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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감 높아진 정의선 현대차그룹 총괄 수석부회장] ‘미래 모빌리티’ ‘팀 코리아’ 리더로 부상 

 

경영 전면 2년, 미래사업 포트폴리오 밑그림 완성… 선택과 집중으로 가시적 성과 내야

▎정의선 현대차그룹 총괄 수석부회장이 7월 14일 열린 한국판 뉴딜국민보고대회에서 그룹의 그린 뉴딜 전략을 소개했다. / 사진:현대자동차그룹
“미래 친환경차 사업은 현대자동차그룹 생존과도 연관돼 있고, 국가를 위해서도 매우 중요합니다. 반드시 대한민국이 세계 시장을 선도하도록 해내겠습니다. (중략) 최근 삼성, LG, SK를 차례로 방문해서 배터리 신기술에 대해 협의했습니다. 세계 최고 수준의 배터리 3사가 한국 기업이라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서로 잘 협력해 세계 시장 경쟁에서 앞서 나가겠습니다.”

지난 7월 14일 청와대에서 열린 한국판 뉴딜 국민보고대회에서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총괄 수석부회장은 이 같은 다짐을 했다. ‘국민보고대회’라는 이름으로 개최된 행사의 성격을 감안할 때 이런 발언의 무게는 무겁다. 빠르게 격변하는 산업계, 그 안에서도 가장 주목받는 ‘미래 모빌리티’ 분야에서 기필코 주도권을 가져오겠다는 약속을 국민들에게 한 셈이기 때문이다.

2018년 9월 수석부회장 취임 후 오롯이 ‘미래 모빌리티’만을 바라봤던 그의 행보는 최근 들어 더 선명해졌다. 수직 계열화된 그룹의 유산(레거시)을 초월해 수없이 많은 협력의 고리들을 만든데 이어, 정부차원 ‘그린 뉴딜’의 대표주자로 나섰다. 또 ‘불문율’을 깨고 오너 경영인들과 만나 ‘팀 코리아’의 기틀을 다지고 있다. 현대차그룹을 넘어 한국의 모빌리티 산업 리더로서 그의 존재감이 커진다.

“완성차 M&A 관심 없다… 미래 산업 육성 올인”


2017년 6월, 현대차 소형 스포츠유틸리티차(SUV) 코나 출시행사에 정 수석부회장(당시 부회장)이 무대에 섰다. 그가 신차 출시행사를 진행한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자연스레 외신들의 이목도 집중됐다. 행사에 참석한 한 외신기자는 그에게 “글로벌 완성차 회사를 인수할 생각이 있냐”고 물었다. 당시 나날이 판매가 줄어들며 위기에 처한 현대·기아차가 완성차업체 인수합병(M&A)으로 이를 극복할 것이란 전망이 시장에서 팽배하던 때였다.

하지만 정 수석부회장은 단호히 부정했다. 그는 “현재 우리가 관심을 갖는 분야는 자동차 메이커보다 IT나 ICT(정보통신기술) 분야”라고 잘라 말했다. 완성차업체의 경쟁력이 아니라 ICT 기업의 역량이 필요한 시기라는 게 그의 판단이었다.

이후 약 3년이 지난 현 시점에서, 정 수석부회장의 판단이 옳았다는 평가가 대세다. 산업의 패러다임은 완성차 제조업에서 멀어지고 있고, 자본은 기존의 완성차를 아예 외면한 지 오래다. 내연기관을 기반으로 한 전통적 자동차 생산은 미래가 없는 산업으로 치부되고 있다. 이른바 ‘카마겟돈(자동차car와 대혼란을 뜻하는 아마겟돈armageddon을 합쳐 만든 조어)’의 시대가 온 것이다. 전통 완성차업체는 모빌리티 산업 중심에서 밀려났다. 핵심 가치는 자동차 제조역량이 아니라 전동화와 ICT 기술, 플랫폼으로 이동하고 있다.

