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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학각색(各學各色)’ | 한국의 미래 흔드는 저출산 해법은 - 인류학] 미래 인구에서 현재 사람으로 관심 돌려야 

 

생산인구 감소로만 보는 편협한 시각… 환영받지 못하는 출산도 많아

통계청이 최근 발표한 2018년 출생 통계를 보면 지난해 출생아는 32만6800명으로 1970년 통계 작성 이래 가장 적었다. 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를 뜻하는 합계출산율은 통계 작성 이래 처음으로 1.00명에 못 미치는 0.98명으로 떨어졌다. 저출생 현상이 국가적 문제로 대두한 2000년대 초반 이래 출생률을 높이기 위해 온갖 조치를 취했지만 결국 2000년 63만4500명에 이르던 출생아 수가 20년 만에 반으로 줄어든 결과를 받아들게 된 것이다.

뾰족한 수가 있을 것 같지 않은 상황에서도 여러 전문가들과 지자체는 대안을 내놓고 있다. 청년 행복이 열쇠다, 육아에 친화적인 일·가정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지방을 살려야 한다, 성평등한 사회를 이뤄야 한다 등의 진단 겸 처방이 이어진다. 하나하나 들어보면 모두 충분한 근거를 가지고 있고 필요한 정책이지만 과연 이것으로 출생률을 올릴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일 수밖에 없다. 딱히 새로울 것이 없는 데다 출생률 저하에는 여성 한명이 출산하는 아이의 수뿐만이 아니라 출산 가능한 연령대의 여성 수 자체가 줄어들고 있는 현실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인구 위기를 바라보는 인류학의 시각은 무엇인가. 인간의 가치와 행위가 보이는 다양성에 주목하는 학문이지만, 그중에서도 왜 인구가 문제가 되는지를 탐구하는 시각을 참조할 필요가 있다. 인구가 국가 통치의 중요한 영역으로 등장한 것은 19세기 이후이다. 인구는 경제 발전에 부합하는 가장 적정한 사람의 수를 산출하고 수명과 건강을 관리할 수 있도록 하는 객관적 지식의 문제로 받아들여졌지만, 그 시작과 끝은 언제나 정치였다.

현재 한국의 인구 위기론 역시 단지 낮은 출생률의 문제가 아니다. 외환위기 이후 ‘중단 없는 경제 성장’이라는 신화가 무너지고, 공동체의 미래를 담지하고 있다고 간주되는 아이들이 더는 충분히 태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에 대한 위기감에서 출발했다. 생산인구가 줄어들면 국가와 민족의 미래가 불안하다는 발상 탓에 정부가 다양한 문제에 대한 대응책을 모두 저출산 대책이라는 이름으로 포괄하게 됐다.

문제는 현재의 저출산 위기론이나 그에 대한 대책 자체가 생산인구 감소에 대한 불안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에 대책 주도권을 경제 부처가 장악하고 국가 경제의 논리로 평가하게 됐다는 점이다. 청년세대의 주거권, 보육시설 확보, 성평등은 저출산 문제가 아니라도 해결해야 하는 과제다. 이런 여러 의제를 모두 출생률을 높이는 도구로 만들어버려 저출산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고 사회 문제도 제대로 개입하지 못하는 것이 현재 한국의 상황이다.

페미니스트 인류학자들이 지적해온 또 하나의 문제는 저출산 위기론을 외치는 중에도 모든 사람의 출산이 환영받지는 않는다는 재생산의 정치 문제다. 비혼, 이주자, 장애를 가진 사람들뿐만 아니라, 연령과 성적 지향, 경제적 능력을 고려하면, 현재 한국 사회에서 환영받는 출산은 그리 많지 않다. ‘맘충’이라는 단어에서 보듯이 이성애결혼가정이라고 하더라도 건강한 아이를 누구에게도 민폐 끼치지 않고 규격에 맞는 사회인으로 길러낼 것을 요구받는다. 이런 상황에서 출산지원금을 더 준다고 아이를 낳기는 쉽지 않다.

따라서 아이를 낳고 기르는 일을 국가가 제시한 인구 기획으로부터 독립시킬 필요가 있다. 저출산이 국가나 민족의 위기라고 강조하고 개인들이 기꺼이 그 도구가 되는 일은 더 이상 시대의 흐름에 맞지 않는다. 지금 여기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 자체가 목적이 되게 하고, 생애주기에 따라 지원해서 조금 더 살만하게 만드는 것, 그 이상의 저출산 대책은 없다.

※ 백영경 교수는… 서울대 서양사학과를 졸업하고 대학원에서 영국사를 공부했다. 미국 존스 홉킨스대 인류학과 석사·박사다.

1515호 (2019.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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