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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궤도 오른 항만 재개발 사업] 낡은 항만이 관광·주거 명소로 

 

정리=황정일 기자 obidius@joongang.co.kr
노후·유휴 항만은 물론 인근 주거지 통합 개발…수천억 세수, 일자리 창출 등 지역경제 활성화

▎11월 20일 중앙일보 빌딩에서 열린 전문가 좌담회 직후 참석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인하대 김경배 교수, 해양수산부 정성기 과장, 거제빅아일랜드PFV㈜ 심정섭 대표, 부산항만공사 전찬규 실장. / 사진:김현동 기자
비틀스의 도시로 잘 알려진 영국 리버풀은 한때 세계 최대 무역항으로 막강한 부와 명성을 자랑했다. 1800년대 세계 물동량의 절반이 리버풀 항구를 거쳤고, 타이타닉호도 리버풀에서 출발했다. 리버풀 항구는 그러나 20세기 들어 물류 방식이 변화하고 전쟁을 겪으면서 급속도로 황폐해졌다. 하지만 오랜 노력 끝에 항만 재개발 사업에 성공, 문화 자원을 적극 활용해 지금은 수만 명의 관광객이 찾는 관광·문화 명소로 변신했다.

엘브필하모니콘서트홀로 유명한 독일 함부르크의 하펜시티도 한때는 낡아 버려지다시피 한 자유 무역항이었다. 무역항에 발길이 끊기면서 지역 전체가 쇠퇴했지만 함부르크시의 재개발 사업 덕에 지금은 인기 관광지이자 함부르크의 업무·주거·상업·문화·관광 중심지로 변모했다.

몰락한 리버풀과 하펜시티를 되살렸던 ‘항만 재개발 사업’이 국내에서도 본격화하고 있다. 북항 재개발 사업을 진행 중인 부산항만공사는 11월 19일 북항 내 상업·업무지구 2개 블록 사업자로 동원개발 컨소시엄과 한국투자증권 컨소시엄을 선정했다. 컨소시엄은 북항에 각각 70층 이상의 초고층 빌딩을 세워 업무·관광·숙박시설을 들일 계획이다. 앞서 11월 15일에는 거제시 고현항이 1단계 사업을 준공했다. 10월에는 인천시 내항 재개발 사업을 위한 마스터플랜 국제공모가 있었다. 공모 당선작은 향후 내항을 친수공간과 문화시설이 어우러진 해양문화지구와 행정타운을 기반으로 일자리 거점지구로 육성하는 방향을 담고 있다.

13개 항에서 19개 사업 진행


▎독일 함부르크의 하펜시티. 하펜시티는 항만 재개발 사업을 통해 인기 관광지이자 함부르크의 주거·상업·문화 중심지로 탈바꿈했다. / 사진:인하대 건축학부 김경배 교수 제공
본격화하고 있는 항만 재개발 사업은 노후·유휴 항만은 물론 그 주변 지역을 통합 개발해 지속가능한 혁신성장 거점으로 재창조하는 사업이다. 2007년 관련법(항만과 그 주변지역의 개발 및 이용에 관한 법률)을 제정·시행하면서 막이 올랐다. 현재 13개 항에서 19개 사업이 진행 중이거나 계획돼 있다. 사업을 주관하는 해양수산부의 정성기 항만지역발전과장은 “국내 상당수 항만이 건설한 지 벌써 50~60년가량 돼 노후화가 심하고, 일부 준설토 투기장(수심을 깊게 팔 때 나오는 흙을 쌓아 둔 곳)은 혐오시설로 인식되고 있다”며 “항만 재개발 사업은 이 같은 항만에 새 생명을 불어 넣는 것과 동시에 일자리 창출 등 지역경제를 되살리는 사업”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본지는 11월 20일 서울 중구 중앙일보 빌딩에서 항만 재개발 사업의 의미와 비전,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살펴보는 전문가 좌담회를 개최했다. 이날 좌담회에는 해수부 정성기 과장, 고현항 재개발 사업의 시행사인 거제빅아일랜드 PFV㈜ 심정섭 대표, 부산항만공사 재개발사업단 전찬규 실장, 인하대 건축학부 김경배 교수가 참석했다.

