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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지는 ‘리걸테크(Legal Tech)’ 시장] 로스쿨에서 ‘코딩’ 더 많이 가르칠 수도 

 

이지현 테크 저널리스트
인공지능 로봇 변호사·판사 나오고 방대한 판례 디지털화…기술·데이터 공유로 기술 수준 높여

▎사진:© gettyimagesbank
인공지능 시대가 도래하면서 로봇이 어떤 일자리를 대체할 수 있을지 큰 관심을 끌고 있다. 이런 논의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직업군이 ‘변호사’다. 지금 단계에서 미래에 변호사라는 직업이 사라질 것이라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적어도 지금의 변호사와는 상당히 다른 방식으로 변호사의 업무를 수행하게 될 것이다. 이미 미국에서는 인공지능 로봇 판사나 변호사가 나와 광범위한 실험이 이뤄지고 있다. 미국뿐 아니라 일부 유럽 국가의 상황도 비슷하다. 법률(Legal)과 기술(Technology)의 합성어인 ‘리걸테크’라는 이름으로 빠르게 시장이 확대되고 있다. 세계적으로 이 시장에 뛰어든 기업만 1000여 개인 것으로 알려졌다.

리걸테크 스타트업만 1000여개

리걸테크 시장 확장에 기름을 부은 건 속속 등장하는 오픈소스 기술이다. 변호사를 위한 프로그래밍 언어나 판사 분석 서비스 등이 오픈소스로 등장하면서 다양한 형태로 확장되기 시작한 것이다. 보스턴 컨설팅 그룹이 독일 부세리우스 로스쿨과 공동으로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리걸테크 시장은 크게 3가지로 구분된다. 첫째, 디지털화를 도와주는 기술의 등장이다. 종이로 존재하던 문서 자료를 디지털화하거나, 서로 다른 시스템에 저장된 정보를 통합하고, 클라우드 저장소에 관련 시스템을 구축하는 등의 작업이 이 범주에 들어간다. 아직 기술적으로 부족하지만 리걸테크 기업으로 변화하기 위한 최소한의 인프라를 구축한다는 의미가 크다.

둘째, 법조계 종사자들을 지원하는 기술 시장이다. 변호사나 검사가 활용할 수 있는 특정한 기능을 별도로 만들어 제공한다. 예를 들어 의뢰인과 관련된 사건이나 판례를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있다. 클릭 몇 번만으로 검색과 분류, 저장까지 이뤄질 수 있어 활용도가 높다. 로펌에 맞춤화된 고객 관리나 경영업무 보조 시스템도 이 시장 범주에 속한다.

셋째, 실제 변호사의 일부 역할을 대체하는 기술도 있다. 변호사의 반복적 업무를 자동으로 해주거나, 계약서 초고를 대신 작성한다. 방대한 판결 정보를 분석하고 필요할 것 같은 정보를 알아서 도출해내는 기술도 있다. 아직은 변호사의 업무를 보조하는 수준이지만, 언젠가는 변호사를 대체할 잠재력을 가진 기술이다.

현재 리걸테크 기업들은 대부분이 스타트업 수준에 머물러 있다. 하지만 온라인을 적절하게 활용하면서 폭발적으로 성장한 기업도 있다. 리걸줌이 대표적이다. 이 회사는 2007년부터 올해까지 4차례에 걸쳐 8억1100만 달러(약 9017억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온라인 기반 서비스인데, 사용자가 월 35달러 정도의 돈만 내면, 고객에게 맞는 변호사를 선정하고 선임하는 과정까지를 지원한다.

이혼 소송 전문 업체인 ‘위보스’도 주목할 만한 회사다. 합의 이혼 과정에는 많은 조항을 수정하고 양육비나 위자료에 대한 합의가 필요하다. 위보스 서비스를 이용하면 이 모든 과정을 온라인상에서 해결할 수 있다. 비용은 커플당 949달러(약 106만원)인데, 이는 전통적인 이혼 소송 비용의 3분의 1 수준이다.

