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the Cover

Home>포브스>On the Cover

천재성 뛰어 넘는 얼음 요정 

김연아의 魔力
Korea Power Celebrity 40 

글 이임광 객원기자
재능을 믿지 않고 정직하게 훈련한 것이 피겨 퀸의 성공 비결이다. 김연아가 정말 두려워하는 것은 엉덩방아가 아니라 연습이 부족한 상태에서 링크에 들어가는 것이다.

피겨 스케이트는 모순과 역설의 스포츠다. 차가운 얼음판 위의 가장 뜨거운 몸짓이다. 빙판을 베는 날카로운 날이 창조하는 부드러움의 극치다. 한편으로는 싸움의 기술이다.

수평과 수직의 팽팽한 견제이자 중력과 관성의 극복이며, 미끄러짐과 마찰력이 교차하는 찰나에 최고의 기술이 나온다. 점프가 성공하면 우아하지만, 넘어지면 볼품없는 엉덩방아다.

넘어졌다 일어서는 모습은 더 우스꽝스럽다. 그래서 김연아는 아름답다. 김연아는 이미 세계적인 스타로 떠올랐다. 2월 캐나다 밴쿠버에서 열린 4대륙 선수권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면서 2010년 밴쿠버 동계 올림픽의 유력한 금메달 후보로 부상했다.

김연아는 피겨 선수의 가장 이상적인 체격과 연기력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무대에서 보여주는 자신감과 무대 밖에서 보여주는 겸손함도 늘 화제가 되곤 한다.

국민적 관심과 희망적 이미지 덕분에 광고주들이 앞다퉈 모시고 있다. 덕분에 ‘은반의 여왕’에 이어 ‘CF의 여왕’이란 타이틀도 추가했다. 처음 피겨를 시작할 때 “나중에 성공하면 그림 같은 집을 엄마에게 사 주겠다”던 약속은 언제라도 실행 가능하다.
김연아의 일거수일투족은 온통 국민의 관심을 끌고 있다.

경기 때 사용한 배경 음악은 ‘김연아 테마’로 신드롬을 일으킨다. 방송가에선 김연아를 떠오르는 엔터테이너로 주목하고 있다. 그 역시 적극적으로 팬 서비스를 하는 스타의 매너를 익혔다. 스케이트를 신은 채 아이스 링크에서 원더걸스의 ‘노바디’ 춤을 멋지게 선사했다.

기자회견 때 나온 순진함과 유머 있는 답변은 ‘김연아 어록’으로 인터넷 인기 검색어가 되기도 했다. 피부가 좋은 비결을 묻는 질문에 “실내 스포츠라서 그런가요?”라고 대답하는 식이다. 김연아를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는 국민이 많다. 김연아를 힘들게 했던 열악한 환경도 사라졌다.

스케이트화가 맞지 않아 고민하지 않아도 되고, 부상을 당해도 치료받을 병원이 없어 찾아 헤매지 않아도 된다. 또 피겨 스케이트에 적합한 빙질(氷質)을 갖춘 아이스 링크가 없어 서울 잠실에 있는 롯데월드에서 연습하지 않아도 된다. 세계 최고의 빙질을 자랑하는 캐나다 링크에서 얼마든지 훈련할 수 있고, 캐나다 피겨스케이트 국가대표 출신인 브라이언 오서 코치에게 기술을 전수받는다.

김연아의 천재성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다. 그는 만 12세 이전에 피겨의 다섯 가지 트리플 점프를 모두 완성한 신동이며 천재다. 하지만 그와 동갑이자 숙명의 맞수인 일본의 아사다 마오가 어쩌면 더 타고난 천재인지 모른다. 마오의 전유물처럼 알려진 트리플 악셀(3.5회전 점프)을 김연아는 아직까지 보여주지 못했다.

그런데도 그가 마오보다 한 수 앞서는 것은 천재성을 뛰어넘는 무언가가 있기 때문이다. 김연아는 특별한 기술을 뽐내지 않지만, 어느 하나 뒤떨어지는 것도 없다. 그래서 ‘토털 패키지’다. 공부로 치면 과락없는 우등생인 셈이다. 가끔 총점이 모자라 전교 1등을 놓치기는 하지만, 시험을 볼 때 모르는 문제는 모른다고 하고 아는 문제는 식까지 정확하게 적어내는 아주 ‘정직한 실력’을 갖춘 학생이다.


순위권에 들려면 ‘마의 2.5회전’을 넘어 세 바퀴를 돌아야 한다. 바로 이 대목에서 선수들은 유혹을 받는다. 회전 각도를 조절해 수월하게 회전하는 방법을 찾게 마련이다.

몸을 미리 튼 상태에서 돌거나 두 바퀴 반을 지나 채 세 바퀴를 채우지 않은 상태에서 몸을 미리 빼는 식의 방법도 쓰게 된다. 김연아는 이 유혹과 싸워 이겼다.

컴퓨터 판독으로도 한 치의 오차를 내지 않는 정확하고 정직한 점프와 회전을 만들어내기 위해 뼈를 깎는 연습을 거듭했다. 연습량 이상의 무리한 시도는 하지 않았다. 전국 수석의 공통된 비결은 교과서에 충실한 것이다.

마오와 대적하는 방식도 교과서적이다. 마오의 트리플 악셀은 김연아에게 큰 부담이었다. 처음엔 트리플 악셀을 시도할까 고민하기도 했다. 그것은 승산 없는 무리한 욕심이었다. 그러던 중 그는 마오의 허점을 간파했다.

