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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본 시카고, 시카고에서 본 미국] 아무리 인기 있는 제품도 ‘솔드아웃(sold out·품절)’ 드물어 

 

시카고=김자영 통신원
연금재정 메우려 세일즈택스 최대 10.25% 부과… 2시간 거리 밀워키로 원정 쇼핑 떠나는 사람 많아

▎미국의 유명 백화점 놀드스트롬 시카고 미시건 애비뉴 지점에서 구매하는 모든 물건에는 10.25%의 세일즈택스가 부과된다. / 사진:김자영
미국의 대도시 로스앤젤레스·뉴욕·샌프란시스코에서 살다 시카고로 이사를 오면 가장 반가운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상대적으로 이들 도시보다 싼 집값이다. 시카고는 로스앤젤레스와 비교해보면 다운타운에서 걸어서 어디든 갈 수 있는 최적 입지의 아파트 월세가 정확히 두 배의 차이를 보인다. 흔히 서울에서 1인가구가 사는 33㎡ 내외의 오피스텔에 해당하는 스튜디오에 살려면 로스앤젤레스 중심에서 200만~300만원의 월세를 내야 한다. 이와 달리 시카고에서는 비슷한 입지에서 100만~150만원에도 해결할 수 있다. 시카고에 처음 둥지를 틀면 모두가 한결같이 집값에 대한 부담이 적은 덕분에 만족감을 느낀다. 하지만 이것도 잠시, 시카고에서의 체류기간이 늘어날수록 다른 부담이 어깨를 누르는 것이 있다. 바로 장바구니 물가다. 이유가 무얼까.

시카고의 장바구니 물가를 높이는 주범은 ‘세일즈택스’이다. 세일즈택스는 우리나라의 부가세 개념이다. 구매자는 재화의 판매자에게 소비에 대한 세금을 내고, 판매자는 그 세금을 그대로 당국에 신고하는 유형의 세금이다. 시카고의 세일즈택스는 미국에서도 높은 축에 속한다. 미국 50개 주 가운데 시카고가 위치한 일리노이주는 주 평균 8.74%로 지난해 기준 7위를 차지했다. 이 숫자는 9위와 10위를 차지한 캘리포니아주, 뉴욕주와 근소한 차이다. 하지만 각 시가 부과하는 세일즈택스로 들어가면 얘기가 달라진다.

미국 50개 주 가운데 일리노이주 7위


▎시카고에 자리한 화장품 전문 판매점 세포라에서 구매한 화장품에 10.25%의 세일즈택스가 부과된 영수증. / 사진:김자영
시카고시의 세일즈택스 구성은 이렇다. 일리노이주 세일즈택스 6.25%에 시카고가 속한 쿡카운티 세일즈택스 1.75%를 더하고 시카고시택스 1.25%와 스페셜택스 1.00%를 더해 10.25%에 이른다. 2015년까지 9.25%였지만 쿡카운티택스가 0.75%에서 1.75%로 올라 2016년부터 시카고의 세일즈택스는 10.25%로 올랐다. 일부 지역은 11%에 이르기도 한다.

