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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자금대출 부분분할상환’ 특혜 논란] 은행 ‘이자 장사’에 날개 달아주는 격 

 

주택금융공사가 100% 대출보증… 중도상환 수수료부터 폐지해야

▎ 사진:연합뉴스
이르면 올해 하반기 부분분할상환 전세대출 상품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전세 계약 기간 동안 전세 대출금 이자만 갚다가 계약이 종료되면 원금을 한꺼번에 갚았던 기존 방식과 달리, 계약 기간 동안 원금도 일부 갚을 수 있는 방식이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6월 시중은행의 부분분할상환 전세대출 상품 출시를 지원한다며 “대출받은 사람 입장에서는 원금을 조금이라도 갚아나가면 대출 기간 종료 후 목돈 마련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금융위는 이율 1% 미만 정기예금에 가입하는 것보다 ‘2~3%의 전세대출 상환’이 유리하다는 입장이다. 비과세 고금리 적금과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또한 금융위는 전세대출의 위험관리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KB국민은행과 우리은행 등이 관련 상품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일각에선 금융위의 이번 조치가 은행을 위한 특혜라고 지적한다. 부분분할상환 상품을 만들면 한국주택금융공사(주금공)에서 대출 보증을 100% 지원하기 때문이다. 주금공의 대출 보증은 세입자가 은행에서 빌린 자금을 갚지 않을 경우 주금공이 대신 책임지는 것을 말한다. 지금도 주금공의 전세대출금의 보증 비율은 90%에 달한다.

금융위가 은행 ‘이자 장사’에 특혜


보증 비율이 100%로 올라가면 은행 입장에선 손해 볼 위험이 하나도 없는 상태에서 이자 수익을 올릴 수 있는 ‘꽃길’이 열리는 셈이다. 이 때문에 정부가 집값 상승을 부채질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금의 집값 폭등 사태를 불러온 원인 중 하나가 무분별한 전세대출이었는데 은행의 전세자금 대출에 날개를 달아주었다는 것이다.

그동안 시중 은행들은 전세자금 대출 보증으로 짭짤한 이자수익을 올려왔다. 2017년 기준 전세자금 대출 잔액은 71조3000억원으로 이를 통한 이자 수익은 6316억원 수준을 기록했다. 2019년 12월 기준 KB국민·신한·우리·하나·NH농협은행의 전세자금 대출 잔액이 80조원을 넘어선 것을 고려하면 이자 수익은 더 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2000년대 초까지 전세대출은 쉽지 않았다. 전세 자금을 대출받을 때 보증인을 세우거나 주금공의 보증을 받아야 저금리로 대출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연대보증인을 세우고 전세보증금을 담보로 설정하는 안전장치를 둬도 대출 사고가 이어지면서 은행들이 대출 규모를 엄격하게 제한했었다. 그런데 2011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일본식 주택시장 불황 우려가 커지고 내 집 마련 대신 전세 수요가 늘면서 ‘전세대란’이 벌어졌다. 정책 당국은 주금공 등 공공기관의 보증을 80% 이상으로 확대해 세입자에게 싼 이자로 전세대출 자금을 공급했고, 은행은 위험도를 크게 낮춘 상황에서 이자 수익을 챙겼다.

이후 매매가와 전세가의 차이가 없어지자 ‘갭투자’가 증가하는 부작용이 나타났다. 그런데도 전세자금 대출만큼은 서민 주거 안정 차원에서 거의 규제를 받지 않았다. 은행은 주금공 등 공적 보증을 받아야 대출해줬기 때문에 손해 위험도 크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 전세자금 대출 부분분할상환 정책으로 은행은 손실 위험을 신경 쓰지 않은 채 마음 놓고 전세자금 대출을 진행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정부가 은행권에 특혜를 제공하면서까지 대출금을 일부라도 줄이게 하려는 이유는 급증하는 가계 부채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대출이 늘어난 상황에서 경기 침체로 연체가 증가하면 금융회사들의 부실로 이어지고 이는 경제 전반의 위기로 확산할 수 있어서다. 이런 우려를 조금이라도 씻기 위해 가계 대출을 줄이는 방식으로 부분분할상환 상품을 장려한다는 것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가계부채 잔액은 1611조3000억원에 달한다. 관련 통계가 작성된 2002년 이후 최대 규모다. 가계대출 부실 여부를 나타내는 지표인 연체율도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은행권에 따르면 5월 기준 신한, KB국민, 하나, 우리은행 등 시중 4대 은행 대출 연체율은 전달보다 0.02% 포인트씩 상승했다. 지난달 한국은행이 국회에 제출한 ‘2020년 상반기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코로나19 충격으로 인한 경기 침체가 약 1년 지속하면 국내 가계가 갚지 못하는 부채가 최대 111조3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됐다.