최근 몇 해 동안 현대차는 ‘종합 모빌리티 기업’으로 변화하는 데 주력했다. 정 수석부회장이 경영 전면에 나선 ‘정의선 체제’ 이후엔 다양한 방면으로 미래차를 위한 투자를 진행해왔다. 기업평가사이트 CEO스코어가 500대 기업의 2015년~2020년 1분기까지 타법인 출자 내역을 집계한 결과 현대차가 국내에서 가장 활발한 투자를 진행한 것으로 나타났다. 현대차는 해당 기간 동안 7157억원을 스타트업과 4차산업 관련 기업에 투자했는데, 투자액이 두 번째로 많은 네이버(3092억원)의 배에 달했다. 현대차뿐 아니라 기아자동차(4위, 2346억원), 현대모비스(7위, 771억원) 등도 많은 투자를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대차그룹의 미래투자가 활발해진 것은 2017년 당시 정 부회장 직속의 전략기술본부를 만들면서부터다. 자율주행 분야에서 미국 오로라, 메타웨이브 등의 투자를 이끌었으며 인도 올라, 동남아시아 그랩, 호주 카넥스트도어 등 모빌리티 플랫폼 서비스에도 대규모의 투자를 집행했다. 전략기술본부는 미국 실리콘밸리와 이스라엘 텔아비브, 독일 베를린, 중국 베이징에 연달아 ‘크래들’ 조직을 만들고 각 지역의 스타트업을 발굴하고 투자를 집행하고 있다.

현대차그룹 ‘외부 협업’의 화룡점정은 지난해 10월 발표한 앱티브와의 조인트벤처(JV) 설립이 찍었다. 현대차 10억4000만 달러를 비롯해 기아차와 현대모비스를 더해 총 20억 달러에 달하는 금액이 투입된 빅 딜이다. 앱티브는 제너럴모터스(GM)의 계열사였던 세계적 차량 부품업체 델파이에서 2017년 12월 분사한 차량용 전장부품과 자율주행 전문 업체다. 세계 3위 수준의 자율주행 기술력을 보유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앱티브와 JV는 글로벌 자율주행 분야에서 변방에 있던 현대차그룹의 위상을 단숨에 키워놨다는 평가를 받는다.

미래 설계도 그린 2년, 향후 속도 내야


정 수석부회장 체제 2년을 바라보는 전문가들의 시선은 대부분 긍정적이다. 김필수 대림대학교 교수(자동차과)는 “정 수석부회장이 융합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수직계열화를 탈피해 이종기업과 다양한 협업을 진행하고 투자하며 연결고리를 만들어 가는 것에 의미가 있다고 본다”며 “중구난방의 투자가 아니라 미래 모빌리티 산업 전반에 대한 큰 그림이 있기 때문에 머지않아 가시적인 성과가 나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아직 평가하기엔 이르다는 시각도 있다. 차두원 차두원모빌리티연구소장은 “정 수석부회장 체제 2년간 변화는 ‘모빌리티 플랫폼 서비스 프로바이더’라는 비전을 위한 외연을 만든 정도”라며 “사실상 2년의 시간은 조직을 셋업하는 데 사용한 시간이라고 보고 있으며, 앞으로 투자 효율성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그랩 등 이미 거대화 된 글로벌 모빌리티 플랫폼 기업에 대한 투자는 투자 자체에 의미를 두는 것 일 뿐 큰 기대를 하기가 어렵다”며 “앱티브와 JV를 설립한 게 가장 의미 있다고 보는데 자율차와 전기차, 서비스 분야를 아우를 수 있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고 말했다.

정의선 수석부회장 체제 2년의 시간은 미래 산업에 대한 그림을 그리는 시기였고, 앞으로는 달려 나갈 시점이란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지난해 말 발표된 투자계획을 보면 얼마나 적극적인지 알 수 있다.

현대차는 2020년부터 2025년까지 61조1000억원의 투자계획을 가지고 있는데, 이 중 20조를 미래사업기반 확보에 투자한다는 방침이다.

그룹의 미래 방향성에 대한 그림은 자동차에 그치지 않는다. 정 수석 부회장은 미래엔 자동차가 50%, 도심항공모빌리티(UAM)가 30%, 로보틱스 20%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UAM은 도심에서 승객과 화물을 수송하려는 항공 교통 산업 전반을 통칭한다. 현대차는 올 초 CES에서 우버와 협력을 발표하며 이 분야에서 비전을 밝힌 바 있다. 이에 대해 고태봉 하이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현대차그룹의 기술기반은 소프트웨어가 아니라 기계공학에 있는데, 이 기술 기반을 가지고 가는 그림을 그린 것”이라며 “결과적으로 고용 유지까지 고려한 밑그림”이라고 봤다.

