 않고 있다.

그런데 사전투표에 대해서는 특별히 부정적인 말이 없다. 아무데서나 투표할 수 있다는 점에서 국민적 호응이 아주 높다. 물론 사전투표를 의심하고 시험하려한 사람들도 몇차례 있었다고 한다. 어떤 사람은 사전투표를 하고 투표 당일날 또 투표를 하겠다고 와서 떼를 쓰다가 투표내역 추적과 CCTV 등으로 증거를 제시하면 그때서야 “사전투표가 이중투표가 안되는지 테스트해보려고 한 것” 등 변명을 늘어놓으며 도망 가기도 했다는 것.

지난 겨울 촛불의 힘으로 역사상 보기 드문 평화롭고 민주적인 정권교체를 이뤄냈다. 이를 뒷받침한 수많은 요인이 있겠지만 26.06%의 사전투표율을 가능하게 한 IT도 그 하나다. 어쩌면 21세기 민주주의를 지키는 힘은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혁신의 모습으로 나타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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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8호 (2018.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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