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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의 경제학] 미국의 사회적 비용 연간 7조7000억원 

 

영국은 지난해 담당 부처 신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 “싱글 남성, 외로움이 가장 큰 걱정”

▎사진:© gettyimagesbank
외로움의 경제적 비용은 얼마나 될까? 외로움이라는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과 경제라는 집단적 개념이 과연 상존할 수는 있을까? 미국과 영국 정부는 두 질문에 모두 그렇다고 답한다. 미국 국립노화연구소(National Institute of Ageing, NIA)는 은퇴자를 대상으로 한 보고서에서 외로움으로 발생하는 추가 비용이 매년 70억 달러에 달한다고 주장한다. 영국은 자영업자들 위주로 400만 명 이상의 회원을 지닌 생활협동조합(Co-ops) 보고서를 통해 외로움으로 인한 추가 비용이 매년 25억 파운드(약 30억 달러)가 발생한다고 주장한다.

외로움이 추가적인 비용 초래


하지만 한국에서는 외로움이 경제적인 비용을 초래한다는 것은 고사하고 이를 인정한다는 것 자체를 지고 들어가는 싸움으로 간주한다. 특히, 한창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면 외로움이란 경쟁상대로부터 짓밟히기 쉬운 약점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비용은 주로 의료비용으로 잡히지만, 영국의 경우 더 자세한 명세서가 있다. 영국 생협은 외로움으로 인한 병가와 관련 의료비용으로 2000만 파운드, 외로움 때문에 병을 앓는 이들을 간호하느라 일을 하지 못하는 비용이 2억2000만 파운드, 이와 관련한 생산성 하락으로 6억6500만 파운드, 그리고 이와 관련해 자발적으로 퇴사하는 직원들과 관련된 간접 비용으로 16억2000만 파운드가 든다고 설명한다.

한국에서 외로움은 종종 여성의 전유물로 (부당하게) 여겨져왔다. 다르게 얘기하면 남성들은 외로움을 남성성의 반대에 있는 나약함이자 약점이라고 취급해왔다. 증거는 없다. 통계도 없다. 이렇게 큰 오해도 없다. 외롭다는 동사의 성을 굳이 나눈다고 가정하면 여성도 남성도 아닌 중성일 거다. 프랑스의 대표적인 문학상인 공쿠르 상을 본명과 가명으로 두 번이나 받은 유일한 소설가인 로맹 가리는 남자들의 외로움을 단 한 문장으로 표현한다. 로맹 가리의 단편 소설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에서는 “그는 테라스로 나와 다시 고독에 잠겼다”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주인공은 페루 해변의 유일한 카페를 운영하는 마흔일곱의 남자다. 그는 아침에 일어나 테라스로 나와서 커피 한 모금, 담배 한 입도 대기 전에 벌써 고독에 잠겨야 하는 사람이다. 고독, 즉 외로움과 연결되는 건 항상 희망이다. 이 주인공은 하루에도 몇 번씩 고개를 들려는 희망을 억누르는데 필사적이다. 적어도 그가 겪어온 세월 동안 희망의 끝은 항상 절망과 외로움이었기 때문이다. 오래 전에 쓰여진 짧은 단편소설이지만, 묘하게 2019년의 한국의 모습과 겹쳐진다.