그간 방향성에 대한 의심이 있었던 수소연료전지차에 대한 계획도 선명해졌다. 고 센터장은 “사실 수소차를 추진하는 게 맞느냐는 의문이 지속적으로 나왔는데, 결국 미래 사업포트폴리오에 UAM이 가세하면서 당위성이 생겼다”며 “다른 나라에서도 수소연료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기 때문에 사업성에 대한 충분한 가능성이 열렸다”고 평했다.

삼성·LG·SK 아우르며 ‘팀 코리아 리더’로 나서


▎ 사진:현대자동차그룹
여기에 더해 정 수석부회장은 그 행보를 한국의 재계 전반으로 넓히고 있다. 경쟁 일변도였던 한국의 재벌 기업들이 정 수석부회장을 중심으로 미래 생존을 위한 협력 관계를 도모 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진다.

정 수석부회장은 지난 5월13일 충남 천안의 삼성SDI 사업장을 찾아 이재용 삼성 부회장을 만난 데 이어 6월에는 LG화학 오창배터리 공장을 방문해 구광모 LG그룹 회장과 회동했다. 7월 7일에는 SK이노베이션 서산 배터리 공장을 방문해 최태원 회장과 조우했다. 이른바 한국 4대 그룹 총수가 이렇게 잇달은 회동을 가진 것은 한국기업사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일이다.

수년전부터 이른바 ‘모빌리티 팀 코리아’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창해 온 인물들은 큰 기대감을 드러내고 있다. 고태봉 센터장은 “현대차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를 육성하는 건 어렵고 고정비만 늘리는 일”이라며 “결국 이 비용을 아껴서 잘하는 쪽에서 경쟁력 높이고 필요한 기술은 협업으로 풀어야 하는데, 해외 기업과 협업에서는 끌려 다닐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배터리뿐만 아니라 신경망처리장치(NPU), 자율주행(FSD)칩, 전고체 배터리 등에서 다양한 협력이 나타날 수 있을 것”이라며 “자동차 개발주기를 감안하면 당장 시작해야 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 사진:현대자동차그룹
지배구조 개편 과제도 미래차 성과에 달려

‘팀 코리아’의 당위성과 방향성 자체에 대해선 전문가들 사이에 큰 이견은 없다. 다만 낙관적으로만 볼 수는 없다는 지적도 있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현 상황에 대한 위기감이 크다보니 일단은 오너들이 만났고, 앞으로 실무자 차원에서 구체적인 협업 내용을 논의하고 타당성 평가도 이뤄질 것이라고 본다”며 “다만 실제적인 협업이 나타날 확률은 반반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정의선 수석부회장 체제에 주어진 과제는 또 있다. 사실 ‘수석부회장 체제’는 미완이다. 2018년 3~5월 추진했던 지배구조 개편 작업을 포기하며 어쩔 수 없이 꺼내든 임시방 편일 뿐이다. 진짜 ‘정의선 체제’를 위해선 오너 경영자로서 확실한 지배력을 확보해야 한다.

이후 상황은 유리하게 흘러가고 있다. 앞서 시도했던 지배구조 개편안에 반대했던 헷지펀드 엘리엇은 현대차그룹에 투자했던 지분을 모두 회수했고, 정 수석부회장은 코로나19 폭락장 속에서 핵심 기업인 현대차와 현대모비스의 지분을 매입해 지분율을 소량이나마 높였다.

그럼에도 지배구조 개편은 단기간에 이뤄지진 않을 것이란 전망이 크다. 동력이 없어서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업황이 어려운 상황에서 지배구조 개편은 그룹 내에서 중요도가 차순위로 밀렸다. ‘순환 출자 해소’라는 정부 압박도 사실상 사라진 지 오래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지배구조 개편과 관련해 알릴만한 내용은 없다”고 말했다.

결국 지배구조개편이라는 숙제를 해결할 열쇠 역시 미래 모빌리티 사업에서 성과를 내는 데 달렸다는 평가가 나온다. 산업계 한 관계자는 “결국 정 수석부회장이 추진한 미래 모빌리티 사업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내는 것이 현대차그룹 내 회사들의 가치 변동으로 이어져 지배구조 개편의 단초를 만들고 명분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 최윤신 기자 choi.yoon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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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46호 (2020.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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