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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色)으로 남녀 가르는 아웃도어 브랜드] 같은 제품인데 핑크는 여성용, 블루는 남성용? 

 

코오롱스포츠·블랙야크·아이더·네파 남녀 구분해 제품 출시… 사이즈 선택권 좁아

▎ 사진:각 사
직장인 송영아(32)씨는 요즘 등산에 빠졌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실내 운동을 하지 못해 실외 운동을 찾다 새로운 취미로 등산을 접했다. 하지만 송씨는 등산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며, 황당한 상황에 자주 마주한다고 토로한다. 등산에 필요한 등산화를 사려 할 때마다 마음에 드는 여성용 등산화가 분홍색이거나 빨간색으로 한정돼 있기 때문이다. 송씨는 “운동하며 신을 것이기 때문에 때가 덜 타는 짙은 색상의 제품을 사고 싶었는데, 원하는 제품의 짙은 색은 남성용 사이즈로만 나오고 하얀색, 분홍색만 여성용 사이즈로 나온 것을 보고 기분이 나빴다”고 말했다.

‘에너지’ ‘건강함’을 표방하는 국내 아웃도어 브랜드가 정작 제품 색상에는 낡고 구시대적인 색상 전략을 펼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본지 기자가 국내 주요 아웃도어 브랜드인 코오롱스포츠, 블랙야크, 네파, 아이더, K2 등 5개의 브랜드 제품을 직접 살핀 결과, 개수의 차이는 있었지만 주요 브랜드 모두 색상으로 남녀를 구분 짓고 있었다.

가장 눈에 띄는 제품은 ‘신발’이었다. 국내 아웃도어 브랜드들은 신발의 기능과 모양은 같지만, 분홍색과 파란색 등 단순 색상만으로 여성용, 남성용 제품을 구분 짓고 있다. 여성용, 남성용 구분 없이 마음에 들면 그냥 사서 신으면 될 것 같지만, 문제는 사이즈다. 분홍색 신발은 255 이상의 평균적인 남성발 사이즈 제품이 아예 제작되지 않고, 반대로 파란색 신발은 245 이하의 여성발 사이즈 제품이 없다.

스타 마케팅으로 젊은 이미지, 제품은 구시대적

본지 기자가 2월 16일을 기준으로 각 브랜드사가 판매하고 있는 등산화 제품을 확인했다. 다섯 브랜드 중 가장 많이 색상으로 남녀를 가르는 아웃도어 브랜드는 코오롱스포츠(6개)였고, 이어서 블랙야크(3개), 다음으로는 아이더(2개)와 네파(1개)였다. K2는 디자인·색상으로 남녀 제품을 가르진 않았지만, 자사에서 제작하는 모든 분홍색 제품(7개)을 전부 여성용으로 내놓고 있었다.

브랜드별로 자세히 살펴보면 코오롱스포츠는 남녀공용 제품도 있지만, 총 6가지 제품이 현재 분홍과 검정 또는 주황색과 녹색 등의 서로 다른 색상으로 남녀 제품을 구분했다. 코오롱스포츠가 가장 최근에 신제품으로 내놓고, 주요 판매 제품으로 내세우고 있는 ‘GORE-TEX 아웃도어 워킹화’ 역시 마찬가지다. 여성용은 짙은 분홍색이고 남성용은 검은색이다. 이외에도 ‘트레일 러닝화 TR C’ 제품은 남성용은 파란색, 여성용은 하얀색으로 내놨다. ‘트레일 러닝화 TR LITE’ 제품은 전체적으로 검은색이지만 여성용은 신발 끈과 부분 포인트 색상으로 분홍색을 사용했고 남성용은 녹색을 사용했다. ‘러닝화 SKY’는 여성용은 분홍색, 남성용은 회색이다. ‘GORE-TEX 익스퍼트 트레킹화’는 여성용은 연한 갈색, 남성용은 짙은 갈색 제품과 검정 제품으로 나뉘어 판매되고 있다.

코오롱스포츠 다음으로 색상 구별 제품이 많았던 블랙야크에는 총 세 가지 제품이 있다. ‘뉴 드리븐ll GTX’가 남성용은 남색으로 여성용은 분홍색과 흰색으로 디자인됐다. ‘알파 트렉’ 역시 남성용은 남색, 여성용은 주황색과 흰색으로 구분됐고, ‘그리프D GTX’는 남성용은 짙은 녹색, 여성용은 빨간색으로 한정됐다. 아이더에는 현재 색상 구분 제품이 두 가지가 판매되는데 색상 차이는 어느 브랜드보다 극명했다. 제품 ‘키퍼’는 브라운과 빨간색으로 남성용, 여성용을 나뉘었다. 또 제품 ‘로스터’는 검정과 분홍색으로 남성용 여성용을 구분 지었다.

