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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글로벌의약산업협회 44사 중 14사가 ‘유한회사’] 외감 없이 폐쇄적 운영하는 글로벌 제약기업 

 

전체 외국계기업 평균보다 2배 많아… 공시의무에 ‘유한책임회사’ 전환 가능성도

[이코노미스트]가 진행한 ‘2020년 글로벌 의약산업계 한국 경제 기여도’ 조사에서 맞닥뜨린 한계는 조사 대상인 한국글로벌의약산업협회(KRPIA) 회원사 44곳 중 13곳이 지난해 외부감사 대상이 아니어서 집계에서 제외됐다는 점이다. 주식회사와는 달리 유한회사는 지난해까지 외부감사 대상에서 제외됐다. 이 때문에 이들 기업이 해외 대주주 배당이나 본사 로열티로 얼마를 가져가는지, 법인세를 얼마나 내고 얼마나 많은 기부를 하는 지 등 재무 정보를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는 상황이다. 국내에 진출한 일부 외국계 기업이 정보 공개를 피하려고 법인을 유한회사로 등록해 외부감사를 회피해온 상황이 글로벌 의약품 기업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하지만 이 같은 외부감사 피하기 꼼수는 올해부터 불가능해진다. 2017년 ‘주식회사에 대한 외부 감사법’이 개정돼 유한회사도 일정 규모를 갖출 경우 올해부터는 외부감사 대상이 되고, 공시의무도 생기기 때문이다.

KRPIA 회장사 한국MSD도 ‘깜깜이’ 유한회사


다만 일부 글로벌 기업이 회사를 유한책임회사로 변경해 이를 회피하려는 시도를 보이고 있다. KRPIA 회원사 중엔 아직 유한책임회사로 변화의 움직임이 감지된 곳은 없지만, 기업분할을 예고한 기업에서 이런 꼼수가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현재 KRPIA 회원사의 유한회사 비중은 14곳으로 30%가 넘는다. 이는 국내 외국인투자기업 평균보다 2배 이상 많은 수치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외국인투자촉진법에 등록된 외국인투자기업 중 법인은 1만3315개인데, 이중 유한회사는 1757개로 약 13% 수준이다.

유한회사로 등록된 법인은 길리어드사이언스코리아, 레오파마코리아, 세엘진, 바이오젠코리아, 브라코이미징코리아, 샤이어파마코리아, 알렉시온파마코리아, 암젠코리아, 한국릴리, 한국먼디파마, 한국BMS제약, 한국MSD, 한국존슨앤드존슨판매, 한국애보트 등이다. 이들은 감사보고서가 공시되지 않았다. 주식회사였던 한국애보트는 지난해까지 감사보고서를 공시했지만, 지난해 말 유한회사로 변경한 것으로 확인됐다.

한국법인을 유한회사로 등록한 업체 중 한국MSD는 한국에 진출한 글로벌 제약회사 중 매출이 최상위권에 속한다. 이 회사의 아비 벤쇼산 대표는 KRPIA 회장직을 맡고 있다. KRPIA가 공개한 한국MSD의 2018년 매출은 7285억원에 달하며, 지난해에는 더 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에서 많은 수입을 거두고 있으며, 이익단체의 회장직을 맡아 산업계에 다양한 요구를 하고 있음에도 정작 기업 회계에 있어서는 폐쇄적인 구조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MSD는 1994년 한국에 주식회사로 법인을 설립했는데, 2011년 유한회사로 전환했다. 같은 해 시행된 상법개정안에 따라 사원(투자자)총수 제한과 사원의 지분양도 제한이 완화됨에 따라 이 같은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BMS제약, 한국릴리, 길리어드사이언스 등도 매출 규모가 큰 유한회사로 꼽힌다. 한국BMS제약은 2004년, 한국릴리는 2006년 유한회사로 전환했으며 길리어드사이언스는 설립 당시부터 유한회사였다.

황인태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한국공인회계사회 회장)는 “외국계 기업이 유한회사를 선호하는 이유는 제도와 인식의 차이에서 기인한다고 본다”며 “한국처럼 공시 의무가 폭넓게 적용되는 나라는 많지 않다”고 설명했다.

다만 올해부터는 개정된 외부감사법의 영향으로 일정 규모 이상의 유한회사도 외부감사 대상이 됐다. 외감법 개정으로 유한회사는 현재 주식회사와 공시 의무도 지게 된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유한회사도 주식회사와 같이 전자공시시스템에 사업보고서를 올리게 돼있다”고 설명했다.

물론 향후 대통령령에 따라 공개되는 감사보고서의 범위 등이 조정될 여지는 있다. 개정된 외감법 23조에는 “유한회사의 경우에는 매출액, 이해관계인의 범위 또는 사원 수 등을 고려하여 열람되는 회사의 범위 및 감사보고서의 범위를 대통령령으로 달리 정할 수 있다”고 명시돼있다.

황 교수는 “비상장 기업에 공시의무를 지우는 것이 옳은지에 대해선 고민이 필요하지만 이와 별개로 유한회사와 주식회사는 그 설립 목적이 비슷하기 때문에 외부감사 의무에 차별을 주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이번 개정안의 시행으로 이런 문제는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국MSD 사업분할, 유한책임회사 전환 촉매제?

물론 신외감법에도 사각지대가 존재한다. ‘유한책임회사’가 그것이다. 유한회사에 대해선 외감 및 공시 의무가 지워졌지만 유한책임회사의 경우 여전히 이 같은 의무가 없다. 딜리버리히어로코리아, 이베이코리아, 아디다스코리아, 마이크로소프트5673코리아 등이 유한책임회사로 전환해 규제망을 피하고 있다.

아직 글로벌의약산업계에선 유한책임회사로 전환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진 않고 있다. 하지만 업계에선 한국MSD가 추진하는 ‘법인 분할’에 주목한다. 한국MSD는 지난 3월 법인 분할 계획을 공식화했다. 미국 MSD 본사의 법인 분할에 따른 것으로 오가논이라는 이름의 법인을 신설해 특허만료 약품, 바이오시밀러 사업 부문을 맡게 할 계획이다. 2021년 상반기까지 법인 분할을 완료할 계획이다.

그런데 상법상 유한회사는 주식회사와 같은 ‘법인 분할’ 절차가 없다. 따라서 법인 분할을 위해선 법인을 주식회사로 변경해야한다. 그게 아니라면 새로운 법인을 설립해 사업을 양수하는 방식이 필요하다. 이런 과정에선 법인형태를 유한책임회사로 전환하기가 용이하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한국MSD의 법인 분할이 글로벌 의약산업계의 ‘유한책임회사’ 전환의 시작점이 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본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한국MSD의 사업 분할은 자연스럽게 유한책임회사로 전환할 명분이 될 수 있다”며 “한국에 진출한 글로벌 제약사 중 영향력이 큰 MSD가 유한책임회사로 전환한다면 다른 제약사에도 이 같은 움직임이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한국MSD 측은 어떤 방식으로 법인을 분할할 것이지, 분할 후 만들어지는 법인을 어떤 형태로 설립할 것인지를 묻는 질문에 “내부 방침상 공개할 수 없다”고 답했다.

- 최윤신 기자 choi.yoonshin@joongang.co.kr

1542호 (2020.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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