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한국 스타트업 엘리트리그 지형도(1)] 학연(서울대)·출신(네이버)으로 엮인 ‘벤처 팰리(pally)’ 네트워크도 빈부 격차 

 

18개 대형 스타트업 중 서울대 6명, KAIST 3명… 쏠림 과하면 경영·투자 오판, 열린 생태계 갖춰야

▎현재 국내 정보통신기술(ICT)을 중심으로 한 스타트업 영역은 서울대 출신들이 장악하고 있다. 사진은 이해진 네이버 GIO(왼쪽부터), 김범수 카카오 의장,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 김정주 NXC 대표.
대기업에 다니다 지난해 인공지능(AI) 소통 프로그램 개발회사를 창업한 A씨는 최근 투자 유치에 성공했다. 엔지니어 출신인 A씨는 창업 초기부터 누구로부터 투자를 받아야 하는지, 마케팅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 애를 먹었다. 그러던 중 대학 선배의 소개로 성공한 동문 창업가를 만난 뒤부터 상황이 달라졌다. 동문 네트워크가 힘을 내기 시작하며 투자·홍보·채용 등을 부탁할 수 있는 곳이 생겼다. 같은 대학 출신의 벤처캐피탈(VC) 심사역들이 몇 가지 조건을 제시하며 후속 투자 가능성도 내비치고 있다.

“행복한 가정의 사정은 대개 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 다른 이유가 있다.”

레프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니나]의 유명한 첫 문장에서 행복한 가정을 ‘성공한 기업’으로, 불행한 가정을 ‘실패한 기업’으로 바꿔도 의미 있는 메시지가 나온다. 성공하기 위해선 모든 필요조건이 갖춰져야 하며, 여러 조건 중 한두 가지만 부족해도 실패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스타트업에선 네트워크도 성공을 위한 필요조건이다. “당신이 무엇을 하느냐보다 누구를 아느냐가 더욱 중요하다(Who do you know is more important than what do you do)”는 미국 정치권의 말처럼 창업자의 의지나 비즈니스 모델보다 네트워크가 더 중요할 때가 많다. 투자유치는 물론이고 구인, 사무실 임대 등 낮은 문턱조차 쉽사리 넘지 못하기 때문에 성공한 선배 창업자의 도움이 필요하다.

서울大 1세대 성공이 밀레니얼세대 창업으로 이어져


실제 1세대 벤처 창업자들이 스타트업 투자부터 비즈니스 모델 구축, 협력사 확보 등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유니콘의 산파 역할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인맥과 네트워크가 스타트업의 사업 성패를 좌우한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최근에는 서울대·한국과학기술원(KAIST) 등 대학 동문끼리 뭉치는 기류도 강하다. 이런 문화는 초기 스타트업의 성장을 돕고 사업의 성공 가능성을 높여 서로 ‘윈윈’하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스타트업의 네트워크는 출신대학·출신회사·공동창업 경력 등 다양한 형태로 맺어진다. 학연은 네트워크와 성공에 있어 가장 유의미한 함수관계를 만든다.

비상장주식 거래소 판교거래소에서 거래 중인 시리즈 C~프리 기업공개(IPO) 단계 기업 및 국내 유니콘 등 총 18개 스타트업 창업자의 출신 대학을 보면(최종학력 기준, 공동대표 포함) 서울대 출신이 6명으로 가장 많다. 배기식 리디북스 대표(전기), 박은상 위메이크프라이스 대표(경제), 이관우 버즈빌 대표, 김현태 보로노이 대표(이상 경영), 이승건 비바리퍼블리카 대표(치의학), 서범석 루닛 대표(의학) 등이 서울대 출신이다.

KAIST는 3명으로 두 번째로 많다. 장병규 크래프톤 의장(전산), 조계현 카카오게임즈 공동대표(경영과학), 이상혁 옐로모바일(경영석사) 등이다. 이 밖에 서강대(남궁훈 카카오게임즈 공동대표)·경희대(차대익 엘엔피코스메틱 대표)·단국대(조만호 무신사 대표)·한양대(김동환 아이디어스 대표)·경북대(박근노 나인테크 대표)·대림대(김정웅 지피클럽 대표)·서울예전(김봉진 우아한형제들 대표) 등 국내 기타 대학은 7명이다. 해외 대학 출신은 김범석 쿠팡 대표(미 하버드대)·김슬아 마켓컬리 대표(미 웰슬리대) 등 2명이다. 이수진 야놀자 대표는 대학에 진학하지 않았다.

성공한 창업자 중에 서울대 출신이 유독 많은 것은 성공 사례가 누적돼서다. 서울대는 이해진 네이버 GIO(글로벌투자책임자)를 시작으로 김범수 카카오 의장, 김정주 NXC 대표, 허민 원더홀딩스 대표 등 유명 창업자가 많은 학교다. 이들의 성공 경험이 밀레니얼 세대의 창업으로 이어지고 있다. 성공한 창업가, VC 심사역 등 스타트업 업계에 서울대 출신들이 대거 포진하고 있어 창업에 유리한 측면도 있다. 이 때문에 과거 서울대에 진학하면 으레 고시를 준비했던 것처럼, 요즘에는 서울대 경영이나 공대에 진학하면 창업을 염두에 두는 경우가 많다.

