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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금 없는 사회’ 지향하는 각국의 동상이몽] 효율성·투명성 ‘두 마리 토끼’ 잡는다 

 

허정연 기자 jypower@joongang.co.kr
스웨덴 5년 내 현금 사라질 가능성…화폐개혁 1년 만에 세수 증가한 인도

스웨덴은 1661년 유럽에서 처음 지폐를 발행한 나라다. 그러나 이제는 세계에서 현금이 가장 빨리 사라지고 있는 나라가 됐다. 스웨덴 국민의 절반 이상이 주요 은행들의 통합 실시간 결제시스템인 스위시(Swish) 애플리케이션을 사용한다. ‘현금 사절’을 내세운 가게도 늘었다. 소매점은 합법적으로 현금 결제를 거부할 수 있다. 스웨덴 중앙은행 ‘릭스방크’에 따르면 현금을 받는 소매점 비중은 2010년 40%에서 2016년엔 15%로 줄었다. 버스 등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는 현금을 아예 사용할 수 없다. 공공요금과 교회 헌금은 물론 노점상과 노숙인조차 카드 결제기를 두고 카드 결제나 앱 머니를 요구할 정도다. 은행조차 현금을 취급하는 점포를 점차 줄이고 있다. 대형 은행인 SEB는 최근 전국 지점 118곳 중 7곳에서만 현금을 취급한다고 밝혔다. 2008~2015년 사이 110건에 달했던 은행 강도 건수는 2016년엔 단 2건에 그쳤다. 스웨덴 정부는 2030년까지 완벽하게 현금을 없앤다는 목표다.

스웨덴, 2030년까지 현금 없앨 목표

일각에서는 스웨덴이 5년 안에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스톡홀름 왕립공과대학 교수진은 최근 “지금도 전체 통화 거래량의 13% 정도에 불과한 지폐와 동전 사용량이 계속 줄어들고 있어 5년 내로 현금이 완전히 사라질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그 속도가 너무 빨라 스웨덴 중앙은행이 완급 조절을 놓고 고민할 정도다. 노령층이나 난민 등 현금 외 수단 사용이 어려운 계층이 존재하고, 은행산업이 급격히 축소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스웨덴 정부가 나서 ‘캐시리스(cashless)’를 외치는 배경에는 유럽 금융 선진국 사이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해서다. 인근 국가인 노르웨이와 덴마크 모두 디지털통화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데다 영국도 디지털은행과 함께 앱을 내놓는 등 유럽을 중심으로 디지털통화 정책이 강화되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에 한 발 더 빠르게 대처하면서 ‘세계 최초의 현금 없는 국가’ 타이틀을 갖는 것이 향후 디지털통화 정책을 선도할 기회라는 것이다.

덴마크는 지난해부터 자국 내 동전과 지폐의 생산을 중단했다. 최소의 필요량만 위탁해 생산하는 방식을 택했다. 국민의 90%가 모바일페이를 사용하고, 스웨덴과 마찬가지로 현금 거래 의무제를 폐지하는 법안도 상정됐다. 프랑스는 2015년부터 1000유로(약 130만원) 이상의 물품은 현금 결제를 금지하고 있다. 비현금 결제 비중이 92%를 넘자 정부에서 높은 가격의 현금 결제를 법으로 제한한 것이다. 스페인 역시 2500유로 이상은 현금 결제가 불가하다. 네덜란드에는 직불카드인 핀 카드가 현금을 대신한다. 이스라엘은 2014년 세계 최초로 ‘현금 없는 국가 추진위원회’를 만들고 기업 간 260만원, 개인 간 520만원 이상의 현금 거래를 금지한다. 이스라엘 정부는 이 한도를 점차 더 줄여나간다는 계획이다. 중국에선 모바일 결제 수단인 알리페이가 노점상까지 점령했고, 싱가포르는 2020년부터 대중교통을 이용은 물론 교통카드 충전에도 현금 사용을 금지할 계획이다.

세계가 현금 없는 사회를 지향하고 있지만 각국의 속내는 차이를 보인다. 유럽을 중심으로 한 선진국의 경우 발달된 IT 기술을 바탕으로 전자 결제 산업을 활성화하고, 디지털통화 정책을 선도하기 위한 목적이 크다. 이와 달리 지하경제의 양성화를 위해 현금 없애기를 국가 숙원사업으로 내세운 나라도 있다. 인도가 대표적이다. 인도는 2016년 ‘디지털 인디아(Digital India)’와 ‘블랙머니 근절’을 내세우며 현금 없는 사회로의 전환을 선언했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첫 방편으로 “500루피(약 8000원) 이상 고액권 유통을 즉시 중단하겠다”며 화폐개혁을 단행했다.

