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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관심 받는 브라질 국채] 미워도 다시 한 번 투자해봐? 

 

황정일 기자
15년 만의 정권 교체에 헤알화 가치 급등 … 개혁에 필요한 연립정부 구성 여부 주목

▎브라질의 국우 자이르 보우소나루 대통령 당선인이 결선투표에서 승리한 뒤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애증의 대상이었던 브라질 국채가 다시 옛 명성을 찾을 수 있을까. 곤두박질치던 헤알화(브라질 통화) 가치가 상승하고, 국채 금리가 안정화하면서 한동안 외면 받던 브라질 국채가 다시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특히 미국발(發) 증시 폭락 사태로 투자자들이 마땅한 투자처를 찾기 어려워지면서 브라질 국채를 주목하는 시선도 늘어나고 있다. 브라질 국채는 불과 두어달 전까지만 해도 연수익률이 -20%에 이를 정도였다. 하지만 10월 7일(이하 한국시간) 치러진 브라질 대통령 선거 1차 투표에서 시장친화적인 사회자유당 자이르 보우소 나루(Jair Bolsonaro) 후보가 1위를 차지하면서 반전이 일어났다. 곤두박질치던 헤알화 가치가 상승하고, 국채 금리도 빠르게 안정화하고 있다.

그리고 10월 28일 치러진 결선 투표에서 보우소나루가 노동자당 페르난도 하다드(Fernando Haddad)를 누르고 최종 승리하면서 브라질 국채를 중개하고 있는 국내 증권사 창구에는 ‘끊겼던’ 매수 문의가 다시 이어지고 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국채 투자 수익률을 좌우하는 헤알화 가치가 강세를 보이면서 ‘지금 브라질 국채 투자에 들어가야 하는 것 아니냐’는 투자자들의 문의가 늘어나고 있다”며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매도’ 문의만 나왔는데 상황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보우소나루의 당선으로 브라질의 고질적인 재정적자 문제가 해결될 가능성이 크다는 기대감이 확산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좀 더 지켜봐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정치 불확실성이 완전히 해소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새 정부가 연금개혁에 성공할 수 있는지가 변수가 될 전망이다.

증권사 창구에 다시 ‘매수’ 문의 이어져


브라질 국채는 연 7~10%의 이자, 브라질과의 협정에 따른 비과세 혜택 등으로 그동안 투자자의 사랑을 받아왔다. 매년 1조원 넘게 팔려 나갔고, 투자 수익률도 나쁘지 않았다. 2016년에는 무려 연 71%의 수익을 내면서 ‘대박 채권’이라는 인식이 확산했고, 이듬해인 지난해에는 6조205억원어치가 팔려 나갔다. 최운열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8월 말 현재 브라질 국채를 중개한 국내 증권사 17곳의 판매 잔액은 7조8390억원. 그런데 올 들어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브라질 채권 수익률은 사실상 환율이 좌우하는데, 연초부터 브라질 통화 가치가 급락하기 시작한 것이다. 브라질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정치적 불확실성이 커진 데다 미·중 무역전쟁 등으로 달러 강세가 이어진 영향이다. 투자자의 속은 새까맣게 타들어갔다. 채권 수익률도 8월 말 약 -20%까지 급락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올 들어 브라질 채권 판매액은 1조5062억원(8월까지)으로 지난해의 5분의 1 수준으로 확 쪼그라들었다.

하지만 9월 중순 이후 반전이 일어났다. 대선을 앞두고 브라질의 ‘트럼프’로 불리는 우파 보우소나루 후보가 각종 여론조사에서 하다드를 앞서나가면서다. 곧바로 헤알화 가치가 오르기 시작했다. 9월 14일 1헤알당 266.21원까지 내렸던 헤일화는 11월 1일 현재 306.13원까지 상승했다. 대선 직후인 10월 29일에는 올해 초(323원)에 근접한 316.94원을 기록하기도 했다. 지난 10개월간의 하락 폭을 한 달여 만에 모두 회복한 것이다. 급등하던 국채 금리도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 연초 9.79%에서 출발한 브라질 국채 10년물 금리는 9월 5일 12.55%까지 치솟았다가 11월 1일 현재 10.24%로 내렸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미국의 자산운용사인 레그메이슨 킴 카테치스 신흥시장 매니저는 “대통령 당선자인 보우소나르가 브라질의 증시·채권·헤알화 등의 자산 가치 회복을 도울 것”이라고 말했다. 김혜경 하나금융투자 연구원도 “보우소나루 당선자는 중앙은행 독립성 강화, 국영기업 민영화, 부패 척결 등을 공약으로 내걸었던 만큼 금융시장의 기대가 크다”며 “장기간 이어진 정치 불확실성도 일부 해소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보우소나르가 해결해야 할 가장 큰 문제는 바로 브라질 경제를 좀먹고 있는 연금을 개혁하는 것이다. 브라질은 한 때 세계 8위의 경제대국이었지만 2003년부터 13년 간 집권한 좌파 노동자당이 무상 복지정책, 연금제도 등에 국가예산 75%를 쏟아 부으면서 경제가 흔들렸다. 이로 인해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WB),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국제기구는 브라질 연금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지금도 연금이 국가 예산의 43%를 차지하고 있다. 과도한 연금 지출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정부 부채 비율은 2013년 51%에서 지난해 74%로 높아졌다. 브라질 정부는 그동안 몇 차례 연금 개혁을 추진했지만 번번히 실패했다. 올해 2월에도 정부가 연금 개혁을 추진하다 실패하자 S&P·피치 등 세계 신용평가사는 일제히 브라질 국가신용 등급을 강등하기도 했다. 그만큼 브라질에서는 연금개혁이 중요한 이슈다.

그런데 보우소나르 대통령 당선인의 연금개혁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사회자유당은 전체 의회 의석의 9% 정도뿐인 군소 정당이기 때문이다. 연금뿐 아니라 그가 공약으로 내걸었던 공기업 민영화, 조세제도 개혁 등의 경제정 책 변화를 위해서는 의회 구성은 필수다. 안건 통과를 위해 필요한 의석 수는 하원(513석)의 60% 이상인 308석과 상원(81석)의 60% 이상인 49석이다. 하지만 현재 사회자유당이 차지하고 있는 의석수는 상원 4석, 하원 52석에 불과하다. 중도파와 연립정부 구성에 실패하면 공기업 민영화 등은 물론 가장 중요한 연금개혁도 쉽지 않은 상황인 것이다. 연금개혁에 제동이 걸리면 헤알화 가치가 다시 약세로 돌아설 수 있다.

연금개혁 여부 지켜봐야

이 때문에 금융투자업계에서는 브라질 국채 투자에 신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투자업계의 한 관계자는 “의회에서 연금 개혁법이 통과 된다고 해도 재정적자 축소의 만병통치약이 아니라는 점과 외환시장에서는 이미 헤알화 강세가 충분히 반영됐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 증권사 관계자도 “브라질 국채는 중개수수료가 3~4%로 높아 영업력을 극대화한 상품”이라며 “기본적으로 투기등급 채권인 만큼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러나 지금을 투자 적기로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김은기 삼성증권 연구원은 “의회 협상과정에서 진통은 예상되지만 연금개혁에 대한 필요성이 부각되고 있어 합의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며 “새 정부 출범 이후 연금 개혁법 처리가 조속히 마무리되면 헤알화는 추가적인 강세가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 황정일 기자 obidius@joongang.co.kr

1458호 (2018.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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