마오는 트리플 악셀의 절대강자였지만, 다른 기술들에서는 그에 걸맞은 실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었다. 김연아는 마오가 놓치거나 소홀할 수 있는 기술을 완벽하게 구사하기로 했다. 그리고 2006년 3월 슬로베니아에서 열린 세계 주니어 피겨 스케이팅 선수권대회에서 ‘일본의 별’ 마오를 제치고 우승을 차지했다.

물론 우승이 목표였지만 김연아에게 더 중요한 것은 ‘원칙과 기본에 충실해 감점을 받지 않는 일’이었다. 김연아는 링크에 들어가며 이렇게 말하곤 한다. “목표는 실수를 최소한으로 줄이는 것이다.”

두려운 것은 엉덩방아가 아니라 연습 부족


‘대인배 김슨생’이란 별명은 아무리 큰 시합에서도 대범하게 연기를 보여준다는 극찬이다. 실제로 김연아는 큰 경기에 강하다. 김연아가 성공이 불확실한 고난도 기술에 집착했다면 그런 여유와 자신감을 갖지 못했을 것이다.

점프를 하다 넘어지는 경우에도 그다지 긴장하지 않는다. 2009 국제빙상연맹 4대륙 선수권대회에서도 그랬다. 넘어지고도 우승을 차지할 수 있었던 것도 그런 평정심을 유지했기 때문이다.

2교시 시험에서 몇 문제를 틀렸다고 3교시 시험을 망칠 순 없다는 것을 김연아는 잘 알고 있다. 실수에 대한 미련과 집착은 김연아에게 불필요한 감정의 사치다. ‘연습한 만큼 보상받는다’는 것을 알기에 김연아에게 두려움은 없다.

정말 두려운 것은 연습이 부족한 상태에서 링크에 들어가는 것이다. 선수 생활을 시작한 후 김연아는 몇 차례나 아이스 링크를 떠날 위기가 처했었다. 6학년이 됐을 때는 아버지가 경영하던 회사가 문을 닫기 직전까지 어려워졌다. 당시 김연아의 재능을 알아본 코치는 “레슨비를 받지 않고라도 계속 가르치겠다”고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영어도, 노래도 모방의 천재


어머니 박미숙 씨는 김연아의 마음을 가장 잘 이해해 주는 조언자다.
은퇴 경기였던 전국 체전이 열리던 날 김연아의 컨디션은 최악이었다. 발목 부상이 채 회복되기도 전에 무리하게 훈련을 한 탓에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할 만큼 고통스러웠다. 주위의 만류에도 발목에 마취약을 뿌리고 경기에 임했다.

경기 결과는 예상을 벗어나 완전히 다른 국면을 맞았다. 김연아가 트리플 점프 다섯 개를 모두 성공하면서 마지막이 될 줄 알았던 전국 체전을 다시 피겨 스케이트를 시작하는 계기가 됐다.

김연아는 닮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반복해 따라 하고 정말 똑같이 만들어내는 타고난 능력이 있다. 김연아가 피겨를 시작할 무렵 미셸 콴의 연기 장면을 녹화해 두었다가 보고 또 보며 몸 동작, 손 동작은 물론이고 표정까지 하나하나 잡아내 똑같이 흉내 냈다.

다른 유명 선수들에게서도 장점들을 분석해 그들의 장점만을 모아 자신의 퍼포먼스를 완성해갔다. 운동을 하면서 영어 실력을 쌓을 수 있었던 것도 모방 능력과 무관하지 않다.

엄마가 귀동냥이나 하라고 언니 애라 씨가 듣던 영어회화 테이프를 틀어주었는데, 김연아는 회화 속에 나오는 원어민의 말을 거의 성대 모사 수준으로 따라 했다.

덕분에 지금은 외국 언론과 통역 없이 인터뷰를 하고 현재 캐나다인 코치와도 아무 문제없이 대화할 수 있을 정도다. 놀라운 노래 실력도 모방의 힘이 컸다. 김연아가 피겨의 여왕이라면 엄마 박미희(46)씨는 여신쯤 된다. 김연아의 또 다른 코치인 셈이다. 박 씨는 체계적으로 피겨를 배운 적이 없지만 김연아를 가장 정확하게 꿰뚫어보는 코치임에 틀림없다.

링크에 들어가기 전 워밍업과 훈련 후 스트레칭은 언제나 박 씨가 함께 했다. 지금도 박 씨는 코치와 함께 회의를 하며 경기 내용을 분석하고 보완 전략을 짠다. 다른 어머니들이 박 씨에게 “도대체 무슨 책으로 공부를 하기에 코치처럼 아이를 지도할 수 있느냐”고 물어보면 그는 ‘김연아’라고 대답한다.

누구에게나 자신의 아이만큼 ‘살아 움직이는 교과서’는 없다는 것이다. 김연아가 ‘피겨의 교과서’라고 극찬을 받을 때마다 박 씨는 정석만을 요구했던 날들이 미안할 뿐이다. 김연아가 부상으로 훈련 중에 고통을 호소할 때도 박 씨는 모성을 밀어 넣어야 했다. “아픈 걸 인정해야 해. 울어도 없어지지 않는 거니까 참아야 해.”

김연아는 이제 경쟁과 승부를 뛰어넘는 ‘행복한 스케이터’가 되려고 한다. 오서 코치가 김연아에게 필수적으로 요구하는 기술도 바로 즐거운 마음으로 연기하는 것이다. 초등학교 시절 우상이었던 미셸 콴을 보며 김연아는 이렇게 말하곤 했다. “미셸 콴은 감동이야, 나도 저런 감동을 주는 피겨 선수가 되고 싶다.”

감동은 확실히 인기와는 다른 것이다. 그것은 밴쿠버 동계올림픽 금메달보다도 빛나는 진정한 스타의 모습이다.

200903호 (2009.02.23)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