모디 총리의 화폐개혁은 시행 초기에는 현금 거래가 중단되는 등 큰 부작용을 불렀다. 그러나 시행 1년 만에 세수 기반이 넓어지고 모바일 결제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는 등 곳곳에서 효과가 나타났다. 화폐개혁 충격 등으로 연 5%대까지 떨어졌던 인도의 경제성장률도 연 7% 수준까지 상승했다. 거래 투명성이 확보되면서 소득세 납입이 크게 늘어났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모바일 결제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관련 산업이 발전하는 효과도 거뒀다. 보스턴컨설팅그룹은 인도에서 휴대폰 등 디지털 기기를 활용한 결제금액이 2020년 5000억 달러(약 538조원)를 돌파할 것으로 전망했다.

우리나라도 현금 없는 사회로의 전환할 수 있는 발판을 준비하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한국은 신용카드를 받지 않는 가게에 과징금을 물리는 등 현금 없는 사회로의 전환에 돌입했다”고 평가했다. 현금 없는 사회가 구현되면 자금 유통의 투명성을 확보하고, 화폐 제조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동전 주조비용은 연간 500억원 규모에 달하지만 회수율은 연간 10%에 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용이 저조한 탓에 시중 유통량도 점차 줄고 있다. 이에 한국은행은 2020년까지 ‘동전 없는 사회’를 만들겠다며 지난해 4월부터 시범사업에 들어갔다. 거스름돈을 현금이 아닌 앱이나 카드에 충전하는 방식으로, 현재 전국 2만 여개 마트와 편의점에서 시행 중이다.

비현금 결제 비율 역시 지속적으로 상승하며 이 같은 흐름을 대변하고 있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2016년 지급수단 이용행태 조사’에 따르면 2016년 현금 결제 건수 비중이 2014년 대비 37.7%에서 26%로 크게 감소했다. 금액 기준으로도 17%에서 13.6%로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대표적인 비현금 결제 수단인 신용카드는 같은 기간 기준으로 결제 건수가 34.2%에서 50.6%로 크게 상승했고, 금액 기준으로도 50.6%에서 54.8%로 지속 상승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 취약계층, 개인정보 노출 등 해결 과제

현금을 없애고 전자 결제로 완전히 대체하는 것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스웨덴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전자 결제 수단 사용이 어려운 노년층과 빈곤층 등 취약계층이 걸림돌이다. 자금력이나 신용도가 떨어져 신용카드 등을 만들 수 없거나 간편 결제에 이용되는 휴대폰 등 전자기기를 구매하기 어려운 탓이다. 중국의 경우 알리바바·텐센트 등의 인터넷 기업들이 전자 결제를 이끌며 현금 없는 사회로 빠르게 나아가고 있지만 전체 성인 인구의 절반만이 전자 결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조차도 노인과 농촌인구, 빈곤층은 제외된 수치라 실제 사용률은 더욱 낮을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개인의 금융 활동과 개인정보가 쉽게 노출될 위험도 있다. 현금이 없어진 사회에서는 모든 금융거래·소비가 중앙시스템에 기록된다. 자금의 흐름을 쉽게 추적할 수 있어 투명한 금융거래가 가능한 배경이다. 이는 곧 정부나 기업이 개인정보를 이용해 국민을 통제하기 쉽다는 의미다. 자칫 금융전산망이 해킹당하거나 오류가 발생했을 때 국가적으로 자금유통 시스템 전체가 마비될 위험도 도사린다. 한국경제연구원의 김성훈 연구위원은 “화폐 효율성을 높일 뿐 아니라 중앙은행이 저성장 저물가 상황에 대비하기 용이해 주요 선진국들을 중심으로 ‘현금 없는 경제’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며 “경제활동인구가 감소하는 우리나라 상황에서도 현금 없는 사회를 통해 세수를 늘려 재정적자 문제를 일부 해소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스웨덴과 덴마크 등 핀테크 산업을 선도하는 나라가 그랬듯 과거 금융산업에 머물러 있는 불필요한 규제를 없앨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1439호 (2018.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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