항만 재개발 사업은 어느 정도 진행됐나.

해수부 정성기 과장(이하 정 과장): 1호 사업은 부산 북항으로 2008년 5월 사업계획을 수립했다. 2013년에는 인천 내항 재개발 사업 로드맵이 나왔고, 이듬해에는 최근 1단계 사업을 준공한 고현항 사업을 시작했다. 지난해에는 동해·묵호항 1단계 사업이 준공했고, 현재 전국 13개 항 19곳에서 사업을 진행 중이거나 계획하고 있다. 현 정부에서도 이 사업을 100대 국정과제로 선정할 만큼 관심이 크다. 북항·내항·광양항 등에 3조7000억원 규모의 민간 자금을 유치해 5만4000개의 일자리를 창출할 계획이다.

부산항만공사 전찬규 실장(이하 전 실장): 북항은 재개발 사업 시작 이후 근대문화유산 보존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면서 사업이 다소 지연됐다. 북항 1부두는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부두인데, 이를 원형 그대로 보존할지를 두고 상당기간 논의를 진행했다. 결국 1부두를 원형 그대로 보존키로 하고 나머지 사업을 진행 중이다. 북항은 특히 항만은 물론 인근 주변지역·철도를 묶어 통합 개발한다. 국내 첫 사례로 면적만 362만㎡에 이른다.

최근 1단계 사업을 준공한 고현항은 민자 사업이다.

거제빅아일랜드 심정섭 대표(이하 심 대표): 고현항은 민자 1호 항만 재개발 사업이다. 규모는 60만㎡로, 재개발 사업이 마무리되면 고현항은 문화·관광·주거·상업·판매시설이 복합적으로 들어서는 해양관광도시로 탈바꿈하게 된다. 2013년 민간이 사업을 제안하는 형태로 사업이 시작됐고, 여러 어려움을 이겨내고 최근 1단계 16만6512㎡ 규모의 부지조성 공사를 완료했다. 지금은 2단계 부지조성 공사를 진행 중이다.

인하대 김경배 교수(이하 김 교수): 항만 재개발 사업 자체가 항만과 그 주변 지역을 새로운 도시로 탈바꿈시키는 것인 만큼 민간의 도움 없이 정부 힘만으로는 사실상 불가하다. 정부가 법제화 등을 통해 개발 여건을 만들어주면 민간이 자본과 경험을 토대로 이른바 신도시를 만드는 사업이다. 여기에 지역에 대해 잘 아는 주민 등 지역사회의 협조와 참여가 있어야 하펜시티나 리버풀처럼 성공적인 항만 재개발 사업을 할 수 있다.

개발 초기부터 지역 특성·역사 감안해야


항만을 재개발 하는 데 지역사회의 참여가 왜 필요한가.

김 교수: 항만을 아무리 근사하게 탈바꿈시켜도 사람이 찾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사람을 불러 모을 ‘킬러 콘텐트’가 있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개발 계획 수립 때부터 지역 특성과 역사를 고려해야 한다. 지역 특성과 역사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주민이고 지역사회다. 또 지역사회가 참여해야만 개발 이후 나타날 수 있는 젠트리피케이션(구도심을 활성화하며 원주민이 내몰리는 현상)과 같은 부작용을 차단하고, 지역경제가 함께 성장해 나갈 수 있다.

심 대표: 대규모 개발 사업이 시작되면 아무래도 기존 주민들은 불안할 수밖에 없고, 심한 경우 사업 중단을 요구하기도 한다. 고현항 인접 지역은 집중호우 때 침수 피해가 잦은 곳이었는데, 재개발을 위해 항만을 추가 매립하면 침수 피해가 더 커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다. 이 문제 해결을 위해 지역 사회와 소통을 통해 우선적으로 배수펌프장과 구도심에 부족한 공원·주차장·광장 등을 확충했다. 주민의 이해와 협조가 없었다면 1단계 사업조차도 2~3년은 더 걸렸을 것이다.