외로움의 남녀평등적 발생의 증거는 많은 곳에서 발생한다. 편차는 있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가 최근 펴낸 2019 한국 1인가구 보고서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남녀 간 차이가 나는 것은 1인가구 생활의 고충이다. 오히려 혼자 사는 남성이 미혼의 여성보다 외로움을 더 큰 문제로 느낀다. 30대 이상의 남자들은 모두 ‘외로움’이 가장 큰 걱정거리라고 답했다. 20대 남성들조차 경제 문제에 이어 외로움을 2위로 꼽았다. 하지만 여성의 경우는 20대 이후 전 연령층에서 경제문제를 가장 큰 걱정거리로 꼽았다. 외로움은 30대에서만 2위를 기록했고 20대는 3위로, 40대는 4위, 50대는 3위로 꼽았다. 이런 결과는 ‘결혼 의향이 없는 1인가구’ 비율에 잘 나타나 있다. 여성은 20대 4.2%에서 40대 29.5%, 50대는 무려 45.1%가 결혼 의향이 없다고 답했다. 이와 달리 남성의 경우 이 비율이 20대 8.2%, 30대 6.3%, 40대 18.6%, 50대 24.3%로 조사됐다.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1인가구는 2017년 현재 약 562만 가구로 국민 100명 중 11명이 1인가구다. 우리 총인구는 2028년을 기점으로 감소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미혼율은 계속 상승하면서 1인가구 수는 인구 감소 시점 이후에도 계속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혼자 사는 사람들은 전국 곳곳에 퍼져있다. 꼭 서울과 같은 대도시만의 문제가 아니다. 1인가구 비중은 서울을 포함한 전국 9개 지자체에서 30%를 넘어섰다. 특히 남성 1인가구가 꾸준히 증가하면서 1인가구의 남녀 비율은 이제 사실상 거의 동등한 수준이다. 평생 결혼하지 않는 생애미혼율이 한국 남성의 경우 2015년 약 11%로, 일본의 20년 전과 유사한 수준을 보였다. 무엇보다 1인가구의 경제력은 예상에 한참 미치지 못 한다. 한국의 1인가구 순자산은 약 1억3000만원이고, 빚은 2100만원으로 순자산은 불과 1억원을 조금 넘는 수준이다. 1인가구는 주거비용, 음식, 식료품 순으로 지출 비중이 컸다. 기존 4인가구가 교육비 등에 큰 돈을 쓰고 있는 것과는 다르다. 1인가구는 경제력이 조금씩 좋아지고 있다고는 해도 가구별로 보면 가장 경제적으로 취약한 계층이다. 그런데도 남성들의 경우 대부분 경제 문제보다 외로움을 더 큰 걱정이라고 느끼고 있다. 하지만 국내에선 미국과 영국처럼 외로움을 사회문제로 보고 경제적 비용을 산출하려는 시도는 아직 없다. 영국이 지난해 외로움 담당 부처를 지정하고 장관을 겸직 형태로 임명했는데, 국내 언론이 이를 가십 형태로 다룬 데서 외로움이 경제적 문제라는 인식을 전혀 못 하는 상황이다.

현재 1인가구 중에서 앞으로도 10년 이상 혼자 살 게 될 것이라고 예상하는 이들의 수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특히 혼자 사는 생활에 만족하는 여성이 굉장히 많다. 보고서는 “최근 사회 분위기도 혼자 사는 삶을 개인의 선택이고,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럽게 겪는 과정으로 받아들이는 흐름이 감지된다”고 주장했다. 결혼에 유보적인 태도를 보이는 경우가 여전히 많기 때문이다. 결혼 계획이 없는 1인가구가 직장생활 등 생업과 취미활동, 여행 등에 많은 시간과 비용을 쓰고 있지만 여전히 외로움은 남녀 모두 가장 큰 걱정 거리 중에 하나다. 혼자 사는 이들은 자신들의 생활에 만족감을 표하는 경우가 60%였다. 경제적 만족도가 가장 높은 40대 남성 1인가구의 생활 만족도는 오히려 20대 여성들보다도 낮았다. 보고서는 “1인가구는 현재 ‘외로움’ 해결에 고군분투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생활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여성들은 다른 사람을 찾아보면서 사회에서 고립되지 않는 모습을 보였지만, 남성들은 최대한 스스로 해결하려는 경향이 강했다.

외로움에 처하는 이유까지 경제적 문제

호주에서도 외로움을 사회 문제로 놓고 해결하려는 정부의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지난해 10월 ‘영국 외로움 담당 부처가 호주의 사회적인 고립을 막을 방법을 제안했다’는 기사에서 “호주 빅토리아주 주의회 의장이 외로움은 심각한 문제이며 정부의 개입이 필요하다고 인식하고 있다”며 주정부 차원에서 영국처럼 외로움 담당 부처를 만들기 위한 작업에 들어갔다고 보도했다.

- 한정연 기자 han.jeongyeon@joongang.co.kr

1493호 (2019.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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