서울대 경영학과 03학번인 이관우 버즈빌 대표는 “대학 시절 학생들 사이에서 창업하자는 분위기가 강했다. 요즘은 창업을 염두에 둔 학생들이 더 늘었다”고 말했다. 서울대 출신 창업자들은 성공에 대한 집념과 목표의식이 강할 뿐만 아니라 네트워크가 공고해 성공으로 이어지기 유리하다는 게 스타트업 업계 관계자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이 때문에 일부 VC는 서울대 출신 창업자에게만 투자하는 경우도 있다. 실패 확률이 가장 낮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KAIST도 ‘KAIST 마피아’라 불리며 창업 시장에서 승승장구하고 있다. 장병규 크래프톤 의장, 이용관 블루포인트파트너스 대표처럼 엔지니어 출신 90년대 학번 창업자들이 대거 성공한 영향이다. 태터&컴퍼니를 창업한 연쇄창업자 노정석 대표, 리멤버 운영사인 드라마앤컴퍼니 최재호 대표도 KAIST 출신이다. 에빅사·엔써즈 창업자인 이준표 소프트뱅크벤처스아시아 대표, 2015~18년 카카오 최고경영자(CEO)를 맡은 임지훈 전 대표 역시 KAIST를 다녔다.

KAIST는 전산학부 정원을 2011년 66명에서 2018년 160명으로 늘리는 등 정책적으로 엔지니어 육성에 공을 들이며 기술 창업을 독려하고 있다. 학령인구 감소 등으로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정원이 55명에 묶여있고, 연세대 컴퓨터과학과 정원이 110명에서 2018년 66명으로 쪼그라든 것과는 대조적이다. 최근 AI·기계·소재 등 기술 창업이 늘면서 VC 심사역으로도 KAIST 출신이 주목 받고 있다.

KAIST 출신의 한 엔젤투자자는 “대학 선후배들을 통해 투자받길 희망하는 동문 창업자를 많이 만나며, 실제 기술력과 열정 있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서울대·KAIST 등 동문만 참여할 수 있는 온라인 커뮤니티를 만들어 창업 및 투자정보를 공유하기도 한다.

이런 분위기 때문인지 실제 투자나 정책자금 지원도 명문대 출신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 중앙일보·기술보증기금이 2015년 벤처인증기업 대표 1만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한양대(서울·534명) 출신의 창업자가 가장 많았다. 두 번째는 449명을 기록한 서울대였다. 인하대(387명)·영남대(379명)·동아대(317명) 등이 뒤를 이었다.

창업자뿐 아니라 투자 받는 것에서도 이 같은 쏠림 현상이 나타난다. 한국경제신문이 2012~2014년 중소기업청의 스타트업 지원사업 TIPS에 참여한 VC 9곳이 투자한 103개 스타트업 대표의 출신 대학을 조사한 결과, 서울대가 21곳(20.3%)으로 가장 많고 KAIST가 12곳(11.6%)으로 2위였다. 연세대 9곳(8.7%), 고려대 7곳(6.8%)이 뒤를 이었다. 정부지원자 VC 투자가 특정 대학에 쏠린 것이다.

미국도 명문대 출신에 투자·여론 몰려


이런 쏠림은 비단 한국만의 현상은 아니다. 영국의 온라인 주택담보대출 중개 스타트업 ‘모조모기지(Mojo Mortgages)’ 조사(2019년 8월 기준)에 따르면 글로벌 유니콘 창업자 462명 중 스탠퍼드대 졸업생이 63명(14.4%)으로 가장 많았다. 하버드대가 39명(8.9%)으로 두 번째, 3위는 36명(8.2%)으로 인도공과대(IIT)가 차지했다. 중국도 칭화대 출신 유니콘 창업자가 12명, 베이징대 출신이 11명이었다.

물론 네트워크가 학연으로만 형성되는 것은 아니다. 비즈니스에서 가장 큰 걸림돌은 신뢰다. 거래 당사자들끼리 서로 믿지 못한다면 어떤 협업·투자도 발생하지 않는다. 또 창업자의 정체성과 실력도 검증할 필요가 있다. 이 때문에 함께 일한 경험이 있는 같은 직장 출신 간 네트워크가 더욱 공고하다.

국내에서는 이른바 ‘네이버 마피아’를 비롯해 한게임·네오위즈·엔씨소프트·넥슨 등 2000년 전후 생긴 벤처기업 창업가들이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이해진 네이버 GIO, 김범수 카카오 의장,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 김정주 NXC 대표 등으로 대부분 서울대 공대 85~86학번으로 구성됐다.

