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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의의 조건은 차가운 머리와 뜨거운 가슴 

COVER STORY|대한민국 100대 名醫 

글 신버들 기자, 사진 서울대병원·서울아산병원 제공
치료법을 표준화하고 있지만 의사들의 처방과 시술은 다른 경우가 많다. 평범한 의사가 있는가 하면 경험이 많고 실력이 뛰어나 병을 잘 낫게 하는 의사도 있다. 환자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병을 잘 고쳐주는 그야말로 명의를 만나는 게 중요하다.

▎다른 병원을 헤매다 심장 질환 전문의인 김효수 서울대병원 순환기내과 교수를 찾는 환자가 많다.

5년 전 권성준 한양대병원 외과 교수에게 28세의 젊은 위암 환자가 찾아왔다. 권 교수는 이 환자가 다른 병원 두 곳에서 치료가 불가능하다는 판정을 받고 찾은 마지막 희망이었다.

권 교수를 찾았을 때는 이미 위암이 췌장, 난소 등으로 전이돼 있었다. 권 교수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자궁과 난소를 절제하는 수술을 하고, 6개월 동안 항암제를 투약했다.

권 교수는 “이후 운동량을 줄이라고 권할 만큼 상태가 좋아졌다”고 했다. 그러나 2년 3개월 후 다시 복수가 차 올랐고 환자는 곧 세상을 떠났다. 만약 그가 조금만 더 빨리 권 교수를 찾아왔다면 어떻게 됐을까.

최근 김포에 사는 임모(67·난) 씨는 새벽에 집 계단에서 굴러 머리를 심하게 다쳤다. 그러나 가족 중 누구도 어느 병원으로 가야 할지 정하지 못해 우왕좌왕 하다 안산에 있는 K병원까지 갔다. 결국 임 씨는 수술 며칠 후 사망했다.

불의의 사고였지만 병원이나 전문의에 대한 상식이 조금만 있었더라도 사망까지는 이르지 않았을지 모른다. 사람들은 대개 병이 들어서야 부랴부랴 ‘어느 병원 누가 잘 치료한다더라’는 말을 듣고 이리 저리 헤맨다.

그러다 치료 시기를 놓치거나 번지수를 잘못 찾아 낭패를 보기도 한다. 그런 일을 없애려면, 특히 스트레스와 격무에 시달리는 CEO는 자신의 질환에 대한 명의들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물론 질병에 대한 치료법은 대개 표준화 돼 있다. 그래서 누가 치료를 하든 기본적인 방법은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의사 개개인의 경험이나 노하우는 무시할 수 없다. 눈으로 확인할 순 없지만 수술법 등 미묘한 차이가 생과 사를 가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성규 강남세브란스병원 신장내과 교수는 “새로운 치료법이 계속 개발되므로 전문 분야에서 오랫동안 경험을 쌓은 의사를 찾아가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자신에게 맞는 의사를 못 찾아 헤매는 환자들도 많다. 김현아 한림대병원 류마티스 내과 교수는 “예를 들어 관절염 환자들이 자신을 가장 잘 치료해줄 수 있는 의사를 만나는 데 평균 2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된다”며 안타까워했다. 류마티스 관절염은 초기 2년 안에 적절히 치료해야 완치할 가능성이 있는데 그 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진정한 명의’란 어떤 사람일까. 100대 명의를 대상으로 e메일 설문 조사를 한 결과 많은 의사들이 명의의 조건으로 ‘차가운 머리와 뜨거운 가슴’을 꼽았다. 우선 환자 개개인에게 적절한 치료제를 선택하고, 수술을 잘 하는 데 필요한 전문 지식과 기술을 파악하는 이를 명의라고 생각했다.

의학 지식과 기술이 복잡하게 진화하는 요즘은 이 조건을 갖추기가 더욱 어려워졌다. 또 다른 조건은 환자를 먼저 생각하는 마음이다. 심장 질환 전문의인 김효수 서울대병원 순환기내과 교수는 “자신의 업적이나 병원 수익을 생각하기 전에 환자의 건강을 먼저 생각하고 최적의 치료를 하는 의사가 진정한 명의”라고 설명했다.

국내 곳곳에 묵묵히 진료에 열중하는 명의들이 많다. 그 명성을 듣고 외국에서 국내 의료진을 찾는 사례도 있다. 2년 전 김 교수를 찾아온 70대 초반의 재미 실업가가 그랬다. 15년 전에 미국에서 관동맥 우회로 수술을 받은 그는 협심증이 악화돼 다시 검진을 받았다.

미국 병원에서는 혈관이 과도하게 축소돼 수술이나 성형술로 치료가 불가능하다고 했다. 그 진단에 따르면 이 환자는 평생 약물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김 교수는 혈관 세 곳을 치료하면 효과를 볼 수 있겠다고 판단하고 스텐트를 사용해 이 부분을 성형 수술했다.


▎서울아산병원의 협진 시스템은 보다 정교하고, 신속한 치료를 가능하게 한다.

수술 후 이 환자는 전과 달리 계단을 수월하게 오를 정도로 상태가 좋아졌다. 명의를 찾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나라는 의료기관이나 의사들에 대한 정보가 미국 등 선진국처럼 공개되지 않고 있다. 미국은 병원과 의사의 수술 실적, 생존율 등을 알려주는 인터넷 사이트가 많이 있다.

일반인의 경우 약간 번거롭긴 하지만 수련의들의 모임인 전공의협의회에 해당 질환에 맞는 의사를 문의해볼 수 있다. 선배들이 진료하고 연구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본 수련의들은 명의를 골라내는 비교적 객관적인 눈을 갖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다른 방법은 특정 질환을 다루는 전문 학회에 문의하는 것이다.

현재 암, 고혈압, 심장병 등 익숙한 질환들은 학회가 활성화 돼 있다. 이들 학회에서는 해당 질환에 대한 정보도 제공하고 있다. 병원의 분야별로 협조 체제가 잘 갖춰져 있는가 따져보는 것도 방법이다. 관련 분야 의료진이 함께 고민하면 질병의 원인을 파악하고, 효과적인 치료 방법을 찾는 데 유리하다.

폐암 전문의인 김우성 서울아산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폐암 진료에 필요한 다른 과 의료진의 협조 덕에 환자에게 다양하고 정확한 진료를 제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200906호 (2009.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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