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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S 2019를 가다] 보는 CES, 보이지 않는 CES 

 

라스베이거스(미국)=임문영 IT칼럼니스트
하드웨어적으로 ‘뭔가 새로운 것’ 적어… 유레카존의 번득이는 아이디어, 새로운 발상 주목

▎CES 2019 개막 이틀째인 1월 9일(현지시간)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샌즈 엑스포에서 관람객들이 전시관으로 이동하고 있다.
300년 전 스페인 사람들이 아메리카 대륙 서부의 황량한 사막의 평야지대에 초원이라는 뜻으로 라스베이거스(LAS VEGAS)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리고 다시 세월이 흘러 80여 년 전 마피아 두목 벅시가 애인 버지니아 힐을 위해 이 사막 한가운데 플라밍고 호텔을 짓고 카지노 도시를 만들었을 때도 이곳에서 미래를 위한 세계적인 잔치가 벌어질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는 50년 넘는 기간 동안 이 황량한 카지노 도시에 미래를 향한 꿈과 열정을 전시해 세계의 많은 기업과 사람을 불러들이고 있다. 세계 최고의 혁신과 첨단 기술을 볼 수 있는 이 전시회는 올해도 어김없이 1월 7일부터 11일(현지시간)까지 열렸다. 올해도 어떤 기술, 어떤 비즈니스가 소개될지 세계의 관심이 쏠렸다. 그러나 올해 CES는 예전에 비해 환호성이 터질 만한 ‘뭔가 새로운 것’은 없었다. 미국 기술주 전성시대가 흔들리고 있고 미·중 무역전쟁과 미국 경기 후퇴 등이 겹치면서 CES 자체도 정점을 지난 것 아닌가 하는 이야기가 나올 만했다. 나올 만한 기술은 이미 다 나와서 약간씩 개선되거나 바뀌는 것 외에는 깜짝 놀랄 만한 것이 없었다는 게 대체적인 관전평이다.

나올 만한 기술은 다 나왔다?

전시회라는 특성상 보여주는 게 중심이 될 수밖에 없어서일까? 대부분 눈에 띄는 것은 결국 하드웨어 제품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한국의 삼성과 LG는 단연 독보적인 경쟁력을 보여줬다. 두 회사는 늘 자존심 경쟁을 해왔다고 하는데 이번에는 LG가 한발 앞섰다는 데 이견이 없을 것 같다. 화면을 말아서 수납할 수 있는 TV를 살 수도 있겠다는 것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스타는 늘 새로운 이름과 어휘를 끌고 다닌다. 그런 점에서 LG는 성공한 셈이다. 롤러블이라는 영어단어를 번역하기 어려운 네티즌들은 이미 손쉽게 ‘김밥말이’ TV라는 애칭을 붙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휘어지는 화면으로 구성한 웅장한 LG의 터널식 전시관은 기술의 새로운 가능성을 체감하게 했다.

삼성의 8K 아몰레드 TV 역시 수많은 참관객의 발길과 눈길을 붙들어 맸다. 아마존의 알렉사를 비롯한 인공지능 스피커, 갈수록 진화하는 자율주행차, 소파와 가구, 스포츠에까지 파고드는 사물인터넷, 증강현실(AR)과 가상현실(VR)을 합쳐 확장현실(XR)로 진화해가는 가상현실 서비스 등 대표적인 트렌드들이야 지난해에도 나왔고 올해도 반복되는 것이니 축적의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어쨌든 IT거인들은 탈것, 볼 것, 체감할 것, 똑똑해질 것에 모든 것을 쏟아붓고 있는 모양새다.

최근의 IT트렌드는 한마디로 정리하면 ‘IT가 현실과 얼마나 긴밀하게 연결될 수 있을 것인가’라는 점이다. 그것은 컴퓨터와 인터넷의 발전이 지금까지 가상세계 안에서 나름의 자기 완결성을 가져왔다면, 이제 현실과 만나는 접점에서 그것이 얼마나 효용성을 갖느냐 하는 문제로 바뀐 것을 의미한다. 마치 컴퓨터 속의 반도체와 전자칩이 팝콘처럼 튀어나와 세상의 모든 것에 박히기 시작하는 모습이다. 그래서 CES의 첨단 제품들은 얼핏 대기업을 제외하면 싸구려 중소기업 전자제품 전시회 같아 보인다. 하지만 1970~80년대의 전자제품들과 다른 점은 모든 것에 새로운 트렌드가 포함돼 있다는 사실이다. 인공지능, 데이터 분석, 네트워킹이 포함돼 있는 것이다. 그래서 조명등 하나도 사람의 동작을 인식하고, 흔한 이어폰도 반복적인 노이즈를 제거하며 쉽게 볼 수 있는 롤러 보드에도 퍼포먼스 분석 기능이 들어가 있다. 자전거 자물쇠 하나에도 위치 인식과 센서가 포함돼 있으니 이제는 전자시대가 아니라 똑똑한 시대라고 할 만하다.

