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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수의 이솝투자학] 레몬 시장에서 복숭아 고르는 법 

 

역선택과 ‘나그네와 헤르메스’… 역발상 투자로 대응하는 역선택 문제

나그네가 먼 길을 떠나게 됐다. “길을 가다 병이라도 나면 어떻게 하지? 더구나 산길에서 강도를 만나기라도 하면 큰일이잖아.” 나그네는 여러 가지 걱정 때문에 자꾸만 망설이고 있었다. 하지만 여행을 그만둘 수 없었다. 그래서 헤르메스 신에게 기도를 드리기로 했다. “헤르메스 신이여. 저는 이번에 길고도 험한 여행을 떠나게 됐습니다. 이번 여행을 무사히 마치게 되면 여행 중에 얻는 것은 무엇이든 절반으로 나누어서 당신에게 바치겠습니다”라고 약속했다. 나그네는 기도를 마치고 길을 떠났다. 힘은 들었지만 기도 덕분인지 여행은 순조로웠다. 그러던 어느날 나그네는 들길을 걷다 커다란 자루를 발견했다. 그는 얼른 그 자루를 집어들었다. “혹시 돈이 든 자루가 아닐까.” 그러나 자루를 열어봤지만 그속에는 땅콩·아몬드·대추야자 등 먹을거리만 잔뜩 들어 있었다. 실망했지만 배가 고팠던 나그네는 허겁지겁 자루 속에 들어 있는 열매들을 꺼내 맛있게 먹었다. “참, 헤르메스 신에게 절반을 바치기로 약속했지.” 갑자기 헤르메스 신과의 약속이 생각난 나그네는 자기가 먹고 버린 열매 껍질과 씨를 부지런히 모아 제단 위에 가지런히 올려 놓았다. “헤르메스 신이여, 제가 발견한 것의 절반입니다. 껍질과 씨를 당신과 함께 나누었으니 저는 약속을 지킨 것입니다.”


▎사진 : ©gettyimagesbank
사람들이 나그네와 같은 잔꾀를 부리면 헤르메스 신전은 순식간에 음식물 쓰레기로 뒤덮일 가능성이 크다. 헤르메스 신은 주운 것을 절반으로 나누기는커녕 알맹이만 쏙 빼먹고 껍데기와 씨앗만 바치리라곤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어쩌랴, 약속은 약속이니 받아들일 수밖에. 이런 헤르메스의 입장은 ‘역선택’이라고 볼 수 있다. 상대에 대한 정보가 어둡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현실 세계에서도 역선택의 문제가 난무한다.

1966년 영국의 로이즈 보험회사는 ‘순결보험’이라는 신상품을 출시했다. 당시 이탈리아 독신여성들이 독일 등으로 유학이나 취업을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딸을 멀리 보내는 부모 입장에선 해외로 간 딸의 순결 문제가 생기는 것을 염려했다고 한다. 이탈리아 시칠리아에 살던 한 남자가 처음 이 영국 보험회사에 딸의 순결을 보험에 가입하고 싶다고 요청했다. 보상 내용은 ‘서독으로 취직이 돼 떠나는 딸이 귀국했을 때 이전 상태가 아니라면 보험금을 지급해달라’는 것이었다. 이후 많은 고객을 유치해 순결보험은 성공을 거두는 듯했다. 실제 여러 보험사도 비슷한 상품을 내놨기 때문이다. 그러나 몇 년 후 이 보험이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왜냐면 보험사들이 원했던 고객은 딸을 해외로 보낸 부모였지만, 실제 이 보험을 든 것은 평소 품행에 문제가 있던 딸의 부모였던 것이다. 보험사들은 보험금으로 엄청난 손실을 보자 상품 자체를 없애 버렸다.