비타민을 포함한 의약품과 의료용품 등은 시카고시택스와 스페셜택스를 더한 2.25%의 세금만 세일즈택스로 부과한다. 조리되지 않은 육류, 채소, 과일 등은 1%가 세일즈택스로 붙는다. 라면이나 물과 같은 공산 식료품은 2.25%를 내고 일상생활에 필요한 공산품은 모두 10.25%의 세금을 낸다. 옷이나 가전제품 등도 똑같이 10.25%의 높은 세금을 내고 구매해야 한다. 많은 품목에 10%가 넘는 세금이 붙다 보니 심리적인 부담까지 더해진다. 왜 시카고 시민들은 이처럼 높은 세금을 내게 된 것일가. 앞서 언급한 쿡카운티의 택스가 높기 때문인데, 쿡카운티는 다른 카운티에 비해 세금을 무슨 이유로 높게 책정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시카고의 세금이 높은 것은 두 가지 정도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 정부나 자치단체도 그렇듯 재정 부족이 높은 세금으로 이어지고 있다. 세무 관련 서비스를 제공하는 포털회사인 아발라라는 시카고의 상위 자치구인 쿡카운티가 연금 재정 부족으로 3년 전 카운티 택스를 높였다고 설명했다. 연금제도의 재원 부족 문제는 쿡카운티 당국에서도 계속해서 의견을 수렴하고 논의가 진행 중인 이슈다. 2016년 쿡카운티의 세일즈택스 인상으로 5500억원이 넘는 연금재정이 충당된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또 다른 이유로 일리노이주의 과세정책이 지적되고 있다. 일리노이주가 서비스 과세에 적극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일리노이주를 포함해 대부분의 미국 주에서는 1933년에 세일즈택스를 부과하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실물 재화에 대해서 세일즈택스를 부과했다. 세일즈택스를 부과하는 세제정책은 생각보다 잘 자리를 잡아갔다. 하지만 실물재화를 중심으로 이뤄지던 산업의 형태가 변하면서 세수도 줄기 시작했다. 세일즈택스를 적용하던 초기에는 농업이나 도축을 중심으로 생산의 허브 역할을 했기 때문에 세금도 그만큼 높게 걷을 수 있었지만 4차 산업혁명의 시대까지 이어지면서 상품보다는 서비스에 중점을 둔 산업이 발달해 세수가 크게 줄어든 것이다. 미국 과세당국에 따르면 서비스 판매는 최근 일리노이주 경제의 72%를 차지한다. 이들 대부분은 세일즈택스가 면제인 상황이다. 일리노이 인근 주들은 발빠르게 서비스 판매에도 세일즈택스를 부과한 것과는 조금 다른 행보를 보였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부족한 세수를 메우기 위해 소속 시와 카운티가 걷을 수 있는 세금 항목에서 최대치를 징수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 최근 시카고는 ‘클라우드택스’라는 세일즈택스 항목을 만들어 넷플릭스, 플레이스테이션과 같은 스트리밍서비스 이용자에게 새로운 세금을 부과하기 시작했다.

시카고에서는 무거운 세일즈택스를 피하기 위해 인근 주를 방문하는 쇼핑족 비중이 크다. 시카고에서 2시간 거리인 밀워키가 대표적인 쇼핑도시다. 위스콘신주인 밀워키가 가기 쉬운 데다 위스콘신주는 정기적으로 프리택스데이(Free Tax day)를 정해 ‘쇼핑의 날’ 행사를 하기도 한다. 이 기간에는 세일즈택스를 아예 붙이지 않기 때문에 이때를 노려 밀워키로 쇼핑여행을 떠나는 사람이 많다. 또 일부 주, 일부 상점에서는 쇼핑을 하고 타주로 우편배달을 시키면 세금을 면제해주는 경우도 많아 타주 쇼핑을 즐기는 젊은이가 많다. 일부 쇼핑족들은 세일즈택스를 피하기 위해 온라인 쇼핑을 즐기기도 한다. 노트북과 같은 비싼 가전제품 등을 온라인 몰을 통해 구매하면 세금을 피할 수 있어 최종 구매금액의 차이가 꽤 크다.

전통의 부자 도시에서도 ‘아이쇼핑’만

하지만 이것도 옛말이 됐다. 지난해 일부 온라인 유통 업체를 상대로 세일즈택스를 걷어야 한다는 대법원의 판결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10월부터 일리노이주를 비롯해 캘리포니아 텍사스 뉴욕 등이 모두 적용에 들어갔다. 아울러 시카고는 부동산 보유세나 자동차 등록세도 상대적으로 비싸 시민들의 볼멘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온다. 일부에서는 각종 세금이 너무 높다 보니 중산층들이 다운타운에서 밀려나 원하지 않는 이주를 하는 부작용에 대한 불만도 나오고 있다.

미국의 오래된 부자들이 대대로 살아 유명한 시카고에서는 명품 매장이나 유명 브랜드 매장에서 인기 제품을 쉽게 구할 수 있다. 그러나 쇼핑을 하려다가도 세후 가격을 보면 가격의 앞자리가 달라지면서 체감상 물건 가격이 상당히 비싸게 느껴진다. 그래서일까. 유독 인기 제품의 솔드아웃(품절)을 보기 힘든 곳이 바로 시카고다. 점원과의 다음과 같은 대화도 흔하다. 시카고의 세일즈택스가 비싸서 사지 못하겠다고 하면 예상했다는 듯 대답이 돌아온다. “맞아요. 그래서 다들 구경만 하고 사질 않아요. 다른 도시로 쇼핑을 가죠. 그 마음 충분히 이해합니다(웃음).”

1486호 (2019.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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