주로 IT대기업들이 미래에 대한 컨셉트와 세상을 주도할 신기술 제품을 소개하는 컨벤션 센터에 몰려 있는데 반해 서쪽의 샌즈 전시장에는 유레카(아이디어가 떠올랐을 때 지르는 탄성)존이 따로 있다. 주로 스타트업과 대학생 등 번득번득한 아이디어와 새로운 발상, 기술을 가진 기업이 모여 있는 이곳이 사실 훨씬 재미있고 현실적인 사업을 전시한다. 투자자들은 이곳에 나온 아이디어와 회사를 헌팅하는 것이 주요 목표다. 부스는 작지만 그래서 끊임없이 제품 홍보를 하는 사람들과 문의하는 사람들의 대화가 이뤄지는 곳이다. 바비큐가 익었는지 찔러보면 온도를 감지해서 알려주는 쇠꼬챙이, 사람이 누우면 알아서 TV를 틀어주는 소파, 무선으로 물속을 돌아다니며 촬영해주는 드론, 보드게임인데 화면 위에서 직접 말을 움직이며 노는 스마트 보드게임, 사람의 동작을 분석해서 로봇작업으로 최적화시키는 솔루션…. 수없는 아이디어 제품이 나와 있다.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5G와 같은 핵심 기술과 인프라를 응용한 이런 제품과 서비스는 그러나 아직 현실속에서 기존 제품과 서비스의 구현 비용보다 더 경제적이고 쉬운 방법으로 더 많은 유용성을 체험하도록 해야 하는 난관이 남아 있는 것 같다.

1년 중 최대 행사를 치르는 라스베이거스의 전시장은 물론 잘 꾸며져 있다. 원래부터 치안이 좋기로 유명한 라스베이거스지만 안전을 위한 경비요원, 안내 데스크, 친절한 사람들, 우버와 택시 등 다양한 교통수단, 무료 셔틀버스, 카지노 기계들과 쇼 프로그램이 즐비한 화려한 호텔 등이 많은 사람과 많은 전시 서비스를 감당할 만한 원동력이다. 특히 세계적 규모는 새삼 전시 비즈니스에 탁월한 미국의 힘을 느끼게 한다.

새로움에 대한 강렬한 호기심

그러나 CES를 관람하는 것은 참으로 힘겨운 일이다. 라스베이거스로 가는 직항 항공편이 있다고 하나 CES 기간에는 수많은 사람이 방문하기 때문에 항공편 예약과 호텔 예약이 쉽지 않다. LA에서 새벽에 버스를 타고 달려온 사람도 부지기수다. 그나마 비행기로 가는 사람도 10시간 넘는 비행시간 동안 좁은 좌석에 갇혀 있어야 하고, 경유지에서 오랫동안 대기해야 한다. 시차도 적응하지 못한 상태에서 호텔 체크인 시간까지 맞지 않으면 길에서 씻지도 못하고 지쳐 있는 경우가 많다. 엄청난 인파 속에서 뷔페식사를 기다리거나 전시장 바닥 카펫의 눈에 보이지 않은 먼지에 시달리고 짜고 거친 패스트푸드로 전시장 한쪽에서 식사를 때워야 하기도 한다. 축구장 30개를 붙여 놓은 듯한 전시장의 규모를 인파 속에서 돌아다니다 보면 다리와 허리에 무리가 갈 정도다. 그럼에도 멀고 먼 북아메리카까지 국내에서만 무려 8000여 명의 참관객이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세상의 변화를 직접 목격하고 뒤떨어지지 않고자 하는 우리의 비즈니스 정신, 새로움에 대한 강렬한 호기심, 열정이 뒷받침되고 있기 때문 아닐까?

1468호 (2019.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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