순결보험은 역선택의 쓰라린 결과를 보여준다. 2001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미 캘리포니아대 조지 애컬로프 교수는 역선택이 시장의 효율적 기능을 어떻게 저해하는지 자세히 설명했다. “중고차 시장에서 중고차를 파는 사람은 자신이 팔려는 차가 레몬인지 복숭아인지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중고차를 사는 사람은 그것을 모른다. 그래서 중고차를 사는 사람은 가격을 책정할 때 레몬과 복숭아의 사이 어느 선에서 결정할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중고차를 파는 사람이 자신의 차가 복숭아라면 어떨까. 제값을 받지 못할 가능성이 큰 만큼 급전이 필요하지 않은 이상 팔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레몬이라면. 수익이 나는 구조이므로 중고차 시장에 매물로 내놓는다. 중고차 시장이 복숭아는 거의 없는, 레몬으로 가득 찬 레몬가게가 되는 건 그래서다. 복숭아를 원하는 중고차 구입자는 질이 떨어지는 레몬 가게에 등을 돌리기 시작할 것이고, 이윽고 중고차 시장은 제대로 된 기능을 하지 못할 것이다.”

중고차 시장의 레몬과 복숭아

애컬로프 교수는 중고차 시장에서 역선택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구매자와 판매자 간의 ‘정보비대칭’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역선택의 문제는 주식시장에서 더 크게 나타난다. 중고차 시장보다 주식시장에 유통되는 정보가 압도적으로 많아, 어떤 것이 가치를 지닌 진정한 정보인지 구분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만약 투자자가 이윤이 높고 위험이 적을 것으로 예상되는 우량 기업과 이와 반대로 이윤이 낮고 큰 위험이 예상되는 불량 기업을 구분할 수 있는 사전 정보가 전혀 없다면 이들 기업의 평균적인 상태를 반영한 가격만을 지불하려 할 것이다. 이 경우 우량 기업 소유자는 자신의 주식이 너무 저평가됐다고 판단하고 팔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결국 기업은 증권시장에서 자본을 조달하지 못하는시장실패가 발생하게 된다.

이런 역선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기업에 관한 상세한 정보를 제공해 정보비대칭의 장막을 걷어내야 한다. 신용평가 회사가 기업의 재무상태나 투자활동 등의 정보를 수집해 판매하고, 투자자는 이를 구입해 투자의사결정에 활용하는 방법이 있다. 하지만 이는 기업의 정보를 구입한 투자자를 따라 저평가된 기업의 주식을 구입하는 ‘무임승차투자’가 생기게 된다. 이 때문에 신용평가회사는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수준의 기업 정보 수집과 판매를 할 수 없게 된다. 이런 무임승차투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금융당국은 공개시장에 주식을 매각하는 기업이 회계원칙을 준수하고 매출·자산·이익 등에 관한 정보를 낱낱이 알리도록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재무상태가 불량한 기업들이 장부를 왜곡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역선택 문제를 완전히 제거할 수 없다. 이런 정보비대칭 상황에선 개인 투자자들은 장기 투자를 하기 어려워 단기 매매에 매달리는 경향을 보인다. 그러나 이 역시 투자 위험을 낮출 수 있을지 모르지만 수익률을 높이는 전략과는 거리가 멀다.

탐욕을 팔고 공포를 사라

미국 월가의 투자분석가 데이비드 드레먼은 저서 [역발상 투자전략]에서 경마도박사를 대상으로 실험을 했더니 받는 정보가 늘어날수록 우승마를 맞추는v 확률이 높아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주식시장에서도 정보가 늘어난다고 매매를 많이 해봐야, 투자성과는 나아지지 않고 오히려 비용을 제외한 순수익률은 떨어진다는 것이다. 실제 한 국내 증권사가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지난 한 해 동안 매매회전률이 가장 높은 고객 그룹의 수익률은 마이너스 4.98%였는데, 매매회전률이 가장 낮은 그룹은 무려 12%의 수익률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역발상의 사전적 의미는 ‘인간의 본성에 반하는 생각’이다. 따라서 역발상투자는 상식적인 투자방식을 거스르는 투자법 정도로 이해된다. 그 기본 개념은 “전문가와 대중이 추종하는 주식은 피하고 그들이 기피하는 주식을 추종한다”는 것이다. 극단적으로 말해 비웃음과 조롱을 받는 주식, 사는 자체가 미친짓이란 소리를 듣는 주식이다. 주식시장은 이제 탐욕의 시대가 저물고 공포의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는 전문가가 많다. 그렇다면 드레먼이 말하는 역발상 투자가 빛을 발하는 시기가 다가오고 있는 건 아닐까.

※ 필자는 중앙일보 ‘더, 오래팀’ 기획위원이다.

1478호 (2019.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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