해외에서는 ‘페이팔 마피아(Paypal Mafia)’의 영향력이 가장 크다. e커머스 기업 페이팔 출신들이 미국 실리콘밸리를 주도하는 그룹으로 성장했다. 페이팔 마피아의 대부 피터 틸을 비롯해 테슬라를 설립한 일론 머스크, 링크드인을 만든 리드 오프먼, 유튜브 설립자 스티브 첸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2003년 페이팔을 이베이에 매각해 확보한 자금으로 후속 창업에 나서 큰 성공을 일구었다.

구글 출신 창업자들을 일컫는 ‘구글 졸업생(Google Alumni)’들도 실리콘밸리의 파워그룹이다. 구글 졸업생들은 현재까지 1689개의 스타트업을 차려 21개의 유니콘을 만들었으며, 2550명의 투자자로부터 총 401억 달러(약 48조원)의 자금을 조달했다. 트위터·네스트·칸바 등이 구글 졸업생 식구들이다. 미국의 가장 영향력 있는 엑셀러레이터(AC)인 와이콤비네이터도 스티프 허프만 레딧 대표, 티콘 베른스탐 파스 창업자 등 졸업생들을 중심으로 강고한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성공 창업가 ‘패거리 문화’에 안팎서 성토

이런 엘리트 네트워크에 끼지 못한 창업자들은 정부나 VC·창업보육기관 등이 개최하는 여러 행사에 참여해 네트워크를 넓히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대중 행사에서 만난 생소한 상대에게 자신의 비즈니스모델을 온전히 공개하거나 서로의 니즈를 파악하기 어려워 실제 협력으로 이어지기는 한계가 있다.

스타트업 생태계의 강고한 네트워크는 창업의 성공 가능성을 높이고, 서로 믿을 수 있는 파트너를 확보한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이다. 다만 이런 네트워크가 성공 후 스타트업 생태계 전체에 기여하기보다 창업 멤버들끼리 카르텔을 구성해 기업을 고가에 인수해주거나 사적 이익을 공유하는 등의 부작용을 일으키기도 한다.

스타트업은 대부분 비상장이며, 초기 기업이기 때문에 이런 기업 문화나 사업 운영 방식이 용납되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끼리끼리 문화는 시장의 공정한 경쟁 시스템을 저해하고, 기업의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 또 다른 혁신기업의 등장을 가로막을 가능성도 있다. 특히 투자에 있어 검증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경우도 생긴다. 실제 일부 대학 출신 VC 심사역 커뮤니티에서는 동문 심사역의 말만 믿고 기업평가 및 투자에 나서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는 국내 VC 업계의 고질적 문제인 ‘클럽딜(몇 개의 투자사가 모여서 한 회사에 투자)’로 이어지기도 한다.

미국선 백인남성 우월주의, 성 차별로 이어지기도


▎판교 밸리의 야경. 국내 스타트업 생태계는 특정 네트워크가 끌어간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스타트업 엘리트그룹의 집단성은 기업 내 차별 문화로 번지기도 한다. 미국 실리콘밸리에서는 2016~2017년 직장 내 성차별 문제가 불거져 홍역을 치른 바 있다. 벤처 창업·개발자 네트워크에서 백인 남성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아 유색 인종이나 여성의 임금이 낮거나, 승진의 기회가 적다는 것이다.

실제 2017년 미국 노동부는 구글이 남성보다 여성 직원에게 훨씬 적은 임금을 지불했다며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이에 구글은 급여 지급 내용 공개 및 외부감사를 거절했고, 미 노동부는 모든 정부 계약을 취소해 달라고 요청하며 논란을 빚었다. 비슷한 시기 오라클도 여성과 유색 인종보다 백인 남성에게 높은 급여를 지급했다는 내용으로 피소됐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의 보도에 따르면 실리콘밸리에서 근무하는 여성 임직원 21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60%가 원치 않는 성희롱을 경험했으며, 3분의 2가 중요한 네트워킹 기회에서 제외됐다고 답했다. 리서치 회사 페이스케일(PayScale)에 따르면 미국 IT기업의 여성 임원 비중은 21%로 여타 산업 평균 36%에 비해 크게 낮았다. 최근 미국에서 조지 플로이드 사건이 터지자 구글은 소수 인종 임원 비중을 높이기로 했고, 라인은 성 중립 화장실을 설치하는 등 글로벌 IT기업들은 인종·성 차별 문제 진화에 나서고 있다.

차별을 없애고 열린 생태계를 조성해 비즈니스의 영역을 넓히는 일은 스타트업에게는 전가의 보도와도 같은 일이다. 송명진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전문위원은 최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스타트업 생태계에 다른 영역 참여자들이 잘 연결될 수 있도록 만드는 환경 조성이 중요하다”며 “스타트업 간에 정보 교류, 투자자 연계, 정책이 뒷받침될 때 종합적 시너지 효과가 나타난다. 전반적 스타트업 생태계도 성장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 김유경 기자 neo3@joongang.co.kr

/images/sph164x220.jpg
1543호 (2020.07.20)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