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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학각색(各學各色)’ | 한국의 미래 흔드는 저출산 해법은 - 정책학] 양성평등적·가족친화적 문화 조성부터 

 

고용·주택·교육·복지·정치 등에서 불합리한 구조 개선도 필요

개인 또는 부부가 몇 명의 자녀를 가질 것인가에 대한 문제에는 개인적 가치관은 물론 사회적 규범과 경제적 여건, 사회 환경 등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자녀 수는 가장 합리적인 의사결정의 결과로 간주되기도 한다.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은 1983년 2.1명에서 2005년 1.09명으로 낮아졌다. 외국에서는 합계출산율이 1.5명 정도로 낮아져도 ‘충격’으로 받아들여 대책 강구에 고심한다. 외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합계출산율이 아주 낮은 시점에 이르러 출산율 회복을 위한 정책을 펴기 시작했다. 2005년에 저출산·고령사회기본법을 제정하고, 이를 근거로 2006년부터 5년마다 저출산·고령사회기본계획을 수립해 시행하고 있다.

매 기본계획마다 그리고 정부가 바뀔 때마다 기존 정책을 개선하고 새로운 정책을 추가했다. 최근에는 제3차 저출산·고령사회기본계획(2016~2020)을 재구조화해 연관성이 낮은 정책을 정리하고, 정책목표를 출산율 회복 대신 삶의 질을 높이는 방향으로 전환했다. 이런 노력에도 합계출산율은 1.132~1.297명 수준에서 등락을 반복하다 2018년에는 0.98명으로 더욱 낮아졌다.

우리 사회에서는 출산율을 높여야 하는가에 대한 논쟁이 존재하기도 한다. 현 출산 수준이 지속되더라도 이민자나 인공지능·로봇기술로 노동력 부족을 포함한 다양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견해가 있다.

그러나 적어도 두 가지 이유로 출산율 회복이 절실하다. 하나는 지나치게 낮은 출산 수준이 장기적으로 이어지면 기술 발전이나 외국인 노동자 유입 만으로는 급격한 고령화와 인구 감소에서 파생되는 경제·사회·문화적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또 다른 이유는 우리 스스로 결혼과 출산을 희망할지라도 경제적 여건이나 사회·문화적 환경이 허용하지 않아 그런 희망이 좌절되고 있으며, 낮은 출산율은 그에 따른 결과로서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출산율을 회복시킨다는 관점에 못지 않게 결혼과 출산, 양육을 어렵게 하는 장애요인을 제거해야 한다는 관점이 중요하다.

그렇다면 출산율을 높일 수 있는 것일까? 국가나 지역사회가 개인의 출산을 강요할 수는 없다. 그래서 인구정책은 가족정책이나 사회정책으로 변모하고 있다. 명칭에 관계없이 출산율 회복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의도된 정책이 과연 효과가 있었는가? 우리나라에서 지난 15년 동안 추진한 정책은 출산율 회복에 효과가 없는 것으로 판명됐다. 일부 서구 국가들은 정책의 효과로 출산율을 회복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그러나 이들 국가의 출산율 회복은 정책의 효과로만 간주할 수 없다. 전문가들은 출산율을 움직이는 힘은 문화와 사회구조의 변화로 보고 있다. 서구 국가들은 문화를 양성평등적으로 바꾸고, 사회구조를 개선하는데 많은 시간을 투입했다.

현재 우리나라는 개인이 결혼과 출산을 부담 없이 선택할 수 있는 사회구조가 아니고 그런 문화도 조성되어 있지 않다. 노동시장에서는 학력주의와 학벌주의가 만연해 좋은 대학을 졸업하지 않으면 고용기회를 잡기 어렵다. 설사 고용되더라도 승진·임금 등에서 차별받고 있다. 이런 시장구조 탓에 사교육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가부장적 직장문화와 가족문화 탓에 여성은 출산과 양육을 이유로 노동시장에서 불이익을 받거나 배제되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몇몇 미시적인 정책을 추가한다고 출산율을 높이긴 어렵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양성평등적·가족친화적으로 문화를 바꾸고 고용·주택·교육·복지·정치 등에서 불합리한 구조를 개선해 모든 개인이 결혼과 출산 및 양육을 행복 자체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 정책은 촉매제로서, 윤활유로서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 이삼식 교수는…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선임연구위원, 한국인구학회 회장, 대통령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정책운영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했다.

1515호 (2019.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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