네파에서는 한 가지 제품만 찾을 수 있었다. 제품 ‘벨란테’만 남성용이 파란색, 여성용이 하얀색으로 다르게 나왔다. 네파의 주요 제품으로 꼽히는 ‘칸네토 코어텍스’는 검정부터 빨강, 회색, 갈색 등 제품 색상이 다양했지만, 빨강 제품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남녀공용 제품이었다.

유일하게 K2만 같은 디자인에 컬러가 다른 남녀 제품을 내놓지 않았다. 하지만 K2는 ‘분홍색은 곧 여성용’이라는 법칙이 있어 보였다. 현재 K2에서 판매하고 있는 분홍색 제품은 7개인데 7개 모두 여성용 제품으로 나왔다. 또 분홍색이 전체적으로 제품에 들어가지 않고, 일부만 살짝 들어가도 예외는 없었다. 분홍색이 조금이라도 더해지면 바로 ‘여성용’ 사이즈만 나오는 모양새다.

색상으로 남녀용을 구분 짓는 이유에 대해 아웃도어 브랜드 측에 묻자 “소비자 니즈(needs)에 따라 제작된 것”이라는 답변이 대부분이었다. 특히 가장 많은 다른 색상의 제품을 내놓은 코오롱스포츠 관계자는 “많은 제품이 남녀공용으로 출시되고 있고, 색상이 다르게 나오는 제품은 극히 일부 상품”이라며 “이 상품들은 그간 소비자가 구매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인기가 많았던 색상 중심으로 적용한 것이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패션 업계 관계자들은 ‘소수의 제품이라도 색상으로 남녀를 구분 짓는 시대는 지났다’고 입을 모은다. 한 패션업계 관계자는 “이전까지 색상이 남녀를 구분 짓는 기준이었다면, 요즘은 패션에서 색상은 그저 개인의 취향일 뿐이다. 국내 아웃도어 브랜드들이 젊은 소비자를 이끌기 위해 앞다퉈 스타 마케팅을 펼치는 등의 값비싼 마케팅을 펼치지만, 제품이라는 알맹이는 구시대적인 사고 안에 갇혀 있다”며 “특히 코오롱스포츠 같은 경우, 전통적인 섬유회사가 기반이기 때문에 내부적으로 보수적인 분위기가 팽배하다. 최근 아웃도어 브랜드를 키우기 위해 코오롱의 핵심 사업인 남성복 사업부에서 일하던 한경애 전무 등이 합류하면서 좀 더 탄력을 받고 있다지만, 새롭고 젊은 트렌드는 아직 따라잡질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색상으로 남녀 구분 짓지 않는 해외 브랜드

국내 아웃도어 브랜드가 색상으로 남녀 소비자를 구분하지만, 해외의 아웃도어 브랜드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등산화로 유명한 이탈리아 아웃도어 브랜드 ‘잠발란’이 대표적이다. 국내 아웃도어 브랜드가 내놓은 제품은 색만 봐도 여성용인지 남성용인지 알 수 있지만, 잠발란 제품은 대부분이 남녀공용이고 색상으로 남녀 제품을 구분하지 않는다.

또 잠발란은 19세기 돌로미테 산을 정복한 여성 등산가들의 이름을 따서 여성의 발 모양에 특화된 여성용 등산화를 따로 제작하고 있다. ‘마리GTX’ ‘아멜리아’ ‘헨리에뜨GTX’등의 제품이 대표적이다. 이들 제품은 모두 여성용이지만 검정, 남색, 초록색, 빨간색 등 다양한 라인업을 갖추고 있다.

한 패션업계 관계자는 “브랜드 입장에서는 재고를 최소화하기 위한 방법이었을 것이다. 또 코로나19 장기화로 경기가 좋지 않은 상황 속에서 국내 아웃도어 브랜드는 색상으로 모험하고 싶진 않았을 것”이라며 “이전에는 아웃도어 브랜드의 주요 소비자는 중장년층이었다. 이 같은 색상 분류가 크게 문제 되지 않았고, 오히려 판매율이 높았을 것이다. 이제는 아웃도어 제품을 일상복처럼 착용하는 젊은 세대가 많아졌기 때문에 이 같은 젠더 컬러 문제에 대해 더욱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라예진 기자 raye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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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75호 (2021.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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