리걸테크 성장의 기폭제는 오픈소스가 될 것으로 보인다. 냉정하게 보면 ‘법’ 자체는 이미 오픈소스 데이터에 속한다. 하지만 내용이 방대하고 어려워 일반인들에게는 오픈소스 데이터로써의 기능을 할 수 없었다. 최근 다양한 기술이 적용되면서 이런 정보를 쉽게 열람할 수 있는 길이 열리고 있다. 또 미국 하버드대학을 중심으로 법뿐만 아니라 판결의 내용 및 결과, 참여자와 판사 정보까지 공개하자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최근 하버드 법학 도서관은 ‘라벨’이라는 리걸테크 스타트업과 함께 흥미로운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하버드가 소장하고 있는 4만여 권의 책을 5년 동안 스캔하고 디지털화한 것. 여기에는 334년에 걸친 미국 판례법이 담겼고, 그 분량만 3860만 페이지에 달한다.

라벨은 스캔한 데이터에서 텍스트를 뽑아내고 검색까지 가능한 시스템을 구축했다. 별도의 기술을 적용해 분석하고 시각화 자료도 추가했다. 민감한 일부 정보를 제외한 모든 데이터는 라벨의 홈페이지에서 조회할 수 있다. 판결문만 보는 것은 간단한 회원가입으로 가능하고, 라벨의 추가 기술이 적용된 데이터 분석과 시각화 서비스는 유료로 제공하고 있다.

하버드 법학대학과 라벨은 2013년 오바마 정부 정책에서 영감을 받아 이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오바마 정부는 공공데이터의 중요성을 늘 강조하고, 질 좋은 공공데이터를 만들었다. 단순한 공개에만 의미를 두지 않고 연구자나 공무원들이 활용하기 쉽도록 포맷을 맞추고, 시각화하는 작업도 병행했다. 스타트업들은 이런 오픈소스를 활용해 다양한 형태로 사업을 확장할 수 있다. 오픈소스 기술이 늘고 있는 리걸테크 시장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오픈소스 기술과 관련해 또 하나 눈여겨볼 분야는 법률 계약이다. 지금처럼 디지털화 된 사회에서도 계약서의 최종 서명은 종이와 펜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최근에는 이 분야에 블록체인 기술이 도입되면서 ‘스마트 계약’ 시대가 열리고 있다.

‘스마트 계약’ 시대 열려

스마트 계약서를 통해 서명을 포함한 모든 과정을 온라인상에서 실시간으로 처리하면서 위·변조까지 막을 수 있다. 이미 국내에서도 많은 스타트업과 대기업이 블록체인 기반의 스마트 계약 기술을 개발해 서비스를 출시하고 있다.

해외에서는 클라즈라는 기업이 처음 만든 어코드프로젝트를 주목할 만하다. 어코드프로젝트는 스마트 계약 기술 중 하나로, 핵심 기술 일부를 오픈소스화 한 것이 특징이다. 자신들이 만든 기술을 열어 많은 기업과 협업하고 있다. 리눅스 재단을 포함해 코다·하이퍼레저·페브릭·이더리움 같은 블록체인 관련 단체가 파트너다. 30개가 넘는 글로벌 로펌과 스탠다드차타드 같은 금융회사도 협력의 대상이다.

싱가포르 기반 스타트업 리걸리스는 법률 문서 작성을 위한 프로그래밍 언어를 개발했다. ‘L4’라 불리는 언어를 개발해 오픈소스화 했다. 사용자가 투자 계약서를 쓰는 상황을 가정할 때, L4의 문법에 맞게 데이터를 입력하면 PDF 형태의 계약서가 완성된다. 해당 기술에는 문서의 위·변조를 방지하고 서명을 추적하는 등의 보안 요소도 포함돼 있다.

결과적으로 기존의 변호사가 하던 일은 리걸리스가 대체하고, 변호사는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리걸리스 측에서 “언젠가 로스쿨에서 코딩을 가르치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말하는 이유다.

법은 일반인이 접근하기 어려운 진입장벽이 높은 전문 분야였다. 하지만 새로운 정보통신기술(ICT)을 적용하고, 기존의 방대한 데이터를 공유하면서 급격한 변화의 시대를 맡고 있다. 리걸테크가 변호사의 보조 수단으로 남을지, 완전히 법률가를 대체하게 될지는 조금 더 지켜볼 일이다.

※ 본 콘텐트는 LG CNS 블로그와 제휴해 제공하고 있습니다. 좀 더 자세한 내용과 더 많은 IT 관련 트렌드가 궁금하다면 블로그(blog.lgcns.com)에서 만나실 수 있습니다.

1460호 (2018.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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