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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학각색(各學各色)’ | 한국의 미래 흔드는 저출산 해법은 - 심리학] ‘왜 나만…’이란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후속 출산 포기하는 심리 파악해야 저출산 해결 실마리 찾기 쉬워

어떤 심리적 요인이 한국 여성들의 후속 출산과 관련이 있을까? 최근의 한 국내 연구는 자녀를 출산한 후, 어머니의 결혼 만족도가 높을수록, 그리고 양육스트레스가 낮을수록 후속 출산을 할 가능성이 크다고 밝힌 바 있다. 이런 결과는 어머니의 취업 여부, 그리고 가정 소득의 영향력을 통제하고도 유지됐다. 즉, 눈에 보이는 사회·경제적 지표뿐 아니라 어머니가 자녀를 낳고 키우면서 느끼는 결혼생활에서의 만족도와 양육에서 겪는 스트레스가 후속 자녀를 출산하는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 중 가장 첫 단계는 이런 결혼 만족도 또는 양육 스트레스와 같은 심리적 경험의 본질이 무엇인지 좀 더 면밀하게 살펴보는 일일 것이다. 필자는 최근 공동연구자와 함께 첫 자녀를 출산한 후 후속 출산을 포기한 어머니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경험을 했다. 이들의 출산·양육에 대한 회고에서 불공정성이라는 주제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예컨대, 어머니들은 보육 공백, 일과 가정의 양립, 커리어의 포기, 혹은 독박육아 등의 어려움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런 이야기들은 어쩌면 이제껏 양육의 어려움에 대해 흔히 떠올리기 쉬운 고민들일 것이다. 그러나 좀 더 자세히 이런 경험이 개인 입장에서 ‘왜’ 고통스러운지를 들어보면 그 기저에는 ‘왜 나만’이라는 새로운 이야기가 등장하는 것으로 보인다.

아이가 아파 어린이집에 갈 수 없을 때 ‘왜 나만’ 발을 동동 굴러야 하는가, 야근을 하고 회식에 참석하는게 ‘왜 나에게만’ 이토록 어려운 일인가, 나도 똑같이 공부하고 일했는데 ‘왜 나만’ 커리어를 포기해야 하는가. 어머니들은 보육 공백이나 커리어의 포기 등과 같은 객관적 사실에서 나아가 그런 짐을 자신이 과도하게 지고 있다는 경험을 한다. 이 과정에서 어머니들은 ‘나는 부여된 이 책임을 기쁘게 감당할 만큼 좋은 어머니가 아니다’라는 효능감의 저하를 경험하고, 더 이상 이런 역할을 잘 해낼 수 없다고, 이미 내 아이에게 너무 미안하다는 죄책감을 경험한다.

누군가는 이런 생각을 이기적이라고, 자녀를 키우는 기쁨에 비하면 그런 노력은 당연한 것 아니냐고, 혹은 예전 어머니들은 다 해냈는데 왜 유난이냐고 이야기할 것이다. 그러나 2019년의 여성들은 자신의 삶에서 중요한 가치를 왜 자신만 더 내려놓아야 하는지, 왜 어머니에게 이런 완벽한 양육자의 역할모델이 부여되는지에 대한 합당한 이유를 찾지 못한 것 같다. 육체적, 정신적, 혹은 경제적 어려움 자체보다도, 책임이 유독 나에게만 부여되고 있다는 심리적 경험, 그리고 나는 이를 다 해낼 수 없기에 좋은 엄마가 아니라는 경험 때문에 후속 출산을 머뭇거리게 되는 게 아닐까 싶다.

그리고 이런 불공정성에 대한 기피는 사실 특별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본능에 가깝다. 발달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아주 어린 아기들도 자원 분배가 공정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하며, 각자의 노력에 알맞은 보상이 주어져야 한다고 기대한다. 도덕심리학의 대표적 이론 중 한 이론은 인간은 불공정성에 대한 혐오를 가지고 있다고 본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이런 어머니들의 이야기를 일단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가족 및 사회 구성원들이 후세대 양육에서 저마다 고군분투를 하고 있으며, 또 각자의 어려움을 경험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당면한 시급한 문제 해결에 있어 실제 출산의 의사결정의 주도권을 가진 여성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지 않는다면 우리는 아마도 먼 길을 돌아가야 할지도 모른다. 여성들이, 그리고 어머니들이 ‘아이를 키우는 것은 너만의 책임이 아니야. 내가 같이 할게’를 가정에서, 그리고 사회에서 경험할 때, 저출산의 문제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 진경선 교수는… 한국발달심리학회 평이사다.아동 발달과 저출산 현상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1515호 (2019.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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