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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파마의 혁신 동반자 ‘K바이오’] 글로벌 제약사 3곳 중 1곳, 국내서 오픈이노베이션 

 

2016년 9곳에서 2019년 13곳으로 늘어… 해외 진출 돕고 헬스케어까지 협업 확대

▎유한양행 중앙연구소 연구원이 신약개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 사진:유한양행
글로벌 빅파마들이 혁신의 역량을 외부에서 빌리는 ‘오픈이노베이션(개방형 혁신)’을 국내로 확대하고 있다. 2000년대 국내 바이오벤처 붐 이후 20년이 흐른 현재, 국내 바이오·제약 기술 경쟁력이 빠르게 성장한 데 따른 것이다. 글로벌 제약사들은 국내 바이오 기업들이 발굴한 후보 물질에 개발 역량을 지원하면서 신약 개발 기간 단축 및 신약 확보에 나서고 있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신약은 후보 물질 탐색에 5년, 임상을 확인하는 데 3년이 걸린다”면서 “제품화에 모두 13~15년이 걸리는데, 오픈이노베이션은 모두에게 윈윈이 된다”고 설명했다.

한국글로벌의약산업협회(KRPIA)가 지난해 10월 발간한 ‘2019년 연간보고서’에 따르면 회원사 44곳 중 13곳(29.5%)이 국내 제약사 및 의료기관, 연구기관 등과 함께 신약 개발 오픈이노베이션을 진행 중이다. 2016년 KRPIA 회원사 41곳 중 9곳이 국내에서 오픈이노베이션을 추진했던 것과 비교하면 4곳이 늘었다. 특히 오픈이노베이션의 형태가 변하고 있다. 2016년까지만 해도 전임상 테스트, 임상시험 모니터링, 환자 모집 등 비핵심 분야에 머물렀던 협업 형태가 최근 내부 연구원과 동일한 신약 연구개발 플랫폼을 제공하는 형태로 진화했다.

국내 바이오·제약 기업에 잇단 러브콜


국내 바이오·제약 기업과 오픈이노베이션에 가장 적극적인 기업은 영국 제약사 아스트라제네카다. 2014년 이미 한국보건산업진흥원과 협업을 시작한 국내 오픈이노베이션 1세대로, 2018년에는 동아ST와 면역항암제 공동연구개발 계약을 체결하며 오픈이노베이션을 본격화했다. 동아ST는 투자 대비 가장 큰 수익을 낼 수 있는 신약 후보 물질 탐색에 연구 역량을 기울이는 회사다. 아스트트라 제네카는 연구를 진행 중인 면역항암제에 대한 선도 물질 및 후보 물질을 도출하는 R&BD(Research & Business Development)를 동아ST에 맡겼다.

아스트라제네카는 또 국내 바이오·제약 기업과 오픈이노베이션 강화를 위해 합작사 ‘아키젠바이오텍’을 세우기도 했다. 아키젠바이오텍 자본금은 1억4000만 달러 규모로 삼성바이오로직스가 공동 투자했다. 지난해 6월엔 국내 바이오산업에 5년간 7500억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레이프 요한손 아스트라제네카 회장은 “한국은 바이오 헬스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연구자들을 보유하고 있다”며 “혁신은 협력을 통해 이룰 수 있다”고 강조했다.

덴마크 제약사 레오파마는 지난해 ‘레오 오픈이노베이션 랩’을 열고 국내 바이오·제약 기업 및 연구기관에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레오 오픈이노베이션 랩은 이른바 오픈이노베이션 플랫폼으로 국내 바이오·제약 기업이나 연구기관이 보유한 화합물(Molecules)을 레오파마가 가진 전문 평가시스템을 통해 신약으로 개발이 가능한지 측정해 제공한다. 가치가 인정되면 기술 협업 등 협력 논의를 진행한다. 레오파마 관계자는 “가능성 있는 후보물질의 경우에는 초기 연구를 무상으로 지원한다”고 설명했다.

글로벌 제약사가 이처럼 국내 바이오·제약 기업과 협업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이유는 신약 개발 물질을 선점하기 위해서다. 특히 제약사 ‘퀀텀 점프’의 수단으로 불리는 신약 개발에 오픈이노베이션은 필수가 됐다는 분석이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자금과 개발 기술을 갖춘 글로벌 제약사는 오픈이노베이션을 통해 후보 물질을 찾는데 속도를 내면서 신약 개발 기간을 단축하고 있다”고 말했다. 회계법인 딜로이트의 제약업계 오픈이노베이션 보고서에 따르면 오픈이노베이션을 통한 신약 개발 성공률이 자체 개발보다 3배가량 높았다.

유한양행 등 국내 제약사들의 오픈이노베이션 성과가 속속 나오는 것도 글로벌 제약사의 관심을 키우고 있다. 유한양행은 국내 바이오벤처 오스코텍이 개발한 항암물질 ‘레이저티닙’을 가져와 전임상과 초기 임상을 진행해 폐암 치료의 최대 복병으로 꼽히는 ‘뇌 전이’를 막을 수 있는 신약으로 만들었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유한양행의 성공으로 글로벌 제약사들이 국내의 바이오·제약 산업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면서 “유한양행은 글로벌 제약사 존슨앤드존슨 자회사 얀센바이오테크에 레이저티닙을 약 1조4000억원에 이전했다”고 말했다.

글로벌 제약사들은 국내 바이오·제약 시장을 후보 물질 발굴의 새로운 창구가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2000년대 초반 국내 바이오벤처 붐 이후 생존한 회사들이 20여년 이상 기술력을 키워왔기 때문이다. 여기에 후보 물질 개발 등에 오랜 시간 R&D 투자를 진행해 자금 투자가 필요한 이른바 열린 오픈이노베이션 시장이 됐다.

판매역량 발휘해 해외진출 지원도

글로벌 제약사들은 최근 해외 진출 지원 부문을 강화하고 있다. 글로벌 제약사는 유한양행이 신약을 개발한 뒤 판매를 위한 기술 이전에 나선 것과 달리 제품화 이후 판매까지 해결할 역량을 갖췄다. 오픈이노베이션에 적극적인 아스트라제네카가 해외 진출 지원에 부문을 강조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김상표 한국아스트라제네카 대표는 ‘제약바이오 기업 중국 진출 지원 간담회’에서 “아스트라제네카는 신약 개발만이 아니라 오픈 파트너십 신념에 입각해 국내 바이오·제약 기업들이 해외에도 진출할 수 있게 적극 돕겠다”고 말했다.

글로벌 제약사들은 아울러 국내에서의 오픈이노베이션을 헬스케어 산업으로까지 넓히고 있다. 한국화이자제약의 ‘화이자 에센셜 헬스 디지털 오픈 이노베이션’ 공모전이 대표적이다. 한국화이자제약은 공모전을 통해 의료 서비스 제공 환경 구축을 위한 헬스케어 솔루션을 함께 개발할 소규모 벤처기업이나 스타트업을 발굴하고 있다. 사노피-아벤티스코리아는 스타트업 로드쇼 ‘비바 테크놀로지’에 협력사로 참가할 국내 스타트업을 공모하기도 했다.

- 배동주 기자 bae.dongju@joongang.co.kr

1542호 (2020.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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