정 과장: 이런 문제를 사업자에게만 맡기면 혼란이 더 커질 수 있다. 그래서 해수부는 법제화를 통해 사업장마다 지역협의체를 만들어 시민참여형 사업으로 진행하고 있다. 김영춘 해수부 장관이 기획한 것이다. 사업의 수립·집행 등 전 과정에 시민이 직접 참여해 기획·조언·감시자 역할을 하는 형태다. 부산 북항과 인천 내항, 포항 구항 사업을 시민참여형으로 진행 중이다. 지역협의체에는 지역을 대표하는 시민단체나 지역 정치인, 언론, 산·학·연 전문가, 일반 시민 등 이해당사자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이 사업을 통해 지역사회가 얻는 이점은 뭔가.

정 과장: 무엇보다 낙후한 지역경제가 되살아난다. 개발 사업을 통해 얻는 세수도 적지 않아 그 자체만으로도 지역경제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여기에 각종 일자리가 새로 생기는 등 부가가치도 높다. 사업이 끝나면 관광수입까지 올릴 수 있다.

심 대표: 고현항 1단계 사업만 해도 총 투자비 2247억원 중 84.6%인 1900억원이 지역에 부족한 배수펌프장·도로·파출소 등 기반시설을 확충하는 데 쓰였다. 여기에 1단계 사업에 대한 취득세 등 세금도 1280여 억원에 이른다. 향후 사업지 내에 각종 건축물이 올라가면 거제시는 세금으로만 5000억원 이상을 걷게 된다.

다시 원론적인 얘기로 돌아가 보자. 결국 이 사업은 민간 사업자·투자자를 유치해야 시작할 수 있는데, 이를 위한 전략은.

정 과장: 진행 중이거나 계획 중인 사업장은 저마다의 지구계획을 수립해 차별화를 꾀하고 있다. 예컨대 북항은 마리나(요트 등을 위한 항만)를 중심으로 한 관광중심지구로 개발해 향후 동북아의 해양관광 중심지가 되게 한다는 식이다. 이렇게 각 사업장을 특화하면 민간 자본 유치에 큰 어려움은 없을 것 같다.

심 대표: 고현항도 그렇지만 항만이라는 곳이 기본적으로 바다를 끼고 있고 철도·도로가 잘 연결돼 있다. 접근성이 갖춰진 지역 노른자위 땅인 셈이다. 그러다 보니 호텔 등을 짓고 싶어 하는 투자자가 적지 않다. 이 덕에 고현항 1단계 부지는 이미 100% 분양됐다. 2단계 부지도 50% 이상 팔려나갔다. 거제는 특히 조선업계가 살아나고 있고, 서울·수도권에서의 접근성이 좋아져 해양관광 중심지로의 성장 기대감이 크다.

전 실장: 건축을 위한 각종 인센티브도 주고 있다. 북항은 특별건축구역이어서 용적률 상향은 물론 건축법·소방법상 25가지 규제에 대해 전부 또는 일부 완화된다. 여기에 북항을 경제자유구역으로 지정해 취득세 등의 조세 감면 혜택 등도 줄 계획이다. 이미 정부의 제2차 경제자유구역 기본계획(2018~2027년)에 포함됐고, 내년께 지구 지정이 이뤄질 예정이다.

투자 유치 위한 인센티브 고려해야

앞으로 항만 재개발 사업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기 위해 더 필요한게 있다면.

정 과장: 민간 기업과 주민의 관심이다. 누구 하나 잘 살자고 하는 사업이 아니라, 낙후한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민간이 손을 잡고 추진 중인 사업이므로 무엇보다도 주민의 관심과 지지가 필요하다.

김 교수: 주민의 관심과 지지를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하펜시티를 참고할 만하다. 함부르크시는 재개발 사업을 알리기 위해 아파트 견본주택 같은 것을 지어놓고 주민 누구나 와서 볼 수 있도록 했다. 또 지속적으로 주민에게 자료와 정보를 공개하는 등 투명성을 높였다. 우리도 이런 시도를 해볼 만하다.

심 대표: 정부와 민간 사업자 간의 협업 역시 중요한 문제다. 개발은 민간이 하지만, 정부 지원이 없이는 불가하다. 세제 지원이나 투자 유치를 위한 인센티브 등을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1461호 (2018.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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