이 중 자영업 가구와 임금 근로 가구의 금융부채는 각각 59조1000억원, 52조2000억원으로 추정됐다. 가계 살림이 어려운 상황에서 실업률 급등과 자영업 매출 감소가 이어지면 75만9000가구가 1년 안에 유동성 한계에 부닥칠 것이란 전망도 나왔다. 이들 가구는 금융자산 등을 처분해도 누적된 적자로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한은은 보고서를 통해 “전체 가계부채와 주택담보대출 증가세가 2019년 4분기 이후 커졌다”고 분석했다. 빚은 빠르게 늘고 있는데 소득 증가는 더디게 이어지면서 가계의 처분가능소득 대비 부채 비율은 1분기말 기준 163.1%를 기록했다. 지난해 1분기 가계 처분가능소득 대비 부채비율이 158.6%, 2019년 4분기는 162.3% 수준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각각 0.8%포인트, 4.5%포인트 증가한 수준이다. 가계의 금융자산 대비 금융부채 비율(47.7%)도 지난해 1분기와 비교해 0.5%포인트 상승했다.

한은은 이런 상황이 아주 심각한 위기는 아니지만, 대응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분석했다. 한은은 보고서에서 “각종 대책과 금융기관의 양호한 복원력을 고려할 때 금융시스템은 대체로 안정을 유지할 것”이라고 전망하면서도 “정책당국이 금융기관의 대규모 손실에 따른 금융중개 기능 저하, 금융·실물간 악순환 등에 대비해 주요 리스크 요인들이 시스템 리스크로 전이되지 않도록 선제적 대응 체계를 갖춰야 한다”고 조언했다.

실효성 의문, 생색내기 탁상행정 비판도


하지만 부분 분할상환 정책은 생색내기용 탁상행정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2016년 8월 금융위가 이미 같은 상품을 내놓는다고 발표 했는데, 은행과 대출받는 소비자 양쪽에서 외면 받으며 4년 동안 방치된 바 있다. 당시 금융위는 대출금에 대한 보증 비율을 높이거나, 대출자의 연체 문제는 고려하지 않은 채 부분분할상환 정책을 실시한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시중 은행들은 이자 수익이 줄어드는 상품을 추천할 이유가 없었고, 소비자는 연체로 인한 신용불량 위험이 있는 상품을 선택할 필요가 없었다. 금융위 관계자는 [이코노미스트]와의 통화에서 “당시 정책으로 미뤄보면 어느 쪽도 원하지 않는 유명무실한 제도였다고 볼 수 있다”며 “이번 정책은 문제점을 보완해 내놓은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한다. 오히려 시중은행들의 중도상환 수수료를 폐지하는 게 원금 상환에 효과적일 수 있다고 지적한다. 중도상환 수수료는 계약 기간 이전에 원금을 갚을 경우 은행이 이에 해당하는 수수료를 물리는 것을 말한다. 중도상환 수수료가 사라지면 금액에 구애받지 않고 아무 때나 원금을 갚을 수 있고, 목돈을 갚으면 이자 비용을 훨씬 줄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형식에 얽매이는 부분분할상환보다 중도상환 수수료를 폐지하는 게 대출자에게 훨씬 유리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일부 시중은행들은 여전히 중도상환 수수료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우리은행의 전세자금 대출 상품인 iTouch 전세론(주택금융보증)은 대출 2년 이내 중도상환시 고정금리 0.7%, 변동금리 0.6% 수준의 중도상환 수수료를 받는다. 최초 대출 신규일 기준으로 1년마다 최초 대출금액의 10% 범위 내에서 상환하는 경우에는 중도상환 수수료를 면제한다는 단서가 있지만, 대출자가 적금 만기로 목돈이 생긴 경우 대출금 일부를 한꺼번에 상환하면 중도상환 수수료를 내야 한다는 뜻이다. 농협은행의 NH 전세자금 대출도 중도상환 시 0.8~1.4%의 해약 수수료를 물리고 있다.

은행업계에서는 중도상환 수수료를 없애면 타격이 예상된다는 목소리도 있지만 현재 카카오뱅크, KB국민은행, 신한은행 등은 전세 대출에 대한 중도상환 수수료를 받지 않고 있다. 수수료가 없어도 크게 문제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는 부분분할상환 대출에 대해서만 혜택을 고수하고 있다. 금융위 관계자는 “부분분할상환처럼 일정 금액을 갚는다고 약정한 경우에 더 혜택을 주도록 만들었기 때문에, 중도상환 수수료를 받지 않는 상품은 추가 혜택을 받을 수 없다”고 말했다.

- 이병희 기자 yi.byounghee@joongang.co.kr

1543호 (2020.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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